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과상황> 2007.12월호에 썼던 글을 2년만에 꺼내 다시 읽으면서, '한국개신교와 정치'란 주제를 다시 되씹어 봅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iseek&folder=28&list_id=7701640




"2007년 대선, 임박한 부흥회를 기다리며"


양희송


1.

한때, 돈이야 말로 영적인 것이란 생각이 가슴을 푹 찔러온 적이 있다. 그 통찰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면, 세속사회에서 성자를 찾으려면 돈과 거리가 먼 쪽을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을 경영하고, 매달 월급을 받으면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이들을 뒤져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돈의 가공할만한 영적 권세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일방적인 욕망에 봉사하는 기제를 분쇄하여 유무상통 흐르게 만드는 능력을 보여주는 자만이 영성 깊은 자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 정치의 계절에 이르러서는 과연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정치적 야망을 영성으로 승화시킬 자 누구인가 심히 궁금해지는 것이다.


 

2.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은 대한민국 유권자 일반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결국 누구를 찍을 것인가(혹은, 찍지 말 것인가), 왜 찍을 것인가에 가 있다. 이 고민은 다양한 경로로 축적된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여 일정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게 한다. 물론 이것도 만만찮은 작업이다. 여권은 100년 정당 운운하던 년 전의 낯뜨거운 발언이 무색하게 털갈이를 해댔다. 보수 야권은 잃어버린 10을 주창하며 기세등등 막강대오를 형성해 오다 창업주의 이탈이란 희한한 국면으로 안팎으로 심각하게 비틀거리고 있다. 대다수의 정치학자들이 한국민주주의의 제도적 발전을 위해서는 인물중심의 정치풍토를 개선하고, 정당정치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 년 째 해오고 있지만 이 지당하신 말씀은 후보들의 귀에도 시민들의 귀에도 먹혀 들지 않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확실히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누구도 일관된 노선과 정책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 전혀 행동을 담보해주지 못하는 언행괴리 현상이 빈발한다. (진보적 후보군에서는 스스로의 일관성을 자부할지 모르겠으나, 현실정치의 장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그들도 신뢰감이 그리 높지 않다.) 소위 범여권이 한편으로 민주평화개혁세력의 결집을 호소하고, 이것이 결렬될 경우 대파국이 올 것처럼 일방적인 묵시록을 쓰는 것이 설득력 떨어지는 만큼이나, 보수야권이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탈법적 흠결이든, 대선주자 우회상장이든 다 괜찮다는 논리도 그간 지키느라 수고한 보수의 품격이 결국은 내가 하니까 로맨스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완결할 수 있는 정확한 투표행위가 원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구도. 각 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호감에 의존한 투표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 여러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행한 정책검증 결과는 대부분 일관성 없음근거 부재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니 품질을 놓고 비교하기는 애초에 글렀다. 이래서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집단적/적극적 투표거부가 실행 가능한 대안의 하나로 손 안에서 만지작거려지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기에 하나 더 덧씌워진 이미지와 씨름하는 일이 남아있다. 장로 대통령에 대한 교계 상층부의 과도한 애정행각이 그것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기이한 현상이다. 정색하고 살펴볼수록 손해 보는 선택을 이토록 과감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교계 상층부에 브레인이 없거나, 있다면 심각한 두뇌 손상을 입은 상황이 아니냐는 추론을 하게 만든다.

 

첫째, 한 사회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이 있다. 이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고, 종교기관에 면세혜택 등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이 세속적 법과 질서 차원에서 해소되기 어려운 갈등과 긴장을 궁극적으로 조절해내고, 풀어낼 수 있는 일종의 사회의 최종적 양심, 혹은 최종 심급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용철 변호사가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에 몸을 의탁한 것이 그런 예가 될 수 있겠고, 저 암울했던 시대 종교인들이 사회정의를 위한 최종적 피난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다. 그런데, 지금의 개신교는 갈등상황의 이해당사자의 위치로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상당히 많은 이슈들에서 개신교는 분쟁의 해결자가 아니라, 분쟁의 당사자였다. 하나의 정치집단화, 이해단체화 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이익을 실제로 수호하고, 실리를 얻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더 이상 개신교는 한국사회 전체의 거대한 방향을 잡아가고, 불편부당한 판단을 구하는 자리에는 낄 수 없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개신교가 장로 대통령을 배출함으로써 개신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그의 정치적 운명과 연동하겠다는 해괴한 선택에 도달한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물론 거기에는 지난 10년간 좌파 정권이 들어서서, 종교의 자유가 심각히 훼손되었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독교계의 독자적 경험과 판단인지가 의심스럽다. 오히려 이는 우파세력들이 한국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의 축소를 경험하면서 마지막 연대세력으로 개신교를 지목함으로써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던 전선이라고 본다. 그들이 개신교를 애국 기독교라고 불러줌으로써 비로소 개신교는 시청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우파의 꽃이 되었다. 나의 묘사가 지나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미국에서 보수세력들이 30여 년의 시간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정으로 전방위적 투쟁을 벌여냄으로써 열세에 놓였던 두 번의 대통령 선거(조지 W. 부시)를 승리했던 경험이 한국 보수우파들의 전략적 지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네오콘(Neo-conservative)이란 우파 지식인과 관료집단이 종교적 우파(Religious Right), 특히 기독교우파 운동(Christian Right)을 통해 대중적 기반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단일 이슈 가치투표(single issue value voting)를 이끌어내어 많은 표를 얻어갔음을 알고 있다


이 도식이 뉴라이트운동의 노선투쟁과 기독교계의 대중동원 현상에 엎어놓으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는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줄줄이 출판되는 네오콘과 종교우파 운동에 대한 비판서들은 이 전략의 앞 뒷면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들어오는 대목 하나는 기독교우파들의 소수파 수사학(minority rhetoric)이다. 클린턴 정부 혹은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 교실에서의 기도금지 공공장소의 십계명 게시 금지 동성애 옹호 낙태 찬성 등이 옹호되었고, 이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반대할 이슈들이라는 것. 보수적 가치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훼손당하고, 입지가 축소되는 소수파가 되었다는 것. 우리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적극적으로 이 가치를 수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미국사회의 주류였던) 우리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미국의 가치는 소멸되고 말 것이란 주장이다. 내용과 논리를 한국적 이슈로 바꾸어 놓고 나면 한 부분도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없다. 심지어는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함께 흔든 이유마저도 이 전략이 원래부터 미국제였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셋째, 그러기에 우리는 한국에서 기독교적 사회참여 내지는 정치참여를 근본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적 정치참여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문제라면 이미 우리는 국회에서 최대 교섭단체를 구성할 만큼 충분한 수의 그리스도인을 침투시켜놓았다. 새로 진입하겠다는 사람이 그들보다 낫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이들보다 더 나은 정치를 하겠다면 최소한 매번 선거가 임박해서 급조된 정당 간판으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표를 구걸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해소되지 못한 한국정치의 과제가 정당정치의 복원이라면 최소한 기독교적 정치참여의 노력이 눈 앞의 권력획득보다는 더 장거리 전망을 갖고 수행해왔다는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권보다 더 저열한 방식으로 노선도, 명분도, 정책도 없이 수행되는 기독교적 정치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단지 교회에 나가는 것만으로 기독교권의 덕을 보고자 한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학연, 혈연, 지연을 쓰레기통으로 밀어 넣고 있는 판국에 종교연고주의를 굳이 꺼내, 보란 듯이 재활용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넷째,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은 특정 후보가 명백하게 종교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라면 공적인 종교의 자유를 내걸고 그 후보를 배격할 근거가 - 지지할 근거가 아니라 -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불교의 자유를 신장하고, 기독교를 위축시키겠다고 할 경우 종교의 자유를 들어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 반대의 경우도 정당화 되기 때문에 우리는 타종교와 적대적 종교전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면 어느 한 종교를 편향적으로 지지하는 후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제한에 가장 크게 걸려있는 사람이 서울시 봉헌 발언을 한 이명박 후보이다) 종교적 이슈는 현재 한국상황에서는 누구를 배제할 이유는 되겠으나, 누구를 지지할 이유로서는 크게 기능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한국정치 전반을 읽는 독해력(political literacy)을 키워감으로써 어떤 정치집단이, 어떤 노선과 정책으로 정부를 담당해나가고, 정치권에서 제 역할을 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점의 판단과 선택은 사실상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선호의 문제인 만큼 집단적으로 왈가왈부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국회의원이 일인 헌법기관인 것처럼 유권자들은 적어도 선거의 순간에서는 일인 헌법기관이다.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되어서는 안될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를 어설픈 선동과 집단논리에 휘말려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권고의 핵심이다. 각자는 정치적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사실상 해야 한다. 정답이 주어지지 않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각자에게 한 표씩 부여한 우리 민주 정치의 핵심이다. 이를 근거 없는 대중선동으로부터 잘 지켜내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기독교 정치인이 되는 것은 어렵다. 좋은 기독교 유권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기에 정치에서 영성을 논하고, 구하는 것이 결코 엉뚱한 짓이 아니리라. 우리 모두 정치적 영성을 제대로 발휘할 부흥회의 시즌이 왔다.

 

Posted by erasmus

* GCF회보 <소리>(200801)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에 실은 글입니다. 대선 후 한달이 못되어 쓴 글입니다.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왜 그랬을까?




1. 2007년 대선 복기하기

제17대 대선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전례 없는 대승을 거두는 것으로 끝났다. 거기에는 소위 ‘민주평화개혁’ 세력에 대한 연민도 나타나지 않았고, ‘진보진영’의 약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국현도 실패했고, 권영길은 초라했다. 실패했으나 웃을 수 있었던 사람은 이회창과 허경영 밖에는 없었으리라. 모든 상대를 파죽지세로 쓸어버린 장수처럼 거침없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저무는 태양을 상대로 화사한 칼부림을 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인을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한다. 누구도 거역하기 힘든 절대강자의 등장이다. 일 년 넘게 ‘이명박 대 이명박’의 대립구도, 즉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이긴다는 ‘자기와 싸우는’ 구도를 유지해온 그는 마지막의 BBK 관문까지 잘 막아내면서 승리를 쟁취했다.


이런 대선결과를 놓고 여러 세력들은 저마다의 분석을 내어놓고 있으나, 스스로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선거 전 ‘국민이 미쳤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여론의 결과는 뚜렷했으나, 왜 여론이 그랬는지 원인은 속 시원히 규명된 바 없다. 가장 단순명료한 것은 현정권에 대한 반동투표(reactive voting)였다는 것이다. 잘 못했으면 권력이 넘어간다는 것을 단순하게 적용한 선택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파 후보들(이명박, 이회창)이 더 많은 득표를 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그 표가 왜 둘 중 이명박에게 몰려갔느냐를 묻는다면, 즉 도덕적 흠결이 적지 않은 (것으로 비친) 이명박이 경선과정을 우회한 이회창보다 더 월등한 흡입력을 발휘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 이는 좀 더 오랜 기간 축적된 한국정치의 지형변화를 깔고 들여다보아야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



2. 한국의 권력 이동

87년 민주화 이후로 군부독재 세력의 연속선상에서 두 번의 집권이 이루어졌다. 87년의 노태우 정권은 전임 전두환 시대를 직접 계승하는 정권이지만, 대북화해 기조라든지, 국내적 민주주의 면에서는 훨씬 유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어진 92년의 김영삼 정권은 비록 3당 합당을 통해 집권함으로써 민자당이 다시 정권을 잇도록 하긴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소위 ‘민주화 세력’이 주도권을 갖게 됨으로써 스스로를 ‘문민정부’라 칭하는데 어색함이 없었다. 이 시기에 금융실명제 등으로 대표되는 개혁정책이 시도되었고, ‘하나회’ 등 군부의 파벌을 제거함으로써 다시는 군부정권이 등장할 수 없도록 문민권력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말년의 IMF 사태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게 되면서 진행된 선거를 통해 97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이때는 집권세력의 실패에 대한 심판론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소위 ‘민주개혁세력’으로 완전한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지게 된다.


‘준비된 대통령’ 컨셉으로 들어선 김대중 정권은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충실하게 경제체제를 구조조정 해나갔다. 지금 우리가 ‘신자유주의’ 노선이라고 부르는 상당수의 정책은 이때 국내에 도입되고,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물론 이 시기는 남북문제가 북미간의 오랜 고착과 긴장관계를 벗어나 ‘햇볕정책’에 힘입어 대대적 진전을 보았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사회문화적 사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전의 주요 정치세력 어디로부터도 대대적 지지를 얻지 못한 소수 세력이 전혀 다른 대중적 동력에 힘입어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주요 권력기구의 탈권력화, 탈권위주의화가 진행되었으나 이는 상당정도의 후유증을 동반하였다.


지난 연말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은 20년에 걸친 권력이동이 하나의 사이클을 완료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대선을 통해, 곧 있을 총선을 통해, 새 정부의 인물 등용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민주-반민주’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프레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택할 것이다. 지난 20년간 뿌리 깊게 작동해 온 ‘군부독재반민주 정권으로부터의 탈피’란 과제는 이로써 한국정치의 핵심이슈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3. 한국정치를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와해된다는 말은 이제 과거에는 두드러지지 않던 요인들이 주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든지, 핵심 대립구도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가을 청어람 청년정치아카데미에서 강의한 이국운 교수(한동대 법학)는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지형을 결정한 요인을 크게 ‘국가 대 개인’과 ‘자본 대 노동’의 대립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좌표 상에서 사방을 향해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이 두 쌍의 대립을 어떻게 적절히 통제하며 중심부를 향하는 구심력, 즉 ‘입헌주의’로 견인하느냐가 이국운 교수의 주요 관심사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결론에 대한 동의여부를 떠나서 현재의 정치구조를 분석하는 그의 틀과 해석이 상당히 흥미롭다. 그가 볼 때, 한국 현대사는 ‘국가’에서 출발하여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I --> II --> III --> IV 사분면으로 권력의 구조가 이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 특히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 압도적으로 ‘국가 중심적 정치’ 동력을 지녀왔다.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이 시기는 국가가 나서서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억제하며, 개인을 압박하는 방식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이루어졌다. 국가는 노동을 억제하는 대신 자본을 육성하였다. 우리는 이를 X축에서 출발해서 Y축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선회하는 I 사분면의 반원으로 그려낼 수 있다. 이 시기를 대변하는 세력이 국가주의적 산업발전 세력, 소위 근대화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 리더십, 애국주의, 국가주의에 익숙하며, 향수를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경제가 점점 발전하여 한국사회의 주도권이 어느 순간 Y축을 넘어서는 순간, 권력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이제는 자본이 더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는 과거에 가능했던 국가의 절대적 개입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질서를 구축하게 한다. 자본은 국가가 노동을 통제하기 위한 개입을 유인하는 대신 - 그것이 차떼기 정치자금이든, 퇴직관료의 일자리 창출이든, 아니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든 - 소비의 주체인 개인을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전능한 방식으로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에 개입하지는 못하도록 자유주의적 기풍을 지지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자유 시장’이란 슬로건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자유’란 말로 국가의 개인 통제를 느슨하게 하면서, ‘시장’이란 말로 노동에 대한 강한 통제는 허용한다.


셋째, 사이클이 III 사분면으로 넘어오는 시기는 자본과 개인이 빚어내는 시장질서 만으로는 사회를 제대로 유지하기 곤란함이 밝혀지는 경우이다. 사회안전망이나 사회복지, 즉 결국 소비자인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소득을 분배하지 못하면 자본도 국가도 살아남을 수 없기에 노동과 개인의 영역에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자본과 국가로 하여금 세금과 정책을 통해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대중의 생존을 떠받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떠올리면 가장 가까울 것이다.


넷째, IV 사분면은 노동의 이익이 국가기구를 통해 적극 관철되는 경우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론적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이런 모양일 것인데, 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더라도 강력한 노동자 정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면 가능한 모델이다.


지난 대선은 바로 이런 각 영역간의 각축으로 묘사될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II사분면의 어느 지점에 와있다. 전국민이 최근까지도 부동산이 가장 재테크로 좋은 수단이란 인식을 갖고 있고, 여유자금이 있다면 펀드나 주식에 묻어두는 금융자본주의가 활성화 되는 초창기이다. 내집 마련을 위해서는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집에 높은 보유세가 매겨지면 분노하고,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낮추어줄 의향은 별로 없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이런 대중들의 삶과 가장 오버랩이 많은 후보가 이명박 후보이다. 그는 오랜기간 건설회사 대표로 한국경제의 체감속도 속에서 살아왔다. 실패로 끝났지만, BBK 등 금융자본주의에서 놀아본 경험도 있다. 소위 정치만 한 부류가 아닌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시대적 요구조건에 가장 깊게 밀착해 본 사람이자, 그들이 입 밖에 차마 꺼내지 못하는 아우성을 육화할 각오가 된 존재이다. 반면에 한나라당 내의 경쟁자였던 박근혜는 I사분면에 서 있다. 이회창도 비슷한 지점이다. 둘 다 국가주의적 해법을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는 다시는 국가의 권위적 개입을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의 두려움을 자극함으로써 과거의 ‘민주-반민주’ 구도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퇴행적 선택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


시대적으로 가장 적절한 대립구도를 창출할 수 있었던 후보는 아마도 문국현이었을 것이다. 그는 II사분면 내에서 양자 간 차별 가능한 메시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었고, 정책상의 지향점을 선명히 했더라면 III 사분면의 지지자들을 대거 이끌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독자적 세력화에 실패함으로써 이 모든 가능성을 현실화하지 못했다. 정동영은 이 그림 상에 가장 자리매김하기 곤란한 인물이다. 그 개인이나 그를 지지하는 그룹 모두가 위의 좌표상에 얇게 산개되어 있다. 그는 끝까지 정치적 노선도, 경제적 비전도, 문화적 흡인력도 모두 모호한 존재로 남았다. 권영길은 IV 사분면을 대표하는 노동세력으로 자리매김 되는데, 문제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정서가 훨씬 친자본적이란 점에서 대세를 거스르는 싸움을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스스로 노동세력을 자처하는 그룹 내부로부터의 이탈(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선언)과 일탈(부유세 정책 관철 실패, 비정규직 대안 미흡)로 자기 자리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현대사의 시계가 이제 I -->II까지 진행되어왔다면, 자본과 개인의 영역이 극대화 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일부는 다시금 해묵은 국가주의의 향수에 젖어들 것이나, 대체로 다양한 관심사는 III 사분면의 논의와 실험에서 해답을 모색하는 흐름이 형성될 것이다. 성장과 분배를 대립이 아닌 보완의 관계로 보는 인식, 사회안전망이 좀 더 촘촘하게 짜여진 사회를 추구하는 경향, 환경과 생태, 문화적 다양성 등에 좀 더 전향적인 사회 등이 이제는 훨씬 가깝고도 절실하게 논의될 것이다.



4. 기독교적 정치? 시대를 질러가자

그간 ‘기독교적 정치’ 논의는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했다. 이론적 논의는 당연한 원론만 반복하는 사이에, 이런 고민과는 전혀 무관한 이들의 과감하다 못해 무모한 도전들이 줄을 이었다. 계시 받고 대통령 선거에 두 번이나 나온 ‘선교단체 대표 출신’ 목사도 있었고, 기독교인 표만 모으면 비례대표 몇 석은 문제없다는 주먹구구식 ‘기독교 정당’도 매번 등장한다. 정치를 ‘권력의 획득’이란 협소한 차원에서만 이해한 흔적이 역력하다. ‘권력을 갖고 무얼 하겠다’는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손에 권력이 와 있지 않아서 나라가 이 모양이란 분석 외에는 무얼 어찌 하겠다는 대안이 없다. 그냥 ‘기도 열심히 하겠다’는 신앙생활에 대한 자기다짐뿐이다. 차라리 최근 ‘본좌’에 등극하신 허경영의 ‘바이칼 호 영구임대’나 ‘유엔본부 판문점 유치’ 같은 구상이 더 현실적인 정치적 비전으로 느껴진다.


정치란 ‘현실과 이상을 잘 조화하면서 자신들의 소신에 따라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대략 정리를 한다면, 정치의 일차적 과제는 그 사회가 당면한 현안을 자신들의 가치와 비전 아래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앞서의 한국정치의 구조와 변동에 대한 분석이 틀리지 않다면, 기독교인이건 누구건 앞으로 ‘노동’과 ‘개인’이 주도적인 국면으로 한국사회가 이행해나갈 것을 예견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자본-개인 주도적 국면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비판하고, 피해자를 돕는 일에 함께 서고, 창의적 대안을 내어놓는 일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적 정치는 정치 외부로부터 불현듯 개입하는 것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기독교적 정치는 현재의 과제와 씨름하는 가운데 발생한다.




Posted by erasmus
뒷담화2009.10.10 19:25
한글날 맞아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운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문화계에서 이런 저런 논란이 많다는 얘기는 들어왔지만, 그래도 못 세울 건 없지 않냐 싶었는데...

한겨레신문에 사진이 나온 걸 보면서 완전 "뜨악"했습니다.
(아직까지 이 사진은 온라인에 공개가 안되어 있는데,  
거대한 동상이 경복궁 방향으로 시선을 가로막아, 
마치 세종대왕 동상이 궁을 막아선 형세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사진 검색으로 느낌이 전달될만한 컷들을 골라보았습니다. 


이 사진만 보면 대한민국은 어디 동남아시아의 한 왕조국가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근데, 이 이미지가 어디서 많이 보던거라는 거죠.
자애로운 임금님께서 백성들을 친히 영도하시는 모습.




뭐 보고 놀란 가슴 뭐 보고 놀란다고... 
이게 진정이 잘 안됩니다.

심지어는 상상력이 어디까지 가느냐면...
동방불패인가 소오강호인가에 나오던, (아니면 천녀유혼이었나?)
공중에 뜬 금동불상의 이미지까지 겹쳐보이는 강박증을 초래한다는 것이지요.



확실히 시대착오적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요?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design Seoul)'한다고 강제로 간판 정비하고, 
온갖 비디자인적 경관을 고쳐야 도시 경쟁력이 살아난다고 난리를 쳤는데 
완전 "이거 어떻게 책임질 것임미?" 되어 버렸습니다.


한겨레 사이트 사진




전 개인적으로 세종대왕 동상이 드높은 좌대에 올라앉아 백성을 굽어살피는 모양보다는
바닥에 실물 크기로 제작되어서 사람들이 곁에도 앉고, 
손에든 '훈민정음'에는 무슨 내용이 있는지 들여다 볼 수도 있는 
그런 규모와 형식이 되었더라면 광화문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훨씬 정겨웠을뻔했다 싶습니다.

거대한 조형물로 광장을 빽빽히 채우는 것보다 
광장은 말 그대로 '광장스럽게' 넓게 터서 시원스레 시야를 확보해주고, 
동상은 눈높이 수준에서 자연스레 포착되도록 배치하는 것이 오히려 집중도를 높였을텐데,
지금 광화문 광장은 저마다 사람들 눈에 들려는 조형물과 꽃밭과, 시설물들의 경쟁으로 
동선과 시선이 토막토막 나 있습니다. 

뭔가 자꾸 인공적으로 만들어 세우고, 사이즈를 키우고, 갯수를 늘리고,
높게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매우 단순한 사고로 점점 서울시내 경관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서울시장들은 자기 임기 중에 서울 중심부에 한가지씩 꼴불견 조형물을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이
전통이 되어가나 봅니다. 청계천에 사람들 많이 가니, 광화문에도 물 흘리고, 동상 올리는 꼴입니다.

대체 '남대문'은 어찌 되어가고 있답니까?  
시청앞 광장도 보기 싫어 죽겠어요.



Posted by era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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