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2012.10.23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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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Day Seminar



“포스트-2007 시대와 한국 개신교의 미래”


(Post-2007 Era & the Future of Korean Protestantism)




한국 개신교는 숫적으로는 성장 침체를 겪고 있고, 질적으로는 사회적 신뢰를 거의 얻지 못하는 사면초가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내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합의된 입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당연한 귀결로 어떤 대안이 필요하며,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도 실종되어 있습니다. 


이 세미나는 개신교의 최근 30년간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시효를 상실하였는지,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될지를 내다보는 논의의 장을 제공합니다. 같은 제목으로 곧 출판될 책의 초고를 바탕으로 저자의 강연과 난상토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Boston
10월 25일(목) 저녁 7:00-9:00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Jenks Library 212호@ Gordon College (3 min from GCTS)

10월 26일(금) 오후 2:00-4:00 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 B19 & Hartmann Room (B23)


LA
10월 30일(화) 오전 10:00-12:00 Fuller Theological Seminary 
Payton Hall




강연자: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영국 Trinity College, Bristol(신학 BA)와 London School of Theology(신학 MA)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장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한동대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7년간 강의했다.


다양한 기독교 및 일반 매체에 인터뷰 및 기사를 기고하고 있으며, 랍 벨(Rob Bell)에서 존 스토트(John Stott)까지, 톰 라이트(N.T. wright)에서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en)까지 ‘복음주의’ 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Posted by erasmus
한기총 해체 운동이 예상보다 크게 초기 호응을 받으며 한번 휩쓸고 지나간 자리로 내다 보이는 다양한 풍경이 있다. 

최근 CBS에서 토론회가 있었다. 참석자는 손봉호 교수, 김경원 목사(한목협, 서현교회), 정성진(거룩한빛광성교회), 나이영 기자(CBS) 등 이었다. (관련기사) 예장 통합측의 원로들 초청 좌담도 있었다. 참석자는 림인식 목사(증경총회장), 김순권 목사(증경총회장), 김정서 목사(총회장), 손인웅 목사(한목협 회장), 조성기 목사(사무총장)이었다. (관련기사) 그외에도 이런 저런 자리에서 나오는 다양한 발언들을 접한다. 그러다 보니 불현듯 어떤 행태지도가 그려진다. 대략 아래와 같다.


1. 분위기 살피는 관망파
그동안 가장 쉽게 나오던 논리는 "해체는 과격하니, 개혁을 하자"며 주로 '리모델링'론을 내어 놓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경우 정보접근의 차단이나 나이브한 상황인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미 있는 조직을 해체하기는 왠지 파괴적"이란 정서에 손쉽게 기대는 이 입장은 상황전개에 책임있게 반응하지 못하고, 힘있는 어른들의 눈치나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판단을 마냥 온순한 얼굴로 기다린다. 이들은 이런 상황을 매우 가슴 아파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아파하는 자신을 보며 감동받는' 나르시시즘 놀이를 하고 있을뿐 실제 상황 전개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2. 분위기 모르는 막가파
해체를 반대하며 가장 강력하고도 어이없는 성명서를 낸 '예장 합동교단'의 지도부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필자의 코멘트 참고: "예장 합동, 어이없는 광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겠지만, 상황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는 이들이 지도부를 형성할 수 있는 조직은 미래가 매우 암울하다. 

물론 해체 찬성론자들 가운데에도 막가파들이 있을 수 있다. 정보가 모라자고, 생각이 짧은 가운데 강력한 주장을 펼치는 경우는 언제나 이런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다. 해체 찬성론에 편승하고 있는 '신천지'쪽은 그런 점에서 전혀 반갑지 않은 해체찬성론 막가파 쯤에 해당되겠다. 한기총 해체에 찬성한다고, 그들의 존재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3. 홀로 순수파
속 시끄러운 논란과 거리를 두고, 고고한 영성의 성채나 교리의 감옥으로 들어앉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보인다. 오염되지 않는 신앙의 소유자들이다. 앞으로도 오염될 일이 없는 플라스틱 재질의 신앙인인 이들에게는 한기총 해체니 유지니 하는 논의가 다 부질없는 짓이라, 한 몫에 끌끌 혀를 차고 마는 것으로 소회를 대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뭐, 이것도 한 방법이니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이 미더워보이지 않는 것은 현실을 바꾸어낼 능력 입증하기를 원천적으로 포기하는 그 현실체념적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을 포기한 덕에 이상을 얻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현실 탓을 하면서 유보시킨다. 현실을 외면한 댓가로 이상이 얻어지지는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신앙이 이상적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 주지 못한다. 그건 정신승리법에 불과하고, 사실은 자기기만의 또다른 버전이다.


4. 똥폼 잡는 대안세력
가장 견딜 수 없는 이들은 어느새 대안세력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며 포지션을 선점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현실을 개탄하며, 앞으로 연합기구를 어떻게 합치거나, 분리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구상한다. 누구에게 지분을 좀더 줘야 안정을 찾을 수 있는지를 가늠한다. 그게 우습다. 한기총이 왜 문제였냐면, 한국 개신교인들이 준 적이 없는 '개신교 대표성'을 참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느새 슬그머니 그 운동장에 올라와 몸을 풀고 있다. 조만간 경기가 시작되면, 자기는 이미 여기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포지션을 당연히 배정받거나, 주장 완장을 차야한다는 논리를 펼칠 태세다. 


민심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련기사) 손봉호 교수는 시사지 인터뷰와 한기총 해체 주장의 중심에 서게 된 이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메일과 전화를 받고 있단다. 우려했던 항의나 반박 내용은 거의 없었고, 너무 고맙다, 개신교 떠날 생각이었는데 맘 다시 잡는다 등 구구절절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뜨겁게 반응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지금 한기총에 대한 대중적 여론과 민심은 교계정치에서 대표선수 갈아치우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당신들의 정치게임을 그만 두라는 얘기이다. 합동측 천박하고 무식하다고 욕하지만, 통합측의 욕망이 과연 그만 못할까? 이번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통합측의 운신 폭이 넓었을뿐, 공격과 수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거론되지 않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돈을 주었다는 사람은 있는데, 돈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안 나왔다. 한두푼이 아니고, 한두번이 아니다. 역대 한기총 회장 선거가 모두 돈선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증경회장의 발언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아야 한다. 한기총 돈선거를 회개하자는 둥, 개탄할 일이라는 둥, 말잔치는 풍성한데 과연 이 문제가 길자연 목사 개인의 문제이며, 이번 한번의 문제인가? 그게 아니라면, 돈 받아먹은 총대들(과거 선거때 총대로 갔던 사람들 명단이 다 있을 것 아닌가?) 한 사람씩 대질심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일반 선거법에서는 금품향응 받은 사람들 50배씩 물리게 되어 있는데, 한기총 선거는 수십억씩 돈이 돌아다녔는데도 준 사람은 있고, 받은 사람은 없는 해괴한 상황이란 말인가? 각 회원교단과 단체는 총대들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는가? 

지금 한기총 관련 논의에서 눈치를 보는 이들이나, 막무가내로 내달리는 이들이나, 뒤늦게 균형잡힌 대안세력처럼 등장하는 이들이 모두 한 때는 한기총 선거 막전막후에서 뒤섞이고, 어울리던 그때 그 사람들 아닌가? 대안을 말하고, 개혁을 입에 올리려면 가장 핵심적인 사안... 추상적으로 회개한다 말하지 말고, 그래도 한국교회 대표기관은 존재해야 한다는 정치일반론에 편승하지 말고, 핵심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해야한다. 돈은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흘러갔으며, 그 댓가로 행사한 투표권은 무슨 결과를 만들었나에 답해야 한다.  

최소한 돈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참회를 해야" 해결에 이른다. 어떻게 해야 이런 고질적 문제를 반복하지 않을 구조적, 제도적 대안을 만들 수 있는지 얘기를 해야지, 지금 새로운 연합기관 구성 이야기를 꺼내 화제를 전환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이런 상황이 뻔히 보이니 '해체'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한기총 총대급 이상 교단 및 연합기관 관여자들 전체가 지금 불신임 당한 것이다. 이를 얼버무리지 말라. 이들은 일괄 해임 대상이다. 각 교단과 단체는 총대들 전원 소환해서 금품수수 여부부터 조사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기구를 해체하는 작업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누가 당신들에게 새로운 조직을 만들라고 임무를 주었나? 지금 이들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앉아서는 이상한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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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건축 예정 본당 내부 이미지


누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가?


 

양희송: 청어람 아카데미 대표 기획자

 

최근 사랑의교회 건축을 둘러싼 논란의 아래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잠복된 한가지 이슈가 있다. 소위 말하는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어떻게 규정하며, 누가 부여하며, 언제 소멸되는가하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적 교회로서… 그래선 안된다”든지, “한국교회를 위하여…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등 사랑의교회 논의는 자칭타칭 ‘한국교회 대표성’을 공공연히 전제하고 이야기 되는 경향이 있다.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동원되는 ‘한국교회 대표성’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것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겨났고, 언제 소멸되는가?

 

가만히 보면, 이 논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정치영역에서는 비극적 최후를 맞은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과 추모의 분위기, 종교계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스님으로 이어진 거대한 존경과 애도의 물결을 보면서 자괴심에 빠져드는 개신교권의 조바심과도 맞물려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누가 죽어야 저런 애도를 받을까?”라고 철없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한국 개신교는 무엇으로, 혹은 누구에 의해 대표되는가?

 

물론, 이것이 왜 중요하냐 반문이 가능하다. 가능할뿐 아니라 정당하기까지 하다. 한 종교계 전체를 한 사람, 혹은 한 기관으로 환원해서 호불호를 판단하는 것은 종교 그 자체의 존재가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일 수 있다. 그리고, 유명인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그의 개인적 실수와 한계에 함께 갇히곤 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 아니던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이미지 정치’의 이면에 대한 비판적 응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개신교권 내에서 보이는 ‘대표성’을 향한 교계의 갈구와 이를 위해 동원되는 논리나 메커니즘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 노력들의 덧없음을 들여다보노라면, 도리 없이 ‘큰 어른 하나로 족한데’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이 되어 버리긴 한다.

 

 

‘정치’로 얻는 대표성

역사적으로 개신교는 천주교에 비해 탄탄한 ‘민주정치적 구조’를 가꾸어 왔다. 언제나 회중 전체의 총의(總意)를 물어서 이를 대표자에게 적절하게 위임하는 구조를 가동해왔다. 그것이 때론 감독제의 형태를 띄건(감리교 등), 대의제로 나타나건(장로교 등), 회중정치(침례교 등)로 발현되건 말이다. 직분은 기능(function)이지 지위(position)은 아니었다. 칼뱅의 초기 장로교 제도에서는 장로직 임기가 일년이었다고 한다. 매년 새로 임명했던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영속적 지위가 아니었고, 단지 어떤 역할에 주어진 명칭이었다.

 

이러하기에 한 교회에서 관철될 수 있는 정당한 대표성은 (장로교라면) 장로를 제대로 뽑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개신교가 교황제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원래적 맥락을 존중한다면, 직제는 종신직이 아니라, 임기제로 하는 것이 개신교 정신에 맞다. 목사나 장로나 적절한 임기를 설정하여, 그 역할을 갱신하게 하는 것이 맞다. 이것은 이상할 것 하나 없다. 우리 사회가 당연시 여기는 민주주의적 관행과 제도의 상당 부분이 근대 종교개혁 과정에서 성립하였기에 이를 지적해서 ‘세속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 얼굴에 침뱉는 행위가 된다. 이런 제도의 운영이 낯설어진 한국 개신교 상황을 반성하고 탓해야지, 제도 자체를 기독교 신앙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탓하는 것은 ‘의도된 무지’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교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금권 선거’의 문제는 사실상 개교회에서 민주적 훈련이 안된 이들이 빚어내는 꼴불견이다. ‘정치’를 ‘권력의 획득’이란 가장 저급한 차원에서만 생각하기에 이들은 ‘결코 나눌 수 없는 권력’을 놓고 용쟁호투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이란 것은 곧 ‘이권’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은 ‘정치’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되는 이유이다. 수억 원씩 총회장 선거에 밀어넣고 당선이 되었을 때, 그들이 챙길 수 있는 ‘이권’이 비록 몽땅 현금화 되는 것은 아닐지언정 자신에 딸린 지지세력의 앞배와 뒷배를 봐주는데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이 모든 ‘이권 행사’를 ‘사심 없는’ 전도와 선교 사역으로 포장하느라, 범법행위를 ‘종교자유에 대한 훼손’으로 짐짓 각색하느라 늘 교단정치는 바쁘다. 물론, 이 상황은 교단에 따라 양상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좀 잠잠하다 싶은 교단 총회장 출신들이 ‘한기총’ 같은 연합기구 선거에 열심을 내는 것을 보면 ‘권력욕구’와 ‘이권추구’는 전혀 식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대표성이 없는 조직들이 ‘한기총’을 비롯한 소위 ‘연합기구’이다. 이들 조직은 개별 성도들에 의해 정당한 위임을 얻어내기에는 너무 다단계의 절차를 거치기에 조직의 토대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사실상 임의기구에 불과하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 대변한다고 말할만한 제도적 기반이 없다. 어떤 정치체제도 과도하게 위임해서 설립된 기구에게 중요한 대표성을 맡기지 않는다. 직접 선출하지 않은 권력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치 UN에 각국이 참여하지만, UN이 ‘세계정부’는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들은 늘상 ‘한국 개신교’를 주어로 온갖 성명서를 내어놓는다. 이들의 논의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그것이 대중들의 여론에 부응할 때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언제나, 부여한 적도 없는 대표성이지만 ‘상징적’으로나마 허용했던 것을 마음으로 거둬들여버리게 된다. 그런데도, 계속 대표를 사칭해서 무언가 자기 이익을 취하게 되면 대중으로부터의 대대적인 소환과 불신임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명의도용이요, 대표성 사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개신교는 정치적 대표성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보다 독재가 더 효율적이다’는 식의 논리에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개신교가 자신들의 실패를 반성하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이 비판했던 천주교적 구조를 찬양하고 그리워한다는 사실. 어쩌면, 여러 개신교 목회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작은 교황’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규모’로 얻는 대표성

이전투구식의 정치의 장에 들어가기 꺼리는 이들이 선택하는 우회로가 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처럼, 교계의 정치구조 바깥에다가 큰 판을 펼치면 거기서도 대표성이 형성된다. 교단정치와 따로 놀면서 교회를 크게 일군 경우이다. 80년대 이후 등장한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지구촌교회 등 소위 ‘복음주의’ 교회들만 이 방법을 택한 것은 아니다. 이단시비를 받았던 연세중앙교회, 만민중앙교회, 성락교회 등은 초대형으로 규모를 키우면 일단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이즈가 중요하다(size matters)’는 세간의 논리를 입증해준 경우들이다. 후자에 속한 교회들은 기성교단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런저런 모양으로 기성교단에 참여하거나, 교계 연합운동에 기여함으로써 부담스런 꼬리표를 떨어버리고 싶어한다. 또한 교계 일각에서는 이걸 이용해서 종종 이들에게서 인력과 재정을 이끌어내는 세력들이 있다.

 

전자에 속한 ‘초대형 복음주의교회들’은 요즈음에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세대교체 시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기성교회들이 보여준 ‘교단정치’에 대한 불신감에 기반을 둔 ‘정치 없는 대표성’을 획득하였다. 이 교회들에 다녀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암묵적으로 ‘우리야말로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는 자긍심이 있다. 이들 교회의 목회자가 단지 개교회 목회자로 그치지 않고, 교계정치가 아닌 방식으로 한국 개신교 전반에 영향력을 강하게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통로는 도처에 만들어져 있다. 수천 명의 목회자들을 모아낼 수 있는 컨퍼런스, 출판사, 네트워크를 직접 가동하고 있고, 이들의 설교를 듣고, 책을 읽는 수많은 평신도 그룹, 해외의 주요한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교류 등 그로부터 형성되는 ‘가시적인 대표성’이 여기에 실재하고 있다. ‘교계정치’란 루트를 선택하지 않은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이런 식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해’ 교회를 키우고, ‘세계적 사역’을 감당하는 목사의 대외활동과 컨퍼런스를 지원함으로써 존재증명을 하고자 내달린다.

 

‘규모’로 대표성을 얻은 가장 대표적 사례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이다. 기성교단으로부터 꽤 오랫동안 방언 등을 비롯한 오순절신학 자체에 대한 불인정 상태가 지속되었으나, ‘세계 최대 교회’란 ‘규모의 논리’로 일찌감치 논란을 압도하고 한국교회 대표성을 스스로 거머쥔 상태이다. 그러나, 대표성을 공공연히 행사하는 순간부터 여러 내부 분란이 대외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국민일보를 넘겨주었던 것이나, 여러 재정적 불투명성으로 인해 한동안 법적 공방이 끊이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이제 조용기 목사는 교단정치란 복잡한 구조 없이 한 교회의 목사로 한 나라의 교회를 대표하는 지위를 얻어내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후배 목회자들에게 시사하였다. ‘포스트-조용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단지 순복음교회 목사들 내부의 관심사만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규모의 대표성’은 사실 엄밀히 말해 정치적 정당성이 결여된 대표성이다. 그것은 시장이 선택한 ‘인기’에 불과하다. 그 인기를 손 안에서 확인하는 행위가 ‘사이즈’를 키워가는 일이다. ‘규모 때문에 대표할 수 있다’는 말은 또한 ‘규모가 사라지면 대표성도 사라진다’는 강박증을 남긴다. 국내 기업이 매출규모 순위에 따라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란 소리를 자칭타칭 하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규모의 대표성’은 본질적으로 ‘시장 내 강자’에게 주어지는 공급자 중심의 논리이지 결국 종교적 소비자 신분으로 전락한 구성원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대형 교회를 선호하는 심리는 명품소비 심리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어떤 교회가 이런 방식의 대표성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끊임없는 확장을 통한 자기존재증명 외에는 길이 없다. 국내의 대형교회들이 목회 리더십의 세대교체기에 종종 세습 등의 엉뚱한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이 규모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후임 목회자 역시 규모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목회를 몰아가기도 한다.

 

 

‘상징’으로 얻는 대표성

교계정치를 통한 것도 아니고 초대형 교회나 조직을 일군 것도 아닌데, 대표성을 갖는 존재들이 가끔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교회나 목회 구조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수행한 어떤 역할로 얻게 된 명예나 존경으로 ‘상징적 자산’을 갖게 된 이들이다.

 

전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주목받은 기독교인들을 보면 그들은 다른 어떤 기반보다도 ‘상징적 대표성’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마더 테레사, 떼제 공동체의 설립자 로제 수사, 대천덕 신부 등을 거쳐 타종교인이지만 법정 스님 등은 어찌보면 단기필마로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 이들이다. 70년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기독교인들의 이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 시절 가장 엄혹했던 현실에 맨몸으로 투신했었기에 아로새겨진 것이다.

 

복음주의권에도 살펴보면, 독재정권에 의해 해직되었지만 역사학자로 곧은 소리 마다 않았던 이만열 교수가 존경받았고, 꼬장꼬장한 선비 노릇으로 ‘전국민의 윤리선생님’ 역할을 한 손봉호 교수가 주목받은 것은 그 시대에 필요한 역할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한 때문이다. 청계천 빈민운동 했던 피눈물 나는 사연 <새벽을 깨우리로다>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김진홍 목사가 그랬고, 경실련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면서 시민운동이란 걸 꽃피운 서경석 목사가 그랬다. 한동안 노숙자들 넘쳐나던 시기에는 청량리에서 밥 퍼주던 최일도 목사가 주목 받았다. 시대의 문제들에 온 몸으로 반응한 이들은 그에 값 하는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들의 그늘 아래 주목받지 못한 이름없는 영웅들은 더없이 많았다.

 

이들은 교회를 갖고 무슨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운동한 것이 평가받아 기독교 대표성을 어떤 식으로든 갖게 된 사람들이다. 소위 ‘교계 지도자’들이 갖는 대표성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상징적’ 대표성은 교계나 사회에서 무시 못하게 큰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런 상징적 대표성을 실물로 바꿔보고 싶어할 때 발생한다. 김진홍 목사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 등 본격 정치운동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상징적 자산’을 ‘현실정치적 지분’으로 바꾸어냈다. 서경석 목사 역시 꾸준히 그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지만, 90년대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와 낙선에서부터 꼬인 행보는 아직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표성을 갖고 무엇에 쓰려는가?

요즈음 한국 개신교의 대표성이란 위에서 말한 세가지 층위가 서로 엇물려서 혼재된 상태이다. 각각 ‘정치를 통한 대표성’, ‘시장을 통한 대표성’, ‘상징을 통한 대표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계 정치를 통한 대표성’은 제도적으로는 가장 정당성이 있을지 모르나, 울타리 밖에 훨씬 큰 교회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규모 있는 대표선수’들을 끌어들여야 명실상부한 대표성을 가질 수 있고, 교계만 아니라 ‘대사회적 상징자본’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어야 세상을 향해서도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강박을 갖는다. ‘시장을 통한 대표성’을 갖고 있는 이들은 정작 교계 정치의 기반이 취약하고, 대사회적으로는 ‘제대로 뭘 안 한 덕’에 규모를 키운 경우가 많아, 뒤늦게 ‘뭐라도 해보겠다’는 처지라서 역시 궁하다. ‘상징을 통한 대표성’의 소유자들은 사실 갖고 있는 것은 ‘명분과 대의’뿐 실제로 일을 하려면 늘 조직과 재정의 궁핍에 시달린다. 그러니, 가장 쉬운 방법은 각 대표성의 담지자들간에 상호보완을 하면서, 이심전심 품앗이를 해주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원론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다. 대표성을 권력화하려는 경향을 언제나 서로간에 견제하고,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랑의교회가 선 지점은 과감히 이 세가지 대표성의 통합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단지 소박하게 “평신도를 깨운다”며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광인의 심정’으로 일깨우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이 실제 교회의 성장으로도 나타났고, 전통적으로 해오던 목회방식과는 다르게 체질개선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제도권 교회들, 교단정치의 문제가 사회적으로도 심각하게 문제되면서 이를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였고, 이것은 교갱협이나 한목협 등의 결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금도 아마 교계 연합기구 가운데 가장 내실 있는 단체에 속할 것이다. 이들 연합운동은 ‘최대치 운동’이 아니라 ‘최소치 운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조직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해서 교계정치를 주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교계정치가 완전히 부패하지는 않도록(예를 들면 ‘교회 세습’ 등) 막겠다는 소극적/간접적 참여에 머무는 입장으로 읽혔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이 조직을 발판으로 적극적 교계정치를 시도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오정현 목사로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기반해서 보자면, 이미 모든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데, 왜 대표성의 삼위일체 통합을 시도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어 보인다. 즉, 교계정치에서도 역할을 하라는 요구가 있어왔는데, 교회도 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데, 대사회적 활동도 많이 수행해서 인지도가 높은데, 이 셋을 통합하여 한국개신교 대표성을 명실상부하게 취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이 아닌가 싶다.

 

즉, 옥한흠 목사의 체제에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개교회의 건강한 성장에 치중하면서 교계외곽에서의 역할 정도에 머물고자 했던 내적 동기가, 오정현 목사의 체제에서는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커질 수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 더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 더 유력해질 수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왜 이런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단순히 ‘모른다’. 아마도 그런 면에서 오정현 목사는 억울할 것이다. 그의 ‘순수함(innocence)’은 거짓이 아니다. 그 순수함은 그 단어의 다른 뉘앙스인 ‘무지함’과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거짓이 아니다. 그 ‘자신의 동기 이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즉, 무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순수는 ‘순결한 욕망’ 그 자체의 다른 이름이다. 무언가를 갖고 싶은데, 그것을 갖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아이의 욕망만큼 순수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상황에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는다’거나 ‘진정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이대는 것은 별반 의미가 없다.

 

다만, 한 세대 앞선 선배 신앙인들이 굳이 세가지 서로 다른 대표성의 층위를 통합적으로 쟁취하지 않고, 상호 긴장하고, 보완하게 내버려둔 의도를 새삼 살펴보아야 한다. 단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란 것이다. 대표성을 그 정점까지 추구해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은 과연 건강한 것인가? 가장 큰 교회로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게 하고, 그 교회가 한국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이 땅에 구현하는 바람직한 모습인가를 물어보자는 말이다. 그것은 중세교회가 추구했던 정교일치의 기독교왕국(Christendom)이요, 개신교 교황(Protestant papacy)을 꿈꾸는 행위이다. ‘내가 곧 교회’, ‘내 명예가 곧 기독교의 명예’라고 인식하는 언어가 뜻밖에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점은 무얼 시사하는가?

 

분수에 넘치는 과도한 대표성의 추구는 인정욕구와 결합해서 갈수록 누추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표성은 의식적으로 추구할수록 멀어진다는 점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천주교인들을 넘어 존경을 받았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자리가 갖는 공식성에 오히려 역행하는 탈권력적 면모 때문이었다. 적어도 종교인에게는 그 위치에서 담보되는 권력을 휘두르는 힘보다는 그 힘을 반대역학으로 드러낼 줄 아는 겸손함이 존경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개신교회들에서 보는 대표성의 추구는 오히려 그들의 대표성 결여에 따른 불안감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징후이다.

 


개신교는 대표될 수 있는가?

나는 작년 가을 이래로 종교개혁 정신과 그 이후의 서구문명과 기독교의 상호연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어떻게 개인의 신앙과 이를 사회적으로 표출하는 데에 적용 가능한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장 마음 끌리는 흐름은 종교개혁시기의 에라스무스(Erasmus), 청교도 혁명기의 존 밀턴(John Milton)으로 이어지는 맥이다. 에라스무스는 우리에겐 루터의 패기와 결단에 비견할 수 없는 문약하고 우유부단한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책을 읽어보면 다르다. 루터적 한계와 문제를 이미 일찍부터 내다본 혜안을 가졌고, 오히려 진영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소신 있는 지식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끝까지 루터의 종교개혁 진영에 명시적으로 소속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당대의 전형적 의미에서 ‘개신교’(改新敎)는 아니었지만, 매우 분명하게 중세교회와 대조되는 ‘개신교’(個信敎)를 대변할 만한 인물이었다.

 

존 밀턴은 영국 청교도혁명의 와중에 혁명 주체였던 장로파(Presbyterian)와 회중파(Congregationalist)들이 결국 자신들이 싸웠던 그 종교개혁적 가치를 배신하고 권력의지를 발동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국교화 하려 시도하고, 신앙고백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정책으로 기울자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신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수호했던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Christianity)는 교회교(Churchianity)와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인식론적 개인주의(epistemological individualism)’에 입각해 “한 사람이 각각 교회다(a church of one man)”란 말을 남겼는데, 이는 마치 ‘국회의원이 각각 독립된 입법기관’이란 선언만큼이나 개신교 신앙의 정수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개신교 정신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교회의 대표성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각 성도만이 자신의 신앙을 대표할 수 있을 뿐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대신하게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될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는 구원받은 자에게 은혜요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공동체에 대한 많은 강조는 이런 의미의 고양된 공동체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단지 ‘집단주의’를 치장하는 공허하고, 현실과 괴리된 언어로 전락하고 있다. 집단주의적 공동체 이해의 고전적 버전이 바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개신교가 그렇게 싸웠던 중세교회의 구호였음을 상기하라.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대표성이란 것은 결국 성도 각자로 하여금 누구에게도 양도될 수 없는 신앙고백을 천명하고, 그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고, 격려하고, 격동하는 공동체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매우 명예로운, 그러나 잠정적인 호칭일 것이다. 그것은 정치제도로 취득할 수 없고, 규모가 크다고 얻는 것도 아니고, 상징적 존재에게 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성 논의는 해가면 할수록, 결핍과 결여를 되새김질하는 시도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오늘 우리에게는 이 땅의 일상을 평범한 얼굴로 살아내는 ‘세속성자(secular saint)’들의 불현듯한 도래를 갈망하는, 전혀 다른 의미의 기대만이 가능할 뿐이다.

 

 

 

* 위 글은 월간 '복음과 상황' 2010년 5월호 특집 "사랑의교회를 다시 생각한다"에 기고된 글입니다.

Posted by erasmus

<기윤실 목회자포럼/2010.01.28>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본질과 열린 교회"

 

양희송(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한국사회의 현재상황을 분석하는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있겠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마 소통(疏通)이 아닐까 싶다. 최고 권력자로부터 유치원 아이들까지 한국사회는 소통의 부재를 호소한다. 진심이 전달되지 않고 오해를 받는다거나, 선의를 구조적으로 왜곡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언론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종교인 특히 개신교인의 말은 그 값을 잘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글은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살펴보고, 한국 개신교가 사회와 소통하고, 교회 내부에서 소통을 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2.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원래 대화하다란 의미의 라틴어 comunis 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이 단어는 공동체(communitas)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 대화하고, 소통하는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욕구발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공동체이든 그것이 건강하게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 필수적 요소란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학자들은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매우 복합적인 물음을 일으키는 분야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서를 잠시만 들춰보아도 수십 개의 전문적인 개념정의들을 만날 수 있다. 차배근 교수는 이를 포괄하여 커뮤니케이션이란 생물체들이 기호를 통하여 서로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고 수신해서 공통된 의미를 수립하고,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 및 행동으로 정의하고 있다.[1] 다양한 논의를 가능한 종합적으로 담아내어 본다면, 아래의 그림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얻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발원지(source)가 되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그것이 개인인지, 집단인지에 따라서, 또한 내부적으로 어떤 동기와 규칙들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게 되는지를 연구하는 세부적 영역이 기다리고 있다. 메시지(message)를 구성하고, 이를 어떤 매체(channel, media)로 실어 보내는지에 따라 전체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크게 다른 결과를 낳게 되고, 고려해야 할 지점이 바뀐다. 개인간의 대화에 적용되는 원리와 매스미디어를 통한 소통에는 고려할 요소와 고민할 범위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메시지는 수용자(receiver)에게 전달되고, 최초의 커뮤니케이터가 기대한 어떤 효과(effects)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피드백(feedback)을 통해 최초의 커뮤니케이터에게 전달됨으로써 전체 과정에 제대로 수행되었는지를 평가하고 필요한 교정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모델이다. 실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전달과정에서 흔히 잡음(noise)이라고 하는 것이 끼어들어서 원래의 메시지를 훼손하기도 하고,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더라도 수용자에 의해서 거부(reject)되기도 한다. 혹은 전체 과정에서 각 단위마다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시켜주지 못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 자체의 실패(failure)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우리가 경험하는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매우 포괄적인 사건임을 잘 보여주고 있고, 특히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일어나지 않을 때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이유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짚어볼 수 있도록 해준다.


 

3.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놓고 말하는지에 따라 논의의 구조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모델 자체를 신학적 논의의 선상에 올려놓고 파악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성경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도 있다.


1) 하나님의 '자기계시' 

때로 하나님은 직접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말씀을 들려주신다. 이것은 아마도 가장 직접적인 형태의 소통일 것이다. 커뮤니케이터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메시지를 다른 매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수용자에게 말씀하시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창세기1장의 천지창조 기록을 꼽을 수 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커뮤니케이터가 자신의 뜻을 발하였을 때, 어떤 왜곡이나 부족함이 없이 창조질서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그 결과를 돌아보니(feedback) 만족스러웠다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의 한 사례로 꼽을만하다. 


 

2)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

창조사건의 경우와는 달리, 하나님이 인간과 만날 때에는 비록 그것이 직접적 대면일지라도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터가 다른 매개 없이 직접 자신을 드러내거나,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었을지라도, 수용자인 인간의 한계가 소통의 질을 결정한다. 인간은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들은 것이 무엇인지를 미처 다 깨닫지 못하는 제한된 존재이다. 종종 성경의 영웅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무슨 뜻인지를 깨우치는 데에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혹은 선명한 메시지에 반발하거나, 거절하기도 하였고(요나의 경우), 때로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환상을 보았다고 참칭하기도 하였다(거짓 선지자들은 본 것 없이, 들은 것 없이 예언하는 자들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은 언제나 예외 없이 해석의 문제, 순종의 문제를 동반하고 나타난다.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근본적 층위에서 즉각적으로 완벽한 소통이 불가능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는 기독교 신학에 시간의 개념, 종말론적 완성을 요청하게 되고, 인간은 시간 속을 사는 존재, 즉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점진적으로 드러난다는 입장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된다. 기독교 역사에는 때때로 하나님과의 즉각적 소통을 주장하거나, 이를 승인하는 경험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언제나 그것을 완결된 것으로 여기기 보다는 시간 속에서 제한된 것으로 인식했다. 어느 한 시대, 어떤 한 경험은 본질적으로 초시간적인 진리를 온전히 담거나 표현할 수 없고, 카이로스적 유효기간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3) 인간과 인간의 소통

성경 전체를 휘감는 드라마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간의 어긋남을 지켜보고, 화해와 소통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성경은 그런 점에서는 인간 세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현실론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속임과 오해가 진정성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성경은 곳곳에서 보여준다. 사도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은 어쩌면 끝까지 동질의 하나님 나라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길을 존중해주는 선에서 합의에 도달한 것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초대교회의 현실이었다. 유대인과 헬라인 성도들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종과 노예 사이에도 행복한 결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울 서신의 몇몇 구절들은 성도들 간에 발생한 갈등과 이견이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증폭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인간사이의 소통이 지극히 난제(難題)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여러 모양으로 등장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힘의 논리를 따라, 우세한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압하는 것이다. 근대주의(modernism)는 그것이 종종 이성과 자유의 이름으로 행해지기는 하지만, 사실상 하나의 권력 아래 세상을 통제하는 획일화의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소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제기한 비판이었다. 하나의 목소리가 권위적으로 다른 모든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식(one voice over all)의 반대편에는 가능한 모든 목소리들이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법(liberating the different voices)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voice for the voiceless)도 근대주의적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어찌 보면 주도적 목소리(dominant voice)가 상실되고, 권위가 무너지는 위태로운 시기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한 극단의 시대가 반대편으로 진자(振子)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쪽 극단이 진리는 아니었던 것처럼, 저쪽 극단도 진리는 아닐 것이다. 과거에 너무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고, 미래에 지나친 낙관을 할 이유도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사이에서 우리의 시간대에 주어진 카이로스적 동적 균형(dynamic balance)을 잘 발휘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을 뿐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하나님의 백성

요한복음1장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하게 창세기1장을 연상시키는 문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또 한번의 가장 완벽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신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그는 말씀(message)이자, 하나님(communicator)였고, 하나님의 백성의 계보를 따라(channel), 성육신(incarnation)을 통해 수용자(receiver)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동일시되셨고, 구원의 사역을 성취한(effects) 존재로 나타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서 결코 도달하지 못한 완전한 소통의 모습(해석과 순종)성부와 성자의 관계 속에서 보여주고, 인간들을 향하여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낮추고, 적용시키는 수용자 중심적 모습(receiver-oriented)을 대표하고 있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들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몸소 겪으며, 눈물과 웃음을 함께함으로써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고백은 실재가 된다.

 

커뮤니케이션적 관점에서라면 참된 구원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knowing Christ)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following Christ)이 분리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할 것이다. 이 작업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얼마나 집중하고, 그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기까지 그를 닮아갈 것인가(imitation of Christ)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그리스도인 개인에 의해 수행될 뿐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추구되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을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온전한 소통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이해와 순종의 제자도를 수행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이런 작업은 시공간의 제한과 인간 자신의 한계로 인해 제약 받을 수밖에 없는 세계 내적 존재(sein in der welt)로서의 추구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을 훼방하는 요인들을 끊임없이 걷어내고, 개선하는 일이 교회 공동체의 존재방식 속에는 중요하게 아로새겨져 있어야 마땅하다.


 

4.

한국 개신교의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문제들에 앞 절의 이해를 포개어 놓고 보면 취약점이 선명히 보이게 된다.

 

1) 말의 값이 떨어졌다

개신교인, 특히 복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룹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말의 값이 평가절하 되었다는 점이다.[2] 말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크고, 말을 지키려는 노력은 별로 없는 반면에,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도덕적 비판의 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기에 나오는 현상이다.[3] 말의 값이 떨어지면, 함량미달의 말을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말들이 동원되는 바람에 말의 인플레이션이 등장한다. 말의 겉치장을 세련되게 하던지, 화사한 언변을 구사하던지, 정말 말로 해결이 안되면 강한 비주얼로 호소하는 방법이 등장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이런 식으로 메시지의 천박성을 형식미로 포장해서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것을 전형적인 선전선동(propaganda) 이론들 안에서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대중에게 진리와 진실에 의한 설복이 아니라, 거대함과 화려함과 집단의식에 호소하여 이성적 판단보다 정서적 함몰을 우선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구사하는 것이 대표적이고, 이것이 오늘날 대형교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이런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경향의 대표적 결과가 설교표절이다. 목회자의 설교표절을 경험한 교회의 성도들이 정작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설교의 내용 자체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어딘가에서 갖고 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 경험과 예화를 스스로의 기도와 고민의 결과로 포장하고, 그것으로 감정선을 건드리는 연기를 해낸 설교자의 을 더 이상은 액면 그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장 진실한 소통의 순간으로 사람들을 초청할 때 응당 걸어야 할 말의 무게에 눈금을 속인 설교자는 설교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것이란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저울에 달아보아 미달한 존재가 되고 만다.

 

최근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처럼 내면을 응시하는 기도에 관심이 일거나, 지식을 집어삼키는 식의 독서가 아니라, 찬찬히 되새기는 영성적 독서법인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등이 각광받는 데에는 이렇게 허무한 말 잔치에 지친 심성이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성의 훈련(discipline of simplicity)에 대한 강조가 리차드 포스터나 로잔운동 같은 복음주의권 내에서 서구의 풍요와 세계의 빈곤에 대한 반성으로 70년대에 이미 제기되었던 것을 상기하면, 오늘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누리느라 30년 전의 지혜를 까먹은 것일 수 있다. 말로는 천리를 쉽게 달릴 수 있다지만, 그리스도인은 누군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5:41)하라는 말씀을 받았다. 성 프란시스가 그랬었던가?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라. 그리고, 꼭 필요하다면 말을 하라


 

2) 말의 길이 트이고 있다

교회 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설교 만은 아니다. 성도와 성도 사이의 소통의 문제는 설교와는 다른 방식의 구도를 갖고 있다. 개신교 교회론은 사제직 독점을 인정하지 않고, 만인사제주의(priesthood of all believers)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천주교와는 다른 상호소통의 신학을 갖고 있다. 각 교회가 선택한 교회정치 제제가 감독제(episcopalianism)이건, 회중제(congregationalism)이건, 대의제(Presbyterianism)이건 상관없이 성직자와 장로 등은 아래로부터의 선출(election)과 위로부터의 승인(anointing)이란 이중구조를 함께 갖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민주적 의사결정의 결과에 기름을 부으신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개방된 언로(言路)의 확보 없이는 민주적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며, 그것이 없다면 어떤 개신교 정치제도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논의를 정교화하고, 보완해왔다. 고전적 이론들이 오늘날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더욱 촘촘하고, 공감각(共感覺)적이며,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구를 창출하기까지 한다. 개신교적 교회론이 성도들간의 소통을 근본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상호소통을 위한 다양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교회 내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사용은 대형화된 예배의 일방향적 전달이나 중앙집중식 통제의 일사불란함을 위해 동원되기보다는, 성도들 상호간의 수평적 소통을 긴밀하게 하기 위해 집중 투입되는 것이 마땅하다.

 

초대형교회(mega-church)에 대한 논박이 새삼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분명 크기 자체가 문제가 된다. 스스로 감당 못하는 크기는 개체의 생명을 기형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나는 초대형교회의 존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 덩치에 걸맞는 존재양식을 형성했느냐를 묻는 것은 중요하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강화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현재 한국사회가 목격하고 있는 온라인 소셜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획기적 등장은 기존의 사회적 관계망을 새롭게 정의하게 한다.[4] 요즘은 대학 강의실에서도 교수가 설명하면, 웹으로 바로 찾아서 맞고 틀린지를 지적할 수 있는 시대이다. 서로 소통하는 것이 보편화되는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가르칠 수 있고, 모두가 배우는 존재이다. 이런 상황은 교회 내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변화를 촉발하게 된다. SNS에 대한 문제의식과 사용경험은 30-40대에서 오히려 많다. 20대 아래는 그런 환경이 일상의 조건이다. 과연 이런 변화는 예배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이며, 설교자에게서 어떤 역할을 기대하게 할 것인지,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게 될지 기대된다.[5]

 

5.

한국 개신교의 말의 값은 떨어지는데, 한국사회에서 말의 길은 더욱 넓고, 깊게 터져가는 중이라면, 과연 이것은 개신교회에게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일차적으로 위기로 느끼는 이들이 많다. 오죽하면, 개교회주의적 체질이 몸에 밴 개신교계에서 공동으로 언론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일반언론들이 반기독교적이란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홍보를 강화하고, 오해를 바로잡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문제가 그렇게 피상적인 것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겠다. 지금이라도 문제인식의 수준을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끌고 들어가서 분석을 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낫다. 복음의 핵심 빼고는 다 바꿀 각오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자가 가장 폐쇄적인 집단이라고 자조하며 체념하는 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하나의 목소리로 일사불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렵다는 것은 명확한 현실이다. 그러나, 여러 목소리와 공존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간, 한국 개신교가 가장 치열하게 연마해야 할 자기수행의 장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다른 의견을 사탄적이라고 정죄하지 않기, 남의 이야기를 시늉이 아니라 진심으로 경청하기,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 말고 누구에게나 배움을 청하기, 잘못은 변명하지 말고 인정하고 고치기, 선행을 홍보하기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기, 중앙무대에 서기보다 주변부를 돕는 숨은 손길 되기, 헌금 내라는 강조보다 선한 일에 헌금 쓰는 데 과감하고 투명하게 집행하기, 학벌, 재산, 권력으로 인한 기득권 인정 안 하기

 

커뮤니케이션은 기술(technique)이 아니라, 삶의 예술(art of living)이다. 기독교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아마도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 투명한 자기헌신에 있을 것이다. 한국 개신교가 얼마나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수 있느냐는 거의 전적으로 얼마나 예수를 열심히 따르느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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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블로그 http://post-evangelical.tistory.com 과 싸이월드 클럽 복음주의(http://evangelical.cyworld.com)을 운영하고 있다. 



[1] 차배근, 커뮤니케이션학 개론() (세영사, 1987), 25.

[2]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2008, 2009년 시행한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면, 개신교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지도자, 교인들의 언행 불일치(32.2%)을 가장 많이 꼽았다. 데이비드 키네만, 게이브 라이언, 나쁜 그리스도인(살림, 2007), 56에는 미국의 경우에도 복음주의자들이 위선적이고, 남을 판단하는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3]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미국과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일반인들과 이혼율, 성경험 비율 등에 별반 차이가 없더라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의 교육실패로 봐야 할지, 젊은 세대의 표리부동의 결과로 봐야 할지 혹은 새로운 도덕율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란 의미인지 논란거리이다.

[4] 스마트폰의 시대를 갑자기 앞당긴 아이폰(Iphone)의 등장, 140자로 전세계와 소통하는 트위터(twitter) 사용인구 증가 등이 당장 일년 내로 몰고올 사회적 행동양식과 일상생활의 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5] 소셜미디어에 대한 좋은 입문서로 읽히는 송인혁, 이유진 등이 지은 <모두가 광장에 모이다: 소셜이 바꾸는 멋진 세상>(INU, 2010), 296-299에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의 예를 들어 미국의 교회들이 소셜미디어에 접근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책의 저자들이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더 깊었다면 이머징 쳐치(emerging church) 그룹을 비롯해서 훨씬 전향적인 사례들을 많이 발굴했을 것이다.  

Posted by erasmus
리뷰2010.01.14 16:00

 강사소개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영국 Trinity College, Bristol에서 신학 BA를, 
London Bible College (LBC) 에서 신학 MA를 마쳤다. 
월간 <복음과 상황>의 편집장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2005년부터 
청어람아카데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커리큘럼 소개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

<편력: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유럽사회 풍속산책>등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오고 있는 인제대 명예교수 이광주의 저서『교양의 탄생』.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부터 20세기의 지식인 참여운동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형성해온 인문정신을 탐구한 유럽 지성사의 완결편이다.

교양은 ‘정신의 육성’을 뜻하고 교양인은 농민이 밭을 갈 듯 도처에 삶의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중세 카톨릭 교권의 체제 속에서 이룩된 카톨링거 르네상스와 12세기 르네상스, 그 토양 위에 세워진 대학이라는 교양 공동체와 같인 정신을 기르는 교양은, 밭을 가는 노동과 함께 인간의 본성을 이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교양 지향적이다.

교양이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이 물음은 고도의 기술 산업 정보사회에서 존재의 망각, 인간 상실현상이 날로 격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더욱 절박한 문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진정 오늘날의 교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하여 유럽에서 형성된 거의 모든 교양을 만나는 기회를 마련한다.


저자 이광주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뒤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지금은 인제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길아트와 한길사에서 각각 펴낸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과 『동과 서의 차 이야기』『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편력: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지식인의 권력: 근대 독일 지성사 연구』『유럽사회 풍속산책』『대학사』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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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rasmus
(1) 기독인문학2009.10.18 18:46
청어람아카데미 2009년 가을 "미완의 기획, 종교개혁" 

첫 강의로 김상근 교수(연세대 신학대)의 "개신교적 의식의 탄생: 카라바조의 경우"를 진행했다. 

(c) 청어람아카데미


첫 강의의 기획의도는 그랬다. 

"대체 서양 중세의 편만한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초래되었길래, 개신교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하는 지점이다.

물론 사람들은 르네상스가 몰고온 인문주의(humanism)가 종교개혁의 실질적인 기반이고, 내용이자, 방향, 에토스를 형성해주었다고 보기도 한다. 혹은 중세교회의 몽매주의에 반발하였던 신앙개혁운동들이 종교개혁의 직접적 기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종교개혁' 대 '반종교개혁' 구도가 유효한가?

김상근 교수는 좀더 넓은 맥락의 질문을 던져주었는데, 
과연 '종교개혁(Reformation)'이란 용어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만큼 합당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개신교만이 독점할 수 있는 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이미 중세교회 내에서도 신랄한 자기비판이 제출되고 있었던 점, 특히, 단테, 보카치오를 비롯하여 미켈란젤로에 이르면 교황에 대한 일관되고도 치열한 비판의식이 시와 미술 작품들에 관철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글에 드러나는 교황청에 대한 비판수준은 이후 개신교 지도자들의 그것에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이는 서양사를 전공한 다른 이들도 종종 지적하는 내용이다. 우리 눈에는 커보이지만, 종교개혁이란 것이 사실상 당대의 문화중심지인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에는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고, 북유럽지역 특히 당시로서는 낙후된 국가였던 독일권에서만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이다. 프랑스도 여전히 지금까지 가톨릭 국가로 남았고, 영국은 가톨릭과 성공회로 나뉘긴 했지만, 결국 국교도와 비국교도가 권력을 주고받는 불안정한 방식으로 남겨졌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주로 독일권과 영어권 등지에서 기반을 형성했을 뿐 당시의 문명적 중심지에서는 변방의 문제제기로 취급받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M. Luther by Lucas Cranach

김상근 교수는 강의에서 비템베르크 성당에 95개 조항을 내걸고 시작하는 루터의 저항운동(1517) 이전인 1510년 루터의 로마 방문 기록에 주목하면서 그 당시 로마로 집약되고 있던 엄청난 르네상스의 문화, 예술, 건축, 학술적 흐름에 루터는 전혀 주목하거나, 교섭한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는 반면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고작 '이탈리아의 포도와 무화과가 독일의 것보다 매우 크더라'는 것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루터는 그야말로 '촌뜨기'로 로마를 다녀갔고, 그가 그곳에서 본 것들의 전후 맥락과 영향력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로마는 그때 14세기 이래로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의 인문주의 운동, 15세기의 알베르티(예술이론), 브루넬레스키(건축), 도나텔로(조각), 마사초(회화) 등의 강력한 르네상스 운동을 목격하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후 동방교회의 신플라톤주의의 거센 유입이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 등에 의해 이루어지던 참이었다. 그가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 1463-1494)와 함께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 거주하고 있을 때, 당시 10대였던 미켈란젤로는 그들에게서 신플라톤주의를 전수받고 있었던 참이다. 종교개혁의 문화사적, 사상사적 흐름은 오히려 루터보다 로마에서 더 잘 준비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상근 교수는 단테, 보카치오, 미켈란젤로의 글을 검토하면서 이들이 교황권에 대해, 당대 교회의 부패상에 대해 처절한 비판을 가하고 있음을 보였다. 종교개혁적 에토스는 사실상 이들에게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성상(icon)에 대한 개념이나 활용은 루터의 초상화를 평생 그렸던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1553)를 통해 보듯, 당대의 교황청이 생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한다.  

Calling of St. Matthew by Caravaggio



이런 맥락 위에서 카라바조의 그림들이 검토된다. 이미 당대에 천재화가로 대우받으며 수많은 성당 제단화를 그렸고, 그러면서도 길들여지지 않는 색채감과 구도, 파격적인 대상 설정으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카라바조의 그림 가운데서 특히 <성 마태의 소명>을 보면서 그가 보여준 강한 '빛의 도래', 중세적 매개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며 장바닥의 도박판에 직접 내려꽂히는 강렬한 빛의 임재로 너무나 '개신교적 의식'을 보이는 한편, 예수의 곁에 베드로를 배치함으로써 중세적 질서를 일정 부분 수용하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은 김상근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두 시대 정신의 합일'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란 대립 구도가 아니라, 이미 한 작품, 한 작가, 한 시대 내에 훗날 이토록 상반되는 것으로 묘사한 그 두 시대정신이 합일, 혹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결론적으로 김상근 교수는 종교개혁 전후의 각양 흐름들이 단순하게 종교개혁 대 반종교개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 국가의 탄생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수정주의적 입장'에 손을 들어 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의국가적 탄생(Nation building of Germany)'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점에서는 종교개혁 연구자들은 과도하게 종교개혁의 차별성에 비중을 두었지, 그것이 당시 유럽 전역에서 형성되고 있었던, 심지어는 가톨릭의 내부에서도 곧 확인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정신, 곧  '고백주의화(Confessionalism)' 과정이란 것을 간과하거나 경시하였다는 것이다. 볼프강 라인하르트 같은 학자의 '천주교회, 루터파 교회, 칼빈의 교회 등은 기본 신조, 윤리적 삶의 가르침, 내부 구성원의 양육과 훈련 등에서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우세하다'는 견해에 동조한다.  

종교개혁을 "미완의 기획"이라 명명한 이번 강좌의 취지는 그런 면에서 종교개혁 전통이 결국은 유럽의 시대정신적 자각의 흐름을 따라 '고백주의적 경로'를 밟아온 한 부분을 특화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오늘 한국에서는 다시한번 시대정신의 흐름을 살피고, '고백주의적 가치지향'을 창출할 것이냐에 달려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한국개신교는 스스로 갱신되지 않는다

한국개신교가 내부의 교회개혁 논의로 충분히 갱신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나는 확신이 없다. 그것은 부패를 막는 역할을 일정 정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낡은 부대에 가죽을 덧대는 것 이상 되기는 어렵다. 어떤 새 부대를 준비할 것이냐는 그보다 훨씬 큰 이야기이다. 새 술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만이 새 부대를 준비할 수 있다. 옛 술에 만족하는 이들은 덧 댄 가죽부대가 그나마 당분간은 버텨줄 것이고, 굳이 부대를 바꾸어야 할만큼 절실한 위기감이 없다. 새 술의 터질 듯한 발효능력을 볼 때라야 헌 부대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하게 된다.  

나는 우선 종교개혁이 지나치게 단순한 신앙운동으로 파악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의 시대적 맥락은 훨씬 더 깊고, 넓게 파악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거기에 주도적 인물이나, 집단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그런 두드러진 개인과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 내에 '부흥'에 대한 강조를 하는 이들이나, 어떤 신앙적 영웅의 출현을 유일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이들은 그런 면에서 매우 근시안적이고, 비-개신교(non-Protestantism)적이다. 개신교의 등장 자체가 그렇지 않았고, 이후에라도 개신교가 스스로를 규정한 방식이 그렇지 않았다. (아마, 이 이야기는 이국운 교수가 더 세밀하게 해주겠지만, 개신교의 원초적 '민주성'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 개혁은 두 갈래로 와야 할 것이다. 개신교 자체 내부에서 "개신교의 언어와 신앙고백을 회복하자"는 외침으로 터져나와야 할 한 흐름이 있다. 지금의 신학교와 교회 체제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 나의 인식이다. 둘째는 현재 한국사회와 시대적 지평 위에서 읽고 말하고 행동하는 몸짓에서 나와야 할 흐름이다. 그것은 인문학적으로 개신교 신학 너머까지 응시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시대적 과제를 비껴가지 않고 정면대결을 불사할 용기, 운명과 씨름하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확보된 자원과 도구를 최대치까지 구사할 줄 알고, 공적 영역에서 개신교란 울타리 너머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광폭의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믿음 좋은' 이미지 바깥으로 훌쩍 튀어나갈 수도 있어야 한다. 

한국 개신교는 결코 스스로 갱신되지는 않을 것이다. 안팎의 외침과 몸부림의 결과로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어느 정도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그 싸움을 감당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하나님이 크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한국 개신교는 정말 살아남기 힘들다. 아니, 살아남아서 더 치욕인 시절이 아직 한참은 더 남아 있는 것 같다. 은혜가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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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rasmus
(1) 기독인문학2009.10.04 19:00



루터와 가상대화를 나눴다.
그가 지금 한국교회를 보고 한 마디했다. 

"문제는 목회자들인데, 남들 하는 대로 무난하게 한 세상 살아보려고 하다가 교회도 망하고 자신도 망해.
지금은 비상 시기다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목회를 해야지."  

 
10월 마지막 주간이 종교개혁 488주년을 기념하는 주간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이 주제를 놓고 설교를 했거나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축에서는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도 교회의 개혁, 혹은 종교의 개혁을 촉구하는 사건들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궁극적 문제에 해결책을 주겠다는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을 오도하고, 눈앞의 문제도 풀지 못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모습이 되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종교개혁의 주도적 인물 마틴 루터를 긴 잠에서 깨워 호출했다. 그가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한국교회의 병세가 심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루터의 육중한 체구가 먼저 눈에 든다. 아직 건강미가 있다.



양: 종교개혁은 꼭 일어나야만 했습니까? 가톨릭 내부적 개혁운동으로 갱신될 여지는 없었나요?

루터: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내가 처음부터 가톨릭을 붕괴시키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네. 쇠락의 기운이 있었다고는 하나 가톨릭은 서구세계를 통치하는 거대한 체제야. 감히 일개 수도사가 그 체제 전체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지. 처음에는 내가 강하게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 교황청이나 주교단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우치고 내부 개혁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지. 교황에 대한 자극적 표현도 그래서 사용한거고. 그러나 결과적으로 교황청은 나의 문제 제기가 당시의 봉건영주들이나 지역의 실력자들인 제후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본 것이지. 반박문을 둘러싼 논쟁이 2~3년에 걸쳐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와 나의 동료들은 교황체제가 이 문제를 개선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 일말의 희망을 거두어야 했지. 


양: ‘저항자들’이라 불리는 개신교(Protestant)가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셈인데요. 그 개신교가 요즘 한국 땅에서는 교황체제 못지않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루터: 한국에 루터파가 별로 없고 칼빈주의자가 많아서 그런가. (웃음) 농담일세. 모든 구조나 체제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늘 그 경향성과 싸워야 하네. 칼빈주의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개혁교회는 늘 개혁되어야 한다’ 라고 하던데, 별로 그 기치에 충실하지 않나 보구먼.



체제와 싸우려면 연구하라


양: 말과 삶이 따로 노는 것이 문제의 본질 같습니다.


루터: 그거 왜 그런지 아는가? 고민도 안 하고 고생도 안 해서 그래. 개신교 전래 초기의 순교 따위를 추억만 하고 있지. 우리들의 개혁 시기에는 하나의 신조, 미묘한 신학적 해석의 차이에까지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그러면서 불필요하게 희생된 사람도 엄청나게 많지만, 그렇게 얻어낸 신앙고백이니까 그것에 따라 사는 것 이상으로 감격스러운 게 없잖아. 한국교인들 보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다는 식으로 사는데, 제발 좀 그러지 말았으면 해.


내가 한국교회를 보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공부를 안 한다는 거요. 교회개혁 이야기하면 꼭 ‘기도 했냐?’ 물어보는 사람 있는데, 기도는 필수고 개혁운동은 연구해야 해요. 종교개혁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운동이 아니라구. 중세의 수도원들은 매일 최소 세 번은 기도회를 갖는 수도공동체였지만, 동시에 신학자의 도서관이자 연구실이기도 했소. 나도 어거스틴 수도회에서 수 년간 신학과 성경 연구를 꼼꼼히 할 기회가 있었으니 나중에 신학 논쟁에서 내 입장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고, 내 동료들도 다 신학의 전문가들이었소. 생각해봐요. 교황체제 자체가 거대한 교리와 역사의 결집체인데, 이를 극복하겠다는 사람들이 턱도 없이 모자란 공부로 무얼 한단 말이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지 않소. 



나는 평생을 개혁운동에 매진했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들거나 지도자들의 탈선으로 추종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례도 보았네. 개혁운동은 객기로 할 운동이 아니오. 진짜 다 걸고 해야 할 운동이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내용과 방향을 찾는 일은 결사적으로 해야 하오.


양: 개혁자들의 자기 연마를 뼈저리게 강조하셨는데요. 그래도 비난은 고스란히 받으셨지요.

루터: 교회를 요동시키는 자다, 사탄이다 등등 온갖 악다구니가 다 쏟아졌지.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사람이거든. 노래도 좋아하고, 기분파라고나 할까. 정서적으로 침울해지지 않도록 노력하지. 나는 개혁은 책상머리에서 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네. 세상 사람들의 삶 속으로 한번 들어가 봐. 나는 수도원 생활이 더 경건하거나 거룩하다고 생각하면 단단히 속는 것이란 점을 잘 알아. 일상생활 속에서 경건과 거룩을 실천하는데 교회가 도움을 주나 못 주나 보면 판가름이 나지. 세속에 사는 이들은 수도원으로 나아오는 것이 필요해. 그러나 수도원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세속으로, 예수를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는 삶이 있어야만 해. 우리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의 사람 아니던가. 그 '거친 십자가'를 치장하고 미화해서는 안 되네. 그 거친 질감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네. 그걸 꾸미는 것은 결코 예수를 위하는 게 아니야. 많은 예배당과 그 거대한 위용으로 예수의 십자가가 더 영광스럽게 된다고 생각하나? 교회가 왕과 귀족을 갈아치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 예수가 존귀히 여김을 받나? 착각이야. 난 그런 시대를 살아봤어. 아니더라구. 한국교회는 절대 그 길로 가지 말게. 누가 간다면 결사적으로 말려. 그건 교회의 몰락을 자초하는 길이고, 예수를 다시 못 박는 일이야.


십자가를 치장하지 마라


양: 개혁에는 늘 속도 조절과 정도의 문제가 따라붙습니다. 루터 선생님도 다른 개혁자들에 비하면 보수적이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루터: 한 사람이나 집단이 다 이룰 수는 없는 것이고, 역사적 소명이란 게 있지. 나 역시 처음부터 개혁을 주창한 사람도 아니고, 하다 보니 그 자리에 서게 되었지. 난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지점으로 걷잡을 수 없이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지 않았어. 가끔 혁명적 분위기에서는 지나치게 과격한 양상이 전개되고 통제 불능이 되거든. 후세 역사는 나를 놓고 보수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시대에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어. 그런 과정에서 동지들이 적이 되는 경우가 가장 고통스러워. 늘 내가 옳았다고는 말하지 않겠네(루터는 농민전쟁(1524~25)의 진압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양: 한국교회에 대해 좀 말씀해주시지요.

루터: 직설적으로 말하겠네. 한국교회는 가볍고, 얕다고 보네. 인구의 20%, 선교사 1만 명, 서울 강남 인구의 30~40%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만. 전 인구가 기독교인이고, 평생 서원을 한 수도원들이 경쟁적으로 설립되고, 왕족과 귀족은 다 교황의 눈에 들려고 했던 시대를 산 내게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네. 당신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지점까지 도달하지는 못할 걸세. 도달하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계속 그런 꿈만 부추기고 있으면 큰 일 나네. 명색이 지도자란 사람들은 다른 꿈을 꾸어야지. 소규모 자영업자가 자수성가하는 식의 바람을 무슨 교회의 궁극적 지향점이라도 되는 양 유포시키고들 그러나. 그러면서 교회가 그 수준으로 천박해지는 걸세.

그리고 신학자란 사람들은 왜 다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거야. 신학자가 개척교회 창업 컨설팅하는 사람들인가. 신학교에서 그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한국교회 개혁 95개조를 써야 한다면 신학자들의 침묵과 비겁함을 엄중히 물을 걸세. 교수들끼리 서로 헐뜯지 말고, 교회를 향해, 세상을 향해 진짜 싸움을 하라구. 젠장.

문제는 목회자들인데, 남들 하는 대로 무난하게 한 세상 살아보려고 하다가 교회도 망하고 자신도 망해. 지금은 비상 시기다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목회를 해야지. 목회의 뜻이 겨우 아들이나 사위한테 교회 물려주는 게 되어서야 되겠나. 자꾸 그런 식으로 하니 물려줄 자식 없는 신부들이 낫다는 소리나 듣구. 당신들이 잘못하니 오히려 가톨릭이 더 낫다는 소리- 내가 들으면 정말 맥 빠지는 소리-나 나오게 만들고 말이지.

여하간 개신교가 어쩌다 시작되었나를 잘 새겨보기를 바라네. 그 지점을 벗어나면 누군가가 또 나와서 당신들을 다 갈아엎고 새로운 기독교를 세울 걸세. 개혁의 대상이 되려나, 주체가 되려나? 당신들 선택에 달렸어. 



 
 
 * 이 인터뷰는 <복음과상황> 2005년 11월호에 실린 바 있다.

Posted by erasmus
(1) 기독인문학2009.09.30 17:01


청어람에서 "미완의 기획, 종교개혁: 2009 한국 개신교와 종교개혁 사상"이란 제목으로 강좌를 운영한다.
홍보물에 넣은 기획취지는 아래와 같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의 개혁 만은 아니었다. 정치-종교-일상이 한 덩어리로 묶여있던 서구 중세의 거대한 질서 전체에 발생한 균열이 몇 세기에 걸쳐 지속되면서 발생한 문명사적 전환의 사건이다. 그 격변의 규모와 파급효과는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지금까지 지속되는 현실을 만들어 내었다. 2009년 한국상황에서 종교개혁을 바라보는 이유는 개신교(Protestantism)의 개신교성(protestant)이 과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 것인지 거시적-통시적 안목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가 강렬하게 대두하기 때문이다. 개신교 신앙의 핵심을 구성하는 개혁(reformation)이 가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의 최대치를 상상하고,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필요 최소한을 재확인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1(10/05) "개신교적 의식의 탄생: 카라바조의 경우" | 상근 교수 (연세대 신학과)

2(10/12) "개신교의 등장과 근대정치의 토대" | 이국운 교수 (한동대 법학부)

3 (10/19) "에라스무스, 인문주의의 이상은 가능한가?"| 강영안 교수 (서강대 철학과)

4(10/26) "루터, 투사-신학자-정치가가 필요하다" | 김주한 교수 (한신대 신학과)

5(11/02) "칼빈은 대체 무얼 꿈꾸었을까?" | 박경수 교수 (장신대 신학과)

6(11/09) "미완의 기획 '종교개혁' 2009년 한국 기독교" | 종합토론

 




생각은 그랬다.

요즘 교회들 꼴이 왜 이 모양인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사고들을 되짚어가다 보니 언젠가 읽었던 '종교개혁' 관련 책의 내용이 기억이 났다. 종교개혁 시기 중세교회의 면면을 묘사한 내용이 어쩜 요즘 한국 개신교가 욕 먹는 내용과 그리도 흡사한가 싶었다. 교회의 치부, 성직자들의 사생아 출산, 부와 명예의 세습, 관행을 정당화 하는데 동원되는 어용신학 등등... 저 정도면 종교개혁이 일어난단 말이지... 싶었다. 생각이 좀더 진전이 된 것은 이국운 교수 탓이다.



'근대국가의 헌법체계는 개신교 종교개혁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내용을 다른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 월례 세미나에서 발표하던 현장에 내가 있었다. 그곳에 참여한 헌재 연구관들이나 학자들은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하는 눈치였는데, 나는 상쾌했다. 물론 그 내용은 여러 모양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나도 헌법논의에 문외한이니, 몇년전의 그 발제문을 내 나름대로 알아먹는데 꽤 시간을 소비한 셈이다. 


여하간, 나는 헌법이란 체제의 탄생에 종교개혁자들의 논의가 깊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근대국가의 정교분리 원칙이나, 관용(tolerance)원칙,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등이 사실은 '세속적 원리'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원리' 특별히 '개신교 정신'에 의해서 추동가능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이것은 신앙에 대한 헌신을 핑계로 정치사회 영역을 함부로 짓밟는 요즘 한국 개신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어쩌면 개신교 원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미묘한 결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단지 단순무식하게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식의 정치밖에는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야 이런 '결을 매만지는 정치' 따위는 턱없는 호사취미 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설득이 되어간다. 종교개혁 시대를 뒤져봐야 한다는 것. 거기에 우리가 못 만난 '길'이 있을 것이란 심증이 점점 깊어진다. 캠브리지의 정치학자인 퀜틴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I)>(한길사) 강독세미나를 지난 여름에 하면서 얼핏 보았던 것도 그것이었다. 아쉽게 르네상스 정치사상을 다룬 1권밖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고, 종교개혁시기 정치사상을 다룬 2권은 아마도 수요부족으로 번역이 요원해 보이지만, 그 그림은 가늠이 된다. 


강좌로 묶어볼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청어람 5년 활동의 결과이다.


종교개혁을 단순히 "예수 열심히 믿자"로 읽지 않고,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적 격변으로 추적해서 복원해가려면 적어도 각 영역의 전문가를 마음대로 구사(?)하면서 그림을 그릴 상황이 되어야 한다. 청어람아카데미의 그간 강좌를 통해서 만난 김상근 교수(연세대 신학),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 이국운 교수(한동대 법학)는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학자들이고, 문제의식에 바로 접속이 가능한 이들이다. 루터와 칼빈을 발제해주실 김주한 교수(한신대 신학), 박경수 교수(장신대 역사신학)은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인데, 각각 루터와 칼빈 전공이라 주목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사 섭외를 위해 자료 검색을 해보니 딱 적합한 분들이었다. 올해가 칼빈500주년이라 이런저런 학술행사들이 많은 데 박경수 교수는 가장 단골로 불려다니고 있었고, 김주한 교수는 루터를 좀더 폭넓은 배경에서 조명하는 자신의 저술과 여러 번역서를 갖고 있는 분이었다. 덕분에 이번 논의가 신학교와 신학생들에게까지 미쳤으면 좋겠다.  교회개혁을 논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아니, 많다. 



그러나, 이런저런 현장이나 세미나에서 강하게 현실교회를 성토하는 분들의 논지 역시 어느 정도는 어그러진 현실에 대한 반대상(mirror image)에 그칠뿐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들이 솔직히 자주 있다. 역사로부터 제대로 배운다면 교회를 개혁하자는 이런저런 구상들이 이 얕은 언저리를 이토록 오래 맴돌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이번 강좌를 계기로 삼아 한국교회, 개신교에 관한 나의 생각을 좀더 발전시켜 나가보고자 한다. 

게으르지 않게 글을 이어갈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원하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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