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복음주의2009.11.09 11:11

* <복음과상황> 2009년 11월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특집기사 중 하나로 쓴 것이라 좀더 세부적인 논의는 다른 분들의 글을 참고하셔야 할 것입니다만, 개략적인 지형을 살펴보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창조론진화론’, 변증의 계절이 다시 오고있다

젊은 지구론에서 무신 진화론까지


 


오래 전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ca. 160- ca. 220)가 그렇게 말했다.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신앙의 상징 예루살렘과 지성의 상징 아테네 사이에는 별반 긴밀한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그는 신앙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진리이다란 말까지 했다고 한다. 말로 설명해서 다 알아듣는 것이면 왜 굳이 믿음이 필요하겠냐는 취지였다. 예수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곧 그 사회의 불이익과 차별, 심지어는 처벌까지 끌어내는 상황에서는 신앙이 단순히 이해가 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죽어도 좋을 진리의 격을 갖추어야 했다는 점을 웅변하는 말이리라.

 

어쨌든 미국의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리차드 니버(H. Richard Niebuhr)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테르툴리아누스의 입장을 대립주의(Christ against Culture)의 대표로 파악하고 비판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 초대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일자무식쟁이가 아니었다. 그 자신 로마의 법률가로 훈련 받았고, 수사학과 철학에 능했던 인물이다. 초기 기독교의 주요한 신학용어와 개념들, 예를 들면, 삼위일체(Trinity) 등을 고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종심급이 무엇인가?

신앙을 최종심급에 놓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시대나 이 최종심급적 지위에 도전하는 대상들의 출현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로마황제란 존재가 지상에서 최고의 헌신과 경배를 강요할 때 이와 날카롭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국교화란 방식으로 그 갈등이 어쨌든 해소가 되었을 때라야 그 과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론, 그 이후 교회사의 가장 근본적 층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이 교회와 국가(church and the state)란 점에서, 과연 이 땅에서 최종 심급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교회인가, 국가인가란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서구문명사에서 긴 중세의 시기를 지내면서, 사람들이 종교권력이 지식의 영역에서 언제까지나 최종 심급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히 드러나자 새로운 종류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이성(reason) 대 신앙(faith)이란 구도가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둘 사이를 설명하는데 갈등(conflict) 관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의존해서, 무엇을 설명하느냐 하는 최종심급적 주도권에 있었다. 이성을 기반으로 종교현상, 신앙행위를 해명해 낼 수도 있고, 신앙의 맥락 위에 이성의 지위를 배정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르네상스(Renaissance) 이래로 종교개혁(Reformation)을 거쳐, 계몽주의(Enlightenment)로 이어지는 흐름이 이런 굵은 줄기 위에 때마다 여러 세부 요소와 쟁점들을 따라 진행된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때에는 지리적 발견의 놀라움이, 어떤 경우는 천문학과 물리학 등 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이론들이, 어떤 경우는 산업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또 어떤 경우는 혁신적인 철학의 등장을 통해 무엇이 세상을 파악하는 최종 심급이 되어야 하는지를 논쟁하며 각축을 벌였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이 논쟁이 매우 대중적 양상으로 집약되어 폭발한 주제가 바로 창조론(creationism) 논의라고 볼 수 있다.[1] 그러나, 창조론 논의가 곧 창조(creation) 자체에 대한 논의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어떤 창조론에 동의한다고 그것이 곧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창조론들과 진화론들

창조론(creationism)과 진화론(evolutionism)이 만나고 헤어지는 지점을 간략히 묘사하자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젊은 지구론(Young Earth creationism)

2)      오래된 지구론(Old Earth creationism)

3)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4)      유신 진화론(Theistic evolution)

5)      무신 진화론(Atheistic evolution)


 

1) 젊은 지구론

젊은 지구론(Young Earth theory)은 지구의 연대가 오래지 않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이는 성경 창세기의 기록이 연대기적으로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역으로 추적하면 창조의 기원, 혹은 지구의 연대를 산출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일반적인 지질학이나 천문학적 논의와 조화하기 어려운 이 입장은 그런 난제를 성경의 특정한 구절들로부터 암시되는 내용을 통해 풀어보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면, 지구 위에 있던 궁창 위의 물로 인해 보호받던 지구가 그 물이 터짐으로써 급격한 변화와 노화가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오래된 연대로 보인다든지 하는 설명으로 이런 충돌을 해소한다. 탄소 반감기를 이용한 연대측정법도 그런 물리적 대격변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지금 과학계에서 사용하는 방법들은 지구의 실제 연대보다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본다. 생물의 종은 오랜 시간을 거친 진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의 종 구분 그대로 창조되었다는 입장을 갖는다.


 

2) 오래된 지구론

오래된 지구론(Old Earth theory)은 젊은 지구론에 비해 좀더 과학계의 논의와 조화하고자 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창세기의 (yom) 개념은 오늘날의 하루가 아니라, 상당한 장시간을 의미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천문학이나 지질학적 연대와 조화를 도모하기도 한다. 이들은 창세기의 내용을 가능한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나, 현대 과학과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문자적 해석을 벗어나 상징적 표현으로 간주함으로써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한다. 이 입장은 젊은 지구론 입장으로부터는 충분히 성경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진화론자들에게는 충분히 과학적 증거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 위치에 처한다. 국내에서는 수 년 전 <창조과학회> 초기 핵심 멤버였던 양승훈 교수가 “‘젊은 지구론을 포기하고 오래된 지구론을 수용한다고 발표했을 때, 상당한 반발이 나왔던 것으로 보아 한국의 <창조과학회>는 주로 젊은 지구론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의 학술지인 <창조>에는 요즘도 주로 젊은 지구론에 대한 글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공식적으로도 이를 천명하고 있으나 주요한 초창기 멤버들 가운데는 오래된 지구론 혹은 그보다 좀더 전향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3) 지적 설계론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은 비교적 최근의 이론이다. 맥락 상으로는 기존의 창조과학진영의 젊은 세대들이 구태의연한 증거주의 방식의 논증이나, 기존의 과학이론이나 방법론에 소득 없이 싸움을 걸고 있는 창조과학 진영과 구분선을 긋고 새롭게 제기하는 논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창조과학자들과 구별한다. 이들의 주요 논지는 피조세계 내에서 설계(design)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지적 설계자(intelligent designer)의 존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진화론자들이 견지하는 무작위성(randomness)에 대한 반대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지적 설계 논증이 곧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옹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지적 설계자는 기독교의 하나님일수도 있고, 이슬람의 알라라고 불릴 수도 있고, 심지어는 외계 생물체(alien)일 수도 있다. 지적 설계론은 구체적으로 지구의 탄생, 생물의 창조, 우주의 연대기를 해명하기 보다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면…”이란 전제를 입증하는데 최대한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들이 전통적인 창조론의 이슈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강하게 보이지 않고 있고, 오히려 논의 구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상황에서는 논쟁을 가르치라(teach the controversy)는 전략으로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진화론만 아니라 지적설계 (혹은 창조론)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도록 강력한 로비를 하고 있어서 종교-교육 문제에 있어 매우 큰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 교육의 일환으로 이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얼마전 좋은교사운동지적설계연구회 간의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진화론과 지적설계가 함께 가르쳐질 수 있다는 사회적 기반이 확립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 기독교 신앙인들이 그 위에서 기존의 창조론 논의들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비판자들에게서 제기된다.


 

4) 유신 진화론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국내에서는 공적인 존재감이 별로 없었지만, 사실상은 상당히 광범위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의 경우도 가톨릭교회를 비롯하여 성공회, 미국 연합감리교단 등 상당히 많은 주류 교단교파들이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생명과 우주의 발생에 대해서는 진화론적 설명을 수용하지만,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고백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절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유신진화론 입장이라고 할 때,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짚어볼 부분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유신진화의 가장 대표적 표현이 하나님은 창조하셨으나, (진화의 규칙에 따라 세계가 운영되도록)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이신론(Deism)으로 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신진화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꼭 이렇게 멀리 있는 신(the distant God)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철학과 신학 전통에서 창조하시고, 관여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신앙고백에 확실히 서면서도 창조과학보다 진화론에 훨씬 수용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강영안 교수 같은 이는 지적하기도 한다.[2]

 

, 진화론적 설명이 충분한 해명이 되기 때문에 수용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기존의 창조과학류의 설명이 현저히 신빙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진화론이 좀더 나은 설명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잠정적 동의 수준에서 유신진화론을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 자연과학을 하고 있는 경우나 인문학적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신진화론의 경우는 이렇게 유보적 입장에서, 적극적 입장까지 스펙트럼의 차이가 있는 노선들을 함께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본주의-복음주의자 진영에서는 신학자 워필드(BB Warfield),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등도 이런 입장을 표한 바 있다.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에 대해 비판서를 두 권이나 낸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의 경우도 그 자신 분자생물학 박사에서 신학자로 전직한 이력의 연장선 상에서 도킨스의 근본주의적 과학관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 진화론 자체를 전면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책임자였던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역시 진화론이 곧 무신론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캠브리지의 물리학 교수에서 신학자로 변신한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역시 유신론 신앙과 진화 현상은 조화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국내에 가장 신뢰할만한 복음주의 목회자-신학자인 존 스토트 역시 인간진화를 인정하는 데에 별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로마서 강해>에는 아담을 원시인류로 보는 입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국내 번역에서 이런 내용이 일으킬 파장을 고심한 듯 긴 역자 주가 붙어서 한국 독자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5) 무신 진화론

무신진화론(Atheistic evolution)은 글자 그대로 진화론은 무신론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는 입장, 혹은 진화론은 굳이 유신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전자가 적극적인 무신론이라면, 후자는 소극적 무신론이 되겠다. 전자의 경우는 진화 현상은 무신론과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과학적으로 받을만한 진리라고 보기 때문에 유신론을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 진리의 수립을 훼방하는 퇴행적 행위로 비치기 십상이다. 도킨스 같은 이가 종교, 혹은 기독교는 인류문명에 해악을 끼치는 바이러스로 간주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포이어바하(L. Feuerbach)의 기독교 비판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굳이 유신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후자의 온건한 입장은 종교가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좋은 역할도 꽤 하는 만큼 유용하게 활용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느냐는 일종의 이원론적 입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장 자크 루소(J.J. Rousseau)를 비롯한 서구의 많은 정치철학자들이 보여주었던 이런 입장은 진화생물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통섭의 저자 E. O. 윌슨(Wilson)은 기독교인들이 지구환경을 살리는데 파트너로 함께 하자는 비교적 우호적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3] 이런 실용적 이유에서의 유신론 인정이 무신진화론자들에게서 나올 수 있다. 다원적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공공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고 연대할 일이 많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 관계가 기독인들이 자신들의 과학에 대한 입장 수립이 별로 긴급하지 않다고 오판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변증의 계절이 왔다

한국사회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신론자라고 하면 신에 대한 관념(혹은 관심)이 없는 사람 정도로 간주할 수가 있었다. 전도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능숙한 논리로 반대논증을 전개할 수 있었고, 자주 논쟁을 압도하거나, 논의를 주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의 무신론자들은 이론적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교리적 논란과 빈틈을 잘 알고 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같은 책들 탓이다. 공격과 수비가 바뀐 지 오래이다. 이제 한국사회에는 다시금 변증(apology)의 시대가 오고 있는 듯하다. 변증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을 아는 것. 대체, 창조-진화 논쟁, 과학과 신앙 논쟁의 쟁점들은 무엇일까,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지게 생겼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창조론(creationism)에 대한 유용한 자료는 www.wikipedia.org에서 creationism을 검색하면, 이 논의가 어떤 배경과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쉽게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글판보다 영문판 쪽 내용이 더 권할 만하다.

[2] 강영안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IVP, 2007)에서 사도신경 첫 줄을 강해하면서 창조과학과 지적설계가 오히려 창조에 대해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하였다.

[3] 윌슨의 경우, 스스로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명확히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는 언급을 한 바 있어서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겠으나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자의 한 사람이기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반대로 또 다른 진화생물학자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의 경우는 큰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회복하면서도 병상에서의 회심을 거부하고, 지인들의 기도의 효력을 부정하는 등 무신론자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인 바 있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1.04 20:02
* <복음과상황> 2000.10월호 '브리스톨 통신(6)'입니다. 참고로 영어로 Evangelicalism은 '복음주의', Evangelical은 형용사로 '복음주의적'이라고 쓰이거나, 명사로 '복음주의자'란 뜻을 갖는다. 이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자주 혼동하는 용어로 Evangelism은 '(개인) 전도', Evangelization은 '복음화'로 옮겨지고 후자가 좀더 광의의 의미를 지닌다.

* 아마 이 글은 포스트-에반젤리칼의 존재를 한국에 소개한 최초의 글일 것이다. 처음 쓰여질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영국 복음주의권의 실험은 한국에는 여전히 숨겨진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emerging church 운동이 태동하고, 방향을 잡아가는데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나는 이제 국내에서 꽤 관심을 끌고 있는 emerging church movement의 원조로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 운동을 꼽을 수밖에 없다. 지금 찾아보니 데이브 톰린슨은 자신의 이름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www.davetomlinson.co.uk


photo of Dave Tomlinson



내 이름은 무엇인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복음주의'란 용어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다. 대신 '보수주의'란 표현이 즐겨 사용되었다. 여기서 '보수'란 '성경적 진리를 지킨다'는 뜻으로 자랑스레 풀이했고, 이에 반대되는 '진보'측은 '진리를 시대조류에 영합해서 변개시키는 자들'이란 식으로 폄하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보수'란 단어에 좋은 뜻을 구겨넣어도 그 용어가 본래적으로 갖고있는 정체된 이미지나 고집스런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수'라는 단어에서 찾고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것이다. 신학적 보수파와 사회적 수구파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등장한 '개혁'이란 단어는 이를 피해 가는 좋은 표현이었다. 그러나, '개혁신학'이란 특정한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 용어는 어느 정도 그 폭에 제한이 따랐다. '복음주의'는 물론 이보다 선행하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적절히 표현해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보편화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복음주의(서구의 경우도 그렇지만)는 여러 흐름들이 혼재되어 있다. 때로는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에 가깝지만 스스로 복음주의자로 인식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주류 복음주의에 비판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복음주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느낀다. 마크 놀(Mark Noll)이나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등이 지적했듯이 복음주의는 늘 진행형인 운동으로서 존재하기에 엄밀히 피아를 갈라내려는 노력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각 흐름들을 평가하되, 그 기저에 깔린 공유된 가치들이 복음주의 일반이 지니는 특징들과 얼마나 통하는지를 봐야 하겠다. 이번 호에서는 영국의 '포스트 에반젤리칼' 논쟁을 통해, 한국의 복음주의에 던져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내가 데이브 톰린슨(Dave Tomlinson)의 책을 처음 발견한 것은 96년초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옥스퍼드 시내의 서점에서였다. <The Post Evangelical>이란 제목으로 95년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마침 국내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한참 뜨거웠고, 대학가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Coming-Out,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무엇이 내 눈길을 그 책에서 떼지 못하게 했을까? 한동안 '포스트' 어쩌구 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던 시절에 왜 나는 또 하나 어설픈 아류가 나왔구나하고 지나치지 못했을까? 이 원고를 쓰기 위해 다시 그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그것이 '이름이 불리는(呼名)' 경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저자는 말한다. "내가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어떤 신학적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리된 주제들도 없었고, 당연히 조직이나 기구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표현을 처음 접하면서도 즉각적으로 그 중요성을 이해했고, 자기 나름대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내는지 놀랄 정도였다."

book by Dave Tomlinson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이 80년대 중반이후의 영국교회는 가히 '복음주의 르네상스 (Evangelical Renaissance)'란 표현이 거리낌없이 사용될 정도로 최고의 시기를 구가하고 있다. 과거 지리멸렬하던 교회들이 살아나고, 대형 이벤트에는 사람들이 구겨질 정도로 찾아들고, 대중매체는 어떤 사안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이 무언지 코멘트를 얻기에 바쁘다. 경제계, 연예계에도 돋보이는 복음주의자들이 대중적 신망을 얻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진 기나긴 침체에서 이제 막 벗어나 한껏 기지개를 켜는 이 시점에 '포스트 에반젤리칼'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러나, 저자는 이런 복음주의 호황의 후방에서 줄줄이 새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 저마다 어떤 이유들을 안고, 복음주의자이기를 그만 두거나(ex-Evangelical), 혹은 아예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ex-Christian)을 그는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영국 복음주의 자체가 안고 있는 어떤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단정한다. 물론 이것은 복음주의권의 전방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출되는 사람들보다 유입되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여전히 복음주의는 성장하고 있고,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왜 나는 이런 저자의 분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한국의 상황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96년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 복음주의가 피크를 넘어설 때쯤 나타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그런데, 요 한두 해 사이에 한국 교회들의 상황은 노란불을 지나 빨간불에 진입한 것 같다. 그런데도, 교회지도자들은 신호등을 무시한다. 자기 교회에는 사람수가 여전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늘날 대형교회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질적 공백은 들어오는 사람의 숫자로 채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뼈가 빠져나간 자리를 살로 채우는 격이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가 탁월하게 지적했듯, 그건 '성장'이 아니라 '비만'이다.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영국교회에서 이런 징후를 찾아내고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기치를 올린 이 저자의 안목이 한국 땅에서는 어떤 형태로 접합점을 가질 수 있는지 새삼 꺼내보게 된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이전과 이후


작년에 영국으로 공부하러 와서 서점에서 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The Post Evangelical Debate> (1997, Triangle). 이 것은 데이브 톰린슨의 책에서 시발된 논쟁을 영국 복음주의권의 학자들 여섯 명이 낸 논평 격의 책이다. 글쓴이들은 캠브리지 리들리 홀(Ridley Hall) 학장인 그래함 크래이(Graham Cray), 전 런던 바이블 칼리지(LBC) 부학장 닉 머서(Nick Mercer), 런던 킹스 칼리지의 겸임교수이자 전도와 청소년 사역에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운동가인 피트 워드(Pete Ward) 등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그 책은 이름 없이 책장 구석에 머물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복음주의자들에게 본격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 분명하다.

한편, 원래 책의 저자 데이브 톰린슨의 이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는 어릴 때 매우 복음주의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는데, 형제단(Brethren, 영국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교단이다)에서 십대에 주님께 헌신했고, 몇 년후 성령체험을 하면서 형제단을 떠나 당시 일어나고 있던 성령운동에 합류한다. 그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에 적극 참여했고, 22살에 결혼을 하고서 (영국 상황에서는 그닥 놀랄 일이 아니다) 자신의 집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한다. 이것이 그의 20년간의 가정교회 사역의 시작인데, 그중 10여 년을 그는 열 다섯 명의 팀을 이끌며, 50여 개의 교회를 돌보았다.

80년대 말, 그는 복음주의 교회나 성령운동 교회들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심각히 보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났으나 어떤 형태로건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이것은 그가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는 수준의 구속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찾아보는 신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좀 색다른 형태의 교회를 실험해보기로 하고 '홀리 조(Holy Joe's)'란 펍(Pub, 영국에서 가장 흔한 술집. 식사나 음료수도 제공되는 호프집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형태의 교회를 시작한다. 여기서 예배도 있고, 설교도 있고, 성경공부도 한다. 분위기는 일반 펍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그가 모든 교회가 이런 형태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획일적인 교회의 틀을 깨고, 선택가능한 실험적 모델로서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고 한다.

복음주의에서 웃자라다
그가 만난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복음주의가 줄 수 있는 환경보다 '웃자랐다(outgrown)'고 느꼈다고 한다. 웃자람은 간단히 말하면 복음주의적 기원이 아닌 입장이나 신학과도 긍정적으로 교섭하고자하는 욕망이다. 즉, 더 이상 복음주의 교회에서 주는 전형적인 결론들에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이 무언가 대안적 생각을 펴볼 공간을 찾고자하는 상태이다. 이것은 회의(doubt)를 드러내어도, 이를 불신앙(unbelief)으로 여기고 회심시키려고 달려드는 이들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들은, "복음주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입문하는데에는 매우 탁월하다. 그러나, 더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는데에는 거의 도움이 안된다"고 느낀다. 이들은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는 자신들의 생각이 끊임없이 종교적, 신학적 자기검열 상태 아래 놓여있게 된다고 느낀다.

'포스트 에반젤리칼'에서 '포스트'의 의미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와 마찬가지로 양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의 기원으로부터 '이탈 혹은 해체'를 뜻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원과의 '연속성'을 인정한다. 데이브 톰린슨은 그래서 '포스트 에반젤리칼'은 복음주의를 포기한 사람(ex-Evangelical)이나 그리스도인됨을 포기한 사람(ex-Christian)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들이 전형적인 복음주의와 갈라지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최근 20년간 영국 복음주의가 걸어온 지형도를 먼저 펼쳐보아야 한다.

영국 복음주의 내력 훑기
그는 오늘의 영국 복음주의를 형성한 여섯가지 조건을 분류해 냈다. 첫째는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80년대와 90년대에 부쩍 강화된 흐름인 주류 복음주의권의 카리스마틱화(Charismaticizing) 경향이다. 영국의 전통적 복음주의는 매우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신앙 형태이다(한국으로 치면 전통적 장로교 유형이라고나 할까). 이들에게 성령운동은 정서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고, 신학적으로는 불건전한 신앙을 낳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사이에는 매우 강한 거부감과 불신이 있었으나, 오늘날 성령운동의 영향력은 복음주의 주류의 대중과 지도자들 사이에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다. 그 과정은 다음의 여러 흐름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둘째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이 주류 복음주의와 결합한 것이다. 가정교회(House Church)란 6-70년대 초기, 성령운동의 영향아래 제도권을 뛰쳐나가 노방전도와 순회사역을 통해 가정이나, 학교 등을 빌어 교회개척을 해나간 이들의 흐름을 일컫는다. 이들은 대체로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을 기반으로 하고있으나, 교회의 분위기는 강한 성령운동의 흐름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는 네트워크 형식으로 모임을 가졌고,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서로 다른 지역의 네트워크 구성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대규모의 수련회를 열었다. 이것이 오늘날 수십 개로 보편화된 영국 내 다양한 바이블 위크(Bible Week)의 시작이다. 현재 이들은 영국 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독인 공동체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비조직적으로 교회개척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숱한 시행착오와 신학적 문제도 있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80년대 중반에 그 동안 서로 대립적이던 복음주의권에 전격적으로 합류한다. 이들의 합류로 상당기간 약세였던 영국 복음주의협의회(Evangelical Alliance UK)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셋째는 새로운 세대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등장이다. 데이브 톰린슨은 그들이 성령운동에 호의적이고,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나 정치에 대한 의식이 있으며, 복음주의적 가치와 이상을 확립하고 전도하려는 열의가 있다고 정리한다. 그 대표격으로 복음주의협의회를 이끌어 쇄신시킨 클라이브 칼버(Clive Calver, 그는 지난 96년 미국 World Relief의 국제총무로 옮겨갔다)를 꼽았다. 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80년대 초반부터 대거 등장함으로써 노쇠한 복음주의권이 일거에 역동적 운동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는 다른 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상당히 일반화된 평가이다.

넷째는 대형집회를 통한 대중적 참여이다. 영국에는 100년이 넘게 이어온 케직 사경회(Kewsick Conference)의 전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캠프 미팅이나, 사경회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79년 시작된 '스프링 하비스트(Spring Harvest)'는 주로 사경회 중심의 분위기를 젊은 세대들을 위한 축제의 분위기로 전환해냄으로써 시대의 문화적 흐름과 조응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 기간동안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를 자연스럽게 설득해 냄으로써 복음주의권의 대사회적 발언권과 참여폭을 넓혀왔다. 스프링 하비스트는 약 한달간 연인원 8-9만 명이 다녀가는 영국 복음주의를 상징하는 대형집회가 되었다. 여기에다 87년부터 시작된 '예수 대행진(March for Jesus)' 역시 첫해 런던에서 25,000명이 운집한 이래 94년도에 영국 내에서만 25만 명이 참여했고,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런 대형 집회들은 복음주의자들의 내적인 자신감을 고취했고, 사회적 존재로서 위상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다섯째는 복음주의 내에서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강조된 것이다. 영국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의 사회복음(social gospel)과 초창기부터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복음전도에 우선하는 사회변화에는 기질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70년대 초반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는데, 런던 중심부에서 열린 '빛의 축제(Festival of Light)'를 중심으로 말콤 머거리지(Malcolm Muggeridge, 회심한 사회주의 사상가)의 활동이나, 존 스토트의 저작, 프란시스 쉐퍼의 글 등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대안을 찾아가도록 자극했다. 이때 포르노그라피 및 동성애 관련 이슈들과 반낙태 운동이 복음주의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이것은 이후 더욱 발전해 대규모의 구호기금인 TEAR 펀드(The Evangelical Alliance Relief Fund), 교육, 보건, 가정 등의 이슈를 제기한 CARE 캠페인, AIDS 환자를 위한 ACET 프로그램, 제3세계 빈곤문제를 다루는 Jubilee 프로젝트 등으로 확장되었다.

여섯째는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이것은 영국의 교회사를 돌아볼 때 교회의 영적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일어날 때마다 다양한 형태의 부흥운동을 통해 돌파구가 열렸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고, 특히 최근 들어 성령운동 쪽에서는 예언의 형태로 많이 등장했다. 이것은 세기말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캐나다의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 현상이 영국에는 상당한 기대감과 더불어 영향력을 끼쳤다.

그래함 크래이는 데이브 톰린슨의 분석이 성령운동이나 가정교회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파악이란 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최근 20여 년간 복음주의권의 주요 경향을 나름대로 짚어내는 유용한 분석이란 점에서 의미를 인정한다.

급진적 재고냐, 눈먼 확실성이냐
그렇다면, 대체 '복음주의 르네상스'의 무엇이 문제인가? 데이브 톰린슨은 성공 그 자체가 문제를 몰고 온다고 말한다. 어떤 운동이든 그것이 대규모의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 내부의 소수의견을 묵살하는 경향성을 띄게 된다. 복음주의권의 강단에서는 더욱 확신에 찬 음성과 미래에 대한 낙관이 지배하게되고, 여기에 가세한 성령 운동적 경향은 더욱 이런 흐름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것'에 대한 어떤 종류의 반대나 이견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결국 이를 벗어나려면 복음주의자들은 이 운동을 이까지 끌고 온 바로 그 원동력(Dynamics) 자체를 비판해야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숨겨진 딜렘마이다. 그는 새로운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들이 이런 성공의 이면에 깔린 위험과 변화된 세상을 의식하면서 복음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급진적으로 재고(radical re-thinking)'하느냐, 아니면 옛 근본주의가 보여주었던 '눈먼 확실성(blind certainty)'으로 돌이킬 것이냐는 기로에 서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상황은 좀더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논의를 끌어들이는데, 프랑스 학자인 길레스 케펠(Gilles Kepel)은 아브라함에 기원을 둔 세 종교,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다시금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70년대에 편만해진 모더니즘에 대한 서구의 환멸감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현대성(modernity)의 핵심인 이성주의(rationalism)가 더 이상 세상의 문제를 푸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느껴지자, 그 반동으로 영적 갈망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보았다. 이슬람의 경우 이는 "더 이상 이슬람을 현대화(modernize) 할 것이 아니라 현대성(modernity)을 이슬람화(Islamize)하자"는 구호에 잘 드러나는데, 이는 옛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는 흐름, 즉 근본주의(fundamentalism)을 대중적으로 불러오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현대사회와 세속적 가치관 혹은 그 사회의 지배적 종교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에서 그 기반을 얻고, 삶에 있어 대안적인 영적 가치를 강조하고, 이런 영적 기반에 근거해서 사회를 개조하자는 열정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그 사회에서 잘 교육받은 젊은 세대들이 대거 매력을 느끼고 이런 운동에 투신하는 양태가 더해진다. 이들이 사회를 개혁하는 방법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위로부터의 개혁' 즉 법이나 권력을 통한 제도화이고, 다른 방식은 '아래로부터의 개혁' 즉, 그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이를 성취하는 것이다. 전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고, 후자는 전도로 세상을 바꾼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들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
그에 의하면, 복음주의 교회들이 포스트모던 시대가 던져주는 도전을 외면한 채, 옛 가치들로 회귀함으로써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신앙의 본질적 조건보다 부수적인 요인들이 더 강조되고, 그런 요인들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깊어지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가 꼽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문제는 복음주의자들이 점차 중산층(middle-class)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동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산층이 된다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물질적 안정과 상승욕구가 수반되기 때문에 이것이 복음주의적 가치관이나 생활방식과 혼동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것은 변형된 '문화적 종교(culture religion)'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두 종류의 계층을 복음주의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데 첫째는 서민이나 노동자층(working-class), 혹은 빈민층이 점점 더 자신들은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는 기득권층과 의식적인 거리감을 갖는 젊은 세대들의 심정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요즘 한국교회에서 이 두 계층을 제일 찾기 힘들지 않는가?)

또 다른 예로 가족의 가치(family value)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도 지적했다. 흔히들 교회에서 강조하는 가족의 모습은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이지 유일한 모델은 아니란 지적이다. 이미 서구교회의 경우, 이혼, 동거, 재혼, 편부모, 미혼모, 독신 등의 다양한 형태로 실제 상황은 전개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바탕으로 지당하신 말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델 밖에 놓인 이들은 교회 안에서 언제나 이류 그리스도인(second-class Christian)으로 자리매김 된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훨씬 오랜 동안 이런 이슈를 앓아온 서구의 경우가 국내에 동일하게 적용되기는 어렵겠으나, 요즘 국내에 넘쳐나는 가정사역 단체들이 이 고민할 때가 이미 되었다.)

복음주의 신앙은 문제없나?
그러면, 부수적인 요인들 말고, 복음주의적 신앙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우선 데이브 톰린슨은 복음주의 신앙의 강점에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경외심이고, 둘째는 복음을 아주 단순한 형태(simple form)로 제시함으로써 전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장점 자체가 역으로 복음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가 "복음주의 교회의 삼위일체는 성부(Father), 성자(Son), 성경(Holy Scripture)이다"고 비꼰 것처럼, 복음주의 교회들은 때로 성경을 우상화함으로써 말씀의 비판적 연구(critical study)란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리고 성경에는 결코 회색지대가 없고, 언제나 흑 아니면 백으로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믿어버린다.

전도에서도 이것은 바로 반복된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복음 패키지(simplified gospel pack)를 전하는 것으로 복음전도를 제한하는 것이나, 전도대상자에 대한 우월의식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데이브 톰린슨은 전도가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종교 외판원(religion salesman)이 아니라, 상대의 진리를 향한 영적 여행(spiritual journey)를 적극 후원해주고 도움이 될 경험과 깨우침을 나누는 동반자(partner)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한다. 전도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쓴 존 피니(John Finney)는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되는 과정을 조사해 본 결과, "전도자는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할지 모르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대체로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며, 그 평균은 4년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전도의 모델은 사람들이 이 필요한 과정을 잘 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포스트모던 시대, 포스트 에반젤리칼
지면상의 제약으로 데이브 톰린슨의 견해를 다 소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국과 한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을 대입해놓고 본다면 한국처럼 교단정치나 교권주의의 폐해가 심각할 경우 고려되어야할 제도적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에게서 전혀 시사 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의 요지는 분명 우리들에게도 울림을 갖는다. 세상은 포스트모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복음주의권은 과연 20세기 내내 복음주의를 형성해온 모더니즘적 전제를 급진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가? 즉, 여전히 근대(modern)의 전제를 굳게 움켜쥐고 있는가, 아니면, 아예 전근대(pre-modern)의 근본주의로 손쉬운 선택을 하려고 하는가? 포스트모던 시대와 적극적으로 교섭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몇가지 측면에서 포스트모던적 전제 아래서의 신앙, 즉 그의 제안대로 포스트 에반젤리칼 신앙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했다. 논평자들이 지적하듯이, 데이브 톰린슨의 논지에는 분명 학술적인 엄밀성이 더 요구되는 부분들이 있고, 현재 진행중인 논쟁들도 대거 도입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을 내러티브(narrative)로 이해하는 성경관, 언어의 메타포와 심볼을 도입해서 신앙을 설명해나가는 해석학적 방법 등은 영국에서는 복음주의권에서도 이미 상당한 진척이 있는 분야긴 하지만, 아직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더구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접합점을 마련할 것이냐에 좀더 고민이 있어야할 주제이다. 아무튼 이 주제는 차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되, 우리가 이번 논의에서 분명한 시사점을 얻어야 할 것은 복음주의의 전성기에 그 내부적 모순을 직시하면서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복음주의의 흐름이 좀더 자의식이 분명한 그룹들로 다양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는다. 좀더 다양한 신학적 사고들이 숨을 쉴 수 있는 분위기, 실험적 모델들이 시도될 수 있는 공간, 세상을 흑백사진이 아니라 칼라사진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그가 이끌어낸 포스트 에반젤리칼 논쟁은 이런 공간을 마련하자는 외침으로 읽힌다. 필자는 그가 분석해낸 바대로 복음주의가 스스로의 성장논리에 발묶이는 과정에 동의를 보내고, 중산층화 되어감으로써 잃어버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혀낸 대목에 함께 탄식한다.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전도에 열심을 내는 복음주의 고유의 특징을 유지하는 것과 그것에 함축된 역기능을 비판하는 것이 결코 양립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것도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것은 그 동안 막연한 반발감이나 불평으로 여겨 눌러두던 생각의 파편들이 비로소 제 이름을 얻고, 복음주의 이후를 모색하는 '고민하는 주체'로 자리매김 되었다는데 있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이것으로 자신의 이름이 비로소 불려졌다고 느끼는 사람들, 한국에는 없는가?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28 16:06
* <복음과상황> 1999년 1월호 "너희가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아느냐?"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 10년이 넘은 글인데, 복음주의 논의를 시작하려니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어 '사료 가치'를 빙자하여 올립니다.이 글은 제가 영국으로 신학공부를 하러 떠나기 전에 했던 복음주의 운동 강좌에서도 사용되었고, 그 강좌는 <복음주의운동 강좌>(학복협, 1999)로 출판되어, 선교단체 간사나 기연대표자들 사이에 돌려 읽히기도 했습니다. 의외로 이런 방식으로 현재 진행형의 복음주의 논의를 다루고 있는 글이 없다는 사실에 한편 의아함을 느끼면서, 한편 자신감을 갖고 이 쪽 분야로 매진하게 했던 계기를 주었던 글입니다. 




요 몇 년 사이에 '복음주의(Evangelicalism)'에 대한 책이 부쩍 많이 나왔다. 패커를 잇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학자로 떠오르고 있는 영국의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가 쓴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한국장로교출판사, 1997)라든지, 미국 휘튼대 역사교수인 마크 놀(Mark A. Noll)의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엠마오, 1996) 등은 필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한국교회를 깨운 복음주의 운동>(두란노, 1998)이란 제목으로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한국 복음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저서도 내놓아 한층 풍성한 형편이다. 그 책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교회로 지목한 바 있는 '사랑의 교회'도 교회 설립 20주년을 맞아 안팎으로 다양한 주목을 받았다. 도대체 무엇이 '복음주의'를 갑작스럽게 주목하게 만드는 걸까?


복음주의는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는 정통적인 기독교의 매력과 설득력을 오늘날 다시 되살려주고 있는 신앙운동으로 간략하게 정의할 수 있다. 복음주의는 영어권 기독교 세계에서 특히 압도적인 성장을 보여주었다. 영국의 경우, 89년의 조사에서 390만의 예배참석자들중 100만명이 복음주의자라고 밝혔는데, 이는 30여년전 3-6%에 머물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국의 복음주의자를 대표하는 복음주의협의회(Evangelical Alliance)의 활발한 사회 활동과 매년 9만명이 다녀간다는 수양회 스프링 하비스트(Spring Harvest) 등은 이런 역동적인 영국 복음주의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표적인 복음주의자들로 존 스토트, 로이드 존스, 마이클 그린을 비롯하여 신학계의 제임스 패커, F.F 브루스, 도날드 거스리, 하워드 마샬, 존 골딩게이, 알리스터 맥그라스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들이 즐비하다.

미국의 경우도, 7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한 복음주의 운동은 76년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타임이나 뉴스위크 등의 일반 매체마저도 '복음주의의 해'란 표현을 쓸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쳤다. 78-79년 갤럽의 여론조사는 4-5천만의 미국인들을 복음주의자로 볼 수 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빌리 그래함이란 당대의 전도자,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같은 잡지, 다양한 영역의 복음주의 학자들의 등장이 미국의 복음주의의 긍정적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비서구권인 남미에서는 오순절파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복음주의가 확산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카톨릭을 압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한국교회는 복음주의의 가장 성공적인 한 사례로 세계교회에 알려져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는 매우 높은 복음화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주로 복음주의자들로 파악되고 있다. <세계기도정보>의 저자인 패트릭 존스톤의 통계에 따르면 복음주의자의 성장률은 평균 4.5%로 오순절 교인들의 증가율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전세계 복음주의자의 70%가 비서구권에 살고 있다. 
 

복음주의의 다양성
복음주의의 신앙적 내용은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전통에서부터 비롯되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고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에는 다양한 신앙전통과 문화적 차이들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제3의 물결'로 알려진 성령운동의 진원지인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에서 나온 <Empowered Evangelicals> 같은 책은 자신들의 신앙적 근거를 '복음주의'에서 찾고 있다. 이 책에는 제임스 패커의 서문이 붙어있어서 흥미를 더해준다. 

영국에서는 가정교회 운동을 했던 데이빗 톰린슨(Dave Tomlinson)은 <The Post-Evangelical>이란 책을 써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떤 복음주의가 가능할 것인가를 모색해 보기도 했다. 아마 이런 책들이 국내에 소개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것도 복음주의에 포함되는가?'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런던 바이블 컬리지 학장인 더렉 티드볼(Derek J. Tidball)은 복음주의 내부의 다양한 흐름들이 '교회관', '영성관', '세계관' 차원에서 갈라진다고 보았다. 그의 분석을 따라서 '교회관'을 중심으로 보면 성공회(Anglican)에서부터 가정교회 운동으로 불렸던 신교회운동(New Church Movement)까지 포괄하고, '영성관'을 중심으로 보면 청교도전통을 중시하는 개혁주의에서부터 웨슬리안이나 정치-경제적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급진파까지를 담아 내고 있다. '세계관'은 회심주의에서 재림주의자까지를 망라하는 넓이를 보여주고 있다.

복음주의라는 것이 생각처럼 단순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복음주의'라는 명칭에서 하나의 '이즘(Ism)'을 연상하고서 정교하게 이루어진 신학체계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한번도 '이즘'이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역동하는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실재에 근접한 이해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명칭보다 '복음주의 운동(Evangelical Movement)'이란 표현이 옳다고 하기도 한다.


복음주의의 정체성
서구의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은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4-5개의 패러다임을 적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마크 놀(Mark A. Noll)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 복음주의의 핵심요소로 영국 역사가 데이빗 베빙톤이 주장한 '회심주의(Conversionism)', '성경주의(Biblicism)', '행동주의(Activism)', '십자가 중심주의(Crucicentrism)'라는 설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주의적 원동력이 그 자체의 힘만으로 응집력 있고, 제도적으로 치밀하며, 쉽게 정의할 수 있고, 확연히 구분되는 그리스도인 집단을 산출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복음주의적 원동력의 역사는 늘 변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부연함으로써 복음주의가 다양한 신앙전통이 교류하면서 형성된 역사적 실체라는 측면을 주목하였다.

영국의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는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에서 복음주의가 '성경이 가지는 최고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 '성령의 주권',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 '복음전도의 우선권',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 등 크게 여섯 가지 확신에 기초해 있다고 말한다. 이 여섯 가지 요소에 대한 상대적 강조의 차이나 정확한 해석의 문제로 인해 복음주의권의 다양성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역시 '분명한 정체성의 필요를 느낄 때 복음주의는 지나치게 정밀하게, 부정적으로, 혹은 반항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복음주의를 '규정(Prescribe)'하기 보다는 '기술(Describe)'하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역동성을 주목하면 정체성이 모호한 듯이 보이고, 정체성을 고정하면 역동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딜레마를 낳는다. 그러나, 이런 창조적 긴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살아있는 신앙(Living Faith)'을 '죽은 정통(Dead Orthodoxy)'으로 바꾸지 않는 길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
필자는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친 흐름을 크게 네 가지로 본다. 박용규 교수의 책에서는 조금 더 많은 내용이 나오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초창기 역사를 위주로 다루고 있어서 80년대 이후 복음주의 운동 각 분야 간의 역할과 비중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을 갖는다. 

2004년 CCC 전국수련회 모습



1) 초교파 학생선교단체(Para-church) 
한국전쟁 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외국의 학생단체들과 자생적인 국내 단체들은 제도권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 젊은 세대들과 직접 맞부닥치며 복음주의 운동의 정서를 심어놓았다. 이들을 통해 회심을 경험하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등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게된 이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잠재력이 되어있다. 

학생선교단체들은 애초부터 교단이나 교파를 배경 삼아 사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복음주의'는 이들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설명해줄 수 있는 적합한 명칭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만 '복음주의'를 주장하지 더 깊이 연구하거나, 들어가 보려는 노력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SFC, IVF정도가 예외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학생선교단체는 한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고도, 대중적인 복음주의 그룹이다. 외국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이다. IVF, YFC, 성서 유니온 등은 어느 곳에서나 복음주의 운동의 모판 역할을 해왔고, 유능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배출해 내었다.

2) 복음주의 교회와 목회자
현재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 중 적잖은 수를 암묵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복음주의자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범주는 상당히 느슨한 것이라서 좀더 적극적으로 복음주의적 정체성을 견지하는 이들을 찾아본다면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복음주의권 전반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그렇게 광범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들이 복음주의 목회자로 여기는 대상은 김진홍, 홍정길, 옥한흠, 하용조, 이동원, 이승장, 김동호 목사 등 젊은 층의 인지도가 높은 중견 목회자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 외에도 여러 명의 목회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파적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고 복음주의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내보였던 이들은 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이들의 교회는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평신도로 사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고, 자체적으로 선교단체 이상의 교육과 신앙훈련을 제공해 주는 등 복음주의적 목회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3) 세계관 운동: 사회변혁에서 기독교 문화운동까지
또 다른 흐름은 80년대 중반 보수 기독인들이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대학생들은 IVP의 책들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에 눈을 떴고, 화란 개혁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복음주의적 입장 설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때에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면서 복음주의적 관점의 사회운동 가능성이 모색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단편적으로 소개가 이루어진 통에 이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가장 핵심적 실체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아직까지도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과 그 운동의 다양한 성과물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독인들이 복음주의적 대안 모색을 꾸준히 해나가도록 독려하였던 이는 당시 IVF총무였던 고직한 간사, 공단선교에 투신했던 이문식 목사(현재 남북나눔운동 총무)와 서울대 ESF를 맡고있던 김회권 목사 등을 들 수 있다. 또, 손봉호, 이만열 교수 등은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 '경실련' 등을 통해 복음주의자로서 다양한 수준의 사회운동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월간 <복음과 상황>의 창간은 이런 흐름의 한 성과를 대표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사회참여'의 관심은 87, 92년 대선을 거치면서 현실 세계에서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그 첨예함을 잃어 가는 경향을 보였고, 대중적인 흐름은 '기독교 문화'라는 쪽으로 중심이동을 하였다. 이것은 90년대 사회 전반의 문화 폭증 현상과도 관련이 있고, 기본적인 '관점'의 확립 없이 이루어지는 '행동주의'에 대한 반작용도 한편으로 기인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저작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였고, 여기에는 성인경 목사의 '한국 라브리' 사역이 작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의 '기독교 문화' 논의는 기독인들이 문화를 도외시 할 수 없다는 것과 대안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론적 각성을 심어준 점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여전히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원론적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4) 세계선교 운동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세계선교의 흐름이다. 한국의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이 국제화가 된 영역은 아무래도 선교계이다. 진보측 교단의 경우는 WCC 등 국제기구 활동이 잦았고, 국제무대에 한국 신학자나 전문인들의 교류 기회를 많이 마련하였다. 보수 교단의 경우는 선교학자들이 주로 국제무대에 나서게 되었다. 현재 이렇게 복음주의권의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전재옥, 노봉린, 이태웅, 김명혁, 조종남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무래도 이들이 선교훈련이나, 선교정책협의 등 다양한 필요로 인해 세계교회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로잔 운동도 본질적으로 세계복음화를 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선교계에서는 국제적 복음주의 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교계에서는 이런 국제적 운동이 전체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단지 선교영역만으로 국한되거나, 일부의 경우는 목회자들의 해외여행 기회정도로 여기는 등 정작 방향모색에 목말라 하던 국내의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접촉점이 없는 외국의 행사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선교한국' 운동과 '학원복음화 협의회'의 탄생은 대중들에게 복음주의의 구심점을 마련해주었고, 이를 통해 복음주의의 정서(Ethos)가 알게 모르게 많이 파급되었다. 이것은 고직한, 김인호, 한철호 등 학생선교단체 출신 사역자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국제적 흐름을 파악하여 국내의 선교운동 속에 전략적으로 소개하는 역할을 감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미래전략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최근 활발한 조명 작업을 거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것이 자기도취나 패권의식으로 이어진다면 곤란하다. 90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런 연합의 흐름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올바른 방향성과 내용을 담아내려면 복음주의권의 미래전략에 어느 정도의 합의를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세가지를 현안 과제로 제안한다.

1) 복음주의 운동의 중심 재편
복음주의는 기본적으로 젊은 감각의 운동이다. 관료화나 제도화로 역동성이 질식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할 문제다. 서구의 복음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일찍부터 인식했다. 빌리 그래함의 동역자였던 리튼 포드(Leighton Ford)는 자신의 필생의 사역으로 차세대 복음주의 리더십 발굴에 전력하고 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96년 11월호에는 이런 노력의 결과로 발굴된 50명의 40세 이하 리더들의 프로필을 싣고 있다. 가수, 운동선수, 교사, 정치인, 사업가, 신학자를 망라하는 그 기획은 많은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로잔운동의 국제총무인 탐 휴스턴(Tom Houston)도 로잔운동의 당면 관심사는 '복음주의 신학연구'와 '차세대 발굴'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선교한국 98대회 주강사로 내한한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탐 사인(Tom Sine)도 인터뷰에서 미국은 아직까지 자신과 같은 60대가 리더십을 갖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2-30대의 지도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복음주의 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존 스토트가 목회를 시작한 것은 29세 때였다.

젊은 세대를 전면에 배치해야 하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는 '전문성'의 문제이다. 복음주의 운동이 각 분야로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연장자라고해서 그 분야를 더 잘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대감각'이다. 동시대인들의 문제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에서 100년 이상을 이어온 케직 사경회의 침범할 수 없는 권위는 젊은 부부들을 위한 신앙수련회의 필요를 인식한 클라이브 캘버 등 몇 사람의 사역자들이 20년 전에 시작한 스프링 하비스트에 의해서 지금은 완전히 대치되었다. 셋째는 '국제감각'이다. 한국에는 내수용 지도자는 넘쳐나지만, 국제무대에서 한국 복음주의 운동을 꺼내놓고 논의할 인재가 드물다. 한국교회가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부흥했다고 하면서도 아시아권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대체로 일본, 중국, 필리핀 리더십들이 주도한다. 또 3-40대 실무자들이 모여 의논해야할 자리에 나타나는 한국 대표는 5-60대 목사님들뿐이니 이도 이해 못할 일이다.

2) 전도와 변증, 그리고 선교
복음주의의 정체성에서도 나타나지만 복음전도에 대한 깊은 확신은 언제나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적 특징이었다. 이 부분의 약화는 복음주의 운동 자체의 부실화로 연결된다. 90년대 내내 학생선교단체들이 겪어야 했던 위기의 실체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힘있는 복음증거가 과연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문제였다. 일부 선교단체의 경우 기독신입생들의 자연 가입외에는 거의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선교단체 본래적 정체성보다는 연고에 따른 동아리로 분위기가 변질되는 사례도 있다.

다원화된 사회와 신세대라는 단절적인 인간형을 염두에 둔 복음의 변증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느냐는 질문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세계선교를 포함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참여하는 의미에서의 선교도 제대로 된 의미와 맥락 아래서 진행되고있느냐는 질문도 던져야 한다. 복음주의권에서 이런 전도자, 변증가, 선교사들을 배출하는데 투자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방법과 논리로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는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 복음주의 운동의 다음 세대는 기약 할 수 없다.

3) 지성의 르네상스, 운동가의 출현
서구 복음주의의 르네상스는 복음주의 지성인의 대거 등장으로 이루어졌다.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화예술 등의 영역에서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지 않으면 이 땅의 복음주의는 종교적 열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미약하나마 현재 형성되어 가는 네트워크들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고, 활동력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마크 놀은 미국 복음주의 지성 개발에 장애요인으로 신학교를 꼽으면서, 일반 대학과는 달리 인접학문과의 교섭 없이 격리된 환경에서 '우리끼리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폐습을 지적했다. 복음주의 지성인들이 일반 대학과 학문, 문화의 영역에서 물러 나와, 자기들만의 방으로 들어가 앉지 않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경계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신학교가 일반 대학에 속해있는 영국의 경우,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사상과 분위기가 팽배한 대학에서 학창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적 자신감을 다져나갔다.

학문 영역에서의 지성인도 필요하지만, 실천의 영역에서 뛰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는 걸출한 운동가들의 역사나 다름없다. 20세기 초엽 세계복음주의 선교운동을 주도했던 학생자원자운동(SVM)과 YMCA를 이끌었고,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R. Mott)라든지, 영국과 북미지역의 IVF를 개척했고 나중에 국제적 선교운동가로 크게 활동한 데이빗 하워드(David Howard),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을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은 복음주의협의회의 클라이브 캘버(Clive Calver) 등은 글자 그대로 운동가들이었다.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도 사실은 몇 사람의 연합운동가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의 산물이다. 다양성을 포용할 줄 알고, 사람들의 관심을 복음 앞에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이런 이들의 등장을 기대하고, 재촉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Posted by era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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