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복음주의2009.11.04 21:06
* <복음과상황> 2001.06월호 '브리스톨 통신(12)'입니다. 이 글 역시 한국에 최초로 영국의 '얼터너티브 예배'를 소개한 글입니다. 미국의 emerging church movement의 논의와 비교하면 10여년 정도 더 앞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에서도 잘 나오지만, 폴 로버츠가 운영하는 얼터너티브 예배 사이트(www.alternativeworship.org)가 가장 내용이 좋습니다. 미국의 상황은 emerging church info (www.emergingchurch.info)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배,' 어느 그리스도인에겐들 예배가 중요치 않으랴마는 내게 있어서 '예배'는 좀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 신앙 이력이 큰 구비를 돌 때마다 나는 나의 예배 경험이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을 체험한다. 처음 교회를 나가던 중학교 시절 전형적 장로교 예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경건함, 엄숙함의 체험은 비록 그것이 자주 메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어렴풋이 '초월의 경지'를 일깨워주었다. 내 대학시절을 기꺼이 헌납하게 했던, 좀더 카리스마틱한 예배경험은 '하나님의 임재'란 표현이 추상적 어구가 아니라 오감을 작열하며 체험되는 어떤 것을 지칭함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대학을 마칠 무렵 동료들과 몰두했던 또 다른 실험적 운동은 종교성과 허위의식에 익사 당하는 예배를 다시 한번 맨 정신으로 직시하도록 해주었다. 

영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은 예전(Liturgy)의 요긴함에 눈을 떠가는 중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쓰여진 기도문을 읽고, 2-3년 단위로 순환하는 성경읽기표(Lectionary)에 따라 그날의 말씀을 보고, 매주 성찬식을 갖는 이곳 성공회 예배를 통해서 배운 것이 적지 않다. 아이콘(icon)이나 상징물(Symbol)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긴 했지만, 계속 접하다보니 그 나름의 유용성도 이해가 된다. 어쨌든, 한국교회의 경험을 갖고 이곳의 예배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전통이란 것이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느끼는 동시에 이들이 지닌 상당한 유연성과 실험성에도 눈길이 간다. 이번 호에서는 일전에 포스트 에반젤리칼(post-Evangelical, 복음과 상황 2000년 10월호 참조) 논쟁을 소개할 때 잠깐 언급한 '얼터너티브 예배(Alternative Worship)'를 한번 건드려보기로 한다.(우리말로 하면 '대안 예배' 정도가 되겠지만, 좀더 나은 번역을 기대하며 여기서는 그냥 영어 발음대로 사용한다.)


한국의 열린 예배, 혹은 구도자 예배

한국에서도 '구도자 예배(seeker-oriented service)'라고 해서, 기독교적 배경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전도의 관심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혹은 집회)에 대한 관심이 한동안 일어났었다. 이를테면, 기독교적 용어를 가능한 배제하고, 설교보다는 토크쇼 형식이나 프리젠테이션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간단한 드라마(skit, 영국에서는 sketch라고 하는)를 올리기도 한다. 멀티미디어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음악은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흐름은 주로 미국의 성공적인 교회들, 윌로우 크릭이나 새들백 등의 모델에서 따온 것이 많은데, 좀더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척 스미스 목사의 갈보리 교회 등이 포크 음악이나 록 음악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70년대 초반, 반전운동에 실망한 많은 히피 청년들을 대거 교회로 받아들인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후의 마라나타 뮤직, 빈야드 운동 등을 낳은 사건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이런 실험들에 대한 비판적 소리나 불만도 적잖게 나오게 되는데, 일차적으로 기대한만큼 전도에 효과가 없다는 지적... 괜히 기독교권에 대중문화에 대한 과수요만 늘려놓았다는 지적... 중산층 위주의 문화적 욕구 충족 기회로 변해간다는 지적...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신앙적 방향성과 내용성을 채워나가지 못해 단발성 이벤트 이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란 점등이 이를 한때의 유행에 머물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필자가 관찰한 바에도 열린 예배를 실험한 그룹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메시지를 최신 유행으로 포장하고 옷을 입히는 데에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지만, 메시지 자체에 대한 근본적 고민은 적었다는 점에서 문화적 편승에 불과하단 인상을 많이 받았다.


얼터너티브 예배(Alternative Worship)란?

자, 그럼 영국에서 얼터너티브 예배(이하 '얼트 예배'로 축약)라고 하는 것은 구도자 예배와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자. 필자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린벨트(Greenbelt) 웹사이트가 얼트 예배에 대해 가장 잘 정돈된 내용을 제공해준다고 보이는데... 거기에 따르면 대략 두가지 양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불신자를 위한 전도 수단으로 대중 문화를 적극 수용하는 경우와 기독인들 스스로를 위해 주류교회의 예배전통을 벗어난 시도를 하는 경우로 나뉠 수 있다. 그린벨트 웹사이트에서는 이를 각각 '청소년과 전도(youth & evangelism)'와 '창의적 예배(creative worship)'로 항목을 구분해놓았다. 앞서 살펴본 미국의 흐름은 주로 전도 목적 하에 나타난 문화적 도구의 활용에 관심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측면보다 전도 집회적 속성에 비중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에 있어서는 '창의적 예배'라고 불리는 후자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이런 실험이 잘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세속문화와 기독교 문화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훨씬 덜하고(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기독교 전통들이 공존하고 있기에 이런 실험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신학적, 공동체적 지원이 훨씬 용이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필자가 접해본 얼트 예배 경험을 돌이켜 보면, 장소는 주로 교회 건물인 경우가 많지만, 펍(Pub, 한국으로 치면 호프집에 해당. 보통 식당도 겸한다)이나, 디스코텍 등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조명은 낮추고, 부분조명이나, 색조명도 쓴다. 음악은 매우 다양한데,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테크노 음악이나 펑크 록까지 필요에 따라 사용된다(참고로 영국에서는 이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음반을 찾을 수 있다). 보통 슬라이드나, 비디오 프로젝터가 사용되기도 하고, 아니면 성화나 아이콘들을 벽이나 바닥에 배치하고, 촛불이나 십자가 상징도 빈번히 이용되는 등 시각적 측면이 많이 활용된다. 순서 중에는 시나, 책의 구절을 낭송하기도 하고, 간단한 마임이나 무용 등이 등장 할 수도 있다. 참가자들은 가만히 수동적으로 있을 수도 있고, 순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각 순서는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참가자들의 묵상과 기도를 자극하지만, 그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로 다가가지는 않을 것이다. 얼트 예배라고 할 때, 어떤 정해진 틀을 생각하기는 힘들고, 각 그룹이 그 나름의 창의성을 발휘해서 순서나 내용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쭉 기술해놓은 것을 보면, 일종의 퍼포먼스(Performance)를 보는 듯한 인상을 가질 것이다. 이것은 맞는 지적인데,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예배하는 행위 자체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상징적 의미들이 담겨있고, 표현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때론 생소하고, 때론 신선하게) 구현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얼트 예배는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던적 삶의 정황과 교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전통의 재해석과 실험이란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위한 전도목적으로 대중 문화를 도입하는 것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많은 경우, 구성원들의 신학적, 신앙적 지향이 짙게 반영되어 있으나, 그것이 여느 예배처럼 인도자나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는 식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회중 개개인의 직간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한 다층적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것(상징의 활용이 중요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이 독특하다고 볼 수 있겠다.


얼트 예배의 기원

브리스톨을 근거로 얼트 예배를 실험해온 폴 로버츠(Paul Roberts)의 글에 따르면, 얼트 예배는 80년대 후반 영국 쉐필드에 근거를 두고있던 NOS(Nine O'clock Service)란 모임이 모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85년 미국 빈야드의 대표 존 윔버가 쉐필드를 다녀가면서 후속 모임 형태로 시작된 이 모임은 곧 급진적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를 강조하는 복음주의 신앙을 독특한 카리스마틱한 예배 스타일에 담아내면서 몇 년만에 수백명 규모로 성장했고, 이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정도까지 되었다. 이들의 실험은 곧 유사한 관심을 가진 다른 그룹들에 의해 이어졌고, 1992년 그린벨트 페스티발에서 얼트 예배를 선보이고, 이를 담은 음반을 냄으로써 이 운동을 활성화시킨 글래스고우 출신의 LLS(Late Late Service, 장로교 위주의 초교파 모임)등을 통해 확산되었다. 1993년에는 그린벨트에 참가한 목회자를 통해서 뉴질랜드에도 소개가 되었고, 현재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과 더불어 얼트 예배를 주도적으로 실험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편 95년경 NOS가 와해됨으로써 얼트 예배운동은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NOS 리더십이 독단적 권위를 남용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모임이 해체되었고, 이들의 신학적 노선이 매튜 폭스(Matthew Fox)의 창조영성(Creation Spirituality, 범신론적이란 논란이 있다)을 추종함으로써 빚어진 논란으로 다른 그룹들의 지지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그룹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얼트 예배는 좀더 폭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하나는 데이브 톰린슨(Dave Tomlinson, 복상 2000년 10월호 참조)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가정교회(house church)운동 2세대들과의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이런 노력들을 의미있는 실험으로 인정하고, 성공회 내의 수용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데에 있다. 데이브 톰린슨은 당시 성령운동을 위주로 성장하던 가정교회의 내부에서 근본주의적 속성, 권위주의적 리더십, 세대주의적 신앙이 기성교회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여기에 환멸과 좌절감을 느낀 2세대들이 대안적인 공간을 마련하고, 신학적 성찰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가 주관하는 '해리(Harry) 페스티발'이나 펍(Pub) '홀리 조(Holy Joe)' 등은 곧 이런 이들의 구심점이 되었고, 때마침 그가 낸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책은 당시 고민하던 이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신학적 틀을 제공해줌으로써 이들의 자기인식을 공고히 해주었다. 성공회 수뇌부에서도 얼트 예배를 젊은 세대를 향한 효과적인 복음증거 기회로 여기고 90년대 초반부터 검토해왔는데, 1995년과 1999년에 캔터베리 대주교를 포함한 성공회 고위 성직자들이 5개 주요 얼트 예배모임의 리더들과 모임을 갖고 함께 얼트 예배를 경험함으로써 제도권 교회 내에서도 이런 실험이 예배 갱신, 혹은 창의적 예배운동의 일환으로 인식되는 전기를 맞이하였다. 현재 영국 내에서는 런던, 브리스톨, 글래스고우 등 주요 지역에 10여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얼트 예배 모임들이 존재하고, 이들간에는 메일링 리스트와 웹사이트를 통한 자료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도 기존의 구도자 예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예전(liturgy)과 전통(tradition)을 되살리는 쪽으로 중심이동을 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얼트 예배의 문제의식과 상당정도 유사한 것이다.


얼트 예배의 지향

폴 로버츠는 얼트 예배가 급격한 문화적 전이(Cultural transition)를 겪고 있는 세상 속에 처한 기독인들의 대응으로 본다. 즉, 세상은 급격히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서 포스트모던 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데, 삶의 조건과 양식이 변한 것에 반해, 기독인들이 예배하는 양식은 이와 어긋나면서 생기는 부정합(mismatch)이 얼트 예배의 출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존재방식, 혹은 표현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갈래로 논의들이 진행되어 왔다. 90년대 내내 강조된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나, 다양한 공동체 운동들의 성과는 결국 얼트 예배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데 유용한 배경을 제공해준다. 특히 영국의 독특한 신학적, 교회적 전통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되는데, 몇몇 선행주자들을 꼽아볼 수 있겠다.

그린벨트 페스티발(Greenbelt Art Festival, www.greenbelt.org.uk): 73년 기독교 음악 페스티발로 시작된 그린벨트는 80년대 절정기에는 30,000여명 가량이 찾아오던 대형 행사로 성장했다. 대중음악계의 거물인 U2나 모비(Moby) 등도 자신들이 기독교인임을 밝히면서 이 무대에 서곤 했었다. 80년대 후반 페스티발의 복음주의적 정체성 논란이 있었으나, 여전히 기독교권의 대표적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콘서트, 전시회, 공연, 강연, 워크샵, 캠페인 등으로 붐비는 곳이다. 웹사이트는 기독교 문화, 영성, 사회운동 등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과 링크를 만들어 두었고, 알찬 내용을 담고있어서 관심있는 이들은 꼭 한번 방문해볼 만하다.

아이오나 공동체(Iona Community, www.iona.org.uk): 1938년에 설립되었고, 현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를 중심으로 공동생활, 영성수련, 사회적 책임을 중심에 두고 있는 에큐메니칼 공동체다. 특히 켈틱 기독교 영성(Celtic Christian spirituality)을 실험하는 대표적인 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Wild Goose Worship Team -켈틱교회는 wild goose(기러기)를 성령의 상징으로 본다- 을 통해 만들어낸 찬양과 예전은 그들의 독특한 성육신 신학(Incarnation theology)을 반영하고 있는데, 80년대와 90년대 영국 전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떼제 공동체(Taize Community, www.taize.fr): 침묵기도와 반복해서 부르는 단순한 가사의 찬양으로 잘 알려진 떼제 공동체는 특히 개신교와 카톨릭의 화해와 연합을 위해 프랑스 중부에 설립된 수도 공동체이다. 이들이 매우 수도원적 영성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예배양식과 찬양은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매년 여는 유럽모임(European Meeting)에도 수만명이 참가하고 있다.


한국적 정황에 대한 생각

독자들 중에는 이건 영국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느낄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수년간 나는 이런 류의 관심들이 한국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와 몸짓을 갖고자하는 갈증의 표현이다. 언어부재는 발성기관이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아'하고 싶은데, '어'밖에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마음에 담긴 생각이 깃들 언어를 갖지 못한 상태. 그래서 늘 근사치의 표현 속에서, 도달하지 못한 곳에 대한 원초적 좌절감을 안고 있는 상태, 그것이다. 얼트 예배에 담긴 가장 긴요한 질문은 다름아니라, 자기의 말과 몸짓으로 예배하라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예배를 준비하고, 이끄는 이들에게는 백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 한가지 방식으로 예배하도록 강요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도 될 것이다. 백인백색(百人百色), 무지개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당연하고, '절대' 아름다운 것이다. 매스게임과 집단체조의 일사불란함을 최고로 치는 멘탈리티를 이젠 부끄러워할 때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예배의 절정은 말씀선포라고... 그래서 이를 흐트려놓는 시도들은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떤 전통은 주님의 피와 살을 기억하는 나눔을 최고 절정에다 놓는다. 아니다, 어떤 이는 세상을 향해 나가는 예배 마지막이 기실 가장 중요하다고 논박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헌금을 통해 표현되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로 내어드리는 헌신의 시간이 예배에서 가장 귀한 순서가 아니겠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예배의 본질이란 말은 또 어떻게 논박할 수 있겠는가? 혹은 예배 순서를 시작하기 전 그가 일상에서 살아온 삶의 예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의식으로서의 예배는 무의미하단 말은 또 얼마나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가? 우리의 예배 전통은 이런 질문과 요구들에 귀기울이고 있는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런 갈망을 담아내고자 하는 몸짓이 있는지를 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해온 방식의 예배가 가장 낫다거나, 어차피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없을 바에야 해오던 것이나 열심히 하자는 논리로 얼버무리지는 말자. 그건 무지에서 오는 독선이거나, 현상유지를 최선으로 치는 소망 없는 발상이다. 얼트 예배가 상기시켜주는 평범한 진리는 예배는 우리 신앙의 핵심을 담아내는 그 무엇이란 점이다. 그의 예배를 보면, 그가 어떤 신앙인인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번 자문해보자. 나는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예수를 만났던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속 깊은 갈증을 숨기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텐가... 얼마나 더...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30 18:55
* <복음과상황> 2000.05에 '브리스톨 통신(2)'으로 실었던 글입니다. 영국 교회, 혹은 유럽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매우 단편적인 인상이나 정보만 유통되는 우리 현실에서 신학공부하던 한국의 복음주의자 눈에 포착된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지속되는 영국 복음주의에 대한 저의 편애의 단초를 볼 수 있는 글입니다. 2009년 현재 상황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로 바뀌는 등 약간의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만, 전체적인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있다고 봅니다. 




좌로부터 클리프 리차드, 조지 캐리, 존 스토트



클리프 리챠드, 조지 캐리, 존 스토트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인은 누구일까? 물론 존 스토트도 유명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 지금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인 조지 캐리(George Carey)일까? 물론 그는 국교인 성공회를 대표하는 교황과 같은 존재이고, 행동하는 복음주의자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의하면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인은 클리프 리챠드(Sir Cliffe Richard)이다. 한국에는 6-70년대를 풍미한 대중가수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아 여왕으로부터 경(Sir)의 작위를 받고 나서는 자선활동과 복음전도에 전적으로 투신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가수활동도 하고 있는 그는 지난 밀레니엄 직전에 올드 랭 사인 곡에 주기도문을 가사로 붙인 '밀레니엄 기도(Millenium Prayer)'란 곡으로 팝 챠트 정상에 올라 수주간 수위를 지켰다.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국은 아마도 영국 사람들이 보는 영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 것이다. 상이 뚜렷하지 않은 희미한 이미지이거나, 부분적인 정보로 재구성된 전혀 다른 그림일 수도 있다. 이 연재물이 의도하는 몇 가지 목표가 있다면 그중 하나로 영국 기독교 전통을 잘 이해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비판적 수용이나, 창의적 적용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바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와 영국 교회
우선 한국 기독교와 관련된 몇 가지 친숙한 사실부터 확인을 해보면, 최초로 한국에 관심을 가졌던 선교사중 한사람인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가 영국 출신이다. 런던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선교사로 지원한 그는 상해에 도착한 이듬해 아내를 잃고, 선교부와 심각한 갈등을 겪는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조선이란 작은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조선 근해에 까지 접근했으나, 본격적인 사역은 실패하였다. 결국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관과 길잡이를 자청해서 나선 조선행이 그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전하려고 매우 힘을 썼는데, 이는 이후 조선 유학생들의 손에 의한 성경번역으로 열매를 맺었고, 한국은 선교사상 유래 없이 자국인에 의해 번역된 성경을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용하고 있던 자생적인 교회를 소유할 수 있었다.

좌측 로이드 존스, 우측 제임스 패커


해방후에는 영국을 유학한 이들에 의해 IVF가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 초창기 학생선교운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몇번의 이합집산을 거쳐 미국 IVF의 지원아래 재건되었다. 허나, 흥미로운 것이 한국 학생선교단체의 가장 초기 모델인 CCC가 미국의 지원아래 시작되었다면, UBF는 좀더 토착적인 성향을 띠었고, IVF는 영국 모델에 근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80년대 이후의 한국교회를 생각한다면, 대중적인 복음주의의 확산에 여러모로 기여한 복음주의 목회자와 학자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 로이드 존스를 꼽을 수 있다. 이 영국출신 트로이카의 저술이 한국교회의 젊은 세대에게 끼친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꼼꼼한 성경연구, 지적인 성실성, 복음에 대한 뚜렷한 자신감, 세상과의 관계성에 대한 집요한 추구 등은 이들로 대표되는 영국 복음주의 전통을 매력적으로 보게 해주었다. 아직도 국내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관련된 논의에서, 강해 설교와 귀납적 성경연구를 추구할 때, 부흥과 청교도 전통을 논할 때면 이들의 영향력이 여지없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교회사 속의 영국 교회
교회사 속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크다. 이미 11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안셀름(Anselm)이 캔터베리 대주교의 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데에서도 보이듯,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견고히 자리잡고 있던 기독교의 주요 영향권이 서서히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영국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카톨릭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반기를 든 성공회(Anglicanism)의 분립이라든지, 16세기 종교개혁의 전조가 될 다양한 개혁운동의 한 흐름으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위클리프(John Wycliffe)를 기억할 수 있다. 종교개혁의 후속타로 이루어진 장로교의 확립은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John Knox)에 의해 이루어졌고, 영국에서는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퀘이커 등 소위 비국교도(non-Conformist) 교파들이 속속 등장했다. 18세기에는 웨슬리 형제와 조지 휫필드에 의해 주도되었던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이 있었다. 이는 미국에 깊은 영향을 끼쳐 이후 미국교회의 기본적인 신앙성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고 불릴만큼 대단한 선교열정이 일어났다. 침례교인인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가 18세기에 불붙인 선교운동은 19세기 들어 수많은 선교단체들과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를 비롯한 선교운동의 전설적 지도자들의 등장을 보게했다. 이 흐름은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져서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Edinburgh Conference)에서 역사적 절정을 이루게 된다.

좌측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안셀무스, 존 위클리프, 존 웨슬리, 허드슨 테일러, 윌리엄 캐리, 조지 휫필드.



18세기 계몽주의 이후의 철학과 신학은 주로 유럽대륙, 좀더 좁혀서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하지만 이를 영어권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는 영국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미국에 비해 훨씬 새로운 신학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고, 오랜 학문적 전통과 역량에 바탕한 대응의 과정은 영국의 신학이 깊이와 폭을 갖추도록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영국은 20세기 초반 미국을 강타했던 근본주의 논쟁(Fundamentalism controversy)으로부터 비켜 서있을 수 있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근본주의가 남겨놓은 깊은 상처를 극복하는데 아직까지도 고심하고 있는데 반해,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유연성과 학적 깊이를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한 이정표라고 할 로잔대회(Lausanne Conference, 1974)를 두고 미국의 조직과 영국의 두뇌가 손을 잡고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평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영국 기독교
그러면, 오늘날의 영국 기독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국제적 위상이 한껏 드높았던 과거와 현재 영국의 현실은 얼마만큼의 격차가 있는 건가?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영국은 70년대 IMF의 지원을 받아야 할만큼 심각한 곤란을 겪었다. 한동안 한국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한국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려고 대표단도 파견하던 처지였다. 그러나, 8-90년대를 거치면서 놀랍게 회복된 지금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고도 경제가 잘만 돌고 있다는 주장을 거리낌없이 내놓는 형편이다. 부동산 경기가 과열조짐이 보이고,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쪽의 하이테크 산업이 주식시장을 선도하고, 대규모의 기업합병과 매수가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경제적 활황기에 와있다.

그러나, 기독교쪽의 상황을 본다면 전반적으로는 비관적 통계와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밀레니엄을 넘어서면서 발표된 여러 종류의 기독교 관련 통계자료들은 영국의 기독교 인구가 날로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카톨릭을 포함한 명목상의 기독교인들(교회에서 세례를 받거나, 결혼한 경우를 다 포함하는 최대치 기독교 인구)은 2000년 기준으로 3,770만명으로 전 인구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초반부 내내 85%대를 유지하다가 50년대에 70%대로 내려섰고, 80년대를 들어서면서 60%대로 주저앉은 수치이다. 

그러나, 등록 교인수(membership) 통계에 가서는 더욱 확연하게 비관적 전망을 보여준다. 각 교파에 정식으로 등록된 사람들만 따지는 이 통계치는 2000년 기준 586만명으로 명목상 기독교인들의 1/6 수준이고, 60년대의 동일 통계에 비하면 40%가 하락한 것으로 명목상 기독교인수보다 그 감소세가 더 심각하다. 60년대 이후로 6,000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은 형편이고, 최소 7,500명의 목회자가 부족하다. 

정기적인 예배 참석자(church attendance)는 더욱 하락세인데, 전체 성인 인구의 8%정도가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79년부터 매 10년마다 시행된 영국교회의 통계치를 통해 추정한다면, 1980년부터 2005년까지 130만명의 성인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것으로 예측되고, 이는 매주 800여명이 교회 출석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감소세를 주도하는 것은 가장 규모가 큰 성공회(165만 교인, 18,000 교회)와 카톨릭(172만 교인, 4,000 교회)인데 성공회는 20세기초중반의 전성기에 비해 거의 절반이하로 교인수가 줄었고, 카톨릭도 2/3 수준이 되었다. 최근 들어 가장 큰 감소세를 보여주는 것은 감리교로 교인수가 40%수준으로 규모가 줄었고, 80년이후로 2,000개 가까운 교회 문을 닫았다.

이런 통계치들은 탈기독교사회(Post-Christendom) 논의를 촉발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에 눈을 감고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무엇이 이런 엄청난 탈기독교화를 몰고왔는가를 규명해 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이런 질문을 염두에 두고 영국 기독교를 더 깊이 탐색해 들어가 보기로 약속하고, 이번 글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도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점만 분명히 해두고 영국 기독교의 좀더 밝은 측면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영국 기독교 내의 가능성
앞에서 숫적인 감소에 대해서 논의했으니, 숫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지표는 없는지 먼저 살펴보자. 우선, 사경회의 오랜 전통을 말할 수 있다. 100년이 넘게 지속되어온 케직 사경회(Keswick Convention)는 규모보다도 그 경건주의적 신학성향으로 유명하지만, 79년부터 시작된 스프링 하비스트(Spring Harvest)는 매년 부활절을 전후한 2-3주에 걸쳐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바이블 캠프를 열어서 연인원 9만명 가량이 다녀가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뿐 아니라, 여름에는 한국으로 보면 수련회에 해당하는 바이블 캠프가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데, 역시 수만명이 참여하고 있다. 그중 유명한 것만 손꼽아도, 그린벨트(Greenbelt), 스톤리(Stoneleigh), 뉴와인(New Wine), 소울 서바이버(Soul Survival) 등 주로 젊은 세대를 위해 풍성한 문화적 실험과 더불어 도전적인 설교와 깊은 예배 경험을 강조하는 기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대중적인 수준에서 영국 기독교가 새로운 호흡을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될 것이다. 

제일 위 Greenbelt Christian Art Festival (2007), 중간 좌 Keswick Convention (1930), 중간 우 New Wine Festival, 아래 좌 Soul Survivor, 아래 우 Spring Harvest.



모든 교회가 다 감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있는 도시에는 여지없이 젊은 학생들로 붐비는 교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교회들은 부러울 정도로 뛰어난 설교와 목회 모델들을 보여주고 있다. 카리스마틱한 성향의 교회들이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전형적인 오순절 교회들 말고, 영국에서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 혹은 신교회운동(New church movement)이라고 불리는 매우 독특한 교회개척 형태가 이 척박한 탈기독교사회에 성공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파이오니어(Pioneer), 익투스(Ichthus), 뉴프론티어(New Frontier) 등의 네트워크는 전도와 제자도를 강조하는 공세적인 방법으로 마약이나 오컬트 등으로 얼룩진 도시인들을 예수 앞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좀더 사회적인 측면으로 살펴본다면, 150년 전통의 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Alliance)이 건재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복음주의적 역할을 모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정책에 대한 제안과 여론형성을 해나가고(최근에는 학교 내에서의 동성애 교육관련 조항에 대한 법개정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터키의 지진이나 모잠비크의 홍수 등 해외의 재난구조활동이나 모금도 이런 기구들을 통해 해나가고 있다. 시야를 복음주의권 너머로 확장시켜보면,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 운동 전통도 만날 수 있고, 퀘이커나 재침례교를 중심으로 하는 평화주의(Pacifism) 운동도 꾸준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것은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가 지적했듯이 80년대 이후로 복음주의권에서 좋은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으며, 이는 복음주의권이 지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징표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위치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넓게 갖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그가 복음주의를 기독교의 미래와 연관시키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신학분야에서는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에 많은 성과를 영국 학자들이 내고 있고, 신론(Doctrine of God)이나 기독론(Christology)과 관련된 논의, 삼위일체 신학(Trinitarian theology) 등의 성과가 많이 나왔고, 기독교와 과학(Christianity and Science), 기독교와 예술(Christianity and Art) 등의 주제에서도 주목할 학자들이 나오고 있다.


교회보다 기독교 사회를 보라
위의 글에서 느꼈을지 모르지만, 영국 기독교의 역량을 지역교회 현실에서만 찾으려고 하면 힘들다. 그러나, 교회 건물과 주일날 예배라는 범주 바깥에 존재하는 기독교적 현존(Christian Presence)의 가능성에서 우리는 영국 기독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언젠가 존 스토트가 자신의 에베소서 강해서에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흔히 교회(Church)와 연결시키던 관행과 달리 '새로운 사회(New Society)'로 규정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물론 우리가 교회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폭이 달라질 수 있지만, 너무도 자주 우리는 신앙생활을 교회생활과 동일시하고, 기독교의 영향력을 교회의 영향력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그 너머에서 가능한 기독교의 현존에 회의적이곤 했다. 영국에서 발견하는 것은 우선 전통적인 공간개념의 교회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과(그 유효성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더 멀리 뻗어나가는, 성경의 겨자씨 비유를 그대로 상기시키는, 방식이 유력한 대안으로 고민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가능하면 몇 가지 쟁점위주로 영국 기독교의 안팎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독자들이 한국적 상황을 염두에 둔 글읽기를 지속해 나가면 흥미로운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era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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