리뷰2012.05.22 03:17




NT Wright @ Washington DC






지난 5월 9일(수) 오후 5시에 워싱턴 DC에서 톰 라이트 초청 강연이 있었다. 세이비어 교회의 부속 기관인 Servant Leadership School 이 주최한 행사였는데, 200여석의 좌석이 가득 찬 가운데 1시간 좀 넘게 강연과 질의응답이 이어진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톰 라이트의 강연을 직접 듣기는 처음인데, 그동안 동영상으로 여러번 보아왔던 것처럼 매우 달변에 쉼 없이 밀도 있는 내용을 이어가느라 시간이 짧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강연회는 그의 새로운 책 How God Became King: The Forgotten Story of the Gospels (2012)의 내용을 주로 소개하는 시간이었는데, 그의 전작 Simply Jesus: A New Vision of Who He was, What He did, and Why He matters (2011)의 내용도 함께 다루어졌다. 새로운 책의 요지는 쉽게 말하자면, 서신서의 예수가 아니라, 복음서의 예수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는 강연 첫머리를 "우리 가운데에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 같다. 서신서 그리스도인(Epistles Christians)과 복음서 그리스도인(Gospels Christians)인데, 이 둘은 신앙생활의 형태, 강조점, 선호하는 내용 등이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자가 바울을 언급하며 회심, 칭의, 성령, 전도 등을 말하면, 후자는 예수와 산상수훈을 말하면서 정의, 십자가, 모범 등을 강조한다. 오늘 우리들에게 최대의 과제는 어떻게 이 둘을 조화시키고,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복음서가 그려내는 예수의 삶에 대한 생동감 있는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그는 사도신경에도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로 바로 건너뛰면서 예수의 삶을 통째로 생략하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물론, 그는 신조(Creed)는 초대교회에서 논쟁점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려는 용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에 관한 문제는 거의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런 누락을 이해할 수는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오고 오는 세대가 예수의 삶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고 있다는 점은 성경의 거대한 드라마를 이해하는데에 매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강연은 종종 미국과 영국의 기독교 문화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을 세밀하게 잘 짚어내주었는데, 예를 들면, '정교분리' 원칙이 미국과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다고 하였다. 영국에서는 성공회 주교들이 상원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등 어떤 면에서는 교회의 정치 참여가 제도적으로 확보되어 있는 상황인데,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정의, 평화, 가난한 자에 대한 이러 저러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은 주로 '좌파'적 관점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우파'들이 '정교분리'를 들어 이런 흐름에 거슬러 논쟁을 한다는 것. 반면에 미국은 '우파'쪽에서 기독교 가치를 들고나와서 낙태, 동성애, 시장자유 등의 주장을 하기 때문에 '좌파'쪽에서 '정교분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각각의 경우에 '기독교적 가치'가 등장하지만, 그 근원을 성경의 어디에서 끌어내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촌평을 곁들였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는 그 가르침과 지향점이 오늘 우리들의 성경 읽기에서 회복되고, 교회의 신앙적 가르침에서 강조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되살아나기를 강력히 촉구하면서 이날 강연회는 마무리 되었다. 


강연회 전에 그를 잠깐 만나 인사 나누면서, 내가 2000년대 초반에 한국에 그를 대중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글을 썼다는 점과 최근에 나온 그의 책 Paul in Fresh Perspective (톰 라이트의 바울)에 추천사를 썼다는 것을 전하고 함께 사진 한 컷 찍었다. 그를 알고나서 10년이 넘어서 처음 조우를 한 셈이니,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런던에서 London Bible College (지금은 London School of Theology로 개명)에서 MA과정할 때, 그의 미출판 박사논문을 참고하며 공부했던 기억도 난다. 한국에 톰 라이트의 책이 좀더 밀도 있게 읽히고, 저변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월간지 '복음과상황'에서 했던 토론회 기사 하나를 링크해 둔다.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911


아래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출간된 톰 라이트의 저술들을 찾아보기 쉽게 링크 걸어놓는다. 그의 everyone 시리즈와 설교집 등을 제외하고,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와 좀 진지한 학술적 저술들만을 골랐다. 관심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Posted by erasmus
광고2011.04.18 18:18


이미 시작하긴 했지만,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올려 둡니다.

제1강(3/28) "태초부터 감추인 비밀: 르네 지라르" (정일권 박사)
제2강(04/04) "진화하는 기독교의 십자가의 의미: 과정신학" (김희헌 박사/ 기사연 연구실장)
제3강(04/11) "예수의 정치, 십자가의 정치: 존 하워드 요더" (김기현 목사/ 로고스서원)
제4강(04/18)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톰 라이트" (권연경 교수/숭실대)
제5강(04/25) "영광의 신학 대 십자가의 신학: 루터" (김주한 교수/한신대)
제6강(05/02) "십자가- 빛과 소리, 글과 말: 윤동주"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장소: 명동 청어람 
문의: 전화 02-319-5600
수강신청: 청어람아카데미 http://bluezine.tistory.com/340 

Posted by erasmus
리뷰2009.11.29 20:03

* 이 글은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발간한 무크지 <EG>에 2006.05.25에 기고되었다. 역사적 예수 연구와 관련해서 톰 라이트의 작업에 대한 대강을 담고 있고, 그의 세번째 주저가 출간된지 오래이니 이 논의도 업데이트가 될 필요가 있다. 각주가 달린 원고는 아래에 링크되어 있다.  






톰 라이트, 예수 (살림, 2007)



‘역사적 예수’에 답이 있다

기독교변증에서 톰 라이트(N. T. Wright)의 다층적 기여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기획자)

yangheesong@hotmail.com 



0. 들어가는 말

‘역사적 예수 연구(historical Jesus studies)’는 20세기 내내 성서학계의 주요한 방법론과 경향이 바뀔 때마다 요동을 친 대형 주제이다. 이 문제에 관련된 수많은 쟁점들은 대다수가 현재 진행형의 논란거리들이고, 이를 일목요연하고도 포괄적으로 다루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그간 국내의 역사적 예수 논의가 주로 ‘민중 신학’의 흐름에서나 북미의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흐름에 의해 강하게 주도되고 있다 보니 복음주의권에서는 이 주제 자체를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등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 방치한 감이 있다.1)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는 영화 ‘다빈치 코드’나, 영지주의 문서인 <유다복음>의 발굴 등을 맞닥뜨리면서 매우 혼란스런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런 이슈들은 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연구 분야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이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효과적 대응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의 경우, 역사적 예수 연구의 쟁점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정상급 학자들 간의 토론이나 논쟁으로 풀어나가는 여유를 발견할 수 있다.2) 이 글에서는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영국의 복음주의 학자 톰 라이트(N. T. Wright)의 신학세계를 소개하고, 그의 작업이 갖는 다층적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한다.


1. 복음주의 학자 톰 라이트(NT Wright)

톰 라이트(NT Wright)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Cathedral)의 주임 신학자(Canon Theologian)를 거쳐 더람의 주교(Bishop of Durham)로 재직하고 있는 성공회 목사이자 학자이다. 그는 왕성한 필력으로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 끊임없이 저술을 내어놓고,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일급 학자이다3).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과 고전(classics) 양 과에서 우등졸업을 했고, 옥스퍼드, 캠브리지, 캐나다의 맥길(McGill) 대학 등지에서 가르쳤다. 그는 대학생 시절 ‘성서 유니온(Scripture Union)’ 캠프에 참여했었고, 옥스퍼드 IVF 모임의 대표를 지내는 등 복음주의 학생선교단체에서 활동했고, 현재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센터 역할을 하는 학교인 캐나다 뱅쿠버의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에서도 교환교수로 가르치는 등 주목받는 복음주의 학자로 자리 매김되어 있다4).


그는 학술적인 책뿐 아니라 대중적인 책도 많이 내는 편인데, BBC 같은 곳에서 역사적 예수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널리 알려진 클레이 애니메이션 <The Miracle Maker>에도 그가 자문과 고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화려한 학문적 이력을 가진 그가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지 않고, 성공회의 목회자로 오직 저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그를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데에는 약간의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흔히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고 할 때에는 7-80년대 미국에서 절정기를 맞은 대중적 기독교 신앙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는 흔히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으로 대표되고,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으로 형상화되는 어떤 신앙적 태도이다5).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내부적 흐름이 혼재하고 있고, 레이건(Reagan) 이후 부시(Bush)에 이르는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를 근거로 삼는 근본주의적 신앙인들도 이 명칭 아래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복음주의는 전반적으로 정치적 보수 성향을 갖고 있는데, 신학적으로도 매우 보수적 입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미국 복음주의권의 신학적 경직성에 대해서는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6).


톰 라이트는 미국식의 전형적 복음주의자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그렇게 선재단된 복음주의 신앙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7) 성서학과 역사학의 연구방법론에 대해서도 유효적절한 것이라면 다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태도는 일부에서 그의 작업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보아 그의 작업이 복음주의 신학이 지금껏 탐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과감한 작업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8).


2.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 동향


2.1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역사적 예수 논의는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으나, 최근의 급격한 대중적 관심은 북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영향이 크다. 1985년에 일단의 북미 신학자들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란 이름의 연구모임을 시작한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이 실린 주후 300년 이전의 모든 문서를 대상으로 이것이 실제 예수가 한 말인지, 아니면 후대에 삽입된 것인지를 학자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이것을 빨강, 분홍, 회색, 검정의 네 가지 색으로 나누어서 ‘확실하다’에서 ‘확실히 아니다’까지를 표시한 <다섯 개의 복음서>란 책을 93년에 내었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서는 외경인 ‘도마 복음서(Gospel of Thomas)’와 가상의 전승인 Q 문서가 가장 신뢰할만한 예수의 어록을 담고 있다고 제시하였다9).


그 모임은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예수는 유대지방을 돌아다니며 금언(aphorism)과 비유(parable)를 주로 쓰면서 사람들에게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설파한 현자(Cynic)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 따르면, 예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은 있었으나, 스스로가 해답을 가졌다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해답을 가졌다고도 믿지 않았던 인물이며, 비종교적인 독특한 발상을 과장법과 패러독스를 통해 전달했고, 예루살렘에 축제 기간 중 올라갔다가 성전에서의 분명치 않은 사건을 통해 재판 없이 처형된 인물로 그려졌다10).



2.2 예수 세미나에 대한 비판들

이런 예수 세미나의 작업에 대한 평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편에서는 고고학, 인류학, 사회학, 성서학 등의 학제간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를 통해 역사적 예수가 누구였는지를 파격적으로 재조명해내었다는 평가가 있는가하면, 다른 편에서는 자신들이 전제하고 있는 예수상을 도출하기 위해 자료나 연구 방법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등 학문의 외피를 입고는 있으나 엄정한 연구가 아니란 평도 있다. 이 그룹의 실질적 리더인 로버트 펑크는 자신들의 연구가 근본주의 기독교(fundamentalist Christianity)가 상정하는 예수상을 깨고, 이 시대를 위한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밝힌바 있고, 그가 내어놓은 현대 기독교를 위한 21개 테제는 그가 지향하는 기독교의 상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11). 예수 세미나에 가해진 주요한 비판은 이렇다.


첫째는 그들의 ‘선정주의(sensationalism)’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매체의 입맛에 맞게 소개한다는 식의 불평만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교회의 지배와 간섭에서 자유로운 학자들의 작업의 결정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성경을 가리켜 ‘The Scholars Version’이라고 명명한 것에 대해 그 모임에 속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는 다른 많은 학자들은 냉소적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벤 위더링턴(Ben Witherington)이나 리차드 헤이즈(Richard Hays)등이 ‘예수 세미나에는 북미나 유럽의 주요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자들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들의 학문적 대표성 운운은 어불성설이다’는 비판은 그래서 상당히 심정적 동감을 얻어내었다12). 현재는 그 참여폭이 꽤 확대되기는 했으나, 예수 세미나의 초창기에 참여한 이들은 그리 폭넓은 배경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물론 공동의장인 로버트 펑크(Robert Funk)나 도미닉 크로산(Dominic Crossan) 등은 SB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등에서 활동하는 거물급 학자인 것이 분명하나, 여전히 비슷한 전제와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산출해낸 예상 가능한 결과물이란 비판을 결정적으로 피하지는 못한다.


둘째는 방법론(methodology)의 문제이다. 이 모임은 공동작업을 통해 예수 어록(the sayings of Jesus)과 예수 행위(the acts of Jesus)의 진정성(authenticity)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했다13). 그러나, 이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론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가해졌다. 우선은 그 전제(premises)인데, 예를 들면 진정성 확정을 위해 이들이 사용한 ‘상이성의 원칙(principle of dissimilarity)’는 원래 다양한 사본 가운데서 더 오리지날에 가까운 사본을 정할 때 적용하는 제한적 원리인데, 여기서는 그 적용범위가 확대되어서 ‘독특하면 독특할수록 더 예수적’이란 선입견을 불어넣게 된다. 이는 결국 예수를 당대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적 맥락에서 ‘더 유리되면 될 수록 더 예수적’이란 식으로 그려낼 방법론적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가 비유대적(non-Jewish), 일탈적 현자(subversive Sage)로서의 예수상으로 귀결된 것은 이런 면에서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또, 예수의 어록이나 행위의 진정성을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 자체가 갖는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색깔별 판별에서 어떤 구절이 빨강과 분홍을 많이 받았으나, 다른 이들이 검은 색을 더 많이 던지면, 산술적 평균은 회색, 즉 ‘아닐 것이다’로 기운다는 점이다14). 이런 방식의 신뢰성은 그 모임의 구성원이 얼마나 대표성을 지니는 성서학자들인가에 결정적으로 달려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 ‘예수 세미나’는 그런 점에서 다른 학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는 위의 방법론과도 결부되는 문제로 사용한 자료(data)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학문적 작업들은 결국 무슨 자료를 어떤 방법론으로 연구하느냐에서 차이가 생긴다. 예수 세미나에서 선호하는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와 가상의 전승인 Q에 대한 학자들 간의 합의는 아직 도출된 바 없다15). 예수 어록(the sayings of Jesus)의 진정성을 투표로 결정한 것이나, 그 결과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를 사복음서와는 별도의 예수 전승을 담고 있는 주요 어록으로 부각시킨 것이나, 여타 다른 외경들(베드로 복음서, 마가의 비밀복음 등)에서 초기 전승의 층을 뽑아내는 등의 작업이 상당부분 성서학 전반에서 견지하는 방법론적 합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16). 예를 들면, 도마 복음서의 경우,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것이 마태와 누가의 내용이 혼합된 후기의 저작으로 영지주의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반면, 예수 세미나 쪽은 이것이 가장 이른 전승을 담고 있고, 사복음서와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17).


이렇게 자료의 선정에 있어서 다른 신약학자들과 차이가 큰 만큼 그들이 그려내는 그림이 파격적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예수 세미나의 전형적 특성은 예수의 말과 행동에서 초자연적 층위(주로 기적)와 종말론적 내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로써 남는 것은 ‘무소유와 자유정신을 설파한 디오게네스에 비견될 견유철학자(Cynic)로, 혹은 지중해 연안의 농민현자(Peasant Sage)로서 촌철살인의 전복적(subversive) 가르침과 삶을 살았던, 그러나 어떤 정치적 프로그램이나 의도는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예수이다. 만약 예수의 진면목이 이러했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초대 교회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a big mistake)이거나, 매우 불순한 음모(conspiracy)가 아닐 수 없다.18) 예수 세미나는 이런 위대한(?) 거짓말, 혹은 착각을 바로잡음으로써 기독교가 서야할 바른 자리를 찾아주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재구성에 대해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신약학자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은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는 일세기 갈릴리보다는 20세기 캘리포니아 분위기가 물씬하다’고 꼬집었다19).


3. 톰 라이트(NT Wright)의 역사적 예수


3.1 브레데의 길(Wredebahn) vs 슈바이처의 길(Schweitzerbahn)

앞서 살펴본 바대로 예수 세미나는 매우 비전통적 예수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식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에 있어서 드물지 않다.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가 라이마루스(Herman Reimarus)에서 브레데(W Wrede)에 이르는 서구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내린 한 중요한 평가는 19세기까지의 주요한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대체로 ‘후대의 교회들이 인간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한 것으로 비판하면서 ‘역사적 예수’의 복원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연구자 자신들의 시대적 관심사를 투사(projection)한 것에 머물고 말았다는 점이다20). 슈바이처는 또한 ‘종말론(eschatology)’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역사적 예수는 철저히 일세기 유대교의 종말론적 영향 아래 추동되었다는 점(thoroughgoing eschatology)을 그는 강조했다.


톰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연구’는 결국 브레데의 길(Wredebahn)을 택할 것인가, 슈바이처의 길(Schweiterbahn)을 택할 것인가에서 갈라진다고 본다21). 예수 세미나는 확연히 ‘비유대(non-Jewish)’, ‘비종말론(non-eschatological)’, ‘최소주의적(minimalist)’ 예수의 상을 택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현재 성서학의 주요한 성과나 흐름은 다른 방향 즉 ‘신약의 유대교적 특성(Jewishness)’, ‘일세기 유대교 내의 종말론적 특성’을 재인식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길이 좀 더 역사적 자료에 충실한 예수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예수 세미나와 달리 예수의 기적(miracle)과 축사(exorcism)를 ‘역사적 예수’를 재현하는데 중요한 주제로 삼는 이들도 있고(Morton Smith, Geza Vermes, John Meier 등), 종말론(eschatology)이나 유대교(Judaism)의 맥락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란 점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EP Sanders, James Dunn, Gerd Theissen, NT Wright 등).


3.2. 톰 라이트의 방법론(Methodology)

톰 라이트는 전체 5-6권을 예정으로 집필중인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 첫 번째 책 NTPG에서 자신의 방법론과 일세기 유대-팔레스타인의 배경 이해를 정리해놓았다. 이 부분은 단순히 성서학적 연구방법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폭넓은 지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서 기독교 신학과 변증의 여러 영역에서 적용 가능한 제안을 담고 있다.


1) 가설과 검증(hypotheses & verification)

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나타나는 쟁점들은 본질적으로 ‘지식(knowledge)’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즉, 계몽주의 시대 이후 지식에 대해서는 두 가지 극단적 입장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낙관적 실증주의(positivist position), 즉 ‘우리는 객관적(objective) 실재를 알 수 있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지식은 주관적(subjective)이므로 우리는 실재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톰 라이트는 지식이란 ‘가설과 검증 과정(hypothesis-verification process)’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으며,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이를 적용하는 자신의 입장을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이라고 명명하였다22). 이는 과학철학계에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paradigm theory)이 제안된 이래 점차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지식에 대한 이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성서학에 적용해 본다면 아래와 같이 표현될 수 있다23).



story-telling humans ---------------------------------------------------------------- story-laden world

initial observation (already within a story)

<------------------------------------------------------------------------------------------------------

is challenged by critical reflection on ourselves as story-tellers (i.e. recognizing our claims about reality may be mistaken)

------------------------------------------------------------------------------------------------------>

but can, through further narrative, find alternative ways of speaking truly about the world, with the use of new or modified stories


인간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story, narrative)’로 구성하며, 이런 이야기들의 총화는 결국 ‘세계관(worldview)’으로 집약된다고 톰 라이트는 주장한다. 현대인의 눈에는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어떤 진술도 그렇다고 해서 무시되어서는 안 되며, 과연 일세기의 세계관적 토대 위에서 그런 이야기는 어떤 의미와 효과를 가지는지 자세히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일세기의 세계관적 매트릭스 속에서 이야기의 의미가 재구성 되는 측면에 주목하기보다, 오늘날의 관심과 관점에서 일세기의 이야기를 재단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실존이 과연 어떤 이유에서 일세기 유대사회에서 상당한 정도의 추종자를 얻었으며, 그가 주장한 자기인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를 세밀하게 따져가면서 역사적 기독교가 어떻게 출몰했는지 규명해야 옳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의 중요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신약성경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려는 것과 관련된다. 예수 세미나 등 최소주의적 접근(minimalist approach)에서는 신약의 신빙성을 끊임없이 의문시하면서 외경(epigrapha)이나, 위경(pseudoepigrapha), 영지주의 문서들(gnostic documents)의 신빙성을 오히려 높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톰 라이트는 일세기 유대교의 세계관적 매트릭스 위에서 형성되었고, 그 당대의 대중들을 향해 쓰여진 문서인 신약성경이 전하고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실제 일어난 사건은 아니나 세계관을 진술하기 위한 이야기’가 있고, ‘실제 일어난 사건을 말함으로써 세계관을 진술하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24). 예수의 비유(parable)는 전자에 포함되고, 마카비나 요세푸스의 글들은 후자에 속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현재의 신약학계에서는 이런 구분이 완전히 반전되어서, 눈으로 보았다(eye-witness)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요한복음이 가장 비역사적인 문서로 인식되고, 분명 전자로 분류되는 것이 더 타당할 ‘영지주의’ 문서들이 후자로 분류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25).


2) 세계관(Worldview)

톰 라이트는 제대로 된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해서는 우선 일세기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규명해내고, 그 세계관의 맥락 위에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언어화된 신조(articulated beliefs)는 사실상 언어적, 비언어적 세계관의 요소들이 표면화 된 것이기 때문에 톰 라이트는 일세기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구성을 살펴본 후에 일세기 유대인들의 이야기, 상징, 실천을 분석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26)


톰 라이트는 이 작업을 하는 데에 브라이언 왈쉬(Brian Walsh)의 세계관 논의 틀을 차용한다.27) 톰 라이트가 제안하는 일세기 유대인들의 세계관적 틀은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단순화 시킬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에 대해 일세기 유대인들은 “우리는 이스라엘(Israel), 창조주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chosen people)”로 인식하고 있었다.


둘째,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Where are we)?”에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지(Holy Land)에 있으며, 그 중심은 성전(The Temple)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in Exile)”고 말할 것이다.


셋째,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What is wrong)?”에 대해 “우리는 잘못된 통치자 아래 있다: 한편으로는 로마제국의 이방인들 아래, 한편으로는 헤롯과 그 가족들 같은 타협한 유대인들의 통치 아래 놓인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넷째, “해결책은 무엇인가(What is the solution)?”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정당한 통치자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혹은 다스림)를 이루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언약에 충실함으로써 이런 하나님의 개입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세계관적 토대 위에서 제2성전 시기의 유대인들이 견지했던 신조들이 설명된다. 유일신론(Monotheism), 선택(Election), 종말론(Eschatology)은 이들의 기본적 신조(basic beliefs)라고 말할 수 있다28). 여기 다양한 파생 신조들(consequent beliefs)이 나오는데, 이는 유대교 내의 여러 집단들이 기본 신조를 구체화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차이들을 반영한다. 예를 들면, 바리새파와 에쎈파들은 기본적으로 유대교란 큰 사고의 틀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그를 구체화하고 실현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상이한 신조를 채택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운동 간의 차별성을 낳기도 했다. 역사적 예수, 혹은 예수 운동은 이런 세계관의 매트릭스 위에서 살펴볼 때 가장 적절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NTPG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본격적 분석 없이 먼저 이스라엘의 세계관과 신조를 분석한 다음, 바로 초대교회의 세계관과 신조를 분석한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세계관적 지향이 일세기 유대교의 주요 관심사나 범주와 무리없이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초대교회의 신앙고백과 신조는 유대교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그것을 새롭게 하는 대안적 이야기들(alternative stories)로 이해될 때 가장 적절하게 설명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유대교적 맥락에서 초대교회로의 급격한 전환을 제공한 존재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 톰 라이트의 연구가 취하고 있는 기본 접근 방식이다.



3.3 톰 라이트의 예수

‘세계관(worldview)’이 어떤 한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점의 총화라면, ‘사고체계(mindset)’는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점을 말한다. 사고체계는 당대의 지배적 세계관의 매트릭스 위에서 조직된다. 둘 다 대표적 이야기, 근본적인 상징, 관습적 행위, 기본 질문들에 대한 응답을 연구함으로써 파악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사고체계는 단순히 세계관이 개인화(individualization), 혹은 내면화(interiorization) 된 것에 머물지 않는데, 특히나 역사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들의 경우는 대부분 그들의 사고체계가 당대의 세계관을 상당정도 변용한 것(significant variations)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를 탐구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의 사고체계를 그려내 보려는 노력과 맞닿게 된다. 그것은 상당정도로 일세기 유대교의 세계관을 변용한 것일 터이나, 그 매트릭스 위에서 의미형성을 해낸 어떤 것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톰 라이트는 이를 위해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수는 일세기 유대교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가?’; ‘예수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왜 예수는 죽었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초대교회는 시작되었는가?’; ‘왜 복음서가 그렇게 쓰여졌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것이 역사적 예수를 진정한 일세기 팔레스타인의 지평 위에서 보게하는 작업이 될 것이란 것이 톰 라이트의 신념이다29).


톰 라이트가 그려내는 예수는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이스라엘의 메시야(the Messiah of Israel)’이다. 그는 NTPG 제10장에서, 제2성전 시기 이스라엘은 묵시적 언어(apocalyptic language)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아내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묵시적 언어와 상징들은 미래적이긴 하나, 피안적 소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not other-worldly)고 보았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백성 위에, 자신들의 거룩한 땅(holy land)에서 실현되는 것을 갈망하는 언어라는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이스라엘의 소망이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구현되는 것(enacted & embodied in his life & death)으로 보았던 메시아적 자의식(messianic awareness)을 가진 존재였다는 것이 톰 라이트의 주장이다.


1) 선지자 예수(Jesus the Prophet)

예수의 지상 사역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역할로 잘 묘사될 수 있다(JVG, II부).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면서 당대의 유대교 체제에 시비를 걸었다. 톰 라이트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란 주제의 조명 아래, 예수의 행위(praxis)와 이야기들(stories)과 상징(symbols) 작용을 분석해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톰 라이트는 예수의 비유(parables of Jesus) 해석에 독특한 시각을 선보이는데, 펑크나 크로산 등이 복음서의 비유를 심미적(aesthetic), 주의 환기적 언어 작용(evocative linguistic performance)으로 본다면, 톰 라이트는 오히려 비유를 일관되게 내러티브(narrative)로 이해하는 입장을 취한다30). 예수의 행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 주로 안식일, 식사 및 계층간의 정결례, 민족적 정체성, 성전 등이었던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유대교의 상징체계(symbol system)를 향한 도발이자,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이해된다.

 

2) 메시아 예수(Jesus the Messiah)

약간 의외일지 모르나, 톰 라이트가 ‘예수는 메시아’라고 말할 때, 그 메시아는 ‘신적 존재(divine being)’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신이었냐, 아니냐는 것은 역사학이 증명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다만 가능성을 시사할 뿐이다. 메시아는 신성과 관련된 범주가 아니라 철저히 이스라엘과 밀착된 개념이다(not divine category, but Israel category)31). 메시아(messiah), 혹은 그에 상응하는 헬라어 표현 그리스도(Christ)는 원래 ‘기름부음 받은 자(the anointed)’를 의미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왕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32). 이스라엘의 왕 개념은 독특해서, 그가 곧 그 백성들을 대표하고, 그 역관계도 성립한다. 예를 들면, 이사야의 ‘종의 노래’에서 ‘종’을 단수와 복수로 번갈아 쓰고 있는 것은 오래된 성서학의 난제 중 하나이지만, 톰 라이트의 입장에서는 메시아와 그 백성의 상호환원 가능한 용례로 해소가 되는 것이다33). 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메시아가 이스라엘에서 성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3) 대속적 죽음(atoning death)

‘예수가 왜 죽었는가?’란 질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인데, 대부분 학자들이 지배 권력에게 위협적 존재로 비침으로써 죽임을 당했다는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설명을 여러 방식으로 변주하고 있는데 반해 그는 예수의 죽음이 초대교회에 의해 신속하게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Christ died for our sins)’는 신학적(theological) 진술로 옮겨가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이는 오직 이스라엘의 세계관적 기초, 즉 외세에 의해 지배당하고 불의한 권력자들 아래 놓이게 된 것- 즉, 연장된 바벨론 포로 생활(extended Exile) -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치 못한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란 이야기 위에서 의미를 갖는 진술이란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성전의 재건(rebuilding the Temple)으로 이야기 한 것이나 자신의 주변에 12명의 제자들을 세우고 사역한 것 등은 명백히 현존하는 유대교의 전면적 재편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란 점이다. 예수의 죽음은 예수 그 자신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고, 초대교회는 바로 그 의도를 충실히 계승한 새로운 이스라엘(New Israel)인 것이다.



4. 닫는 말

국내의 역사적 예수 연구 상황을 둘러보면서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민중 신학쪽 라인에 서는 이들이 톰 라이트의 입장에 공감과 동의를 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는 점이다34). 필자는 이런 조짐이 세부적인 내용에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접촉점을 마련해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한국교회가 그 신앙이 딛고서 있는 원초적 출발점인 ‘역사적 예수’에 대해 새로운 관심과 적극적 탐구를 통해 오도된 예수 상을 걷어내고, 예수의 제자(disciples of Jesus)로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1) 국내에서 많이 읽힌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에서 주장하고 있는 진정한 예수의 모습은 상당부분 미국의 ‘예수 세미나’ 학자들에게 기대고 있다. 이 입장의 취약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비평을 참고하라(양희송, “오강남 교수님, 성불(成佛)의 확신 있으십니까?”, 복음과 상황 2001년 9월호). 본격적인 학술적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는 민중신학적 입장에 서있는 김진호 목사(한백교회, 제3세대그리스도교연구소), 예수운동에 관심을 두고 있는 조태연 교수(이화여대), ‘예수 세미나’의 책을 의욕적으로 번역해 내고 있는 김준우 박사(한국기독교연구소) 등을 들 수 있다.


2) 상반되는 입장의 학자들이 토론한 내용을 묶은 대표적 책은 다음과 같다. Marcus J. Borg and N. T. Wright, The Meaning of Jesus: Two Visions (New York: HarperSanFrancisco, 1999); Robert B. Stewart (ed.), The Resurrection of Jesus: John Dominic Crossan and N. T. Wright in Dialogue (Mineapolis: Fortress, 2006).


3) 그는 원래 바울신학 연구자였으나, NT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Christ and the Law in Pauline Theology (Edinburgh: T&T Clark, 1991),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란 대형 시리즈 저작을 통해 본격적인 역사적 예수 연구자로 자리매김 되었다. 총 5-6권을 목표로 한 이 저술은 현재 3권까지 출판되었다. NT Wright,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London: SPCK, 1992)= NTPG;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London: SPCK, 1996)= JVG;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London: SPCK, 2003), 그는 신약학의 역사로 유명한 Stephen Neill, Interpretation of New Testament 1861-1986 (Oxford: OUP, 1988)의 개정판에서 최근 25년간 동향을 집필하기도 했다.


4) 그는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잡지 Christianity Today(1999년 2월호)에 성서해석학의 케빈 반후저(Kevin Vanhoozer), 조직신학의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등과 더불어 주목할만한 차세대 복음주의 신학자로 선정된 바 있다.


5) 국내의 복음주의 논의는 거의 전적으로 미국적 현상을 놓고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는 국제 복음주의 운동의 주요한 한 축인 영국 복음주의 전통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필자가 받아들이는 복음주의 이해에 근접한 저술은 알리스터 맥그라스,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서울: 장로교출판사, 1997)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복음주의에 대한 복음주의권의 비판적 성찰은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서울: 엠마오, 1996)를 보라.


6) ETS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북미 최대의 복음주의 신학회) 지도부의 신학적 경직성에 대해서는 Craig Blomberg, “The past, present and future of American evangelical theological scholarship” in Carl Trueman et al (eds.), Solid Ground: 25 Years of Evangelical Theology (Leicester: IVP, 2000), 310-19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2002년 6월 복음주의 신학자 110명은 ‘Word Made Fresh’란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는 ETS에서 날로 깊어가는 비관용적 신학성향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다.(원문 및 번역은 필자의 홈페이지 http://evangelical.cyworld.com 를 참고하라.) 


7) 복음주의권에서 매우 즐겨 읽고, 많은 통찰을 얻고 있는 헨리 나우웬(Henry Nowen)은 가톨릭 신부였고, 레슬리 뉴비긴(Leslie Newbigin)은 ‘복음주의자’란 레이블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다. 이런 현상은 복음주의 자체가 사실상 좁은 의미에만 스스로를 한정하지 않고 있음을 일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8) Alister McGrath, “Evangelical Theological Method: The State of the Art” in John Stackhouse (ed.), Evangelical Futures: A Conversation on Theological Method (Leicester: IVP/ Grand Rapids: Baker, 2000), 30-31 에서 그의 작업은 복음주의 신학의 지평을 확대시키는 실험적 노력으로 평가받았다. cf. Carey Newman (ed.), Jesus & the Restoration of Israel: A Critical Assessment of NT Wright's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Downers Grove, Il: IVP/ Carlisle: Paternoster, 1999).


9) Robert W Funk & Roy W Hoover, The Five Gospels: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Words of Jesus (New York: Macmillan, 1993).


10) 예수 세미나는 현재 초기에 비해서는 다양한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그들의 연구방향이나 내용이 대동소이하지는 않다. 그러나, 여전히 펑크, 크로산, 보그 등의 작업이 예수 세미나 전반의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여러 학자들의 작업을 공평하게 비교 정리해 놓은 책으로 추천할만한 것은 Mark Allan Powell, The Jesus Debate: Modern Historians Investigate the Life of Christ (Oxford: Lion, 1998) originally published as Jesus as a Figure in History (Louisville, KT: Westminster John Knox, 1998)이고, 좀더 학문적인 쟁점을 다뤄주고 있는 책으로는 Gerd Theissen and Annette Merz, The Historical Jesus: A Comprehensive Guide (London: SCM, 1998[1996])가 권할만하다.


11) ‘The Coming Radical Reformation: 21 Theses’는 Robert Funk, Honest to Jesus: Jesus for a New Millennium (Macmillan, 1996; 김준우 번역,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말미에 실려있고, Westar Institute & Jesus Seminar 사이트(www.westarinstitute.org)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약간 내용을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인들이 고안해낸 신적 구원자상이란 틀은 신화적이다. 예수가 하늘에서 떨어져, 마술적 행위를 통해 사람들을 죄의 능력에서 풀어주고, 죽음에서 살아나고, 하늘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더 이상 믿을 것이 못된다. 그가 말세에 다시 돌아와 우주적 심판을 할 것이란 생각도 마찬가지로 신빙성이 없다. 우리는 더 신빙성 있는 예수를 위한 틀을 찾아내어야 한다.(제7테제)’, ‘예수의 부활이란 시체가 되살아나는 일이 아니었다. 예수는 아마 은유(metaphor)적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죽음에서 살아난 것이 아니다. 부활의 의미란 약간의 그의 제자들-아마 두엇을 넘지 않았을-이 마침내 그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과 행동의 중요성이 그들에게 깨우침으로 다가왔을 때, 그들은 예수가 살아난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외에는 그들의 놀라움을 표현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제10테제)’ 등의 주장을 볼 수 있다. 톰 라이트는 이런 주장들은 전제가 아니라, 결론으로 도출되었어야 할 것인데 이들은 거꾸로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12) Ben Witherington III, The Jesus Quest: The Third Search for the Jew of Nazareth (Carlisle: Paternoster/ Downers Grove: IVP, 1995), 43. 그는 Richard Hays의 비판을 인용해서, 예수 세미나의 구성원은 매우 의식적으로 선택되었으며, SBL이나 SNTS 등의 권위있는 학회로부터 후원받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펑크의 웨스타연구소(Westar Institute)와 그 자회사인 폴브리지(Polebridge) 출판사의 후원을 받을 뿐이라고 말한다. 유럽 학자들은 거의 배제된 미국 일색의 모임이며, 미국에서도 Yale, Harvard, Princeton, Duke, Chicago, Union, Vandelbilt, SMU, Catholic University 등 주요 학교의 교수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일침을 놓으면서, 그 모임의 학자적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을 표시했다. 덧붙여, 참가자들의 박사학위 수여학교를 찾아보면 Claremont와 Harvard 두 학교 출신이 압도적이란 점도 지적되었다.


13) 그 결과 출판된 결과물이 The Five GospelThe Acts of Jesus: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Deeds of Jesus (New York: Macmillan, 1998) 이다. 최종적으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어록은 오직 18퍼센트, 예수의 행위는 16퍼센트 정도가 붉은색, 혹은 핑크색으로 받아들여졌다. cf. Powell, The Jesus Debate, 75-92.


14) Wright, JVG, 33-34. 톰 라이트는 이런 대표적 예로, The Five Gospels에서 마 18:3; 24:32f; 21:28-31a; 28:31b를 지적한다.


15) 예수 세미나가 견지하는 전제들(premises)에는 이미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Wright, JVG, 32 에서 지적한다. 예를 들면, ‘전제24: 도마복음은 정경의 복음서들보다 더 초기의 전승을 반영한다.’, ‘전제 44: 가장 초기의 자료는 Q1과 도마복음1이고, Q2와 Q3가 이를 가깝게 따라가고 있다.’ 혹은 ‘전제45: 복음서에서 예수에게 돌려진 어록 중 오직 소수만이 그가 실제로 말한 것이다.’ 같은 것들은 연구의 방향을 사전에 재단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들이다.


16) 존 마이어(John P. Meier)는 만약 The Infancy Gospel of Thomas 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사용될 수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주요 자료에서 배제될 이유가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John P Meier, “The Present State of the Third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 Loss and Gain”, Biblica 80 (1999), 459-87).


17) 미국 신약학계의 거물학자인 브라운이 ‘역사적 예수 연구’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고, 예수 세미나에 대해 평해놓은 것을 참고하라(Raymond Brown, 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New York: Doubleday, 1999), 829, 839-40.). 캠브리지의 소장 신약학자 마커스 보크뮤엘(Markus Bockmuehl)은 클라인 스노드그라스(Klyne Snodgrass)를 인용하면서 최근 신약학계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방법론의 붕괴인데, 그 사실을 ‘도마 복음서’의 경우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예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Markus Bockmuehl, “‘To be or not to be’: The possible futures of New Testament scholarship”,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vol. 51 no.3 (1998), 271-306). 역사적 예수 연구의 또 다른 권위자 존 마이어(John P. Meier)는 앞으로 십년 내에 예수 세미나에서 내놓은 이론에 동조했던 이들은 학문적으로 곤란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도마 복음서가 연대적으로 이르고, 내용적으로 독립적이란 학자적 합의는 존재한 적도 없고, 옳지도 않다고 못 박았다(John P. Meier, “Dividing Lines in Jesus Research Today: Through Dialectical Negation to a Positive Sketch”, Interpretation, vol. 50 no.4 (1996), 355-72).


18) 예수에 대한 예배가 매우 초창기부터 시작되었고, 그 자체가 매우 고양된 기독론적 의미와 실천을 담고 있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다음 책을 참고하라. Larry Hurtado, At the Origins of Christian Worship: The Context and Character of Earliest Christian Devotion (Carlisle: Paternoster, 1999); How on Earth did Jesus became a God?:Historical Questions about Earliest Devotion to Jesus (Grand Rapids: Eerdmans, 2005).


19) Theissen and Merz, The Historical Jesus, 11.


20) Albert Schweitzer,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From Reimarus to Wrede (London: SCM, 2000) 슈바이처의 1913년 독일어 개정판은 초판에 비해 상당히 많은 개작이 가해졌으나, 최근까지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 있었다. SCM에서 2000년에 낸 새로운 영어 번역판은 이 개정본을 사용하였고, 이전의 영어번역판에 있던 많은 오류도 바로 잡았다고 한다.


21) Wright, JVG, 28. Wredebahn은 톰 라이트가 Norman Perrin의 글에서 착안한 조어(造語)이고, Schweitzerbahn은 그에 대한 필자의 패러디이다.


22) Wright, NTPG, 32-37. Critical realism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쓰이는데, 톰 라이트는 Ben Meyer, Critical Realism and the New Testament (Allison Park, PA: Pickwick Publications, 1989)의 책이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잘 정리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조직신학자 TF Torrance, 런던 킹스 칼리지의 조직신학자 Colin Gunton, 해석학자 Anthony Thieselton 등의 저작에서도 유사한 주장을 발견한다고 한다.


23) Wright, NTPG, 44. 그는 ‘가설과 검증을 통해 지식에 도달한다’는 자신의 주장은 폴 리꾀르의 hermeneutic of suspicion & retrieval과 상통한다는 점도 밝혀두었다.


24) Wright, NTPG, 67-68.


25) Wright, NTPG, 68. 그는 여기서 Burton Mack과 Dominic Crossan을 염두에 두고 있고, 그들이 예수전통을 비유대화(de-Judaizing)하는 Claremont 학파와 이어짐을 지적해두고 있다.


26) cf. Wright, NTPG, chap. 5. 세계관과 이야기, 상징, 실천, 신조 등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다루고 있다. 각 질문의 세계관내적 의미에 대해서는 Wright, NTPG, 131-37을 참고하라. 일세기 팔레스타인 상황에서의 대답은 Wright, NTPG, 243에 요약되어 있다.


27) 톰 라이트의 첫 번 책인 NTPG는 왈쉬에게 헌정되어 있고, 기본적인 세계관 분석틀은 왈쉬의 논의에 크게 빚지고 있다. Richard Middleton & Brian Walsh, Transforming Vision (Downers Grove: IVP, 1985); Truth is Stranger than It used to be (Downers Grove: IVP, 1995). 


28) Wright, NTPG, chap.9


29) Wright, JVG, chap.3에서 자신이 ‘제3의 탐구(the third quest)’라고 명명한 현대의 예수학 흐름에 서는 학자들이 결국은 이 질문과 씨름하고 있으며, 여러 학자들의 작업이 여기에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를 분석해놓은 대목은 흥미롭다.


30) ‘비유 연구(parable study)’가 ‘역사적 예수 연구’에 갖는 의미는 Theissen & Merz, The Historical Jesus, chap.11을 보라. Wright, JVG, 125-31에서 ‘탕자의 비유’를 하나님 나라의 패러다임으로 분석한 예를 보라.


31) 이 주장은 톰 라이트의 옥스퍼드 박사 논문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이 개념이 로마서를 해석해내는 더 나은 해석학적 틀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중심으로 한 여러 논문을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에서 볼 수 있다.


32) 이스라엘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할 때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왕(king), 제사장(priest), 선지자(prophet)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압도적으로 왕(king) 혹은 왕권(kingship)에 대해 사용되었다.


33) 일종의 ‘집단적 기독론(corporate christology)’라고 할 수 있는 톰 라이트의 독특한 입장인데, 필자는 이것이 민중신학에서 그간 주장해온 ‘민중예수론’ 혹은 ‘민중 기독론(Minjung christology)’과 접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톰 라이트는 자신의 박사논문과 The Climax of the Covenant에서 이 논지를 주장하고 있다.


34) 제3세대그리스도교연구소에 참여하고 있는 황용연, 혹은 복음과 상황 인터뷰에 나왔던 한완상 교수 등이 톰 라이트의 입장에 깊은 공감을 표시한 것은 복음주의자 입장에서는 한편 반가움과 한편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1.29 17:43
* <복음과상황> 2001.01월호 '브리스톨 통신(8)'입니다. 이 글은 아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톰 라이트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글이었을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로 성가를 얻어가던 톰 라이트의 면모와 중요성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썼던 글인데, 꽤 많은 분들이 요긴하게 사용하셨습니다. 2008년 가을인가 CMF 의사분들이 톰 라이트의 주저 3권을 독학하다시피 읽은 모임에서 장장 4시간짜리 강의를 했던 것과, 2003년 어간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에서 복음주의자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톰 라이트를 중심으로 발표한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란 빼어난 글쟁이가 있다. 그가 쓴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The Jesus I never knew)>란 책을 읽다보면, 어찌 이리 예수를 새롭게 그려내는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널리스트답게 그의 상상력은 오늘날 세상의 이 구석, 저 생각을 훑어 내려가며 이천년 전의 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조명을 해낸다.

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바탕한 신앙이다. 진정한 기독교를 말하고자 한다면, 결국 진정한 예수가 누구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대한 탐구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질문은 그것이다. 과연 예수는 누구였을까? 교회는 예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거꾸로 교회의 관심을 예수에다 투사한 것은 아닐까? 최근 한국에서 김용옥의 발언으로 촉발된 역사적 예수 논쟁은 비록 지엽적 사안에 대한 과도한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는 감이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란 존재의 역사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성경적 예수를 믿는 복음주의자들도 이 질문에서 예외가 아니며, 이 논의의 바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을 다루는 것이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훼손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해줄 것이란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소위 '제3차 역사적 예수의 탐구(the third quest for historical Jesus)'로 불리는 신학자들의 노력과 그 가운데 복음주의자들이 주목할 만한 학자인 톰 라이트(N. T. Wright)를 소개하려한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1985년에 일단의 북미 신학자들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란 이름의 연구모임을 시작한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이 실린 서기 300년 이전의 모든 문서를 대상으로 이것이 실제 예수가 한 말인지, 아니면 후대에 삽입된 것인지를 학자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이것을 빨강, 분홍, 회색, 검정의 네가지 색으로 나누어서 '확실하다'에서 '확실히 아니다'까지를 표시한 <다섯 개의 복음서>란 책을 93년에 내었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서는 외경인 '도마 복음서(Gospel of Thomas)'와 가상의 전승인 Q 문서가 가장 신뢰할만한 예수의 어록을 담고있다고 제시하였다. 

그 모임은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예수는 유대지방을 돌아다니며 금언(aphorism)과 비유(parable)를 주로 쓰면서 사람들에게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설파한 현자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 따르면, 예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은 있었으나, 스스로가 해답을 가졌다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해답을 가졌다고도 믿지 않았던 인물이며, 비종교적인 독특한 발상을 과장법과 패러독스를 통해 전달했고, 예루살렘에 축제 기간 중 올라갔다가 성전에서의 분명치 않은 사건을 통해 재판 없이 처형된 인물로 그려졌다.

이들의 연구결과에 대해 수많은 논란이 있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우선 세미나 구성원이 다양한 신학적 배경을 대표할 수 없는 편협한 인선이란 비판이 가해졌다. 유럽 쪽의 학자들은 거의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거나, 주도적인 몇 학자들이 연구의 방향을 거의 독점적으로 이끈다는 비판도 나왔다. 투표로 예수 어록의 진정성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발상이란 문화적 비평도 있었다. 어쨌든 예수 세미나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한 극단적 결론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톰 라이트(N. T. Wright)
톰 라이트는 예수 세미나의 정 반대편에 선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자유주의자 일색인 역사적 예수 연구의 지형도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비판적이고 역사적인 연구로 이 분야의 일급학자로 자리매김되어 있지만, 그가 내놓은 결론들은 오히려 신앙의 그리스도를 닮아있다. 그의 학문적 경력은 화려하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과 신학 두 영역에서 우등(first class)으로 졸업했고, 캐나다의 맥길(McGill) 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 캠브리지에서 가르쳤다. 캐나다 뱅쿠버에 있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대학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에서도 자주 강의했다. 그는 지금 성공회 목사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주임 신학자(Cannon theologian)로 있다.

그는 99년 2월호 미국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에 케빈 반후저(Kevin Vanhoozer),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등과 더불어 주목할만한 차세대 복음주의 신학자로 꼽힌 적이 있는데, 거기에 그의 흥미로운 이력이 좀 소개되어 있다. 그는 학생시절 성서유니온 (Scripture Union) 캠프에 리더 역할을 했었고, 옥스퍼드 IVF 모임의 학생대표를 지냈다. 그는 성경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가졌는데, 신학공부를 하던 이년간 매년 구약성경은 영어로 두번, 신약은 헬라어로 네번을 보았다고 한다. 요한복음,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와 히브리서는 헬라어로 녹음해서 언제나 들었고, 갈라디아서는 헬라어로 거의 암송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학생 시절, 당시 복음주의 성경학자로 유명했던 존 웬함(John Wenham)의 초청 강의를 들으면서 성경학자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가 쓴 <신약과 하나님의 백성(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1992)>과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Jesus and the Victory of God, 1996)>은 각각 500페이지, 7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인데, 애초 5부작으로 기획된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시리즈의 서두에 해당한다. 그의 저작은 신약학이나, 일세기 유대주의, 심지어는 교회의 선교를 논할 때에도 꼭 찾아보게 되는 중요한 저술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그는 첫 번째 책을 브라이언 왈쉬와 리차드 미들턴이 제시한 세계관 논의에서 시작한다. 그의 첫 책은 왈쉬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학적 저술 외에도 대중적인 책들을 많이 쓰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낸 <예수의 도전(The Challenge of Jesus, 2000)>은 자신의 주요 저작에 담긴 문제의식을 쉽게 풀어쓴 150여 페이지 남짓한 책자이고, <예수의 의미: 두 비전(The Meaning of Jesus: Two Visions, 1999)>에서는 주요한 쟁점(부활의 역사성, 예수가 십자가 처형된 이유 등)에 대해 자유주의 학자 마르쿠스 보그(Marcus Borg)와 대화하듯 각자의 견해를 실어놓아 어디서 동의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예수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영할때면, 어렵지 않게 그의 얼굴이 BBC에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독특하게도 일급 신학자이면서도 대학강단이 아닌 교회의 목회자로 지내고 있는데, 죽기 전까지 현재 계획한 저술 완성하기에도 벅차다며 연구와 저술에만 몰두하고 있다한다.

NT Wright의 저서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와 지형도
위의 인물들만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여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적 예수 연구가 최근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톰 라이트가 간단히 요약한 것을 따라 정리해보면, 18세기 계몽주의 시기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성경의 기록을 교회의 신앙적 관심에 따라 재구성된 것으로 전제하였기에 기적이나, 동정녀 탄생, 부활 등을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했고, 이런 미신적 요소에 오염되지 않은 인간 예수의 생애에 대한 재구성에 치중하였다. 그 결과로 여러 종류의 예수전(傳)이 등장했고(에른스트 르낭의 전기가 특히 유명하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이런 시각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는 작업들을 활발히 해왔다. 이 첫번째 '역사적 예수 탐구(the quest for historical Jesus)'는 20세기초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가 이들의 작업이 예수 당시 유대의 사회-종교적 정황, 특히 종말론적 차원(Eschatological dimension)을 고려하지 않은 저자들의 시대적 관심(계몽주의, 낭만주의?)에 입각한 재구성에 불과하다는 치명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침몰하고 만다.

슈바이처의 비판이후 한동안 역사적 예수 탐구는 불가능한 작업으로 인식되었다.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예수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 성경자체의 신빙성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학자들을 지배하고 있었고(이 시기의 대표적인 성경학자인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에서 역사성을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은 예수란 존재가 있었다는 정도에 불과하단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 외에는 달리 연구할 자료가 없었기에 이 시기에 성경학자들은 고대 근동지방의 설화나 신화를 도입해서 이런 저런 이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역사적 예수 탐구(흔히 'New Quest'라고 불렸다)는 신약의 신빙성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되는데, 불트만의 수제자였던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asemann)은 1950년대에 자신의 스승의 견해에 반해서 성경 기록이 역사적 연구를 수행할만한 내용을 담고있다는 주장으로 다시한번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이 흐름은 그다지 많이 확산되지는 못하고, 신약의 한 배경사 연구 차원으로 물러앉는 듯한 경향을 보이게 된다.

세 번째 탐구는(이 명칭은 톰 라이트가 제안했고, 상당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70년대부터 시작해서, 8-90년대에 널리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와 달리 신학 외에도 고고학, 역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관여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도 북미와 유럽권 학자들이 고루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쿰란(Qumran)에서 발굴된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나, 일세기 유대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여러 고고학 발굴 성과, 인류학과 사회학적 연구 등이 보태지면서 연구의 지평을 풍성히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가 파격적인 연구결과들을 내어놓으면서, 일반 언론의 주목을 한껏 받은 것도 이런 흐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데 한 몫을 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기서도 자료의 문제가 핵심적인 사안이다. 특히 성경의 역사성, 혹은 어떻게 성경으로부터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낼 것인가가 숨은 쟁점인데, 예수 세미나는 정경을 희생하고, 외경을 주된 자료로 삼은 셈이다. 아니면, 전적으로 인류학이나 사회학적 이해를 중심으로 하고, 최소한의 성경 근거만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런 경우 예수는 인접 문화권의 사례연구에 종속되는 경향이 보인다. 가장 비중 있는 접근은 일세기 유대교의 배경아래서 예수를 조명하는 경향인데, 이것은 구약과 신약이 연결되는 지점과 헤어지는 지점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성경의 증거를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적으로 해석하도록 자극하기에 많은 성경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작업에 관여하고 있다.


역사의 예수를 연구하는 이유
예수에 대한 질문은 아마도 예수 당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때도 사람들은 그가 나사렛 출신 목수의 아들이란 출신 배경을 들어 그의 가르침을 폄하하는 일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를 뛰어난 랍비로 받아들이면서도, 왜 그가 유대교와 혹은 로마권력과 물러설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을 벌였는지 궁금해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도 '이 예수가 누구인가(Who is this Jesus?)'란 질문과 씨름해야 했다. 예수를 탐구하고자하는 노력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그 탐구의 결과는 매우 긴박한 현실적 함축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톰 라이트는 세가지 교회사적 사례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함축을 읽어낸다.

첫째, 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historical)'이고 '종말론적(eschatological)'인 읽기를 시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개혁가들은 중세교회가 정교하게 체계화시킨 도그마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예수, 혹은 바울이 '정말'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것은 당대의 교회가 스스로 인정하는 기원을 향해 '역사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과연 '그런 기원'에서 '이런 이해'가 도출되는 것이 옳은가를 반문하게 만들었다. 또한,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이 단한번으로 완성하신 사역임을 천명함으로써 예수 사건의 종말론적 본질을 재천명하고, 중세교회의 체제가 현상유지에 봉사하는 영구불멸한 순환 시스템이 될 수 없음을 드러내었다.

둘째, 한 세기 후 이번에는 종교개혁가들 자신이 이런 비역사화의 굴레에 들어가게 된다. 여전히 교리(dogma)가 성경을 지배하는 경향 속에서 예수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고, 영원한 진리의 수호자로 자신을 인식한 교회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 의해 이성의 이름으로 도전을 받았다. 헤르만 라이마루스(Hermann S. Reimarus, 1694-1768)는 '역사'의 이름으로 당대의 지배적 사회-사상 체계였던 기독교를 공격했는데, 그는 예수는 결국 실패한 유대 혁명가의 한 사람이었고, 기독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톰 라이트는 이런 시도들을 두고, 올바른 질문을 잘못된 방식으로 제기하였다고 요약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배적 사상에 대한 체제 비판적 성격을 띠고 제기된 만큼, 공격의 예각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이마루스의 논증이 안고 있는 여러 결함들은 마땅히 비판되어야 하겠으나, 당시 기독교가 일세기 유대-팔레스타인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예수가 서있던 역사적 좌표를 상실하고, 탈역사화한 그리스도로만 바라보고 있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셋째, 소위 '새로운 탐구'를 촉발시킨 에른스트 케제만은 1953년 강의를 통해, 20세기 초반, 역사적 예수의 탐구가 신학자들의 관심권에서 밀려난 시기에 비역사적 예수, 혹은 탈역사화된 기독교가 나찌 이데올로기를 신학화 혹은 정당화하는데 철저히 이용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더욱 집요하게 해나가는 것을 잊어버릴 때마다, 우상숭배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항상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는 새롭게 화장한 예수의 얼굴을 찾아보려는 유별난 관심이 아니라, 인간들의 어떤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화장으로도 덧칠 할 수 없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공간 속에 독특하게 나타났던 한 존재를 발견하자는 관심이다. 물론 이런 탐구의 결과가 당혹스런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역사적 예수 탐구가 정당한 것은 아닐것이며, 학자적 상상력이 도를 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할 수 있다. 이천년의 시공간을 넘어선 오늘날의 연구는 여전히 가설 혹은 가장 근접한 추론으로 자리매김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톰 라이트는 초월적 층위를 배제하고, 역사적 자료들만을 가지고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을 세워보고, 그것이 여타 역사적, 신학적 검증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다면 그것이 우리가 견지할 수 있는 가장 근사치의 '역사적 예수'를 보여줄 것이란 입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이 이런 전제를 갖고 작업한 결과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명확히 조명해준다는 것이다. 연역적 신앙이 아니라, 귀납적 신앙인 셈이다.

맺는 말
톰 라이트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는 지면상의 제약도 있고, 필자의 역량 때문에라도 벅찬 감이 있다. 아직 국내에는 톰 라이트의 책들이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곧 소개가 이루어지면 독자들이 눈여겨보도록 권고하는 것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그의 주된 관심영역이 '역사적 예수'에 있긴 하지만, 그가 관련하는 영역은 사실상 성경신학 전반에 걸쳐있다. 해석학(hermeneutics)과 일세기 유대주의(First Century Judaism), 유대 묵시사상(Jewish apocalyptic) 등의 최근 성과를 반영하고 있는 그의 저작은 아마 신학적 사전지식 없이 바로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쓴 대중적 저술들은 신학적 논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상당한 자극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한 국내 독자들을 위해 약간 맛보기를 한다면, 그가 <예수의 도전>에서 다루고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예수는 일세기 유대의 배경 속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그의 '하나님 나라' 선포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가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
'왜 초대 교회가 시작되었나? 부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 모든 사실은 오늘날 기독교의 과제와 비전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일관성 있고, 포괄적인 답을 구하는 작업이 마른 가슴에 냉수처럼 와 닿는 사람들이 있다면, 번역본을 기다릴게 아니라 톰 라이트 읽기 모임을 하나 꾸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Posted by era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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