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복음주의'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2.03.28 한국 복음주의의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2. 2011.10.10 "존 스토트, 복음주의 운동가" (by 양희송) (1)
  3. 2011.08.06 존 스토트: 20세기 복음주의 산증인이 보는 21세기 복음주의
  4. 2011.07.07 한국 복음주의운동의 미래(The Future of Korean Evangelicalism)
  5. 2010.11.26 가나안 성도를 주목하라
  6. 2010.09.30 '신앙의 로맨스'가 '지성의 스캔들'이 되지 않으려면: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서평
  7. 2010.09.30 한국 복음주의 지성운동의 현실과 과제(복음과상황 2010년 10월)
  8. 2010.07.11 오강남 교수님, 성불(成佛)의 확신 있으십니까? -B급 복음주의자의 A급 종교학자 비판적 읽기- (1)
  9. 2009.11.29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달려온다: 톰 라이트(N. T. Wright) (1)
  10. 2009.11.09 '창조론'과 '진화론': '젊은 지구론'에서 '무신 진화론'까지 (2)
  11. 2009.11.04 얼터너티브 예배(Alternative Worship), 포스트 에반젤리칼이 예배하는 법
  12. 2009.11.04 포스트-에반젤리칼(Post-Evangelical) 논쟁 (1)
  13. 2009.10.30 영국 복음주의자의 복음전도: 알파코스(Alpha Course)와 대학 선교의 현실
  14. 2009.10.30 영국 복음주의 영성(evangelical spirituality)의 흐름
  15. 2009.10.30 영국의 복음주의 들여다 보기
  16. 2009.10.28 너희가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아느냐?
  17. 2009.10.28 가가와 도요히코 <그리스도교 입문> 서평
  18. 2009.10.25 가가와 도요히코 사회선교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2009.10.27)
(2) 복음주의2012.03.28 05:05

* 2012년 3월 26일(월) 제3회 청어람 청년사역컨퍼런스 "복음주의, 복음주의의 미래"(http://bluezine.tistory.com/551)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컨퍼런스 및 전체 발제문을 담은 자료집을 구하시려면, 청어람아카데미(http://www.bluelog.kr, 02-319-5600)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복음주의”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0. 서론

한국 복음주의는 여전히 허공을 헤매고 있는 주제다. 복음주의자들은 지난 30년간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괄목할 성장을 보여주었으나, 스스로를 규정하거나 자기성찰적 논의를 제대로 담고 있는 표준적인 책 한 권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이 주제가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대략 3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복음주의 일반에 대한 논의가 정돈되지 않았다. 사용하는 개념, 역사, 쟁점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고 제각각이다. 이런 현상이 무리가 아닌 것이 주요 신학교 중에도 복음주의를 독자적인 주제로 연구하고 폭넓게 가르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어느 과목에 끼어서 배우냐에 따라, 복음주의 이해는 큰 폭으로 달라진다. 오히려, 최근에는 종교사회학 연구자들의 사회학적 관심이 두드러지는 형편이다. 또한 대중들 사이에는 이 용어의 용법이 내부적으로 충분히 심화되기 전에 언론에서 먼저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발생한 개념의 혼란도 적지 않다.

둘째, 개론적 이해도 정착이 안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 복음주의란 특정한 조건에서 벌어지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논의이다. 여기에는 단지 이식된 외국의 논의를 소개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보수정치와의 관련성에서 주목하는 일반언론의 입장과 교회의 부흥운동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목회자들의 논의 수위와 관심 주제는 큰 폭으로 달라질 것인데, 어느 것만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참고할 영역과 주된 쟁점은 확연히 다르다. 한국 사회와 역사의 맥락 위에서 복음주의를 논하려면, 끌어들여야 할 국내외의 다양한 논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해야 한다.

셋째, 이 논의가 복음주의 운동 전반에 적용되는 연결고리가 취약하다. 흔히 논쟁하는 주체실천하는 주체가 괴리되는 현상인데, 이 둘의 사이를 극적으로 좁힐 전략, 즉 이론의 실천 전략이 필요하다. 논쟁주체가 대대적인 운동의 주체가 되거나, 실천가들이 열심히 연구하는 모드로 바뀌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양자간의 긴밀한 역할분담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관찰과 분석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재 진행형의 운동을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는 그런 비판적 거리가 쉽사리 확보되지 않는다. 결국은 운동가들이 이론과 실천을 동시에 자임하면서 자기 실현적 전망을 내어놓게 된다. 지금은 복음주의 운동의 실천 전략이 매우 긴히 필요한 시기이다.

 

이 글에서는 이 세가지 과제를 염두에 두고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전진을 위해 꼭 필요한 주제를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 세가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좋은 설득을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꼽은 것이다. 사람이 어떤 주장에 설득되려면, 그것이 머리로 납득이 되어야 하고, 가슴으로 공감이 되어야 하고, 주장하는 이를 신뢰할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복음주의는 설득력이 있는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를 마땅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1. 복음주의의 로고스

 1) 기본적으로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의외로 단순할 것 같은 이 질문에 단순하게 답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이란 용어 자체가 몇 개의 층위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용어의 성경적 기원을 파고들자면, 먼저 성경에서 복음(good news, Gk euangelion)이란 용어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 지를 파악하고,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그 포괄적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1] 역사적 기원을 파고들면, 16세기의 종교개혁 시기 전후로 등장하는 복음적(Fr. evangelique, Ger. evangelische)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이들(John Wycliffe, Martin Luther, etc.)이 공유한 특징을 주목하게 된다. 이들이 보여준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관, 회심의 중요성, 그리고 이런 신념에 대한 즉각적 결단과 헌신을 중요하게 생각한 태도 등이 두드러진다. 또한, 18세기의 영미 대부흥운동과 유럽의 경건주의 전통 등이 공유하고 있었던 성경공부, 기도, 전도에 대한 열정적 태도 등도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18세기 이래로 스스로를 복음주의자(evangelicals)로 지칭한 이들이 존재해왔다. 이들은 20세기 초반, 바깥으로는 서구 사회에 팽배한 세속주의(secularism)에 대해 반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신학적 자유주의(liberalism)와 혹은 신학적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 갈등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적 입지를 형성해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그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급속히 성장하였고, 오늘날에는 이들과 유사한 신앙태도를 갖고 있는 이들간에 국제적 연대의 장도 넓게 열려있다. 21세기 초 현재 이 흐름은 세계적으로 가장 활력이 있는 기독교 현상으로 포착된다. 우리는 이 흐름을 복음주의(evangelicalism) 혹은 복음주의 운동(evangelical movement)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복음주의가 이렇게 깔끔하게 정돈되는 것만은 아니다. 유사한 용어를 쓰지만 지역적으로 편차가 있다. 독일에서 Evangelische Kirche 란 종교개혁 시기의 용법에 따라 단순히 개신교, 혹은 루터파 교회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복음주의라고 할 때, 단순히 개신교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미권에서 복음주의는 개신교 전통에서도 18세기적 부흥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에서 선호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에 따라 복음주의자는 존 웨슬리의 후예(Holiness 전통)라고 보거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예(Calvinist)라고 본다. 이 양자는 예정교리 등의 쟁점을 놓고 입장 차이가 첨예한데, 상대를 복음주의자로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면 복음주의를 좀 열등한 하위개념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경우,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중반에 격렬했던 근본주의 논란의 영향력이 충분히 가신 것은 아니어서, 성경무오설, 창조과학론을 둘러싼 논쟁구도는 복음주의 이름 아래에서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는 영국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활력있는 대중적인 개신교 신앙 형태로 복음주의를 꼽을 수 있게 되었다. 복음주의는 이제 그 발생기원적 한계도 넘어서 오순절주의은사주의와도 신학적, 실천적 교류를 긴밀하게 하고 있고, 로마 카톨릭 교회와도 몇 차례 교리적 연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20세기 초반 이래로 늘 대립적 관계였던 자유주의 노선과는 여전한 긴장이 있지만, 신학적 탐구나 사회정의의 실천이란 측면에서는 상호참조를 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복음주의를 정의하는 일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 된 이유를 잘 드러내 준다.[2]

 

2) 복음주의를 잘 이해하기 위해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기존의 논의의 맥락을 최대한 넓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특히, 한국 개신교가 미국 개신교에 매우 의존적으로 형성되어온 점을 감안할 때 미국 상황에 대해서는 이제는 일방적 소개보다는 비판적 검토를 수행해줄 이들이 필요하다. 동시에 거의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영국 복음주의 전통을 좀더 잘 소개하는 작업이나, 역사적으로 복음주의 범주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상호참조의 폭이 커지고 있는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전통이나, 성령운동(charismatic movement) 흐름들을 적절히 논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도 필요한 작업이다. 아울러 동아시아권에서 가장 개신교가 활발한 한국이 단지 안팎으로 수적 증가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함께 국제적으로 복음주의 운동을 형성해가는 역할(evangelicalism in the making)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느덧 다수파가 되어 버린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정의와 사회적 변화에 대해 갖는 관심의 비중과 내용도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3]

 

이는 결국 이 모든 과제를 감당할 주체인 한국 복음주의가 누구인가를 규명하는 작업과 뗄 수 없는 일이 된다. 결국 복음주의의 개념규정은 이런 해석학적 순환 바깥이 아니라, 그 내부로 개입해서 자신을 그 일부분으로 삼아, 돌아가는 논의를 평가하고, 대안을 내어놓고, 숨은 전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노출하면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산출하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4]

 

오랫동안 복음주의 논의를 책과 현장에서 참여관찰을 해온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하자면, 한국 복음주의는 60년대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소개된 서구 복음주의 운동의 직접적 영향권에서 형성된 대중적 신앙운동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복음주의를 한국에 전래된 개신교 그 자체로 바로 소급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개신교 선교의 주된 흐름이 미국의 복음주의 선교운동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그것이 국내에서는 결국 교단의 형성으로 귀착됨으로써 초교파적(transdenominational) 특성을 전면적으로 발휘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후의 한국교회사에서 보듯 주요 교단에 경건주의적, 부흥운동적 성향이 깔려 있는 것은 두고두고 복음주의 운동에 친화적인 조건을 제공해주기는 했으나 이것은 교단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5] 70년대까지 교회 내에서 주요한 대립구도는 보수 대 진보 혹은 보수주의 대 자유주의란 용어로 설명되었지 복음주의란 용어는 성결교 등 일부 교단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복음주의란 용어가 빌리 그래함 등의 활동으로 중심으로 2차 대전 이후 등장해서 70년대 중반에 크게 주목 받기까지는, 한국의 교단교회 상황에서 논의 구도와 내용은 미국의 근본주의 대 자유주의 구도를 그대로 닮아 있다.

 

3) 1960년을 전후하여 등장한 대학생선교단체를 한국 복음주의의 직접적인 시초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우선 이들이 복음주의 운동의 전형적 특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빗 베빙턴이 정리한 유명한 복음주의의 4가지 특성행동주의(activism), 성경주의(Biblicism), 회심주의(conversionism), 그리스도중심주의(Christo-centrism)는 주요 단체인 IVF(56), CCC(58), UBF(61)의 활동에 초기부터 잘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가끔 대형 전도집회나 행사를 위해 교단교회와 협력하기도 했으나, 80년대 중반까지는 긴장관계였다. 지역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예배를 갖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6],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들끼리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도 당시에는 매우 위험스럽게 보였다. 선교단체들은 교회의 신앙훈련을 매우 열등하거나 잘해야 희석된 것으로 보았고, 교회는 그런 선교단체를 목회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가끔 이단 시비가 일기도 했고, 종종 선교단체의 리더십 구조는 권력남용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7] 그러나, 80년대에 이미 매년 여름에 열리는 각 선교단체의 수련회 참석인원은 도합 수만 명에 이르렀고,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생들이 이런 방식으로 어울리고 흩어지고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형성되는 역동성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대형집회와 대형 수련회, 그리고 이런 자리에서 경험한 신앙적 태도는 당시 교회 내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력한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고 유통하는 통로가 되었다. 또한,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선교단체 출신의 목회자들이 이런 훈련과정을 지역교회에 적절히 이식하였고, 선교단체를 경험한 대중들의 교회 유입이 충분히 축적됨으로써 점차 협력관계로 전환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1989년 설립된 학원복음화협의회가 이런 관계의 상징적 기구이자, 실질적 협력구조를 상설적으로 확보하는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가시화 되고, 구조화 된다.

 

한국 복음주의 형성에 대학생선교단체만이 기여한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 말까지 개신교권의 청년문화는 그들이 부르고 듣던 노래, 친교방식, 기도, 성경공부, 전도, 경건의 시간, 독서 등에서 각각 독특한 스타일(style)을 창출하였고, 이를 위해 사역하는 매우 다양한 단체들(찬양팀, 출판사, 잡지 등)이 등장했다. 이들을 통해 제공된 다양한 삶의 지침들은 안팎을 명료하게 가르는 정체성의 경계를 형성하였는데, 스타일은 대체로 자생적이었기 보다는 수입된 것이었다. 90년대 초반 한국사회가 대중문화의 폭발을 경험하면서, 급속도로 세계화 시대로 접어드는 가운데 복음주의 대학생단체와 교회 청년부에서 유통되던 하위문화(subculture)는 한편으로는 당시의 한국사회의 대중문화와 달랐다는 점에서 공간적 구별짓기 측면과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한국사회 일반의 흐름보다 일찍 서구 문화를 내면화하였다는 면에서의 시간적 구별짓기가 가능했다는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다. 또한 90년대 초반 이래로 시작된 해외선교 열풍은 단기선교란 이름으로 상당히 많은 청년들에게 해외경험을 제공하였고, 이 역시 당시 사회에서는 선도적인 것이었다.

 

결국, 한국복음주의는 직접적으로는 대학생선교단체와 이들과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교회, 학교 등을 통해 길러지고, 그들이 호흡한 기독교 대중문화, 출판, 선교활동 등이 그들의 세계관(worldview)를 구성하게 된 대중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80년대 중반 이후 이런 이들이 주로 모이는 중대형교회들이 등장하면서 숫적으로 규모가 커졌고, 이들이 누리던 문화나 라이프스타일이 한국 개신교 전반에 파급되면서 이런 복음주의적 정서는 사실상 개신교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교계의 지형도는 약간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여전히 교단과 교파 단위의 구조가 견고하였기에 복음주의 교회로 알려진 목회자들이 정작 교단의 정치구조에서는 거의 영향력이 미미하기 일쑤였다. 교계의 구조와 대중적 흐름 사이의 괴리 현상은 한국 복음주의를 논할 때,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단순히 모든 보수적 교회의 행태를 복음주의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는 없다.

 

4) 이런 흐름 위에서 소위 복음주의 목회자 4인방(이동원, 하용조, 옥한흠, 홍정길)이나, 복음과상황 4인방(김진홍, 홍정길, 이만열, 손봉호) 같은 용어로 묶이는 이들이 활동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초교파주의적 협력이다.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의 존 스택하우스 같은 학자는 조지 마스덴을 인용하면서 복음주의를 해명하는데 이를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8] 나는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복음주의의 특징으로 교회론에 대해서는 유연하다고 말한 것은 피상적 관찰이며, 스택하우스의 이 지적이 더 중요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 복음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해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교회론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주의 정체성의 주요한 활동을 주로 초교파적 협력의 장을 통해 수행해왔다는 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복음주의 운동에 있어서는 언제나 개별 공동체의 장연합운동의 장이란 이원화된 공간이 중요하게 작동해왔는데, 성공적인 시기는 이 두 공간의 선순환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 선순환이 깨어지면 예외 없이 운동이 기울었다. 복음주의 운동 전반의 성과를 배타적으로 자기 공동체의 성공을 위해 종속시키거나, 반대로, 복음주의 운동을 지지하고 성원해주는 신앙공동체의 대중적 뒷받침 없이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해 취약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 복음주의의 초교파적 성향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이 보여준 특징을 묘사한 것일뿐만 아니라 어떤 경향성, 혹은 필연성을 예측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첫째, 이 초교파주의는 원초적으로 복음주의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내포하고 있다. 한쪽은 초교파주의를 복음주의 자체의 확장으로 보아 긍정한다. 다른 쪽은 이를 신학적 희석의 결과물로 보아 비판적이다. 영국에서는 1966Evangelical Alliance 총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은 교리적으로 혼합된 교단에서 나와 복음주의자들의 교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로이드 존스의 입장에 존 스토트가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교단이 명시적으로 복음을 거부한 경우가 아니면 교단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며 정면 대립한 사건이 이것과 관련이 있고, 미국에서는 빌리 그래함이 도시 단위의 대규모 전도집회를 위해 자유주의자와 심지어 로마 카톨릭까지 포함하는 준비위를 꾸렸던 일에 반발해 밥 존스를 비롯한 근본주의자들이 격렬한 비난을 남기고 이탈한 일이 바로 이런 문제와 관련이 된다.[9] 미국에서는 복음주의 정체성은 성경무오설(biblical inerrancy)대속이론(penal substitution theory)을 그 신학적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영향력이 크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그 주제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배타적으로 시금석을 삼는 행위는 복음주의의 역사적 궤적과도 맞지 않고, 신학적으로도 과도하게 단순한 논리란 비판을 가한다. 한국의 복음주의는 그간 이런 정체성 논쟁 없이 연합운동의 기조를 잘 발휘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논의의 부재가 단순히 신학의 부재 때문이었다면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아마 개별적 단위에서는 신학적 정체성을 강화하되, 연합의 장에서는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일하는 방법을 잘 갖추는 쪽으로 논의가 가야 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둘째, 초교파주의를 중요한 사역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말은 복음주의자들이 종종 교단 정체성에 구속 받는 기관보다, 초교파적 기관과 매체를 설립하는 것을 선호한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준다. 빌리 그래함의 경우, Christianity Today 같은 매체를 창간하였고, 로잔대회 같은 국제적 연대기구를 창설하였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Christian Century, WCC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었다지만 초교파주의란 기조에서 자신들의 지향에 충실한 매체, 학교, 대형 컨퍼런스 등의 인프라를 갖추어 나갈 필요가 있었다는 점으로도 설명된다.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눈에 띄는데, 우선 두란노서원을 비롯해서 다수의 기독교 출판사들이 단행본과 잡지, 큐티집 등의 출판을 통해 해외의 복음주의 흐름을 소개하고, 이를 내면화 하면서 대중의 관심과 의식을 견인하는 역할을 잘 감당했다. 또한, 연합운동의 영역에서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이제 전세계에서 해외유학생수련회를 개최하고 있는 KOSTA(1986), 대대적인 해외선교운동을 촉발한 해외선교단체와 대학생선교단체의 연합운동인 선교한국(1988), 청년대학생 사역단체와 지역교회의 협의체인 학원복음화협의회(1989) 등은 그 영역이 다를 뿐 이사진을 비롯한 핵심구성원이 거의 그대로 겹친다. 이런 조직은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개별 단체의 산발적인 각개전투로 진행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서로 다른 단체간에 흐름과 정서를 공유하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특히, 이런 연합기관과 이들의 대중집회는 대중들이 지속적으로 복음주의 운동의 확대재생산에 참여하도록 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90년대 이후 한국복음주의 운동의 주요한 의제와 문화의 생산과 유통은 이런 연합운동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 전 시기 대학생선교단체의 수련회 등이 만들어내었던 흐름보다 훨씬 초교파적이고, 더 세련되고, 교회와 친화성이 높은 연합운동은 90년대 이래로 대세가 되었다. 각 대학에서 발생한 기독대학생연합운동(기연) 역시 이런 흐름 위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복음주의 운동이 동력을 잃어가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런 연합운동과 출판 등의 복음주의 생태계가 현저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역량이 떨어진 것이 직접적으로 원인과 결과로 순환된다.

 

셋째, 초교파주의로 말미암아 생기는 구조적 유혹 역시 있다. 초교파적 연합과 협력은 사실상 참여 단체가 이미 자신의 존재기반과 자생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 상호 상승작용이 생기고, 영향력이 극대화 된다. 그런데 연합운동의 구조가 이를 잘 살리는 경우는 실제로 드물다. 대체로 재정 지원이 유력한 한 두 교회나 개인에 의존하게 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회원의 참여나 관심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운영구조가 탄탄하지 못한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운동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영향력을 사유화하려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한국 복음주의권의 여러 연합단체들에서 세대교체의 문제와 더불어 연합운동 자체를 지속할 역동성의 상실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역량은 연합운동의 명분이 자동으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연합과 협력은 주어진 미션의 성취를 극대화할 수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이런 측면은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동적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5) 한국 복음주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면, 나는 이 논의의 주체는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복음주의 운동을 수행한 그룹들과 교회들, 그리고 그 가운데 여전히 그 운동에 귀속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고 본다. 그리고, 복음주의 논의에 관심을 갖고 동참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이들도 포함할 것이다. (예를 들면, 아나뱁티스트 전통 등) 아마도 약간의 논란이 있는 경우는, 전통적으로 복음주의에 귀속감을 갖고 있었으나 이탈하는 그룹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나는 이들을 복음주의에서 이탈한 그룹(ex-evangelical)이 아니라, 새로운 복음주의를 기대하는 그룹(post-evangelical)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나안 성도라는 명칭을 제안하기도 했다.[10]

 

그래서, 한국 복음주의 논의가 포괄해야 할 복음주의자의 범주는 최대한 넓혀 잡는다면, 마치 미국언론들이 그러하듯 보수적 신앙을 가진 개신교인 전부로 볼 수도 있겠으나, 엄밀하게 잡는다면, 자신이 속한 신앙공동체나 교회가 위에서 언급한 한국 복음주의 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있거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경우를 일차적으로 포함할 것이다. 여기에 전통적인 경계선의 안팎으로 포진되는 개인적으로 귀속감을 갖는 이들 정도가 포함될 것이다. 그러기에, 아마도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는 당연히 복음주의권의 문제로 인식이 되었겠지만, 명성교회 건축 문제는 한국 개신교권 전체의 문제로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기독교 사회책임의 출범과 김진홍 목사의 뉴라이트 운동은 일차적으로 복음주의권이 책임 있게 반응해야 했으나, 기독당은 개신교계 전반이 처리할 일로 여기는 듯하다. 한기총 해체 캠페인은 약간 복합적인데, 그 조직의 구조와 운영은 복음주의권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기총이 복음주의권 교회와 인력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던 와중에 부정선거 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복음주의자들도 연루되는 사안으로 인식이 된 듯하다. 전반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이 좁은 의미의 귀속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 전반에서 벌어지는 사안에 자신들의 연관성을 어느 정도 느끼느냐에 따라 대중적 관심을 발휘해 오는 수준도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위에서 언급한 각 사안들에서 사랑의교회의 연관성과 행보가 유난스럽게 두드러진다.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사실이지만, 사랑의교회가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갖고 있던 상징적 영향력을 이전의 온건한 초교파주의가 아니라, 개교회의 필요에 따라 공격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반사적으로 우려를 갖게 하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6) 나는 일전에 한국 개신교는 지금 지난 30년간 지속되어온 체제가 변동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보았다.[11] 이를 개신교 87년 체제라고도 했고, 이 시기의 특징이 2007년이란 상징적인 해에 어떻게 드러났었는지를 묘사하기도 했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당면한 시대는 그러므로, 포스트-2007 시대라 부를만하다는 제안도 했다. 그 이야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한국 복음주의 논의에서 맞닥뜨릴 과제는 한두 개의 부속품을 수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설계도 전체를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설계자들의 이상 자체를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 복음주의의 로고스란 장을 채우는 것은 그런 면에서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고, 여기에는 다종 다양한 이들의 제안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논의는 아마도 단순히 신학을 논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론적 논의가 소용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이론만큼 완고한 이론이 없다.

 

내가 대략 그려보는 그림은 이렇다. 한국 복음주의 운동은 그 자신이 기꺼이 따를 내용을 말해주는 사람들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설교자이든, 저술가이든, 정치가인든, 농사꾼이든, 학자이든, 복음주의자의 삶에 대해 진정성 있게 전달해줄 목소리(voice)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가 유실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주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언론 매체일수도 있고, 찬찬히 읽어야 할 책을 선별하고 권해주는 출판사이거나 독자운동일수도 있다. 연간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수련회여도 좋고, 매주 만나는 교회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가야 할 방향을 이를 앙다물고 탐구해 볼 수 있는 학교도 필요할 것 같고, 새롭게 벌어지는 온갖 사안에 대해 정돈된 답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씽크탱크 같은 것이어야 할 것도 같다. 일종의 복음주의 생태계(evangelical ecosystem)가 필요하다. 다들 초대형 공룡만 되려고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그 생태계의 미생물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에게는 이 목소리가 들려지고 있지 않다. 혹은 바람결에 세미하게 들리는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복음주의 논의를 들여다 보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사실은 이 문제가 단지 로고스, 즉 개념과 논리, 신학과 교리만의 문제는 아니란 점이다. 18세기 복음주의가 강고한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를 지나고 나서 죽은 정통(dead orthodoxy)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신앙(a living faith)의 회복이란 형태로 등장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것을 파토스와 에토스로 구분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2. 복음주의 파토스

1) 파토스(pathos)란 말은 흔히 정서(emotion)으로 옮겨지지만 사실상 고통(suffering)이나 공감(sympathy)이란 의미를 갖는다. 복음주의란 용어는 역사적으로 단순히 어떤 담론이나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파토스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자신과 세상을 포함한 세계의 어떤 측면을 놓고 고통받거나, 분노하거나, 폐부를 찌르는 공감대를 갖고 대하는 그런 특성을 가졌다. 이것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신학적이면서도 신앙적인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s), 혹은 극복의 의지를 내포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베빙턴의 4가지 특징 역시 일종의 파토스를 깔고 있다. 성경주의란 단순히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중 정도가 아니라, 종교개혁 이전 시기 존 위클리프, 얀 후스, 마틴 루터 등이 자국어로 성경번역을 하거나, 자국어로 설교를 할 때 고취되는 어떤 폭발적이고 저항적인 정서와 관련이 있다. 교황청의 무시무시한 이단심문관의 취조에도 불구하고, 나는 교황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믿노라는 고백을 하는 것은 시험지에 또박또박 정답을 써넣는 행위라기 보다는 목숨을 값으로 치르고라도 외칠 격정적 신앙고백과 연관이 있다. 회심주의는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웨슬리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회심체험의 긴박성과 무게를 전달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의미 값을 갖는다. 그것은 고전적으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들에 대한 불타는 구령의 열정으로, 혹은 한번도 복음을 들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세상의 불공평함을 용납할 수 없는 정의감의 발현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파토스는 종종 사회를 향해서도 폭발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윌리엄 윌버포스, 존 웨슬리, 존 뉴턴 등이 자신들의 시대에 노예제도를 향해 갖고 있던 태도 역시 파토스적이었다. 그것은 견딜 수 없이 부당한 것이었다. 웨슬리에게는 탄광 노동자들이 주일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예배에 나올 수 없어서 교회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부당한 것이었다. 그는 그 부당함에 맞서 당시로서는 (아마 지금 상황에서도) 혁신적이었던 노상설교를 탄광과 공장노동자들을 상대로 감행했다. 연간 1,000회가 넘는 설교를 했다는 웨슬리를 몰아간 것은 파토스적인 그 무엇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의 행동주의는 그들이 기질상 조증 성향 집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 자체가 격렬한 파토스를 제공하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는 이 시대를 향한 기독교적 리더십의 등장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비전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깊은 불만과 동시에 가능한 현실에 대한 선명한 이해의 복합체다 (Vision is compounded with a deep dissatisfaction with what is, and a clear grasp of what could be.) 이 비전은 단순한 논리와 명료한 언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파토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 현실을 가로지르는 불만의 정체를 포착하는 것과 이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런 파토스의 약점도 있다. 쉽게 충동하고, 흥분에 호소하기 쉽다는 것. 무수히 많은 바이블 캠프와 부흥회에서 바로, 지금, 이순간 결단을 재촉하는 부름 앞으로 사람을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다반사가 되면서 신앙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상한 어떤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시켜서 결단을 요구하는 논법과 그 절대절명의 목적을 위해서는 약간의 심리적 조작과 유인은 감수될 수 있는 것으로 짐짓 접어두는 경우도 생긴다. 부흥에 대한 갈망은 종종 흥분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머물고 만다. 이런 약점 때문에라도 복음주의는 열정과 냉정을 함께 장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가치를 풍성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무감동의 로고스로만 인식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적어도 그를 묘사하는 복음서의 기록은 참으로 다이나믹하기 때문이다. 한두 가지 교리적 요약으로 함축되지 않는, 길들여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인격성은 끊임없는 파토스의 원천이다. 그리스도의 긍휼, 그의 사랑, 그의 분노, 그의 고통, 그의 희생이 성경적 맥락 속에서 더 폭넓게 인식되면 될수록 복음주의적 파토스는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진다.

 

2) 한국 복음주의의 현재 가장 취약한 지점이 파토스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분노가 실종되었고, 정의감이 보이지 않고, 사랑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한국 복음주의 대중의 가슴을 뒤흔들 어떤 가치나 사건이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지도자들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한국교회의 최대 관심사는 사실상 교회 키우는 일이었다. 이를 여러 좋은 말로, 제자훈련이라 하거나, Acts 29라거나 했지만, 결국은 교회성장으로 귀결되는 일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노라고 불을 뿜었으나, 그 결과 초대형교회를 몇 개 갖게 된 것 외에 변한 바가 많지 않다. 적어도 한국사회는 교회 덕에 세상이 더 좋아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교회는 아들 아니면 사위에게 물려주는 것이 대세가 되어 버렸고, 그 성장을 일군 위대한 하나님의 종의 은퇴를 위해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주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복음주의의 거대한 에너지를 교회를 키우는 일, 혹은 목회로 다 환원한 셈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파토스를 던져 성취해야 할 어떤 것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아무리 하나님 나라를 들먹거렸지만, 결국은 누군가에게 직장을 마련해주고, 퇴직금 주는 일로 그 결국이 끝난다면 그 일은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하지 못한다. 교회하나님 나라의 적이 되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교회를 키우는 일에 관심이 없다.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관심이 있다. 교회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정의를 가져오고, 사랑을 가져오느냐를 매섭게 묻는다. 더 이상 사람들은 가슴이 허전해서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해서 자신의 결핍을 메꾸기 위한 종교적 위로를 찾아 교회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고, 배우고, 시간을 쓰고자 한다. 더 이상 교회는 자기의 덩치를 키우고, 건물과 직원을 유지하는 것으로 존재증명을 하지 못한다. 한국 교회에 언젠가부터 이단과 사이비가 전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언기도나 신비주의적 천국체험 등도 요란스럽게 유통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사실 언제나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유독 최근 10년 사이에 두드러져 보인다. 사람들의 파토스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주류 교회들이 대중들과 교감할 파토스를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하고, 주된 대화의 내용이 교회 건축이고, 장로 선거이고, 목사-장로 갈등인 상황이니, 그것이 무엇이든 강렬한 파토스를 던지는 이들이 무언가 승기를 잡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3) 한국 복음주의에 한번 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사소한 문제를 갖고 과잉된 파토스를 뿜어내는 흥분상태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하고 거대한 문제와 맞서 싸우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문제는 신학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 윌리엄 윌버포스의 노예해방 투쟁은 그의 전 생애를 걸쳐 비우호적 여론을 상대로 싸워야 했던 문제였고, 최종적으로 노예해방을 위해 당시 2천만 파운드의 배상을 국회가 결의해야 했기에 결코 단순히 도덕적 우월감을 누려보겠다는 수준의 동력으로 진행될 수는 없는 사안이었다.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복음주의 신앙은 정의(justice)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껴안고 씨름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해외의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에서도 정의의 문제가 과거에 비해 훨씬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복음정의의 맥락에서 풀어내는 것, 그리고 정의를 세우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떻게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사람들은 보고자 한다.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교회가 고난 없이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은혜 때문이 아니라, 특혜 때문이라고 본다. 복음주의는 자신들이 믿는 바가 이 세상 속에서 어떤 파토스를 뿜어내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재규정 되어야 한다.

 

 

3. 복음주의 에토스

1) 에토스(ethos)는 기본적으로 인격(character), 혹은 신뢰성(credibility)과 관련된다. 종종 윤리(ethics)와 관련되는 영역이다. 불행히도 한국 교회 전반의 신뢰도는 땅바닥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기독교인들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계층적 이익에 반하더라도 진실을 추구할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보다는 계급적 이해관계, 정치적 신념, 지역적 연고, 학벌 네트워크에 더 크게 영향 받을 것으로 간주된다. 삶의 일관성(integrity)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한국 교회, 특히 복음주의적 신앙생활의 내용에서 구원을 위해서는 로고스(바른 말, 바른 논리),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파토스(열정)를 꾸준히 강조해왔지만, 에토스(윤리)는 적절한 자리를 부여 받지 못했다. 오직 믿음이란 로고스적 강조는 에토스를 기껏 공로주의 신앙의 결과물 수준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뜨거움을 강조하는 파토스는 일상에서의 에토스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절대우위에 놓게 만들었다. 한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일상에서 차분히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행위는 복음주의자의 이상적 모습과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모습이었다. 학교나 직장에 충실하거나, 가정을 중시하는 태도는 마땅히 필요한 복음주의적 자기희생에 대한 부정이었다. 당연한 귀결로,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직업윤리(work ethic)나 가정/가족 윤리(family value)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진공상태에 머물면서 끊임없이 직장과 가정생활에서 풀리지 않는 갈등과 긴장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영역에서의 예외적인 성공사례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례로 추앙하거나, 반대로 이 모든 것을 결국 내려놓고 매 순간을 뜨겁게 살아가는 사역자의 삶을 언젠가 선택하면 이 모든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 희망한다. 이런 전형적인 모습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이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신실한 복음주의자들의 사고와 행태가 만족스럽지 않기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식적 지혜를 의존하고 있을 따름이지 자신들의 선택을 좀더 나은 복음주의 신앙의 토대 위에서 통합하거나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에게 윤리동성애, 낙태 등의 심각한 논쟁 이슈로는 등장하지만, 자신들의 일상을 규율하는 공유된 삶의 태도로는 거의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종종 윤리적 거대담론을 열정적으로 제기하는 그들이 개인윤리나 집단윤리의 수준에서는 매우 모순되거나 낙후된 모습으로 비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곤 한다.

 

2)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view)에 대한 관심은 직접적으로 이 부분과 관련이 되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와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성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변화가 없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세계관이 누락되어 있다는 진단을 한다. 그간 세계관 논의가 주로 인지적 과제로 여겨졌다면, 이 논의가 일상윤리를 다루는 데에까지 문제의식이 미친 것은 적지 않은 성과라 봐야 할 것이다. 그간 기독교는 한국사회에서 남들보다 좀더 일찍 서구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는 통로였던 덕택에 사회문화적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다. 이제 그런 특권적 지위가 거의 다 사라진 상황에서, 때로는 교회 내의 문화가 퇴행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윤리는 사실 공동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요소가 적지 않다. 복음주의 공동체가 어떤 에토스를 배양하는 공동체가 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한국사회가 급하게 달려나가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회문제를 견뎌내면서 이 사회를 지탱해줄 공동체가 많지가 않다.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로 간주되는 종교, 그 중에서도 한국사회에서는 가장 폭넓게 분포하고, 잘 조직된 시민사회에 해당할 개신교가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조율해 나갈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정치적 기능을 요구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개신교가 권력 획득이란 좁은 의미의 정치 과정에서는 한발 빠져 있는 것이 그런 사회적 중재를 수행하는 데에 더 낫다. 최근 몇 년간의 개신교권이 보여준 모습은 정교분리란 헌법적 원칙에 대한 위배를 포함해서 매우 집요한 이익집단으로 행동하면서 매우 저급한 수준의 정치사회 의식을 드러내었다. 경제윤리에 있어서도, 최소한 청교도적 기준, 즉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얻은 부에 대한 인정도 일관성 있게 천명하지 못했고, 불로소득 땀 흘리지 않고 얻은 소득으로 꼽힐 만한 투기적 부, 혹은 탈세 등의 부정한 소득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따끔한 비판세력이 되지 못했다. 복음주의 공동체들은 부와 권력의 문제에 있어서 뚜렷한 대안(alternative) 공동체, 대조(contrast)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3) 에토스가 윤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삶의 태도, 라이프 스타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다원성에 대한 태도, 문화나 예술에 대한 태도 등이 포함된다. 인터넷에서 라이프 스타일로 검색을 하면, 패션, 레저, 여행, 독서, 취미, 운동, 예술, 등 삶의 다양한 측면을 총망라하는 주제어들이 뜬다. 어떻게 소비하는가, 어떻게 자신을 가꾸고 꾸미는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가, 무엇을 읽고, 어디를 여행하는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가 한 사람의 에토스, 한 집단의 에토스는 그렇게 표현되고 형성된다. 또한, 중요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하는가, 연약한 사람은 어떻게 대하는가, 돈은 어디에 우선적으로 쓰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도 포함한다. 당연히 이런 면에서의 에토스는 단일하거나 일률적일 수 없다. 여기에는 다양성을 인정할 뿐 아니라, 즐겁게 향유하는 태도가 요구될 것이다. 종종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취향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시도된다. 특정한 유니폼을 입히고, 무엇을 하지 않도록 하거나, 무엇을 하도록 함으로써 집단의식을 쉽게 고취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반대의 길, 즉 자유를 부여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공유하는 에토스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4. 한국 복음주의를 위한 제안

한국 복음주의의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는 제각각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꺼번에 다 있어야 한다. 물론 각 영역에서 주도적으로 기여하는 사람과 조직은 다를 수 있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결핍을 이렇게 진단하였다. 이런 진단이 설득력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다음 단계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여러 면에서 토론되고, 정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나, 글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지역교회와 개별 신앙공동체의 장을 결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소평가 하지 말라. 그곳은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모판이 될 수도 있고, 한없는 소모전의 수렁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속한 신앙공동체에 제대로 된 인정과 지지의 연대를 만들지 못하면, 끊임없이 후방이 위협받는다. 그런 곳을 만들던지, 그런 곳을 찾으라.

 

둘째, 연합운동의 장을 소중하게 여기라.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 초교파적 연합운동의 장은 복음주의 운동의 최선의 역량이 발휘되고 유통되어야 하는 장이다. 그곳은 대형집회나 거대 조직이 될 수도 있고, 매우 작은 규모의 실험적 활동이 시작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크건 작건 이 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격려 받아야 하고, 좋은 결과들은 선의를 갖고 유통시켜야 한다.

 

셋째, 복음주의 인프라를 구성하라. 한국에서는 모든 자원이 교회로 휩쓸려 들어간다. 그런데, 교회는 그 자원을 목회 논리 혹은 교회 성장 용도로만 사용하기 십상이다. 그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기구들이 필요하다. 복음주의 운동의 대의와 필요에만 충실하면 되는 조직들이 있어야 한다. 전 시대의 인프라들이 퇴색하지 않고 그런 역할을 하도록 견인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조직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다. 과감한 시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야 한다.

 

넷째, 시대정신을 붙잡으라. 복음주의는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완성된 것도 아니고, 18세기 대부흥운동에서 정점에 도달한 것도 아니다. 20세기 후반의 복음주의 르네상스가 우리가 그려볼 미래의 전부도 아니다. 한국 복음주의는 우리 시대의 핵심적 과제를 과감히 부여잡고, 이를 신앙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혼신의 시도 속에서 제 길을 찾을 것이다. 복음주의 운동에 헌신하는 것이 우리 시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싸움이 된다는 확신이 선다면, 복음주의의 클라이맥스는 다시 오게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전력을 다해 이 탐구를 수행하는 복음주의를 일컬어 형성 중인 복음주의(evangelicalism in the making)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신학적, 학술적, 실천적 자원을 투입해서 답을 찾아가는 노력이 우리 시대를 위한 복음주의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1] 성경에서 복음(good news)이란 표현이 사용되는 구절들(1:15, 2:10-11, 4:18-19, 10:15, etc.)이 거의 예외 없이 하나님의 나라/다스림를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자가 헌신할 복음은 소위 개인전도를 넘어선 범주이다.

[2] 미국 복음주의에 대한 표준적 이해에는 마크 놀(Mark Noll),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 등의 책을 권할 만하다. 영국의 경우는 데이빗 베빙턴(David Bebbington), 존 스토트(John Stott)와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의 저서들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상황을 중심으로 복음주의를 정의하려는 가장 최근의 논쟁을 적나라하게 보려면 Kevin T. Bauder, R. Albert Mohler Jr., John G. Stackhouse Jr., Roger E. Olson 4명이 공저한 Four Views on the Spectrum of Evangelicalism (Zondervan, 2011)를 참고하라.

[3] 국제적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로잔운동을 꼽을 수 있을 텐데, 2010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로잔III의 논의는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좌장으로 작업한 선언문 Cape Town Commitment 에 잘 드러나있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논의 외에도 생태, 환경, 여성, 인권 등 전 분야에 걸친 윤리적 의제를 복음주의자들의 헌신을 요청하는 주제로 담고 있다.

[4] 한국 복음주의를 다루는 연간기획을 2012년 한해 동안 진행하고 있는 <복음과상황>의 지상논쟁은 이런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종교학 분야에서 한국 복음주의를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들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어서 조만간 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단행본 수준의 논의는 많지 않은데, 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푸른역사, 2009) 80년대 이후 복음주의를 비판적이지만 풍성하게 다루고 있는 학술저작으로 첫 손에 꼽을 만하다.

[5] 미국의 복음주의 선교운동이 한국 개신교의 형성에 끼친 역사적 궤적을 방대한 사료와 비판적 평가를 곁들여 가장 잘 드러낸 작업은 류대영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1)일 것이다.

[6] 80년대에 CCC의 정동채플이 주일 예배를 드린 것이 대표적으로 지역교회의 반감을 일으킨 경우였다. CCC는 대외적으로 멤버들의 지역교회 참석을 권장하고, 정동 채플의 예배를 단체의 모임으로 인식하도록 수위를 낮추었다. 당시 네비게이토선교회의 경우도 회관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비판을 받자, 영락교회 등에서 단체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회관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다. UBF 90년대까지도 지역교회와의 보편적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7]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UBF의 사례를 소설로 쓴 조성기 <야훼의 밤> 연작일 것이다. UBF의 초창기 리더십 문제는 이후 ESF로 분열을 겪게 하였고, 2000년대 초반 CMI로 분열하는 사태로 이어진다.

[8] The Spectrum of Evangelicalism, 121.

[9] 영국 복음주의를 기술하고 평가하는 측면에서 존 스토트와 마찬가지로 성공회 내 복음주의 전통에 있는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 1980년대 이후를 복음주의 르네상스라 부르는 반면, 로이드 존스의 전기를 썼던 이안 머레이(Ian Murray)교리적 희석과 분열이 심화되었다고 보는 입장 차이를 보인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가 보수화 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스탠리 그렌츠 같은 이를 복음주의 좌파(Evangelical Left)라고 부르며 비난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성명서가 발표되기도 했는데, 그 상대편에는 밀라드 에릭슨, 알버트 몰러, D.A. 카슨, R.C. 스프로울 등이 포함된다.

[10] 가나안 성도란 용어는 교회에 안 나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농담처럼 사용되던 것인데, 1회 교회 2.0 컨퍼런스에서 이것이 지시하는 현상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음을 발제한 바 있다. http://post-evangelical.tistory.com/66

[11] 양희송 포스트-2007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복음과상황> (2008.8). 내용은 http://post-evangelical.tistory.com/14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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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주의2011.10.10 16:59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우리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자를 기리는 44인의 회고록 (IVP, 2011)




한국IVP가 펴낸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우리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자를 기리는 44인의 회고록(John Stott: A Portrait by His Friends)>(IVP, 2011)은 원래 그의 친구 35명의 글이 실려있는 책인데, 한국판에는 한국 필자들의 글을 9편 더 실어서 44명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래는 그 책에 실린 저의 원고입니다.

 

존 스토트, 복음주의 운동가

John R. W. Stott, an Evangelical




존 스토트의 별세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 얽힌 추억을 되새긴다. 그의 책뿐만 아니라, 그와의 작은 만남과 기억이 이토록 다양하게 회상될 수 있다는 것도 경이로운 일이다. 내게도 그는 단지 책 속의 인물 이상이었다. 영국 유학 시절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 했던 기억도 있고(<복음과상황> 2002년 1월호에 수록), 그의 영향력이 영국 복음주의운동에 드리운 폭과 깊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감하기도 했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대학 1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읽었지만, 흔히들 접하는 신앙서적처럼 감동적인 것은 아니었고 좀 무미건조했다고 기억된다. 정작 그의 책에 맛을 들인 것은 성경공부를 위해 추천받은 <성경연구 입문>이었고, 성경 본문 공부와 묵상에 맛을 들이면서 영어공부를 겸해 선택한 그의 <산상수훈> 강해였다. 로이드존스의 장황한 스타일에 비해 그의 간명한 스타일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어서 읽어나간 그의 강해집들은 성경연구의 어떤 기준을 잡아주었던 것 같다. 본문과 상관없는 장광설에 별 감동이 없고, 웃기는 예화들로 점철된 설교가 그닥 흥미롭지 않은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때 존 스토트의 설교집을 만나고 탐독한 때문이라 생각한다. (1995년도에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가 런던의 올소울즈 교회를 방문해서 그의 설교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영어가 서툰 내게도 그의 설교가 얼마나 정갈한 언어와 명료한 논리로 이어지던지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론을 둘러싼 신학적 논의에 눈을 뜨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했다.


대학 때부터 시작된 나의 복음주의 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의 아마도 8할은 존 스토트의 영향일 것이다. 내가 무언가 기준과 판단이 필요하면 우선 그의 글을 찾아보았고, 언제나 도움을 얻었다. 물론, 내가 그의 일방적 추종자가 된 것은 아닌데, 종종 나는 그가 좀 더 과감했으면 했고, 그의 성경해석이 좀 더 전진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세기를 살아온 복음주의자들 대다수에게 하나의 시금석 역할을 잘 감당해 주었다. 한국 복음주의, 특히 청년운동도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그의 영향력은 전모가 잘 전달된 것일까 묻고 싶다. 그를 탐독한 광범위한 독자군을 염두에 두고 존 스토트의 수용과정과 그 영향력을 꼼꼼히 따져보는 작업은 별도로 반드시 필요할 듯하다. 내가 이 길지 않은 글에서 오히려 말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은 이제 그의 죽음과 더불어 서둘러 닫히고 말 존 스토트 읽기의 빈구석과 맥락을 과제로 적시해서 남겨놓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나는 굳이 이 내용을 객관적이거나, 공적인 문체로 쓰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사적인 성찰의 틀로 표현하는 것이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첫째, 그는 나에게 영국 복음주의 운동의 전통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최근 국내 언론 지상에 ‘복음주의’란 용어가 많이 오르내리지만, 거의 대부분이 미국적 상황과의 관련 하에서 나오는 경우들이다. 나는 존 스토트를 통해서 영국 복음주의 전통을 소개받았고, 매력을 느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의 신학공부를 미국이 아니라 영국을 택한 이유도 거의 전적으로 그 영국 복음주의를 직접 호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말하거니와, 영국 복음주의에서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한다. 미국 복음주의에서는 그토록 희귀해진 ‘지성운동’의 면모가 영국에는 살아있고, 다양한 실험과 행동의 공간이 영국 복음주의에는 꽤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영국 기독교는 죽었다’는 선언을 무책임하게 해댈 때, 사실은 한국 기독교가 아직 가보지도 못한 수준의 부흥을 경험했던 그 나라의 복음주의 전통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는 전혀 무지한 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개교회의 크기만 가지고 비교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나는 영국 복음주의 운동 내부에서는 매년 부활절 기간이면 7-9만명이 모이는 ‘스프링 하베스트’ 같은 수련회가 열리고 있으며, 여름에는 1만 명이 넘는 바이블캠프들이 이곳저곳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다. 150년이 넘도록 지속되는 수련회 운동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도 기억하고 싶다. 영국 복음주의자들의 구호기금이 영국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표적인 제3세계 구호단체 역할을 한다는 것도 짚어줘야 하리라. 그리고, 이 모든 영국 복음주의의 르네상스에 밑그림을 그린 대표적 인물이 존 스토트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 개신교의 성장세가 꺾이고, 무언가 갱신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영국 복음주의 전통은 다시한번 재검토 될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것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둘째, 그는 나에게 ‘목회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국서 공부하던 기간에 한번 그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미리 편지를 띄웠고, 시간을 정해 찾아가 만났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런던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교회 근처에 있는 그의 집은 저택이 아니라 여느 사람들의 집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플랫(Flat)이었다. 그는 종종 외국 유학생들이나 영국 젊은이들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도록 하기도 했다. 자신의 저서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전액 제3세계 유학생들, 특히 신학생들을 돕는 랭함파트너십(Langham Partnership)으로 들어간다. 최소한의 생활기반 외에는 사실상 거의 무소유나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나를 만나기 전에 내가 보낸 편지를 한 번 더 읽어 보았던 듯, 그는 편지에 썼던 내 가족의 안부와 학업의 진척을 물어주었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드문 사람이었다. 자신의 위상에 대한 자의식이나 존재감이 도대체 느껴지지 않는 소탈함이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고, 그 자체가 울림이 큰 메시지였다. 나는 목회자들이 너무 위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바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자신감에 가득 차 있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목회자에게 강요할 일은 아니겠지만, 존 스토트를 만나고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그는 한 교회에서 60여년 간 목회를 하고 은퇴했다. 그 교회는 여전히 메가처치(mega-church)가 아니다. 그는 성공회 내의 위계질서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많은 유력한 단체나 기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그는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알뿐 아니라, 그 자리를 다른 무엇에 빼앗기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행복한 목회자였다.



셋째, 그는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존중한다고 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이며 얼마만큼의 무게인지를 삶에 실어 보여주었다. 그는 평생 사역 과정에 몇 번의 논란을 거쳤다. 아마도 가장 최초의 것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문제였을 것이다. 그는 대학진학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기, 회심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따라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가 성경적으로 옳다고 느꼈고, 목회자후보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대체복무를 선택함으로써 군의관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와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정당한 전쟁론’으로 수정함으로써 이 논쟁에서 이론적으로는 벗어나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은 피하지 않았다. 그가 목회하던 초창기인 60년대에 영국 복음주의권에서는 ‘은사주의’ 논란이 일어났다. 방언과 예언 등 은사주의 현상이 그의 교회에서도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존 스토트가 어떤 입장을 내어 놓을지 궁금해 했다. 그는 1964년에 성령론에 대한 책 <성령세례와 충만>을 통해 이후 복음주의권의 표준적 견해로 여겨지는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논쟁을 정돈했다. 반면 한참 후인 1988년에는 ‘자유주의자’ 데이빗 에드워즈와의 대화를 엮어낸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답하다>에서 지금도 이슈가 되는 ‘영혼멸절론(annihilation)’을 제기함으로써 문제 제기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견해는 복음주의 신약학자 존 웬함(John Wenham)의 영향도 있었다지만, 역시 그 나름의 성경 연구와 신학적 사유의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단순한 복음주의 ‘진영’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런 기대를 할 때, 종종 그는 그 기대를 깨고 더 나아갔다. 혹은 반대로 더 나아가주기를 기대할 때, 단단히 머물렀다. 그는 성경이 자신을 이끈다면, 혹은 신학적 사유가 그를 밀고나간다면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고, 가보지 않은 길도 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자격을 갖고 있었다. 1974년 로잔언약이 애초 예상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강력한 사회참여의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해 초 존 스토트가 직접 남미로 가서 르네 빠디야, 사무엘 에스코바르 등 남미의 복음주의자들과 대화하면서 서구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협소한 시야를 넘어서고자 노력했기에 가능했던 열매였다. 그의 말년으로 오면서 그의 시야와 사고의 범위는 점점 더 확장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1999년에 낸 <복음주의의 기본진리>는 복음주의권에게 던지는 하나의 유언과 같은 책이라 볼 수 있는데, 서문에서 그는 자유주의자들, 동방교회 등에게서 우리가 얼마나 배울 것이 많고, 배워야 하는지를 결코 가볍지 않게 이야기 한다. 그의 과거 저술을 통해 그를 복음주의권의 대변자, 논객으로만 기억하던 이들의 눈에는 범상치 않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를 복음주의 진영의 수호자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할 자세를 갖고 있었던 한 ‘제자’로 기억한다면 그보다 더 웅변적으로 ‘신실한 순종’을 배울 롤 모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넷째, 그는 무엇보다 전도자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는 복음은 자신을 위한 복된 소식일뿐 아니라, 이웃과 세상을 위해서도 그러하다는 신념을 갖고 평생 살아왔다. 그에게 복음은 기꺼이 전하고 싶은 ‘기쁜 소식’이었다. 그가 영국 복음주의권에서 일약 활동폭을 넓힌 것은 아마도 1954년 한달간 진행된 빌리 그래함의 역사적인 런던 헤링게이 전도집회 때였을 것이다. 영국 복음주의권에서 빌리 그래함에 대한 인식이 썩 호의적이지 않던 시기였는데(로이드존스도 부정적 평가를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전도집회의 대성공으로 빌리 그래함은 일약 전세계적인 복음전도자로 주목받게 된다. 그때 그는 빌리 그래함과 적극 동역하였고(이것이 1974년 로잔대회를 비롯 빌리 그래함과의 평생에 걸친 동역으로 이어진다), 그 자신도 대학생을 비롯한 지성인 층을 위한 전도자로 평생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가 현대사회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도 그것이 해명되지 않고서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내용으로 복음이 전달될 수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가 말하는 “이중적 듣기”(double listening)은 한편으로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의 소리를 새겨듣는 자세를 뜻한다. 그는 결코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강변하면서, 세상을 읽어내고 이해하려는 더디고 힘겨운 작업을 경시하지 않았다. 사회참여는 복음전도의 시급성 때문에라도 더욱 긴급하게 수행되어야지, 복음전도를 위해 생략될 수는 없다는 것이 존 스토트가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웅변으로 전달한 메시지이다. 



다섯째, 그는 복음주의 지성운동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다. 존 스토트가 등장한 시기는 영국 복음주의권의 대약진 시기와 일치한다. 원래 복음주의자란 영국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 비국교도(non-conformist)이자, 블루칼라층으로 대변된다. 즉,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성공회 출신이 아닌 기독교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주로 단순하고 정서에 호소하는 설교를 선호하고, 쉽게 선동되고, 체제나 권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반골기질이 있는 이들로 그려진다. 이런 전형적인 그림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확연하게 변모한다. 대학생운동을 해오던 UCCF(한국에는 IVF로 알려진)쪽에서 복음주의 성서학자들로 진용을 꾸려서 성경사전(New Bible Dictionary)을 편찬하는 등 매우 과감한 시도를 하면서 지성적 면모를 일신하는 일이 벌어진다. 아울러, 앞서거니 뒤서거니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를 졸업한 성공회(anglican) 출신의 복음주의자들이 등장했다. 마이클 그린, 제임스 패커 등과 더불어  존 스토트도 이 시기의 대표적 인물들인데, 당시 이들의 신앙강연을 듣고 자란 이들이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 같은 그 다음세대 인물들이다. 특히나 성경의 권위를 중시했던 복음주의권의 특성으로 인해 유능한 성서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하워드 마샬, FF 브루스, 리차드 보컴, 앤터니 티즐턴, 고든 웬함, 제임스 던, 톰 라이트 등의 등장이 복음주의권의 성서학 중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한 세기만에 복음주의운동이 블루칼라 중심의 반지성적 대중운동이란 이미지에서, 잘 교육받은 이들이 심사숙고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기반이 있는 신앙운동이란 인식을 얻게 된다. 단순히 경제적 중산층의 유입이 많아져서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인식이 아니라(나는 미국의 복음주의는 이 경로를 밟은 것으로 보인다), 복음주의자란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고, 지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신앙적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게 된 것은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존 스토트의 일대기, 혹은 그의 저작들을 읽다보면, 그가 살아오면서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나는 그의 질문이 어렵지 않게 이해되었고, 그의 대답에 잘 설득되곤 했다. 90 평생을 한결같이 걸어온 한 사람이 떠나고 난 후의 족적을 되짚어 보노라니, 이제 그가 하던 질문을 던지고, 그가 내놓을 법한 대답을 찾는 일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빈자리가 커 보이고, 남겨진 몫이 무겁게 느껴진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전 <복음과상황>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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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주의2011.08.06 19:52

John R. W. Stott(1921-2011)



<복상200201: 브리스톨 통신(19)>

존 스토트(John Stott),

20세기 복음주의의 산증인이 보는 21세기 복음주의


존 스토트에게 2001년은 좀 특별한 해였다. 4월에 80세 생일을 맞이하였고, 두 권으로 된 자신의 전기 후편이 출판되었고(John Stott: A Global Ministry (IVP) by Timothy Dudley-Smith), 첫 편 John Stott: The Making of a Leader는 50년대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1999년에 출판되었다.), 또 최근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을 염두에 둔 저서 <The Incomparable Christ>도 2001년 11월에 출판되었다.

기자는 11월 13일 오후, 자신이 평생 목회한 교회인 올소울즈 랭함플레이스(All Souls Langham Place)에서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존 스토트의 집을 방문했다. 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위치가 주요 대사관들이 모여있는 런던의 가장 중심가(한국으로 치면 서울 세종로 부근?)이긴 하지만, 집의 내부 구조와 규모는 여느 살림집과 다를바 없었고, 실제로 그가 쓰는 공간은 좀 옹색하단 느낌이 들 정도로 자그마한 서재와 침실이 전부였다. 서재의 책상과 가구들도 손때가 묻은 오랜 것들이었다. 책도 생각보다 적었는데, 듣기로 자신의 책은 거의 런던 인스티튜트(London Institute for Contemporary Christianity)의 도서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연구를 돕는 코리(Corey)란 젊은 청년과 그의 책 서문이나 감사의 말씀에 자주 등장했던 비서 프란시스 화이트헤드가 가사일과 비서업무를 돌봐주는 것 같았다.



랭함 파트너쉽(Langham Partnership)

지난번 9월말 브리스톨에 오셨을 때 사실은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그때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 10여 차례 이상의 강연일정을 소화하느라 강행군하고 있는 걸 알았기에 기회를 미루었습니다. 현재 건강은 어떠신지요?

걱정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사실은 3년 전부터 제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운전도 못하게 되었고, 걷다가도 가끔 엉뚱한 곳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브리스톨에서 넘어져 왼쪽 다리 전체가 멍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서, 남미와 캠브리지에 사역차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존 스토트는 사실 대단한 건강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널리 알려진 취미인 ‘새 관찰(bird watching)’은 사실 낭만적인 여가선용이 아니라, 하루종일 험한 야외를 돌아다니고, 절벽을 오르는 강행군이라서 멋모르고 따라나선 이들은 낭패를 보기 십상이란다.)


아직도 랭함 파트너쉽을 위한 여러 차례 국내 투어가 예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랭함 파트너쉽에 그렇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랭함 파트너쉽(Langham Partnership)>은 원래 제가 관여하던 <복음주의 문서선교재단(Evangelical Literature Trust)>과 <랭함 장학기금(Langham Trust)>을 금년도에 하나로 묶은 것입니다. 앞의 재단은 71년부터 싼 값에 신학서적을 제3세계에 공급해주는 일을 하고 있고, 후자는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제3세계 출신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만 현재까지 75명이 박사과정을 마쳤고, 45명이 학위과정 중입니다. 이들 외에 38명이 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7명은 신학교 학장이고, 28명이 신학교수를 하고 있고, 16명이 신학교에서 보직을 맡고 있으며, 9명은 대학교수이고, 그 외에도 다들 자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저술을 통해 얻는 모든 수익은 이 사역에 들어갑니다. 사실 저는 교회에서 받는 돈으로도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저술 수익이 제게는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이제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의 후원자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네 지역이 참여하고 있는데, 앞으로 홍콩, 싱가폴 등지에서 지부 개척을 기대합니다. 바라기는 곧 한국의 복음주의자들 중에서도 참여하는 분들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여러 사역이 랭함 파트너쉽으로 통합된 데는, ‘존 스토트 이후 시대’를 위한 대비의 성격도 있다. 그가 지금 영국 전역을 다니며 이 사역을 위한 컨퍼런스를 조직하는 것은, 그의 사후 이 사역의 순항을 위한 후원구조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것과 더불어, 신임 대표로 임명된 크리스 라이트(Christopher Wright)의 위상과 역할을 전국적으로 다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크리스 라이트는 캠브리지 출신 구약학자로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IVP)> 등을 통해 구약윤리에 복음주의 학자로 중요한 기여를 한 바 있고, 선교훈련기관으로 유명한 올네이션즈 크리스찬 칼리지(ANCC)의 학장을 역임했다.)



전쟁과 평화

(인터뷰를 하던 무렵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후 아프카니스탄에 폭격을 한참 가하던 시점이었다. 그의 병역면제 얘기부터 먼저 풀어보았다.)


전기를 통해 보면, 당신은 2차대전 개전직전 목회의 소명을 느끼고 캠브리지의 리들리 홀(Ridley Hall)로 진학하였고, 이 과정에서 군의관 출신이었던 아버지와 여러 개인적 어려움을 겪었고, 행정적으로도 힘겹게 병역면제를 받았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Conscientious objector)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독교 역사를 통해볼 때 두가지 전통이 늘 있어왔습니다. 하나는 평화주의(Pacifism)로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입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전이론(Just War theory)이라는 것으로, 어떤 상황에서는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전제해둘 것은,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불과 전쟁 한달전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저는 산상수훈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과 전쟁은 양립할 수 없다는 확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내 주변에는 정전이론(Just War theory)같은 생각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닙니다.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위한 재판에 나간 적이 없고, 그 당시 일종의 공익을 위한 대체복무를 한 셈입니다. 즉, 목회후보자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제도의 적용을 받은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는 병역거부가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당신은 캠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이듬해에 바로 전쟁에 대한 입장을 수정했고, 그것은 <현대사회 문제와 기독교>에 잘 반영되어있습니다. 즉, 현재 당신의 신학적 입장은 정전이론인 것 같습니다. 평화주의는 그렇다면, 이상에 불과한 것입니까?

정당한 전쟁(Just War)을 믿는 이들은 대략 일곱 가지정도의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원인이 정당해야 하고, 적절한 전쟁선포가 있어야 하고,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무력은 통제아래 사용되어야 하며, 민간인을 공격목표로 삼지 않고, 무차별적 무기 사용은 피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물론 현대전의 속성상 이런 조건들이 점점 더 충족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젊은이들이 이런 문제를 고민할 때, 정전이론의 조건들을 우선 숙고해보기를 권하며, 그런 연후에 과연 하나님이 자신을 평화주의로 부르셨는지, 아니면, 정전이론이 유효한 것인지를 결정하기 바랍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요즘의 상황에 미루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에 대해 갖는 태도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어야 할까요?

조지 부시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총리 등 국제정치 지도자들의 주변에 정전이론이 제시하는 제한적 조건들을 잘 이해하는 기독교 조언자들이 있어서 이런 부분들을 늘 상기시켜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조언이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군사적 해결보다 정치적 해결을 가능한 빨리 찾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나는 미국이 왜 여러 제3세계국가들에서 그토록 인기가 없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고통스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봅니다. 왜 빈 라덴이 이런 지역들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되는지, 왜 미국의 재난에 환호하는 이들이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복음주의를 보는 두 시선

(영국 교회는 크게 보아 성공회(Anglicanism)로 대표되는 국교회(Conformist)와 그외 모든 교단교파를 일컫는 비국교회(Non-Conformist)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는 예전(liturgy)과 교회의 위계(hierarchy)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가진 교단들이 있다(카톨릭에서 오순절 교단, 퀘이커, 침례교, 형제회, 가정교회 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복음주의 운동은 이런 경계를 넘어 영향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존 스토트에게 영국 복음주의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국 복음주의에 대해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같은 이는 매우 긍정적 어조로 묘사하고 있고, 특히 성공회내의 복음주의자들의 급신장을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전기를 썼던 이안 머리(Ian Murray)는 <Evangelicalism Divided (Banner of Truth, 1999)>에서 자유교회(Free Church)적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성공회가 복음주의화 된 것이냐, 아니면 복음주의가 성공회화 한 것이냐는 의문을 갖게된다고 합니다.(Anglicanism evangelicalized, or Evangelicalism anglicanized?) 어느 쪽이 맞게 본 것입니까?

자유교회측이라고 다 이안 머리에게 동의하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안 머리는 소위 로이드 존스를 대표로 하는 분파적 입장(fraction)을 반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1966년에 있었던 로이드 존스와 본인의 의견충돌에서도 그랬듯, 로이드 존스는 매우 분리주의적 교회론(separatist ecclesiology)을 갖고있습니다. 그는 복음주의자들이 교리적으로 불건전한 교단을 떠나 정화되기를 원했습니만, 저를 비롯한 성공회의 많은 이들은 성공회가 공식적으로 복음의 기본진리를 부인하지 않는 한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교단이나 단체가 완전히 복음을 떠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분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그 교단은 더 이상 기독교이기를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물러나올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현재 성공회 내에 공공연히 이런 진리를 부인하는 입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긴 하나, 저는 성공회가 아직 그런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존 스토트의 전기에 보면, 그는 자신이 어느새 복음주의의 교리적 수호자로 비추어지게 된 것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로, 로이드 존스와 격돌하였던 교회론의 문제, 역시 로이드 존스의 호의적 반응과 대조를 이루었던 성령세례와 관련된 입장표명, 영혼의 멸절로 지옥을 이해할 수 있다는 최근의 제안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는 많은 논쟁과 쟁점을 중심으로 전형적이지만은 않은 복음주의적 노선을 수립하려는 작업이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최근 저서인 <Evangelical Truth>를 비롯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합(unity)에 대한 강조를 반복적으로 해오셨습니다. 연합이 원칙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현재 복음주의 운동에 있어 이 문제가 절박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까?

기본적으로 이것은 성경의 원칙입니다. 신약에서 볼 때, 연합과 교제에 대한 성경의 강조가 분리와 이탈보다 훨씬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하나됨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라는 강력한 호소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차적 중요성입니다.


복음주의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가장 중요한 도전은 무엇입니까?

신학적으로는 교리적 차원에서 다원주의의 대두를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의 중심성에 대한 강조가 날로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런 상황이라고 봅니다. 좀더 일반적 도전은 어떻게 이 나라를 재복음화할 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알다시피 영국은 매우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전통적인 전도방법은 일부분에서는 성과를 얻고 있지만, 한 국가를 돌이키는 수준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로잔운동과 관련해서

1974년 시작된 로잔운동은 그 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왔습니다. 최근 로잔이 몇 년후 다시 대회를 갖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로잔이 마닐라 대회 이후 복음주의 운동내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잃어버리고, 그 특징적 관심이었던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통합력도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로잔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런던 인스티튜트 설립 이후 더 이상 로잔에 관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로잔의 미래를 논할 입장은 아닙니다. 저는 로잔이 모든 걸 잃어버렸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로잔운동의 주요 선언문들을 편집한 <Make Christ Known>이란 책을 보았습니까?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로 시작해서, 마닐라선언(Manila Manifesto)으로 마무리되는 그 책은 그 사이 15년간 있었던 약 여덟 번의 크고 작은 논의들을 잘 집약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문화, 동질집단 원리, 사회참여 등) 제 생각에는 로잔운동은 두 번의 대형 집회만큼이나 이런 작은 논의들을 통해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잔위원회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로잔의 활동은 지역단위로 많이 이관되었습니다. 국제적 활동이 줄었다하더라도, 지역단위나 국가 단위의 활동은 활발히 일어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닐라 대회이후, 미국 쪽의 다수 그룹은 로잔에서 분리되어 나와서 AD2000운동을 구성하였습니다. 이것은 로잔이 추구하던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란 정신이 다시 두 개로 쪼개졌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비록 로잔이 AD2000운동을 지원했고, 호의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긴 했지만, 이 운동으로 일부 주요 그룹들이 떨어져 나갔고, 열의가 많이 식었습니다. 그러면, AD2000운동의 현재는 어떻습니까? 이미 2000년은 왔다가 지나갔습니다. 그 운동도 더 이상 활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시 로잔을 중심으로 다시 함께 모임을 갖겠다는 건 아닐까요?

아마도 그럴 수 있겠지요. 어쨌든 저는 더 이상 그 운동의 내부에 깊이 참여하고 있지 않으므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란 예언을 하기는 힘들군요.


(존 스토트를 빼고 로잔운동을 논할 수는 없다. 혹자는 로잔운동이 미국의 재력과 영국의 두뇌가 결합한 작품이란 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과거 로잔운동에 기대를 걸었던 제3세계권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서구의 통합적 선교학자들이 로잔의 미래에 대해 비판적 혹은 비관적 시각을 내보이는 것을 몇번 경험했다. 존 스토트가 마닐라 대회까지의 성과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이런 평가를 일정정도 의식하고 말을 아낀 연유일까? 최소한 AD2000운동은 그리 긍정적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존 스토트와 찰스 시므온

오늘 서점에서 당신의 책 <The Incomparable Christ>를 보았습니다. 그 책에 언급된 폭넓은 독서량과 당대적 관심에 말할 수 없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 책은 2000년 11월 런던강좌에서 했던 연속 강의를 모은 것입니다. 신약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과 교회사 속에서 나타난 모습들, 현대 사회에서 보는 시각들을 서술함으로써 과연 예수는 누구인가를 재조명하는 시도였습니다. 예수의 독특성을 다시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전기에 보면 흥미로운 관찰들이 많이 들어있는데, 저자인 티모시 더들리-스미스는 당신과 18세기말 캠브리지의 찰스 시므온(Charles Simeon)을 비교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좀 과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점을 꼽으라면, 첫째로 우리 둘다 강해설교를 강조했는데, 이는 설교자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성경이 무얼 말하고 있느냐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둘째는 학생사역에 대한 관심입니다. 찰스 시므온은 평생 캠브리지 대학에서 목회를 하면서 대학생들을 바로 세우는 일에 헌신했었습니다. 셋째는 그나 나나 모두 싱글로 살았다는 점입니다.(웃음) 넷째로 우리는 평생 한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그는 54년간 캠브리지 홀리 트리니티 교회의 목회자였고, 저는 60년이상 올 소울즈 교회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한 강해설교자요, 목회자입니다. 그는 나의 영웅입니다. 아마 올라올 때 계단에 그의 그림이 걸려있는 걸 보았는지 모르겠군요.


(존 스토트와 찰스 시므온의 공통점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존 스토트가 평생 주교, 대학 학장 등 여러 가지 명예로운 직책에 대한 욕심을 떨쳐 버리고, 오직 목회에만 전념한 것이나, 책의 인세를 자신이 갖지 않고 재단을 통해 선교적 목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대목을 기술할 때마다 그의 전기는 찰스 시므온의 전례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 살 수 있는 삶의 영웅을 지닌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존 스토트와 한국 관련한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여러 목회자들과의 우정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한국 방문중 조류 연구가 윤무부 박사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새를 관찰한 것은 매우 인상깊은 추억이었던지, 서해안 질발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그의 전기 둘째 권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 10년쯤 전에 영국서 그를 직접 인터뷰해서 <복음과상황> 2002년 1월호에 실었던 기사. 그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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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주의2011.07.07 13:18


* 이 내용은 2011.07.06 미국 시카고의 KOSTA(Korean Student Abroad)에서 강의한 내용 요약 자료입니다. 


1. “복음주의(Evangelicalism)” 정의하기

1) 역사적 궤적: 좋은 소식(good news)을 뜻하는 ‘유앙겔리온(euangelion)’에서 용어가 비롯됨. 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특성이 확립되고, 20세기의 ‘근본주의 대 자유주의’ 논쟁을 통해 다시 한번 부상한 신앙운동.

2) 정의하기
- 데이빗 베빙턴: 행동주의(activism), 성경주의(Biblicism), 회심주의(conversionism), 십자가중심주의(crucicentrism)
- 존 스토트: ‘성경의 사람들, 복음의 사람들(Bible people, Gospel people)’

3) 영어권 세계의 현상(Alister McGrath):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양상의 발전과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4) “복음주의는 무엇이 아니다”란 부정적 규정(anti-Catholic, anti-Scholasticism, anti-Liberalism, anti-Fundamentalism, anti-Communism, etc.)은 이제 스스로의 가치를 자기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 


5) 6가지 복음주의의 특징 (Alister McGrath)[1]
- 첫째, 성경의 최고 권위(The supreme authority of the Scripture)
-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The glory and splendor of Jesus Christ)
- 셋째, 성령의 주권(The sovereignty of the Spirit)
- 넷째,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The necessity of personal conversion)
- 다섯째, 복음전도의 우선권(The urgency of evangelism)
- 여섯째,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the Christian community)
(알리스터 맥그라스,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한국장로교출판사, 1997), 58.)



2. 한국 복음주의(Korean Evangelicalism)

1) 한국 복음주의의 기원 
- 선교사로부터 유래(19C-20C): 미국의 SVM(Student Volunteer Movement), YMCA(cf. John Mott’s visiting) 등 미국 부흥운동의 후예들. 주요 교단의 형성으로 연결. 광범위한 의미의 보수신앙(conservative faith against liberal faith) 형성으로 귀결.

- 대학생선교단체 유래(60s): IVF(56), CCC(58), UBF(61) 현재 한국의 복음주의 대중이 직접적으로 기원을 갖는 신앙운동. 행동양식, 사고방식, 성경이해, 신학적 지향 등에 직접적 연관.

2) 세가지 단계: 수렴과 분산(Convergence and Divergence)
(1) 교단 분열 (50s-80s): 민주화 운동에서 NCC의 역할. 이 시기 대학생선교단체는 한국 토양에 뿌리내리는 시기. 기성 교단들은 주로 분열을 경험하였고, 한국교회는 크게 보아 확장을 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분열 양상이 고착되었다. 

(2) 복음주의 수렴현상(Evangelical Convergence, 80s-90s)
- 교회 성장과 더불어 교회 지도자들 간의 협력적 네트워크 형성(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남서울교회, 지구촌교회 등)
- 연합운동의 등장: KOSTA(Korean Students Abroad, 86), 선교한국(Mission Korea, 88), 학원복음화협의회(KCEN, Korea Campus Evangelization Network, 89) 외 성시화운동 등 여러 지역적, 전국적 네트워크의 등장.
- 교계연합기구의 부침: 교회협의회(NCCK)의 몰락 vs. 한기총(CCK)의 대두

(3) 분산(Divergence, 2000s 이후)
- 크게 보아 복음주의 교회들의 성장과 성공 그 자체가 위기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지역교회는 세대교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이고, 신학교들, 연합기구는 
특히, 교회 리더십의 세대교체란 시기적 취약함과 맞물려 다양한 안팎의 문제들이 한국사회에서 개신교에 대한 호감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문제가 “좌파 대 우파”의 정치이슈로 변질되고, 신학교나 기독교 학교의 ‘자유주의 대 근본주의’ 논란은 내부정치를 수행하는 권력게임으로 종종 사용되었다.
- 대중적으로 ‘합리성’을 무시하고, ‘종교성’에 집착하는 현상들이 상당히 강한 존재감을 형성하고 있다: 은사운동(예언, 방언, 치유 등), 공격적 선교운동 등 

3. 평가(Evaluation)
1)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할 언어가 필요하다(무엇이 아닌가, 혹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그리고 독자적인 라이프스타일의 개발이 필요하다 (Modus Vivendi , Mode of Life). 

2)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는 사회적 적합성(social relevance) 문제를 동반한다: 교회활동의 강도, 빈도, 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과거 복음주의를 특징지었던 그 ‘행동주의’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3) 내적 갈등과 긴장을 회피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으나(eg. anti-Christian, Islam-phobia, anti-Communism, etc.), 자기성찰(self-reflection)에는 실패하고 있다. 전형적으로 남에게 손가락질 하는 양상이 전개된다. 이것이 인문학 공부나 사회적 활동이 증가하는 이유이다. 

4. 몇 가지 제안(Some suggestions)
1) 미래를 향한 과감한 내딛음이 필요하다: 과거의 랜드마크는 기울고 있고, 저물고 있다.

2) 설득력 있는 대안은 다음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 21세기의 삶의 상황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복합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와 세계관이 필요한 상황이다. 
- 교회를 위한 대안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동시에 포함하여야 한다. 나이브한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 진리의 ‘수행적 유효성(performative validity)’을 이해해야 한다: 진리 주장의 입증은 선포가 아니라, 그것의 수행적 가치나 효과로 입증된다. 즉, 사랑의 주장은 사랑의 선언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참고자료(Bibliography)

알리스터 맥그라스,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한국장로교출판사, 1997)
존 스토트(김현회옮김), 복음주의의 기본 진리: 연합, 온전함, 신실함을 향한 개인적 호소 (IVP, 2002).
David Bebbington, 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 A History from the 1730’s to the 1980’s (Boston: Unwin Hyman, 1989) = 영국의 복음주의: 1730-1980 (한들, 1998)
복음과상황, 복음으로 상황을 바라본 4인의 시선: 이만열, 손봉호, 김진홍, 홍정길 (복음과상황, 2011.06 특별호).

양희송의 주요 원고들은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다. 
- 블로그: http://post-evangelical.tistory.com
- 싸이클럽: http://evangelical.cyworld.com 
- 청어람: http://www.bluelog.kr 

양희송, “너희가 복음주의를 아느냐” (복음과상황, 1999.01)
-----, “청년운동, 돌아보기와 내다보기” (복음과상황, 2004.01)
-----, “포스트-2007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복음과상황, 2008.08)
-----, “한국교회는 누가 대표하는가?” (복음과상황, 2010.05)
-----, “한국교회에 없는 것” (청어람 메일. 2010)
-----, “평신도에게 신학을 돌려주라” (Seize Life, 2009.08 통권 제3호)
-----, “‘신앙의 로맨스’가 ‘지성의 스캔들’이 되지 않으려면: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서평” (목회와신학, 2010.10)
-----, “한국 복음주의 지성운동의 현실과 과제” (복음과상황,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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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주의2010.11.26 17:02



교회2.0 컨퍼런스 : 가나안 성도 (양희송 /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지난 2010년 11월 22일(월)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교회 2.0"에서 발표한 프리젠테이션 자료입니다.


'가나안 성도' 관련 참고할 논의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좌담 "가나안 성도여, 헤쳐모이자?" 복음과상황 (233호, 2010.03)

2. 정재영 "가나안 성도, 그들은 누구인가?" 바른교회아카데미 2010년 연구 프로젝트 논문

2010project_Canaan1.pdf

 3. 조성돈 "가나안 성도로 나타난 한국교회의 종교성과 나아갈 방향" 바른교회아카데미 2010년 연구 프로젝트 논문 

2010project_Canaan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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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주의2010.09.30 21:46

2010.10 <목회와신학> 서평



 

 

“‘신앙의 로맨스지성의 스캔들이 되지 않으려면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양희송(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마크 놀은 27년간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대학인 휘튼(Wheaton College)에서 가르치다가 현재 노트르담 대학의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미국 복음주의 연구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학자이다. 그는 이 책은 상처 입은 연인이 보내는 편지(25)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미국에서는 복음주의자인 동시에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25)고 고백하며 책을 시작한다. 나는 이 문장을 오늘날 한국 개신교 안에서 동일한 열패감을 느끼는 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으로 읽는다.

 

2.

이 책은 일관되게 복음주의 지성에 어떤 스캔들이 일어났는가?란 질문을 반복심화하며 묻고 있다. 이 질문 자체가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 미국의 복음주의는 최고로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미의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 르네상스란 용어까지 써가며 양과 질의 측면 모두에서 복음주의운동이 기독교 신앙운동으로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대단한 기반을 확보했음을 한참 상찬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성의 스캔들을 겪고 있다고, 기독지식인으로서 심각한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실망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스캔들의 핵심이 복음주의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29)이라고 말한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현상적 대성공을 거두는 가운데, 지성을 경시하는 풍토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고, 현실이 이러한데도 전혀 위기의식마저 갖지 않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절망적이었다는 얘기다.

 

3.

그는 이런 지성적 스캔들이 문화적(cultural), 제도적(institutional), 신학적(theological)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복음주의 정신은 세상에 대한 진지하고 주의 깊은 성찰을 중시하는 문화를 배양하기 보다는 행동주의적(activist)이고, 대중주의적(populist)이고, 실용주의적(pragmatic)인 태도를 양산했고, 이로 인해 창조과학이나 묵시적 종말론 등의 단순화된 현실인식에 쉽게 함몰되었다는 것이다. 제도의 차원에서는 대중적 언론은 있을지 모르나, 진지한 학술지 하나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는 상태이며, 엄청난 수의 신학교나 기독대학들이 있으나, 그 깊이는 놀랄 정도로 얕으며, 정상급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와 연구기관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파악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무슨 의도적 반지성주의의 조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런 반지성주의는 복음주의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 최상의 선의와 최고의 노력을 바친 결과 만들어진 역설적 열매인 경우가 많았다. 마크 놀은 이런 방식으로 미국의 건국 이래 미국 역사 속에서 복음주의가 점점 지성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궤적을 규명해 내었다. 오랜 종교전쟁을 치른 종교이민자들로 시작한 미국 초기 역사는 신대륙에 기독교정신에 기반한 국가 하나를 만들어보자는 것으로 단순히 요약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미국의 복음주의는 부흥운동, 혁명, 계몽주의란 당대의 세계적 흐름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교섭하며 등장하였다고 지적한다.

 

마크 놀은 이를 세세히 정리해나가면서 부흥운동은 대중의 정서에 직접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리더십을 촉발하였고, 이것이 전통교회의 약화를 불러와 결국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즉각주의(immediatism)란 복음주의적 인간형의 등장을 초래했다고 보았다. 이는 복음주의가 지성적 성찰과 면밀한 검토보다는 당장 사람들의 헌신을 이끌어낼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대중운동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수정헌법 제1조의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의 자유는 확보하였으나, 교회간에는 회심자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종교시장적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는 미국 최고의 지성인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꼽히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적 유산이 어떻게 후대 복음주의자들의 반지성적 면모에 기여하게 되는지, 계몽주의의 유산과 적대적 거리감을 갖고 있던 복음주의가 어떻게 역설적으로 계몽주의를 내면화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도 면밀하게 분석해 놓았다.

 

4.

한편, 신생국가였던 미국을 개신교 기반에 세우기를 원했던 광범위한 소망의 결과 미국이 채택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노선은 곧 신앙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쉽게 동일시되었다. , 공화주의적 정치체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계몽주의적 사회문화 등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기독교적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적으로 정당화되는 내면화 과정을 밟아 정착되었다. 그 결과 복음주의적 대중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체제를 너무나 자명한 기독교 체제로 인식하였기에 지성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생소하거나 불필요한 작업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미국인들이 종종 외부인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비판적 태도나 부정적 평가에 낯설어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제는 고스란히 기독교로 소급되거나, 성경적으로 환원가능한 것이라 여기는 관행이 엄청나게 거대한 저변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모든 흐름은 19세기 후반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대두로 이어진다. 마크 놀은 앞 세대의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과 더불어 미국의 근본주의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자로 이 시기를 대표 짓는 이슈들과 인물들을 검토해나가면서 복음주의의 형편을 앞뒤로 잘 분석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원숭이 재판으로 알려진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의 추이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재판이 단순히 신앙과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시의 대중주의(populism) 전통의 유력정치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결합하게 되었고, 그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함의와 파장은 어떤 것이었는지 제대로 소개받을 수 있다. 아울러 성서무오론의 등장 배경과 논쟁구도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재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분석은 적실하고, 문체는 통렬하다. 지성의 문제는 단순히 경건한 신앙에 추가로 요청되는 장식품이 아니란 것이다. 지성이란 자신들이 믿는 바에 대한 심화된 자기 이해와 세계 이해,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된 삶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할 신앙적 과제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는 결코 신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십자가가 스캔들이 되는 것은 지성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위 인간들이 지성이라 일컬어온 것들을 상대화시키고, 무장해제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 후반부 장들에서는 비로소 미국 복음주의에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드리운 반지성주의의 흐름을 넘어서려는 희망의 몸짓들이 소개된다. 근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이 등장한 것, 주류 교회들 내에서 소통 가능한 학자들의 등장, 화란개혁주의자 등 이민교회 공동체의 기여, 저명한 학자와 저술가들에 의한 영국 복음주의권의 지원 등을 통해 지성적 노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복음주의자들의 학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성찰적 움직임이 대두되면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 걷혀질 가능성을 보았다.

 

5.

15년 전의 분석이 오늘날의 미국 복음주의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마크 놀은 이번 새 번역판을 위해 2009년 말에 한국어판 서문을 썼다. 그는 거기에서,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은 즉각적 행동과 결단을 강조하는 즉각주의(immediatism) 경향이 강하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보다는 지지자의 수를 늘려 상황에 주도권을 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현실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보다는 이를 영적으로 환원하는 이원론에 쉽게 동조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지성 양성 프로그램보다는 전도나 구호 프로그램에 재정지원 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고, 또한 종말론적 공상에는 쉽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한편, 정치화된 신앙(politicized faith)의 손쉬운 먹이감이 되어서 냉정한 정책판단보다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언행에 선동되어 왔다는 것이다. 여전히 문화예술 영역의 성취는 보잘것없고, 과학의 영역에서는 창조과학을 최선으로 여기는 지적 자살에 가까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았다.

 

다만, 그는 과거 본문에서 희망적 사례로 제시했던 내용을 한국판 서문에서 좀더 명료하게 정리하여 7가지를 긍정적 징후로 꼽았다. 첫째, 가톨릭과 복음주의 사이의 교류가 활성화 됨으로써 상호 자극과 지원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 둘째, 기독교 학문연구를 위한 기금의 조성과 그 열매(퓨 재단 기금). 셋째, 기독교 철학 분과의 두드러진 약진. 넷째, 복음주의 대학들의 학문연구에 대한 강조와 투자 노력. 다섯째, 미국과학협의회, 바이오로고스재단 등 창조과학 논쟁을 넘어선 기독교와 과학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 형성. 여섯째, 미국의 일반 대학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감이 확보된 것. 일곱번째, 기독교 출판의 질적 수준 및 지적 역량 강화 등이 그것이다.

 

마크 놀의 요약은 현재 미국 복음주의에 대한 개략적 평가로 매우 유용하다. 물론, 궁금증은 남는다. 그가 미국의 복음주의 대중들이 부시 정부의 선거캠페인에 동원되었던 일이나, 최근 오바마 정부의 등장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기 어렵다. 그가 창조과학에 대해 명료하게 비판하면서 그 이후 대대적으로 등장한 지적설계 운동 같은 것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등도 궁금한 채로 남는다.

 

6.

결국 이 책을 한글로 읽어갈 사람들에게 절실한 질문은 한국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가 되고 만다. 일차적으로 이 책의 분석틀과 소재를 한국 복음주의에 포개어 놓고 검토할 수 있는 부분이 꽤 많이 있다. 연구기관의 부재나 신학교의 학문적 폐쇄성 내지는 퇴행성은 쉽게 도출될 수 있다. 좀더 긴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한국의 복음주의 대중들에게 형성된 어떤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분석해내는 일이다. 나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뉴스는 단지 도덕재무장운동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실상 지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한국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넘어설 로드맵을 찾고 있다. 마크 놀의 책은 이런 근본적 모색을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정교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한국에 복음주의 지성의 르네상스는 적어도 이 책이 말하는 비판적 논점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기여를 꼽아보라면, 아마도 다들 복음주의 지성의 로맨스라고 여겨주고, 덮어주던 어떤 행태를 향해, 그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라고 눈 부릅뜨고, 하나하나 따져주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복음주의운동을 탄생시킨 바로 그 동력 자체에 비판적 검토를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거대한 성공이 곧 거대한 실패의 원인됨을 명료하게 지적해준 것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정도의 과감한 시도가 아니면 갱신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의 지적 패기와 명료한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10.09.30 21:21


               

 복음주의 지성 운동의 현실과 과제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 yangheesong@hotmail.com

 

마크 놀이 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IVP)이 새롭게 출판되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미국에서 1994년에 출간했고, 한국에서는 이듬해 번역 출간했던 책이다. 미국 복음주의가 어쩌면 가장 좋았던 시절에 복음주의권의 일급학자에게서 터져 나온 고발이자 경고였던 셈인데, 오늘 우리 상황에 울림이 크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오늘 한국 복음주의 지성에는 어떤 스캔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고, 이에 대한 우리 나름의 분석과 진단이 제출되어야 한다.

 

한국 복음주의 전반의 지성적 현실을 여기서 꼼꼼히 평가할 형편은 아니다. 몇 가지 주요한 고민의 윤곽을 내어 놓고자 한다.

 

 

1) 복음주의권에 ‘대중 지성’이 있는가?

 

복음주의 신앙인 대중이 접하고 향유하는 문화 풍토는 어떤 지적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 영역은 합리성을 결여한 주장을 스스로 걸러내는 자정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권위나 대세에 그대로 순응하는 경향이 주도적인가? 호흡이 턱턱 막히는 목회자들의 발언이 예사롭게 개신교 내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종종 암담하다. 저런 이야기를 멀쩡히 들어주는 대중들이 있으니 그런 언동이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강남의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의 교회에서 상상 불가능한 몰지각한 언동이 발생하는 것은 그 집단의 지적 파탄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성은 ‘정보를 많이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지성이라면 인터넷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지성은 ‘얻은 정보를 평가 판단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으로 확장되어야 마땅하며, 그런 면에서 지성의 미덕은 실천을 가능케 하는 용기에 있다고 본다. 오늘 한국 개신교에는 올바른 지식도 없고, 그 지식을 실천할 용기는 더더욱 없는 것 같다. 결국 대중지성은 빈약의 수준이 아니라, 파탄 난 상태처럼 보인다.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일차적으로 집단은 그 집단의 지도자 수준을 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 개신교의 대중 지성 몰락은 사실상 지도자들(대체로 목회자들)의 지성 몰락과 뗄 수 없는 문제가 되고 만다.

 

대중이 지식의 생산이나 유통의 적극적 주체가 되기에는 한계가 많다. 그러나, 그 말이 대중은 무지하거나 무능하다는 말과 같을 수는 없다. 한국 근대화 초기에 개신교인들은 가장 잘 교육받고, 합리적이고, 민주적 덕성을 일찍 흡수한 이들에 속했다. 지금 만약 개신교인들이 지적으로 편협하고, 정치적으로 퇴행적이고, 경제적으로 이기적이고,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면 그것은 한국 개신교가 걸어온 과정이 어떠했기에 대체 이런 상황이 되었는가 치열하게 되물어 보아야 할 일이다. 결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도 괜찮은 일은 아닌 것이다. 복음주의 대중이 지적 담론을 접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교회 예배에서의 설교 시간이나 성경 공부의 구조가 그간 어떻게 변해왔는가도 연구 대상이다. 대외적으로는 출판이나 언론 분야에서 이런 역할을 감당해 왔는데, 지금 이 영역들은 대중을 계몽하는 위치인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처지인가? 조직이나 구조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은 완전히 역전된 경우가 많다. 한국 복음주의에 대중적 지성을 고양할 전략은 대체 어떤 것이 가동되고 있는가?

 

 

2) 복음주의권에 ‘전문 지성’이 있는가?

 

‘전문 지성’이란 일단 직업군이나 내용면에 있어서 매우 지식 집약적이고, 사회적으로 상층부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이들을 칭하는 것으로 해 보자. 그런 이들이라면, 교회 나가는 이들 중에 쌔고 쌨다. 지금 대통령 이하 국정 전반의 책임 있는 위치에 개신교인들이 차고도 넘친다. 대학교수들의 개신교 비율도 아마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서울 강남의 개신교인 비율은 전국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고급한 고소득 직업군으로 가면 개신교 비율이 훨씬 올라갈 가능성이 많다. 복음주의권에 지식인이나 전문가 집단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과연 현재 해당 분야에서 등장 가능한 기독 지성의 최고치를 대표하거나, 양성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모임들은 단지 직업군으로 묶은 것이거나, 교제권이나 동호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일쑤고, 좀더 구체적으로는 해당 영역 종사자에 대한 목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이상을 잘 보지 못했다. 결국 신우회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나가기 어렵다. 대표적인 경우가 복음주의 학생 선교단체들이 ‘기독학사 운동’에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뚜렷이 등장하는 두 가지 필요, 즉 해당 분야 전문성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개발하고자 하는 욕구와 해당 분야 종사자들을 위한 목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사이를 방황하다가 대부분 살아남는 경우는 후자이다. 이유는 전자를 감당할 안팎의 전문 역량이 집결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고, 동시에 외적으로는 그 역할을 수행할 목회자 그룹의 진입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기 때문이다. 직장 신우회나 기독실업인회, 기독교수 모임, 기독출판인 모임, 기독연예인 모임 등에서는 사실상 유사 목회 구조가 가동되고 있다. 특수 목회로 여겨 지역교회 목회를 대신해서 이런 분야로 진출하는 간사나 목회자의 수도 늘고 있다. 그것 자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나, 그 결과로 어디에나 목회적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곳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 토론, 대화를 할 여지는 의외로 적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 치명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안으로는 목회 구조, 밖으로는 이해 집단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이런 기독 모임들의 일반적 모습이다. 아마도 기독 법조인, 기독 의료인, 기독 교사 등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구조적인 노력이 일어나고 있는 것 외에는 두드러진 예외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복음주의권의 노력과 시도들

 

복음주의 지성과 관련한 움직임들은 여러 층위에서 발생한다. 주변에서 파악되는 것들만 거칠게라도 정리해 보았다.

 

1) 학술 단체와 학술 모임

그 동안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학술 운동 단체로 여겨졌던 기독교학문연구소(기학연, 1984)와 (사)기독학술교육동역회(1984)가 지난 2009년 말에 조직을 통합하여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학연이 발행해 온 학술지 <신앙과 학문>이 2009년 말 학술진흥재단 등재지가 되었다. 이로써 이 단체는 학자들의 논문을 받기에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 학술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매우 전향적 상황이긴 하지만, 이런 조건이 과연 기독교 사회 전반의 지적 주도권을 형성하는 데에 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 학술계의 내부 정치로 정체되고 말 것인지는 냉정한 평가와 주목을 요한다.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은 예전 분당중앙교회 인재양성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해외 유학 생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여, 영문 신학학술지를 발간하는 등 매우 고급스런 신학 연구 및 학술 작업을 수행했다. 현재는 한국 기독교 초기 인물들의 전기 및 원전의 영역 간행 사업을 수년 째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신학 분야에서 전세계에서 공부하는 소장 연구자들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강한 편이고, 크고 작은 교회들의 과감한 재정 지원을 이끌어 내는 등 활동력도 좋아 보인다. 다만, 현재는 네트워크 유지와 출판 프로젝트에 역량이 전적으로 투입되다 보니 그 외의 활동 폭은 제한적이다.

 

정식적인 학술 단체로 꼽히기엔 아직 성급할지 모르나, 연구를 본업으로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이들의 모임이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인성모)은 주로 대학 강사나 소장 교수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으로, 아직은 매월 정례 모임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어 활동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례 모임 때 회원들의 논문 발표나 연구 동향 등의 리포트 시간을 갖는 등 인문학 공부를 매개로 하고 있는 현역 학자들의 모임이란 점에서 발전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연구집단 카이로스(CAIROS)’는 석사 재학에서 박사 수료 정도의 과정에 있는 연구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밀도 있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재야의 학술 단체 역할을 했던 ‘수유+너머’의 연구원 출신들이 함께 참여하는 덕분에 공부의 지향점이나 모임의 운영 방식에 있어서 유사점이 엿보인다. 주중에 회원들 및 외부 참가자들이 함께 다양한 세미나를 열고, 연구공간에 상주하면서 공부하는 스태프가 있다는 점 등이 특기할 만하다. 대체로 진보적 학풍을 갖고 있으나, 복음주의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서 복음주의권의 학술적 논의를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런 모임은 서울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크고 작게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의 ‘일상생활사역연구소’는 한국기독학생회(IVF)의 연구소 중 하나인데, ‘일상생활’이란 화두를 놓고 신학적 연구와 강연, 스터디 모임, 계간 학술지 발간 등으로 내실 있게 운영하고 있다. 아마 지역별로 특화된 그룹들이 꽤 있을 텐데, 차후로 지역 간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면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2)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

신학교나 기독교 대학의 현실은 한마디로 외화내빈이다. 주요 신학교 대부분은 이런 저런 학내 분쟁에 휘말려 교단 정치에 자의반 타의반 희생되고 있고, 교단 신학의 울타리 내에서 안전한 게임만을 반복하고 있다. 사회적 공론의 장에는 출전시킬 선수가 없다. 신학자들이 교회의 지성 역할을 해야 할 존재들이라 볼 때, 이는 곧 신학자들이 내부 정치에 묶여 대사회적 공적신학자(public theologian)의 역할은 거의 전적으로 포기하고 있음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현안에 대해 어느 교단 신학교 교수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학자적 소신을 드러내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뜨거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은 다 목회자들에게 돌아가 있다. 보수든 진보든 이 현실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신학자들이 다 자기 교단 목회 후보생 트레이너를 자임하고 있는 한 한국 교회의 지성은 신학자들의 무책임한 역할 포기로 인해 갈수록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신학자들은 목회의 기술이 아니라,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독교 대학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 흐름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편승하느냐가 대학 존립의 주요 과제가 되어 버린 한국의 대학 교육 현실이, 기독교 대학이라고 다르지 않다. 제1세대 미션스쿨인 연세대, 이화여대 정도를 제외한 후발 기독교 대학들은 연구 중심보다는 교육 중심으로 방향을 잡는 경향이 뚜렷한데, 이는 통속적으로 “미션스쿨들의 기독교적 건학 이념이 퇴색했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뚜렷한 기독교적 교육을 수행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결과이다. 그러다 보니, 교수 임용 정책, 학사 과정 운용, 학생 활동, 학생 모집, 학내 종교 활동 등의 제반 영역에서 대학이나 교수의 연구 업적이나 지성적 탁월성보다, 경건 교육이나 신앙적 동질성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식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적지 않고, 기독교 대학마저도 지성적 책무를 제대로 정의하지도 못하고, 수행하지도 못하는 아이러니에 처하게 되었다.

 

올봄에 출범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는 현직 신학교 교수들이 파트타임으로 참여하면서 시작한 실험적 교육 프로그램인데, 교단 신학 울타리로부터는 좀 자유롭되, 신학적으로는 균형감과 탄탄한 내용을 평신도 그룹에게 제공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모임의 출범으로 평신도의 신학 교육 수요가 적지 않다는 점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인데, 가르치는 교수들의 헌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조만간 해결되어야 할 관건이다. 그리고, 대안적 신학교까지는 이들이 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학 분야 이외의 영역에서 터져 나오는 필요에 대해서는 대책이 요원하다. 기독교 대학원대학교 설립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는 듯한 그룹이 여기저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장기 전략 차원에서 논의가 절실하다. 느헤미야는 이 논의의 마침표가 아니라, 시작점으로 평가해야 옳을 것이다.

 

 

3) 아카데미들

현재 활동 중인 아카데미 중 손에 꼽을 만한 곳으로 기독청년아카데미, 현대기독교아카데미, 청어람아카데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카이로스 정도가 꾸준히 세미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범주에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 운동은 이렇듯 대중을 위한 교양 강좌를 주로 하는 곳에서 대학원생 정도의 수준에 맞추어 학술적 세미나를 운영하는 곳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다들 재정이나 인력 운영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그룹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복음주의 운동이 당면한 학습의 욕구와 자기 성찰의 욕구가 목에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기존의 교회나 단체에서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한다.

 

기독청년아카데미(2004)는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공동체교회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주로 성경 강해, 교회사, 세계관 등 오랫동안 운영해 온 기본 프로그램을 학기마다 반복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때마다 기행을 가기도 한다. 매우 대중적이고, 참가자들의 상호소통이 활발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주로 자체 강사진에 핵심 역량을 의존하고 있어서, 배후의 공동체가 건재한 이상 운영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강좌의 내용을 새롭게 개발하거나 현안과 흐름에 따른 순발력 있는 기획을 만들어 내거나, 전문적 역량의 동원이 필요한 경우 등에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독교아카데미(2004)는 주로 신학적 주제를 다루는 학술적 강연이나 세미나를 개최한다. 해외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신진 혹은 중견 학자들을 꽤 폭넓게 강의자로 초청하고 있다. 신학이나 기독교 철학 등의 전공자들에게서 흥미로운 기획들이 자주 선보인다. 운영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인 것으로 보인다. 지속 가능성과 확장 가능성인데, 여기에는 재정이나 인력의 문제도 있고, 참여 대중을 어떻게 넓혀갈 것인가 등이 포함될 텐데, 다루는 주제들에 대한 강사의 비교 우위나 기획의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어람아카데미(2005)는 기독교 아카데미이면서도 신학 중심의 프로그램을 탈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기독 인문학을 지향하는 대중 강좌를 전면에 포진시키고 있고, 문화예술 강좌들이 매 학기 고정으로 제공된다는 점, 정치사회적 현안 이슈들을 그때 그때 신속하게 기획에 반영해서 대응한다는 점 등을 특색으로 꼽을 만하다. 일반 언론에도 노출빈도가 높은 편이고, 강좌 외에 복음주의 운동의 다양한 논의나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에 직간접적으로 허브 역할을 한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는 잘 발전되면 지식의 생산, 유통, 수용 과정 전체에 영향력을 갖는 매우 강력한 아카데미 운동이 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구상을 감당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인프라를 창출하는 것이 제일의 과제다. 올해 초 높은뜻숭의교회에서 분립한 이래 안팎의 구조들이 잘 정비되면 활동 영역이 대폭 확장될 것으로 기대한다.

 

 

4) 학술적 행사와 수련회 운동

상시 조직은 아니지만, 매년 정해진 시기에 열리는 학술 행사들이 있다. 연초마다 열리는 대학 및 대학원생 수련회 아볼로 포럼(IVF 복음주의연구소)이 올해 3회가 되었고, 매년 8월에 열려서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기독소장연구자 컨퍼런스’(청어람아카데미, 한동대 학문과신앙 연구소, IVF 복음주의 연구소 공동 주최) 역시 올해 3회가 되었다. 이런 장이 기독교 신앙과 제반 학문 분야에 대한 강의나 토론, 혹은 석박사급 이상의 논문이 발표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각 직능별 단체들도 이제 대학/대학원생 논문 발표의 자리를 점점 더 만들어 가는 것은 긍정적인 흐름으로 보인다. 그러나, 좀더 학술적으로 엄정하고, 학문적으로 이종교배가 가능한 장을 만들지 않으면 역시 우리끼리의 잔치로 그칠 수가 있다.

 

올해 5월에 만들어진 명동의 ‘연구공간 공명’(청어람아카데미, 인성모, 카이로스 공동 출자)은 개관 기념으로 ‘지식수련회’라는 것을 일주일간 진행했다. 오후에는 인문, 철학, 정치, 신학 등 분야별 세미나, 저녁에는 초청 강사들의 인문학 강연으로 진행된 독특한 수련회였는데,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전남대 철학과), 최창모 교수(건국대 문과대), 김오성(KSCF 총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강사들의 인문학 강의가 상당한 토론거리를 남겨 주었다. 전문영역별 기독교 단체들은 매년 혹은 격년으로 수련회를 연다. 비교적 내용과 틀을 잘 갖추어 진행하고 있는 곳으로는 기독법률가회(CLF) 수련회, 기독 교사들이 모이는 기독교사대회, 기독경영연구원 캠프, 기독의료인모임(CMF) 수련회 등이 있다. 이들은 전문분야의 대학생 및 해당 직종 종사자들의 직업윤리와 세계관 등에 대한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전망과 대안

쭉 나열해 놓고 보면, 상황이 나쁘지 않은 듯싶다. 앞서 복음주의 대중 지성과 전문 지성의 존재감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상황을 보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 법하다. 흐름이나 추세는 나쁘지 않다. 어떤 그룹은 내리막길이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조금씩 솟아오르는 조짐이 보인다. 전체적인 판세나 흐름에 대한 어떤 본능적인 감각은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낙관하기 힘들다.

 

결국 방향과 내용의 문제다. 그리고, 그것을 누가 수행하느냐의 문제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쪽이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보다는 문제 생산에 기여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즉, 인적·물적 자산이 현재 유력한 집단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원은 내리막길의 기울기를 조금 늦춰 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의 현실은 기독교 지성 운동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 체제를 유지하느라 우리는 너무 많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몰락을 막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는 냉정하게 현실을 평가하고, 미래의 대안을 만드는 쪽으로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반면, 대안을 모색하는 그룹은 아직 충분한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여건이 힘든 것은 인정하지만, 고군분투하는 것이 곧 진정성의 징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진정성만 있으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을 ‘잘’ 해야 한다. 인적 네트워크를 촘촘히 만들고,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는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는 넓고 읽을 책은 많다. 요즘 우리는 너무 안 읽는다. 필요한 재정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개신교의 세대교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지만, 두고 볼 일이다. 돈주머니의 교체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마도 세대교체는 허울뿐일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스스로 수평적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실험이 필요하다.

 

특히 대중과의 소통 채널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출판 영역과 매체가 중요하다. 기독교 출판은 현재 저자의 완성된 원고를 출판하거나 해외 저자의 책을 번역해서 출간하는 것 이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유행이나 주제에 맞추어 기획 출판을 하는 수준에는 현격히 못 미친다. 이런 상황이니 기독교 출판계가 의제를 형성할 내공이 없다. 베스트셀러는 소비적 측면의 현상일뿐 지성적 의제를 던지는 것은 되지 못한다. 일반 출판사들이 기독교 출판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기독교 출판계에는 위협이 될지 모르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로 반길 일이 될 수도 있다.

 

매체의 역량도 강화되어야 한다. 기독교 잡지, 온라인 매체 등이 다들 운영이 어렵다고 한다. 전반적인 매체 환경이 악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읽을 매체가 없다. 매체는 좀더 다변화되고, 전문화되어야 한다. 좀더 독자의 세분화된 감수성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변신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쯤에서 최근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열풍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매체 환경의 대격변이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셈인데, 이를 적극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그룹이 등장한다면 그러한 격변에 주도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테크놀로지 자체가 우리의 매체 환경의 구원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전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이 모든 노력은 기독교 신앙과 별개로 ‘지성’을 높임으로써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 그 자체를 새롭게 조망하고, 해명해 내야 한다. 대놓고 반지성과 몰지성을 주장하는 몰상식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종종 기독교 신앙에 응당 동반될 것이라 여겼던 교양과 상식이 깡그리 증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적지 않다. 우리의 신앙 자체가 지성적 요소에 적절한 자리매김과 위상 부여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복음주의 신앙의 형성 전통에 깊이 내재한 즉각주의(immediatism) 탓이 크다. 즉각적으로 결단하고 반응하기를 요구받는 개인 전도나 전도 설교, 부흥회의 분위기를 연상하면 빠르다. 따져 보고, 돌아보고, 살펴보고의 여지는 없다. 거의 직관적으로, 종종 정서적 고양 상태에서 단번에 결단에 이르러야 ‘옳은’ 것이다. ‘자발성’보다는 ‘사로잡힘’이나 ‘불가항력’의 경험이 신앙에서는 더 선호된다. 이것은 곧 ‘순수함’의 고양으로 이르고, 순수함은 곧 ‘단순함’을 의미한다. 이때 단순함은 인격적 단순함이 아니라, 종종 지적 단순함 정도로 환원된다. 복잡한 사안을 파악하지 못하는 단견은 이런 과정을 거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상찬할 어떤 자질이 되고 만다. 기독교 지성을 이야기하다보면 결국 우리를 구성해 온 신앙의 어떠함을 분석 대상으로 삼게 된다. 우리 자신을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먼저 갖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은 아마도, 그런 면에서 처절한 회개, 즉 자신을 돌아봄에서 출발해야 마땅할 것이다.

 

 

 

 

 

양희송 님은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로 창의적 담론운동을 이끌고 있다. <복음과상황> 편집장을 역임했고 싸이월드에 ‘복음주의 클럽’(http://evangelical.cyworld.com)을 개설하여 복음주의 관련 연구와 저술, 대중운동을 해나가고 있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10.07.11 22:34

* <복음과상황> 2001.09월호 '브리스톨 통신(15)'입니다. 오강남 교수의 저서 <예수는 없다>에 대한 비평과 더불어 그가 논의 근거로 활용하는 북미의 Jesus Seminar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들어가는 <뉴스앤 조이> 사이트에서 최근 캐나다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는 오강남 교수란 분이 쓴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란 책을 두고 혼전이 벌어진 것을 보았다. 한편은 그 책에서 비판적 고언을 들어보자는 입장이고, 다른 편은 그 내용은 종교다원주의적 관점으로서 도저히 기독교 신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란 것이다. 책을 쓴 저자의 이력을 보니, 나름대로 작정하고 쓴 책으로 보이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책을 구해다 보았다. 도착한 책을 보니, 5월 30일 첫 쇄를 냈는데, 7월 15일자로 7쇄째 찍은 것으로 되어있다. 기독교 관련 서적으로서는 예외적인 호응이 아닐수 없다. 이것이 현암사에서 꾸준히 책을 내어온 오강남 교수 개인에 대한 고정독자들의 호감에서 기인하는 것인지1), 아니면 최근의 논전으로 말미암는 것인지 나로선 알길이 없지만 이 책이 이미 책 깨나 읽는 사람들 사이에 ‘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수는 없다"의 미덕

아닌게 아니라, 책이 잘 쓰여진 것은 사실이다. 우선 저자의 한글 구사력은 수준급인지라 쉽게 읽히고, 막힘이 없다. 이런 정도로 맛깔나게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용된 비유와 우화들은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를 촌철살인의 씹는 맛이 느껴지도록 각색해 두었고, 전문적인 학자들의 논의는 그 뼈대만 간단히 추려서 난삽하지 않게 잘 소개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 자신의 광범위한 관심사와 인문학적 소양은 여러 다양한 자료에서 인용된 구절들에서 녹녹치 않게 드러난다. 웬만큼 인문학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기꺼이 사 읽을 만한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책머리의 ‘감사의 말씀’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맥들(총신대 서철원 교수, 김진홍 목사, 가수 조영남, 다수의 국내외 종교학자들, ...)도 흥미롭거니와, 그의 학문적 이력(서울대 종교학과를 마치고 캐나다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북미의 여러 대학에서 가르치고, 현재 리자이나 대학(University of Regina) 종교학과장으로 재직중)은 어설픈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검증된 자료와 논리에 근거한 논의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 책의 비판적 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전제할 것은 부제로도 달았다시피 필자는 ‘B급 복음주의자의 A급 종교학자 읽기’2)란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강남 교수의 논지에 대한 본격적이고도 체계적인 비판은 필자로서는 벅차다. 그리고, 오강남 교수도 이 책을 일차적으로 대중들을 위해 편하게 쓴 것이기에, 정색하고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것도 일견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필자는 그의 책에서 읽히는 몇가지 실마리를 통해서 저자의 논지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를 추적해보고, 그 맥락에서 비는 구석과 비약은 없는지 살펴볼 것이다.


왜 "예수는 없다"인가?

우선 오강남 교수의 기독교 비판의 맥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한때 가지고 있던 신앙내용을 진리 자체라고 하는 오해를 털어내고, 정신적 자라남이 무리없이 계속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2)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 문자주의(Literalism)에서 탈피해야 한다. 3)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고, 더욱 깊고, 의미있는 신관(神觀)이 생길 수 있다. 4) 이런 새로운 신관으로 예수를 새롭게 발견하고, 예수님을 무엇보다 함께 길을 가는 ‘길벗’으로 모시게 된다. 5) 그와 함께 길을 가면서 그의 마음을 품는 체험(Metanoia: 회개)을 하면 예수님처럼 완전한 자유인이 되고, 이 세상에서 진정 ‘남을 위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p.20)


오강남 교수가 자신의 기본 논지를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이다(p.35-36). 그는 그 이야기를 좀더 확대해서 만약 어린아이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말을 안했더라면, 아마도 신하들은 임금님의 옷이 왜 가장 훌륭한 옷인지를 성분 분석을 하고, 복식사를 찾아보면서 논문을 쓰고, 책을 펴내면서 마침내는 모든 백성에게 이를 가르치고, 백성들은 다투어 이를 열심히 배우고 있지 않겠나고 꼬집었다. 지성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이런 엉뚱한 얘기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고 질문한다.


이 비판은 그대로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향한다. ‘성경무오, 동정녀 탄생, 기적, 육체의 부활, 인간의 죄성, 대속, 예수의 재림과 심판 등을 무조건 문자적으로 인정하고 의심 없이 믿어야 잘 믿는 것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p.27)고 보고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 내용은 미국의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들이 20세기 초반 자유주의와 대립하면서 내걸었던 것들이고, 오강남 교수는 자신의 비판이 근본주의를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미국에서 그리고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서식하고 있는’(p.28) 근본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곳이다. 문제에 대한 진단이 이렇고 보니, 그가 보기에 한국 교회는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의 신앙발달 단계중 아직 독립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주어진 이데올로기나 권위에 따라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맞추려는 획일성을 특징으로 하는 삼단계에 주저앉은 것으로 파악된다3).


근본주의 비판과 복음주의가 선 자리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오강남 교수는 ‘근본주의’란 용어의 내용과 범주를 상당히 느슨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근본주의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의 근본(fundamentals)이란 이런 것’이라고 제시하고 나선 이들로부터 비롯된 명칭이다4). 이렇게 역사적, 신학적으로 규정되었던 특정 집단을 칭하는 용어가 최근 들어서는 기독교외에도 사회적으로 배타적 호전성을 보이는 종교나 태도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확장되었다5). 오강남 교수는 근본주의에 있어서 교리(혹은 경전)에 대한 문자주의적 순종이 사회적 배타주의를 낳는다고 진단한다. 일견 이는 타당한 분석이나, 좀더 들어가보면 문자주의적 신념이 곧 배타적인 사회성의 직접적 원인인가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문자주의적 신앙전제를 갖되 배타적 사회성을 띠지 않는 반례들 앞에서는 설득력이 약해진다. 예를 들면, 유사하게 성경의 가르침에 ‘문자적으로 순종’한 것으로 보이나, 그 사회적 행동양식은 정반대로 갈라진 십자군과 성 프란시스를 함께 근본주의 카테고리로 묶을 것인가? 기독교 역사에 불행을 몰고 왔던 사건들을 모두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의 문제의 파생물로 환원하기보다, 당대의 종교 ‘권력’의 문제, 즉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통찰에서 더 나은 설명을 얻을 수 있지는 않는가?


미국 기독교 내부적으로는 20세기 초반의 근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복음주의’가 파생되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다6). 오강남 교수에 따르면 ‘근본주의’가 미국과 한국 기독교 상황에서 두드러지는 현상(미국 20-40퍼센트, 한국 90-95퍼센트)으로서 서구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다고 함으로써(p.29) 대략 자신의 비판대상에 드는 이들의 범주를 암시했다. 그리고, 미국이나 캐나다의 주류 교단들의 신학적 입장이 근본주의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묘사함으로써 근본주의자들이 서구에서는 다수파가 아님도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국 기독교의 60-80퍼센트, 혹은 서구 유럽 기독교 인구의 대다수가 오강남 교수가 묘사한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자로 분류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국교회인 성공회 신자의 60퍼센트 이상이 복음주의자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분명 근본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범재신론자는 더더욱 아니다. 오강남 교수의 책은 근본주의자가 아니지만, 범재신론자도 아니라고 느끼는 기독인들을 논의 상에서 배제함으로써, 현실적 기독인의 분포를 왜곡한 채 ‘근본주의’냐, ‘범재신론’이냐는 매우 극단적인 대립구도로 논의를 몰고가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비판한 ‘냐냐주의(either/or)’에 함몰되고 있지, ‘도도주의(both/and)’의 지평을 보이지 못하는 것 같다.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와 자의식적으로 차별성을 갖는다. 그리고, 근본주의적 문자주의를 지양하면서도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삼는 정경으로 받아들인다7).


성불(成佛)하신 예수님?

오강남 교수는 ‘동정녀 탄생’, ‘기적’, ‘몸의 부활’ 등은 성숙한 현대인으로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사안으로 들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상징적 의미이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냐가 아니라고 했다. 특히 복음서의 이런 기술방식은 미드라쉬(midrash)란 유대 문학적 기술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미드라쉬(midrash)란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을 이야기할 때 옛날에 있었던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에 빗대어 묘사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p.204). 그러나, 미드라쉬적 방법으로 기술되었다는 것이 곧 인물이나 사건의 비역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각 사안별로 역사성의 문제가 논의되어야지, 미드라쉬 기법으로 쓰여졌으므로 역사성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자 단순화이다8).


오강남 교수는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독론(Christology)들이 상이한 배경과 관심사에 의해서 촉발되었다고 보면서, 오늘날을 위한 기독론으로 ‘성불(成佛)하신 예수님’이란 파격적 제안을 한다. 물론 ‘성불(成佛)’이란 내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파격의 수위도 결정되겠지만, 나도 그 제안이 그닥 나쁘다고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예수님도 ‘내가 곧 길이요’라고 하심으로 자신을 ‘도(道)’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또 ‘빛’이라 하심으로, 광명정도(光明正道)를 주창하신 것 아닌가. 단순히 표현상의 문제라면 별 시비거리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자신이 원하는 예수상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이는 포이에르바하가 오래전 비판했듯이 자신이 바라는 바를 신(혹은 종교)이란 이름으로 대상화하여 투사(projection)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오강남 교수는 이상적인 예수상을 상당부분 북미의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학자들의 작업에서 끌어오고 있다. 자주 언급되는 로버트 펑크(Robert Funk), 존 도미닉 크로산(Dominic Crossan), 마커스 보그(Marcus Borg), 존 스퐁(John Spong) 등이 그들이다9). 내게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작업도 오강남 교수가 직면한 것과 유사한 비판을 학계에서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 세미나

이 지면을 통해 ‘예수 세미나’를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복상 2001년 1월호, ‘역사적 예수가 달려온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연구와 톰 라이트’ 참고) 이들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고고학, 인류학, 사회학, 성서학 등의 학제간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를 통해 역사적 예수가 누구였는지를 파격적으로 재조명해내었다는 평가가 있는가하면, 다른 편에서는 자신들이 전제하고 있는 예수상을 도출하기 위해 자료나 연구 방법을 선택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학문의 외피를 입고 있을뿐 엄정한 연구가 아니란 평도 있다. 이 그룹의 실질적 리더인 로버트 펑크는 자신들의 연구가 근본주의가 상정하는 예수상을 깨고, 이 시대를 위한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밝힌바 있고, 그가 내어놓은 현대 기독교를 위한 21개 테제는 그가 지향하는 기독교의 상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10).


예수 세미나에 집중되는 비판의 주요한 내용은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론에 있다. 특히 예수 어록(the sayings of Jesus)의 진정성을 투표로 결정한 것이나, 그 결과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를 사복음서와는 별도의 예수 전승을 담고 있는 주요 어록으로 부각시킨 것이나, 여타 다른 외경들(베드로 복음서, 마가의 비밀복음 등)에서 초기 전승의 층을 뽑아내는 등의 작업이 상당부분 성서학 전반에서 견지하는 방법론적 합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11). 예를 들면, 도마 복음서의 경우,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것이 마태와 누가의 내용이 혼합된 후기의 저작으로 영지주의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반면, 예수 세미나 쪽은 이것이 가장 이른 전승을 담고 있고, 사복음서와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12).


이렇게 자료의 선정에 있어서 다른 신약학자들과 차별화된 만큼 그들이 그려내는 그림이 파격적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예수 세미나의 전형적 특성은 예수의 말과 행동에서 초자연적 층위(주로 기적)와 종말론적 내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13). 이로써 남는 것은 ‘무소유와 자유정신을 설파한 디오게네스에 비견될 견유철학자(Cynic)로, 혹은 지중해 연안의 농민현자(Peasant Sage)로서 촌철살인의 전복적(subversive) 가르침과 삶을 살았던, 그러나 어떤 정치적 프로그램이나 의도는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예수이다. 그러기에 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었고, 그런 자의식도 없었으며, 예루살렘 축제 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묘사된다14). 만약 예수의 진면목이 이러했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닐수 없다. 예수 세미나는 이런 위대한(?) 거짓말, 혹은 착각을 바로잡음으로써 기독교가 서야할 바른 자리를 찾아주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재구성에 대해 그 예수는 캘리포니아 근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건 아니냐는 냉소적 비평도 나왔고,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역사적 예수의 권위자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 교수도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는 일세기 갈릴리보다는 20세기 캘리포니아 출신같다’고 꼬집었다.


비교종교학자란 해석학적 위치

오강남 교수가 위에서 소개한 예수 세미나의 작업을 무작정 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교종교학자로 불교, 도교, 유교 등을 두루 섭렵한 저자가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는 예수상이 바로 예수 세미나를 통해 북미 대륙에서 대중화되어가고 있는 이 이미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일세기 팔레스타인에 집약된 정치-경제-사회적 충돌의 현장과 유대교(헬라 문화와 몇세기동안 교섭해오던)란 역사적 상황에 너무 몰입되지 않고, 인류 보편적 가치와 윤리를 설파하는 현자, 혹은 성인으로서의 이미지는 유연성이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비교종교학자란 해석학적 위치가 종교간의 상이성(相異性)보다는 유사성(類似性)을 중심에 놓게 할 것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가 될 일이기는 하나, 기독교 신학자들이나 성서학자들이 실제로 사료와 문서들을 놓고 연구할 때 견지하는 기본 전제들을 너무 쉽게 초월해버리고, 해묵은 학적인 난제를 너무 가볍게 해결해 낸다. 이를 일러 논리의 비약이나, 단순화라고 하면 당사자는 섭섭할지 모르나, 적어도 이 B급 복음주의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옛적에 알렉산더 대왕이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는 전설의 매듭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 매듭 앞에 서서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그 작업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칼을 뽑아 한번에 매듭을 잘라버렸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그가 그 매듭의 신탁을 비로소 성취했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그는 매듭을 잘라버렸을뿐 결코 푼 것이 아니다’는 냉정한 평가도 사라지지 않았다고도 한다. 예수에 대한 최근의 수다한 논의들에서 필자가 느끼는 심정도 비슷하다. 새로운 이론의 주창자들과 전복적 그림의 제시자들은 과연 예수의 신비를, 혹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예수를 보여주는 매듭을 비로소 풀어낸 것인가? 아니면, 성가신 매듭을 한칼에 끊어버림으로써 ‘어쨌든 다른 예수’를 보여준 것인가?


"예수는 없다"를 덮으며

저자 오강남 교수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느꼈을 답답함에는 나도 많이 동감한다. 근본주의적, 물신숭배적, 권력지향적 행태가 어떤 형태로든 뒤집어져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충정은 이해하나, 방향에는 동의되지 않는’ 나의 책읽기는 교회개혁의 과제를 둘러싼 실천적 고려와 맞물리면 한층 더 부정적 평가를 낳는다. 이 책은 복음주의권 내부에서 고민해온 이들에게는 한없이 불친절하다. 마치 한국 기독교 개혁은 이제 이 방향 외에는 길이 없는 것처럼, ‘근본주의’ 대 ‘범재신론’의 이항대립만이 유일한 선택사항인 것처럼 제시함으로써 한국교회의 개혁을 관전하는 외부인들과 그 내부 관련자들에게 오도된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예수는 없다는 그 부제처럼, 한번 ‘기독교 뒤집어 읽기’는 했지만 거기서 ‘기독교 바로 세우기’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겠는가에 의심이 가는 것이다. 교양삼아 즐겁게 읽긴 하지만, 심각한 실천의 근거로 삼기엔 치열함이 모자라고, 전선 설정은 참으로 관념적이다.


마지막으로 오강남 교수가 즐겨했듯이 나도 우화 하나를 각색해서 마무리에 갈음하고자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에 출연했던 아이의 뒷 이야기이다. 그 사건 이후로 본 것에 충실하게 증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낀 이 아이가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어느 집엘 방문했다. 긴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갔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또, 옷을 벗고서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아이는 임금님 사건을 상기하고서는 큰소리로 그들을 비웃었다. “아이 창피해라, 빨가벗은 줄도 모르고!” 이때, 아이의 뒤통수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다. 아버지였다. “이놈의 자식이, 목욕탕와서도 또 그 소리네!”


아마 그 아이가 한 행동은 일관성이 있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늘 동일한 효과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목욕탕에 와 앉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벌거벗은 줄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소리지른 그 아이의 행동은 성가실 뿐이다. 오강남 교수의 책을 덮으면서, 이 ‘B급 복음주의자’는 왜 그 아이는 목욕탕이란게 있는 줄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까가 정말 궁금했다.





1) 저서로 <노자 도덕경 풀이> (현암사, 1995), <열린 종교를 위한 단상> (현암사, 1996),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현암사, 1996), <장자풀이> (현암사, 1999). 번역서로 <틱냩한,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한민사, 1997), <귀향: 예수님과 부처님은 한 형제> (도서출판 모색, 2001) 등이 있다.


2) 필자를 B급으로, 오강남 교수를 A급으로 칭하는 것이 겸양의 차원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아직 신학공부중인 필자는 원전과 일차자료보다는 학자들의 이차 자료에 의존하고 있는 바가 많기에 스스로도 B급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오강남 교수는 그의 책에서 보이듯이 학자적 역량에서 A급으로 인정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A급 복음주의자들 중에 누가 나서서 그의 고급한 종교학적 논의에 격이 맞는 비판과 대화를 시도해주기를 기대한다.


3) 파울러의 육단계 신앙발달에 대한 간략한 요약은 p.49-55에 나와있다. 4단계는 ‘개성화와 성찰의 단계’로 자신의 신앙 내용에 대해 심각한 반성과 통찰을 하는 단계이고, 5단계는 ‘접속적 단계’로 이분법적 양자택일이나, 이항대립적 사고를 넘어서서 양극의 일치를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6단계인 ‘보편화의 단계’는 자아의 완성을 경험한 극소수 성인의 세계로 자유와 무애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이들로, 간디, 마틴 루터 킹, 테레사 수녀, 본 회퍼, 전 유엔총장 다그 함마슐드, 유대사상가 아브라함 헤쉘, 기독교 신비사상가 토마스 머튼 등을 든다. 오강남 교수는 함석헌 선생을 여기에 추가한다.


4)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 마크 놀(Mark Noll) 등의 미국 기독교 역사학자들이 근본주의에 대해 연구해 놓은 많은 성과를 참조하라.


5) 대표적으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에서 나타난 유사성에서 ‘근본주의’의 사회적 조건을 읽어내는 Gilles Kepel, The Revenge of God (Polity Press: Cambridge, 1994)등을 참고하라.


6) 물론 미국 복음주의 내부에 근본주의적 속성이 매우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은 7월호 원고 ‘복음주의 신학의 미래’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고, 현실적으로 ‘근본주의자’란 용어는 ‘극우파’ 등과 비슷한 기피 단어에 해당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실질적인 근본주의자들이 복음주의란 명칭아래 들어와 있을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 논의를 하면서 복음주의자들이 역사적으로 구별되는 실체였음을 인식하지 못한 이들은 자주 범주 설정의 오류를 지적 당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존 스토트, 자유주의자와의 대화(여수룬, 1990)이나, D.F. Wright가 복음주의 신학저널 Themelios(Vol.3.3, 1978)에 James Barr, Fundamenatlism (SCM, 1977)에 대해 서평한 것을 보라.


7) 오강남 교수는 ‘문자주의’를 공격하지만, 현실은 ‘문자주의’대 ‘상징주의’의 단순구도가 아니다. 쓰여진 텍스트를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종교들에 있어서 ‘문자주의’란 그리 쉽게 정의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해석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여전히 남는다. 복음주의권에서 이 문제를 논하고 있는 최근 작업으로 케빈 반후저(Kevin Vanhoozer)의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 (Zondervan, 1998)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8) 오강남 교수는 ‘동정녀 탄생’ 문제를 꽤 상세히 비판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신학자들의 논의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취약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마태나 누가복음서의 기자가 쓴 ‘파르테노스(처녀)’란 단어가 히브리어 ‘알마(미혼여성)’의 오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은 ‘파르테노스’도 ‘미혼여성’이란 의미로 쓰인다는 점에서 어원적으로 강력한 비판은 못된다. 또한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이는 성서학자들의 입장이 이 단어의 해석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참고 Ben Witherington III, 'Birth of Jesus' in Dictionary of Jesus and the Gospels (IVP: Leicester, 1992) pp.70-72.) 또 이 내용이 기독교의 헬라화로 인해 등장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복음서의 내용과 독자들이 얼마나 헬라화된 이들인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사안이다. 최근의 신약연구는 복음서의 헬라화 경향성이 20세기 중반까지 상정하던 것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재발견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독자층이 유대인 내지는 유대주의자들이었을 것이란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입장이고, 흔히 이방인을 독자로 상정하는 누가복음에서도 유대인을 주요독자로 삼고 있을 것이란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가장 헬라화한 것으로 여겨지던 요한복음도 그 사상의 유대적 배경이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예를 들면, 요한복음 1장의 로고스 기독론을 유대 지혜전통에서 근거를 찾는 등). 즉, 오강남 교수의 논지는 이런 최근의 신약학 흐름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불충분한 답변이 되는 셈이다.


9)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작업과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특히 북미지역 외에서는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부정적, 내지는 유보적 평가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이화여대 조태연 교수의 예수운동(대한기독교서회, 1996)은 예수 세미나의 논의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하고있는 김진호 목사는 예수 르네상스(한국신학연구소, 1996); 예수 역사학(다산글방, 2000) 등을 통해 예수 세미나를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보고있다.


10) ‘The Coming Radical Reformation: 21 Theses'는 Robert Funk, Honest to Jesus: Jesus for a New Millenium (Macmillan, 1996; 김준우 번역, 예수에게 솔직히(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말미에 실려있고, Westar Institute & Jesus Seminar 사이트(www.westarinstitute.org)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약간 내용을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인들이 고안해낸 신적 구원자상이란 틀은 신화적이다. 예수가 하늘에서 떨어져, 마술적 행위를 통해 사람들을 죄의 능력에서 풀어주고, 죽음에서 살아나고, 하늘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더 이상 믿을 것이 못된다. 그가 말세에 다시 돌아와 우주적 심판을 할 것이란 생각도 마찬가지로 신빙성이 없다. 우리는 더 신빙성 있는 예수를 위한 틀을 찾아내어야 한다.(제7테제)’, ‘예수의 부활이란 시체가 되살아나는 일이 아니었다. 예수는 아마 은유(metaphor)적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죽음에서 살아난 것이 아니다. 부활의 의미란 약간의 그의 제자들-아마 두엇을 넘지 않았을-이 마침내 그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과 행동의 중요성이 그들에게 깨우침으로 다가왔을 때, 그들은 예수가 살아난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외에는 그들의 놀라움을 표현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제10테제)’ 등의 파격적 주장을 볼 수 있다.


11) 존 마이어(John P. Meier)는 만약 ‘도마의 유년복음(The Infancy Gospel of Thomas)’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사용될 수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주요 자료에서 배제될 이유가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John P Meier, 'The Present State of the Third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 Loss and Gain' in Biblica 80 (1999) pp.459-87). 예수 세미나의 방법론적 결함에 대한 지적은 여러 학자들이 하고 있는데, 특히 톰 라이트(N. T. Wright)가 가장 상세하고, 치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12) 캠브리지의 소장 신약학자 마커스 보크뮤엘(Markus Bockmuehl)은 최근 신약학계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방법론의 붕괴인데, 그 사실을 ‘도마 복음서’의 경우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예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또 다른 권위자 존 마이어(John P. Meier)는 앞으로 십년 내에 예수 세미나에서 내놓은 이론에 동조했던 이들은 학문적으로 곤란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도마 복음서가 연대적으로 이르고, 내용적으로 독립적이란 학자적 합의는 존재한 적도 없고, 옳지도 않다고 못박았다. 복음서 연구의 권위자인 캠브리지의 그래함 스탠턴(Graham Stanton)도 도마 복음서의 연대와 내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고, 미국 신약학의 대가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Brown)도 ‘도마 복음서’의 진정성 문제는 이미 논의가 끝난 사안이라고 보았다.


13) 이와는 달리 예수의 기적(miracle)과 축사(exorcism)를 역사적 예수 연구의 주요한 접근으로 삼는 예로, Morton Smith, Geza Vermes 등을 들 수 있고, 종말론(eschatology)을 중요한 배경으로 보는 흐름은 20세기 초 Albert Schweitzer이후 현재의 E.P. Sanders, N.T. Wright등을 포함하여 주류 신약학자들의 경향을 대표한다.


14) 예수 세미나는 현재 초기에 비해서는 다양한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그들의 연구방향이나 내용이 대동소이하지는 않다. 그러나, 여전히 존 도미닉 크로산과 마커스 보그의 연구가 비록 독자성은 있으나, 예수 세미나 전반의 흐름과 가장 밀접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개론서로 추천할만한 것은 Mark Allan Powell, The Jesus Debate: Modern Historians Investigate the Life of Christ (Lion: Oxford, 1998) originally published as Jesus as a Figure in History (Westminster John Knox: Louisville, 1998); Gerd Theissen and Annette Merz, The Historical Jesus: A Comprehensive Guide (SCM, 1998) originally published in German (1996); Ben Witherington III, The Jesus Quest: The Third Search for the Jew of Nazareth (IVP: Downers Grove, 1995) 등이 있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1.29 17:43
* <복음과상황> 2001.01월호 '브리스톨 통신(8)'입니다. 이 글은 아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톰 라이트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글이었을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로 성가를 얻어가던 톰 라이트의 면모와 중요성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썼던 글인데, 꽤 많은 분들이 요긴하게 사용하셨습니다. 2008년 가을인가 CMF 의사분들이 톰 라이트의 주저 3권을 독학하다시피 읽은 모임에서 장장 4시간짜리 강의를 했던 것과, 2003년 어간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에서 복음주의자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톰 라이트를 중심으로 발표한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란 빼어난 글쟁이가 있다. 그가 쓴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The Jesus I never knew)>란 책을 읽다보면, 어찌 이리 예수를 새롭게 그려내는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널리스트답게 그의 상상력은 오늘날 세상의 이 구석, 저 생각을 훑어 내려가며 이천년 전의 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조명을 해낸다.

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바탕한 신앙이다. 진정한 기독교를 말하고자 한다면, 결국 진정한 예수가 누구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대한 탐구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질문은 그것이다. 과연 예수는 누구였을까? 교회는 예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거꾸로 교회의 관심을 예수에다 투사한 것은 아닐까? 최근 한국에서 김용옥의 발언으로 촉발된 역사적 예수 논쟁은 비록 지엽적 사안에 대한 과도한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는 감이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란 존재의 역사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성경적 예수를 믿는 복음주의자들도 이 질문에서 예외가 아니며, 이 논의의 바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을 다루는 것이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훼손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해줄 것이란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소위 '제3차 역사적 예수의 탐구(the third quest for historical Jesus)'로 불리는 신학자들의 노력과 그 가운데 복음주의자들이 주목할 만한 학자인 톰 라이트(N. T. Wright)를 소개하려한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1985년에 일단의 북미 신학자들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란 이름의 연구모임을 시작한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이 실린 서기 300년 이전의 모든 문서를 대상으로 이것이 실제 예수가 한 말인지, 아니면 후대에 삽입된 것인지를 학자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이것을 빨강, 분홍, 회색, 검정의 네가지 색으로 나누어서 '확실하다'에서 '확실히 아니다'까지를 표시한 <다섯 개의 복음서>란 책을 93년에 내었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서는 외경인 '도마 복음서(Gospel of Thomas)'와 가상의 전승인 Q 문서가 가장 신뢰할만한 예수의 어록을 담고있다고 제시하였다. 

그 모임은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예수는 유대지방을 돌아다니며 금언(aphorism)과 비유(parable)를 주로 쓰면서 사람들에게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설파한 현자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 따르면, 예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은 있었으나, 스스로가 해답을 가졌다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해답을 가졌다고도 믿지 않았던 인물이며, 비종교적인 독특한 발상을 과장법과 패러독스를 통해 전달했고, 예루살렘에 축제 기간 중 올라갔다가 성전에서의 분명치 않은 사건을 통해 재판 없이 처형된 인물로 그려졌다.

이들의 연구결과에 대해 수많은 논란이 있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우선 세미나 구성원이 다양한 신학적 배경을 대표할 수 없는 편협한 인선이란 비판이 가해졌다. 유럽 쪽의 학자들은 거의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거나, 주도적인 몇 학자들이 연구의 방향을 거의 독점적으로 이끈다는 비판도 나왔다. 투표로 예수 어록의 진정성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발상이란 문화적 비평도 있었다. 어쨌든 예수 세미나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한 극단적 결론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톰 라이트(N. T. Wright)
톰 라이트는 예수 세미나의 정 반대편에 선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자유주의자 일색인 역사적 예수 연구의 지형도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비판적이고 역사적인 연구로 이 분야의 일급학자로 자리매김되어 있지만, 그가 내놓은 결론들은 오히려 신앙의 그리스도를 닮아있다. 그의 학문적 경력은 화려하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과 신학 두 영역에서 우등(first class)으로 졸업했고, 캐나다의 맥길(McGill) 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 캠브리지에서 가르쳤다. 캐나다 뱅쿠버에 있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대학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에서도 자주 강의했다. 그는 지금 성공회 목사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주임 신학자(Cannon theologian)로 있다.

그는 99년 2월호 미국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에 케빈 반후저(Kevin Vanhoozer),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등과 더불어 주목할만한 차세대 복음주의 신학자로 꼽힌 적이 있는데, 거기에 그의 흥미로운 이력이 좀 소개되어 있다. 그는 학생시절 성서유니온 (Scripture Union) 캠프에 리더 역할을 했었고, 옥스퍼드 IVF 모임의 학생대표를 지냈다. 그는 성경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가졌는데, 신학공부를 하던 이년간 매년 구약성경은 영어로 두번, 신약은 헬라어로 네번을 보았다고 한다. 요한복음,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와 히브리서는 헬라어로 녹음해서 언제나 들었고, 갈라디아서는 헬라어로 거의 암송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학생 시절, 당시 복음주의 성경학자로 유명했던 존 웬함(John Wenham)의 초청 강의를 들으면서 성경학자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가 쓴 <신약과 하나님의 백성(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1992)>과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Jesus and the Victory of God, 1996)>은 각각 500페이지, 7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인데, 애초 5부작으로 기획된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시리즈의 서두에 해당한다. 그의 저작은 신약학이나, 일세기 유대주의, 심지어는 교회의 선교를 논할 때에도 꼭 찾아보게 되는 중요한 저술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그는 첫 번째 책을 브라이언 왈쉬와 리차드 미들턴이 제시한 세계관 논의에서 시작한다. 그의 첫 책은 왈쉬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학적 저술 외에도 대중적인 책들을 많이 쓰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낸 <예수의 도전(The Challenge of Jesus, 2000)>은 자신의 주요 저작에 담긴 문제의식을 쉽게 풀어쓴 150여 페이지 남짓한 책자이고, <예수의 의미: 두 비전(The Meaning of Jesus: Two Visions, 1999)>에서는 주요한 쟁점(부활의 역사성, 예수가 십자가 처형된 이유 등)에 대해 자유주의 학자 마르쿠스 보그(Marcus Borg)와 대화하듯 각자의 견해를 실어놓아 어디서 동의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예수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영할때면, 어렵지 않게 그의 얼굴이 BBC에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독특하게도 일급 신학자이면서도 대학강단이 아닌 교회의 목회자로 지내고 있는데, 죽기 전까지 현재 계획한 저술 완성하기에도 벅차다며 연구와 저술에만 몰두하고 있다한다.

NT Wright의 저서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와 지형도
위의 인물들만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여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적 예수 연구가 최근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톰 라이트가 간단히 요약한 것을 따라 정리해보면, 18세기 계몽주의 시기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성경의 기록을 교회의 신앙적 관심에 따라 재구성된 것으로 전제하였기에 기적이나, 동정녀 탄생, 부활 등을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했고, 이런 미신적 요소에 오염되지 않은 인간 예수의 생애에 대한 재구성에 치중하였다. 그 결과로 여러 종류의 예수전(傳)이 등장했고(에른스트 르낭의 전기가 특히 유명하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이런 시각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는 작업들을 활발히 해왔다. 이 첫번째 '역사적 예수 탐구(the quest for historical Jesus)'는 20세기초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가 이들의 작업이 예수 당시 유대의 사회-종교적 정황, 특히 종말론적 차원(Eschatological dimension)을 고려하지 않은 저자들의 시대적 관심(계몽주의, 낭만주의?)에 입각한 재구성에 불과하다는 치명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침몰하고 만다.

슈바이처의 비판이후 한동안 역사적 예수 탐구는 불가능한 작업으로 인식되었다.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예수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 성경자체의 신빙성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학자들을 지배하고 있었고(이 시기의 대표적인 성경학자인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에서 역사성을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은 예수란 존재가 있었다는 정도에 불과하단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 외에는 달리 연구할 자료가 없었기에 이 시기에 성경학자들은 고대 근동지방의 설화나 신화를 도입해서 이런 저런 이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역사적 예수 탐구(흔히 'New Quest'라고 불렸다)는 신약의 신빙성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되는데, 불트만의 수제자였던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asemann)은 1950년대에 자신의 스승의 견해에 반해서 성경 기록이 역사적 연구를 수행할만한 내용을 담고있다는 주장으로 다시한번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이 흐름은 그다지 많이 확산되지는 못하고, 신약의 한 배경사 연구 차원으로 물러앉는 듯한 경향을 보이게 된다.

세 번째 탐구는(이 명칭은 톰 라이트가 제안했고, 상당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70년대부터 시작해서, 8-90년대에 널리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와 달리 신학 외에도 고고학, 역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관여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도 북미와 유럽권 학자들이 고루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쿰란(Qumran)에서 발굴된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나, 일세기 유대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여러 고고학 발굴 성과, 인류학과 사회학적 연구 등이 보태지면서 연구의 지평을 풍성히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가 파격적인 연구결과들을 내어놓으면서, 일반 언론의 주목을 한껏 받은 것도 이런 흐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데 한 몫을 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기서도 자료의 문제가 핵심적인 사안이다. 특히 성경의 역사성, 혹은 어떻게 성경으로부터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낼 것인가가 숨은 쟁점인데, 예수 세미나는 정경을 희생하고, 외경을 주된 자료로 삼은 셈이다. 아니면, 전적으로 인류학이나 사회학적 이해를 중심으로 하고, 최소한의 성경 근거만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런 경우 예수는 인접 문화권의 사례연구에 종속되는 경향이 보인다. 가장 비중 있는 접근은 일세기 유대교의 배경아래서 예수를 조명하는 경향인데, 이것은 구약과 신약이 연결되는 지점과 헤어지는 지점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성경의 증거를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적으로 해석하도록 자극하기에 많은 성경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작업에 관여하고 있다.


역사의 예수를 연구하는 이유
예수에 대한 질문은 아마도 예수 당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때도 사람들은 그가 나사렛 출신 목수의 아들이란 출신 배경을 들어 그의 가르침을 폄하하는 일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를 뛰어난 랍비로 받아들이면서도, 왜 그가 유대교와 혹은 로마권력과 물러설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을 벌였는지 궁금해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도 '이 예수가 누구인가(Who is this Jesus?)'란 질문과 씨름해야 했다. 예수를 탐구하고자하는 노력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그 탐구의 결과는 매우 긴박한 현실적 함축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톰 라이트는 세가지 교회사적 사례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함축을 읽어낸다.

첫째, 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historical)'이고 '종말론적(eschatological)'인 읽기를 시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개혁가들은 중세교회가 정교하게 체계화시킨 도그마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예수, 혹은 바울이 '정말'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것은 당대의 교회가 스스로 인정하는 기원을 향해 '역사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과연 '그런 기원'에서 '이런 이해'가 도출되는 것이 옳은가를 반문하게 만들었다. 또한,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이 단한번으로 완성하신 사역임을 천명함으로써 예수 사건의 종말론적 본질을 재천명하고, 중세교회의 체제가 현상유지에 봉사하는 영구불멸한 순환 시스템이 될 수 없음을 드러내었다.

둘째, 한 세기 후 이번에는 종교개혁가들 자신이 이런 비역사화의 굴레에 들어가게 된다. 여전히 교리(dogma)가 성경을 지배하는 경향 속에서 예수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고, 영원한 진리의 수호자로 자신을 인식한 교회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 의해 이성의 이름으로 도전을 받았다. 헤르만 라이마루스(Hermann S. Reimarus, 1694-1768)는 '역사'의 이름으로 당대의 지배적 사회-사상 체계였던 기독교를 공격했는데, 그는 예수는 결국 실패한 유대 혁명가의 한 사람이었고, 기독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톰 라이트는 이런 시도들을 두고, 올바른 질문을 잘못된 방식으로 제기하였다고 요약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배적 사상에 대한 체제 비판적 성격을 띠고 제기된 만큼, 공격의 예각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이마루스의 논증이 안고 있는 여러 결함들은 마땅히 비판되어야 하겠으나, 당시 기독교가 일세기 유대-팔레스타인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예수가 서있던 역사적 좌표를 상실하고, 탈역사화한 그리스도로만 바라보고 있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셋째, 소위 '새로운 탐구'를 촉발시킨 에른스트 케제만은 1953년 강의를 통해, 20세기 초반, 역사적 예수의 탐구가 신학자들의 관심권에서 밀려난 시기에 비역사적 예수, 혹은 탈역사화된 기독교가 나찌 이데올로기를 신학화 혹은 정당화하는데 철저히 이용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더욱 집요하게 해나가는 것을 잊어버릴 때마다, 우상숭배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항상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는 새롭게 화장한 예수의 얼굴을 찾아보려는 유별난 관심이 아니라, 인간들의 어떤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화장으로도 덧칠 할 수 없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공간 속에 독특하게 나타났던 한 존재를 발견하자는 관심이다. 물론 이런 탐구의 결과가 당혹스런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역사적 예수 탐구가 정당한 것은 아닐것이며, 학자적 상상력이 도를 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할 수 있다. 이천년의 시공간을 넘어선 오늘날의 연구는 여전히 가설 혹은 가장 근접한 추론으로 자리매김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톰 라이트는 초월적 층위를 배제하고, 역사적 자료들만을 가지고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을 세워보고, 그것이 여타 역사적, 신학적 검증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다면 그것이 우리가 견지할 수 있는 가장 근사치의 '역사적 예수'를 보여줄 것이란 입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이 이런 전제를 갖고 작업한 결과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명확히 조명해준다는 것이다. 연역적 신앙이 아니라, 귀납적 신앙인 셈이다.

맺는 말
톰 라이트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는 지면상의 제약도 있고, 필자의 역량 때문에라도 벅찬 감이 있다. 아직 국내에는 톰 라이트의 책들이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곧 소개가 이루어지면 독자들이 눈여겨보도록 권고하는 것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그의 주된 관심영역이 '역사적 예수'에 있긴 하지만, 그가 관련하는 영역은 사실상 성경신학 전반에 걸쳐있다. 해석학(hermeneutics)과 일세기 유대주의(First Century Judaism), 유대 묵시사상(Jewish apocalyptic) 등의 최근 성과를 반영하고 있는 그의 저작은 아마 신학적 사전지식 없이 바로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쓴 대중적 저술들은 신학적 논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상당한 자극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한 국내 독자들을 위해 약간 맛보기를 한다면, 그가 <예수의 도전>에서 다루고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예수는 일세기 유대의 배경 속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그의 '하나님 나라' 선포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가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
'왜 초대 교회가 시작되었나? 부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 모든 사실은 오늘날 기독교의 과제와 비전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일관성 있고, 포괄적인 답을 구하는 작업이 마른 가슴에 냉수처럼 와 닿는 사람들이 있다면, 번역본을 기다릴게 아니라 톰 라이트 읽기 모임을 하나 꾸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1.09 11:11

* <복음과상황> 2009년 11월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특집기사 중 하나로 쓴 것이라 좀더 세부적인 논의는 다른 분들의 글을 참고하셔야 할 것입니다만, 개략적인 지형을 살펴보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창조론진화론’, 변증의 계절이 다시 오고있다

젊은 지구론에서 무신 진화론까지


 


오래 전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ca. 160- ca. 220)가 그렇게 말했다.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신앙의 상징 예루살렘과 지성의 상징 아테네 사이에는 별반 긴밀한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그는 신앙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진리이다란 말까지 했다고 한다. 말로 설명해서 다 알아듣는 것이면 왜 굳이 믿음이 필요하겠냐는 취지였다. 예수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곧 그 사회의 불이익과 차별, 심지어는 처벌까지 끌어내는 상황에서는 신앙이 단순히 이해가 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죽어도 좋을 진리의 격을 갖추어야 했다는 점을 웅변하는 말이리라.

 

어쨌든 미국의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리차드 니버(H. Richard Niebuhr)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테르툴리아누스의 입장을 대립주의(Christ against Culture)의 대표로 파악하고 비판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 초대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일자무식쟁이가 아니었다. 그 자신 로마의 법률가로 훈련 받았고, 수사학과 철학에 능했던 인물이다. 초기 기독교의 주요한 신학용어와 개념들, 예를 들면, 삼위일체(Trinity) 등을 고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종심급이 무엇인가?

신앙을 최종심급에 놓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시대나 이 최종심급적 지위에 도전하는 대상들의 출현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로마황제란 존재가 지상에서 최고의 헌신과 경배를 강요할 때 이와 날카롭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국교화란 방식으로 그 갈등이 어쨌든 해소가 되었을 때라야 그 과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론, 그 이후 교회사의 가장 근본적 층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이 교회와 국가(church and the state)란 점에서, 과연 이 땅에서 최종 심급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교회인가, 국가인가란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서구문명사에서 긴 중세의 시기를 지내면서, 사람들이 종교권력이 지식의 영역에서 언제까지나 최종 심급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히 드러나자 새로운 종류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이성(reason) 대 신앙(faith)이란 구도가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둘 사이를 설명하는데 갈등(conflict) 관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의존해서, 무엇을 설명하느냐 하는 최종심급적 주도권에 있었다. 이성을 기반으로 종교현상, 신앙행위를 해명해 낼 수도 있고, 신앙의 맥락 위에 이성의 지위를 배정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르네상스(Renaissance) 이래로 종교개혁(Reformation)을 거쳐, 계몽주의(Enlightenment)로 이어지는 흐름이 이런 굵은 줄기 위에 때마다 여러 세부 요소와 쟁점들을 따라 진행된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때에는 지리적 발견의 놀라움이, 어떤 경우는 천문학과 물리학 등 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이론들이, 어떤 경우는 산업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또 어떤 경우는 혁신적인 철학의 등장을 통해 무엇이 세상을 파악하는 최종 심급이 되어야 하는지를 논쟁하며 각축을 벌였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이 논쟁이 매우 대중적 양상으로 집약되어 폭발한 주제가 바로 창조론(creationism) 논의라고 볼 수 있다.[1] 그러나, 창조론 논의가 곧 창조(creation) 자체에 대한 논의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어떤 창조론에 동의한다고 그것이 곧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창조론들과 진화론들

창조론(creationism)과 진화론(evolutionism)이 만나고 헤어지는 지점을 간략히 묘사하자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젊은 지구론(Young Earth creationism)

2)      오래된 지구론(Old Earth creationism)

3)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4)      유신 진화론(Theistic evolution)

5)      무신 진화론(Atheistic evolution)


 

1) 젊은 지구론

젊은 지구론(Young Earth theory)은 지구의 연대가 오래지 않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이는 성경 창세기의 기록이 연대기적으로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역으로 추적하면 창조의 기원, 혹은 지구의 연대를 산출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일반적인 지질학이나 천문학적 논의와 조화하기 어려운 이 입장은 그런 난제를 성경의 특정한 구절들로부터 암시되는 내용을 통해 풀어보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면, 지구 위에 있던 궁창 위의 물로 인해 보호받던 지구가 그 물이 터짐으로써 급격한 변화와 노화가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오래된 연대로 보인다든지 하는 설명으로 이런 충돌을 해소한다. 탄소 반감기를 이용한 연대측정법도 그런 물리적 대격변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지금 과학계에서 사용하는 방법들은 지구의 실제 연대보다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본다. 생물의 종은 오랜 시간을 거친 진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의 종 구분 그대로 창조되었다는 입장을 갖는다.


 

2) 오래된 지구론

오래된 지구론(Old Earth theory)은 젊은 지구론에 비해 좀더 과학계의 논의와 조화하고자 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창세기의 (yom) 개념은 오늘날의 하루가 아니라, 상당한 장시간을 의미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천문학이나 지질학적 연대와 조화를 도모하기도 한다. 이들은 창세기의 내용을 가능한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나, 현대 과학과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문자적 해석을 벗어나 상징적 표현으로 간주함으로써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한다. 이 입장은 젊은 지구론 입장으로부터는 충분히 성경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진화론자들에게는 충분히 과학적 증거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 위치에 처한다. 국내에서는 수 년 전 <창조과학회> 초기 핵심 멤버였던 양승훈 교수가 “‘젊은 지구론을 포기하고 오래된 지구론을 수용한다고 발표했을 때, 상당한 반발이 나왔던 것으로 보아 한국의 <창조과학회>는 주로 젊은 지구론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의 학술지인 <창조>에는 요즘도 주로 젊은 지구론에 대한 글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공식적으로도 이를 천명하고 있으나 주요한 초창기 멤버들 가운데는 오래된 지구론 혹은 그보다 좀더 전향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3) 지적 설계론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은 비교적 최근의 이론이다. 맥락 상으로는 기존의 창조과학진영의 젊은 세대들이 구태의연한 증거주의 방식의 논증이나, 기존의 과학이론이나 방법론에 소득 없이 싸움을 걸고 있는 창조과학 진영과 구분선을 긋고 새롭게 제기하는 논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창조과학자들과 구별한다. 이들의 주요 논지는 피조세계 내에서 설계(design)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지적 설계자(intelligent designer)의 존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진화론자들이 견지하는 무작위성(randomness)에 대한 반대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지적 설계 논증이 곧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옹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지적 설계자는 기독교의 하나님일수도 있고, 이슬람의 알라라고 불릴 수도 있고, 심지어는 외계 생물체(alien)일 수도 있다. 지적 설계론은 구체적으로 지구의 탄생, 생물의 창조, 우주의 연대기를 해명하기 보다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면…”이란 전제를 입증하는데 최대한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들이 전통적인 창조론의 이슈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강하게 보이지 않고 있고, 오히려 논의 구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상황에서는 논쟁을 가르치라(teach the controversy)는 전략으로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진화론만 아니라 지적설계 (혹은 창조론)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도록 강력한 로비를 하고 있어서 종교-교육 문제에 있어 매우 큰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 교육의 일환으로 이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얼마전 좋은교사운동지적설계연구회 간의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진화론과 지적설계가 함께 가르쳐질 수 있다는 사회적 기반이 확립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 기독교 신앙인들이 그 위에서 기존의 창조론 논의들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비판자들에게서 제기된다.


 

4) 유신 진화론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국내에서는 공적인 존재감이 별로 없었지만, 사실상은 상당히 광범위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의 경우도 가톨릭교회를 비롯하여 성공회, 미국 연합감리교단 등 상당히 많은 주류 교단교파들이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생명과 우주의 발생에 대해서는 진화론적 설명을 수용하지만,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고백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절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유신진화론 입장이라고 할 때,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짚어볼 부분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유신진화의 가장 대표적 표현이 하나님은 창조하셨으나, (진화의 규칙에 따라 세계가 운영되도록)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이신론(Deism)으로 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신진화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꼭 이렇게 멀리 있는 신(the distant God)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철학과 신학 전통에서 창조하시고, 관여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신앙고백에 확실히 서면서도 창조과학보다 진화론에 훨씬 수용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강영안 교수 같은 이는 지적하기도 한다.[2]

 

, 진화론적 설명이 충분한 해명이 되기 때문에 수용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기존의 창조과학류의 설명이 현저히 신빙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진화론이 좀더 나은 설명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잠정적 동의 수준에서 유신진화론을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 자연과학을 하고 있는 경우나 인문학적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신진화론의 경우는 이렇게 유보적 입장에서, 적극적 입장까지 스펙트럼의 차이가 있는 노선들을 함께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본주의-복음주의자 진영에서는 신학자 워필드(BB Warfield),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등도 이런 입장을 표한 바 있다.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에 대해 비판서를 두 권이나 낸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의 경우도 그 자신 분자생물학 박사에서 신학자로 전직한 이력의 연장선 상에서 도킨스의 근본주의적 과학관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 진화론 자체를 전면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책임자였던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역시 진화론이 곧 무신론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캠브리지의 물리학 교수에서 신학자로 변신한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역시 유신론 신앙과 진화 현상은 조화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국내에 가장 신뢰할만한 복음주의 목회자-신학자인 존 스토트 역시 인간진화를 인정하는 데에 별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로마서 강해>에는 아담을 원시인류로 보는 입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국내 번역에서 이런 내용이 일으킬 파장을 고심한 듯 긴 역자 주가 붙어서 한국 독자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5) 무신 진화론

무신진화론(Atheistic evolution)은 글자 그대로 진화론은 무신론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는 입장, 혹은 진화론은 굳이 유신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전자가 적극적인 무신론이라면, 후자는 소극적 무신론이 되겠다. 전자의 경우는 진화 현상은 무신론과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과학적으로 받을만한 진리라고 보기 때문에 유신론을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 진리의 수립을 훼방하는 퇴행적 행위로 비치기 십상이다. 도킨스 같은 이가 종교, 혹은 기독교는 인류문명에 해악을 끼치는 바이러스로 간주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포이어바하(L. Feuerbach)의 기독교 비판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굳이 유신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후자의 온건한 입장은 종교가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좋은 역할도 꽤 하는 만큼 유용하게 활용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느냐는 일종의 이원론적 입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장 자크 루소(J.J. Rousseau)를 비롯한 서구의 많은 정치철학자들이 보여주었던 이런 입장은 진화생물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통섭의 저자 E. O. 윌슨(Wilson)은 기독교인들이 지구환경을 살리는데 파트너로 함께 하자는 비교적 우호적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3] 이런 실용적 이유에서의 유신론 인정이 무신진화론자들에게서 나올 수 있다. 다원적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공공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고 연대할 일이 많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 관계가 기독인들이 자신들의 과학에 대한 입장 수립이 별로 긴급하지 않다고 오판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변증의 계절이 왔다

한국사회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신론자라고 하면 신에 대한 관념(혹은 관심)이 없는 사람 정도로 간주할 수가 있었다. 전도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능숙한 논리로 반대논증을 전개할 수 있었고, 자주 논쟁을 압도하거나, 논의를 주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의 무신론자들은 이론적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교리적 논란과 빈틈을 잘 알고 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같은 책들 탓이다. 공격과 수비가 바뀐 지 오래이다. 이제 한국사회에는 다시금 변증(apology)의 시대가 오고 있는 듯하다. 변증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을 아는 것. 대체, 창조-진화 논쟁, 과학과 신앙 논쟁의 쟁점들은 무엇일까,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지게 생겼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창조론(creationism)에 대한 유용한 자료는 www.wikipedia.org에서 creationism을 검색하면, 이 논의가 어떤 배경과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쉽게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글판보다 영문판 쪽 내용이 더 권할 만하다.

[2] 강영안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IVP, 2007)에서 사도신경 첫 줄을 강해하면서 창조과학과 지적설계가 오히려 창조에 대해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하였다.

[3] 윌슨의 경우, 스스로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명확히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는 언급을 한 바 있어서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겠으나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자의 한 사람이기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반대로 또 다른 진화생물학자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의 경우는 큰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회복하면서도 병상에서의 회심을 거부하고, 지인들의 기도의 효력을 부정하는 등 무신론자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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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주의2009.11.04 21:06
* <복음과상황> 2001.06월호 '브리스톨 통신(12)'입니다. 이 글 역시 한국에 최초로 영국의 '얼터너티브 예배'를 소개한 글입니다. 미국의 emerging church movement의 논의와 비교하면 10여년 정도 더 앞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에서도 잘 나오지만, 폴 로버츠가 운영하는 얼터너티브 예배 사이트(www.alternativeworship.org)가 가장 내용이 좋습니다. 미국의 상황은 emerging church info (www.emergingchurch.info)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배,' 어느 그리스도인에겐들 예배가 중요치 않으랴마는 내게 있어서 '예배'는 좀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 신앙 이력이 큰 구비를 돌 때마다 나는 나의 예배 경험이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을 체험한다. 처음 교회를 나가던 중학교 시절 전형적 장로교 예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경건함, 엄숙함의 체험은 비록 그것이 자주 메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어렴풋이 '초월의 경지'를 일깨워주었다. 내 대학시절을 기꺼이 헌납하게 했던, 좀더 카리스마틱한 예배경험은 '하나님의 임재'란 표현이 추상적 어구가 아니라 오감을 작열하며 체험되는 어떤 것을 지칭함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대학을 마칠 무렵 동료들과 몰두했던 또 다른 실험적 운동은 종교성과 허위의식에 익사 당하는 예배를 다시 한번 맨 정신으로 직시하도록 해주었다. 

영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은 예전(Liturgy)의 요긴함에 눈을 떠가는 중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쓰여진 기도문을 읽고, 2-3년 단위로 순환하는 성경읽기표(Lectionary)에 따라 그날의 말씀을 보고, 매주 성찬식을 갖는 이곳 성공회 예배를 통해서 배운 것이 적지 않다. 아이콘(icon)이나 상징물(Symbol)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긴 했지만, 계속 접하다보니 그 나름의 유용성도 이해가 된다. 어쨌든, 한국교회의 경험을 갖고 이곳의 예배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전통이란 것이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느끼는 동시에 이들이 지닌 상당한 유연성과 실험성에도 눈길이 간다. 이번 호에서는 일전에 포스트 에반젤리칼(post-Evangelical, 복음과 상황 2000년 10월호 참조) 논쟁을 소개할 때 잠깐 언급한 '얼터너티브 예배(Alternative Worship)'를 한번 건드려보기로 한다.(우리말로 하면 '대안 예배' 정도가 되겠지만, 좀더 나은 번역을 기대하며 여기서는 그냥 영어 발음대로 사용한다.)


한국의 열린 예배, 혹은 구도자 예배

한국에서도 '구도자 예배(seeker-oriented service)'라고 해서, 기독교적 배경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전도의 관심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혹은 집회)에 대한 관심이 한동안 일어났었다. 이를테면, 기독교적 용어를 가능한 배제하고, 설교보다는 토크쇼 형식이나 프리젠테이션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간단한 드라마(skit, 영국에서는 sketch라고 하는)를 올리기도 한다. 멀티미디어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음악은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흐름은 주로 미국의 성공적인 교회들, 윌로우 크릭이나 새들백 등의 모델에서 따온 것이 많은데, 좀더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척 스미스 목사의 갈보리 교회 등이 포크 음악이나 록 음악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70년대 초반, 반전운동에 실망한 많은 히피 청년들을 대거 교회로 받아들인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후의 마라나타 뮤직, 빈야드 운동 등을 낳은 사건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이런 실험들에 대한 비판적 소리나 불만도 적잖게 나오게 되는데, 일차적으로 기대한만큼 전도에 효과가 없다는 지적... 괜히 기독교권에 대중문화에 대한 과수요만 늘려놓았다는 지적... 중산층 위주의 문화적 욕구 충족 기회로 변해간다는 지적...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신앙적 방향성과 내용성을 채워나가지 못해 단발성 이벤트 이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란 점등이 이를 한때의 유행에 머물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필자가 관찰한 바에도 열린 예배를 실험한 그룹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메시지를 최신 유행으로 포장하고 옷을 입히는 데에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지만, 메시지 자체에 대한 근본적 고민은 적었다는 점에서 문화적 편승에 불과하단 인상을 많이 받았다.


얼터너티브 예배(Alternative Worship)란?

자, 그럼 영국에서 얼터너티브 예배(이하 '얼트 예배'로 축약)라고 하는 것은 구도자 예배와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자. 필자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린벨트(Greenbelt) 웹사이트가 얼트 예배에 대해 가장 잘 정돈된 내용을 제공해준다고 보이는데... 거기에 따르면 대략 두가지 양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불신자를 위한 전도 수단으로 대중 문화를 적극 수용하는 경우와 기독인들 스스로를 위해 주류교회의 예배전통을 벗어난 시도를 하는 경우로 나뉠 수 있다. 그린벨트 웹사이트에서는 이를 각각 '청소년과 전도(youth & evangelism)'와 '창의적 예배(creative worship)'로 항목을 구분해놓았다. 앞서 살펴본 미국의 흐름은 주로 전도 목적 하에 나타난 문화적 도구의 활용에 관심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측면보다 전도 집회적 속성에 비중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에 있어서는 '창의적 예배'라고 불리는 후자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이런 실험이 잘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세속문화와 기독교 문화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훨씬 덜하고(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기독교 전통들이 공존하고 있기에 이런 실험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신학적, 공동체적 지원이 훨씬 용이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필자가 접해본 얼트 예배 경험을 돌이켜 보면, 장소는 주로 교회 건물인 경우가 많지만, 펍(Pub, 한국으로 치면 호프집에 해당. 보통 식당도 겸한다)이나, 디스코텍 등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조명은 낮추고, 부분조명이나, 색조명도 쓴다. 음악은 매우 다양한데,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테크노 음악이나 펑크 록까지 필요에 따라 사용된다(참고로 영국에서는 이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음반을 찾을 수 있다). 보통 슬라이드나, 비디오 프로젝터가 사용되기도 하고, 아니면 성화나 아이콘들을 벽이나 바닥에 배치하고, 촛불이나 십자가 상징도 빈번히 이용되는 등 시각적 측면이 많이 활용된다. 순서 중에는 시나, 책의 구절을 낭송하기도 하고, 간단한 마임이나 무용 등이 등장 할 수도 있다. 참가자들은 가만히 수동적으로 있을 수도 있고, 순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각 순서는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참가자들의 묵상과 기도를 자극하지만, 그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로 다가가지는 않을 것이다. 얼트 예배라고 할 때, 어떤 정해진 틀을 생각하기는 힘들고, 각 그룹이 그 나름의 창의성을 발휘해서 순서나 내용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쭉 기술해놓은 것을 보면, 일종의 퍼포먼스(Performance)를 보는 듯한 인상을 가질 것이다. 이것은 맞는 지적인데,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예배하는 행위 자체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상징적 의미들이 담겨있고, 표현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때론 생소하고, 때론 신선하게) 구현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얼트 예배는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던적 삶의 정황과 교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전통의 재해석과 실험이란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위한 전도목적으로 대중 문화를 도입하는 것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많은 경우, 구성원들의 신학적, 신앙적 지향이 짙게 반영되어 있으나, 그것이 여느 예배처럼 인도자나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는 식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회중 개개인의 직간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한 다층적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것(상징의 활용이 중요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이 독특하다고 볼 수 있겠다.


얼트 예배의 기원

브리스톨을 근거로 얼트 예배를 실험해온 폴 로버츠(Paul Roberts)의 글에 따르면, 얼트 예배는 80년대 후반 영국 쉐필드에 근거를 두고있던 NOS(Nine O'clock Service)란 모임이 모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85년 미국 빈야드의 대표 존 윔버가 쉐필드를 다녀가면서 후속 모임 형태로 시작된 이 모임은 곧 급진적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를 강조하는 복음주의 신앙을 독특한 카리스마틱한 예배 스타일에 담아내면서 몇 년만에 수백명 규모로 성장했고, 이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정도까지 되었다. 이들의 실험은 곧 유사한 관심을 가진 다른 그룹들에 의해 이어졌고, 1992년 그린벨트 페스티발에서 얼트 예배를 선보이고, 이를 담은 음반을 냄으로써 이 운동을 활성화시킨 글래스고우 출신의 LLS(Late Late Service, 장로교 위주의 초교파 모임)등을 통해 확산되었다. 1993년에는 그린벨트에 참가한 목회자를 통해서 뉴질랜드에도 소개가 되었고, 현재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과 더불어 얼트 예배를 주도적으로 실험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편 95년경 NOS가 와해됨으로써 얼트 예배운동은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NOS 리더십이 독단적 권위를 남용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모임이 해체되었고, 이들의 신학적 노선이 매튜 폭스(Matthew Fox)의 창조영성(Creation Spirituality, 범신론적이란 논란이 있다)을 추종함으로써 빚어진 논란으로 다른 그룹들의 지지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그룹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얼트 예배는 좀더 폭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하나는 데이브 톰린슨(Dave Tomlinson, 복상 2000년 10월호 참조)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가정교회(house church)운동 2세대들과의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이런 노력들을 의미있는 실험으로 인정하고, 성공회 내의 수용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데에 있다. 데이브 톰린슨은 당시 성령운동을 위주로 성장하던 가정교회의 내부에서 근본주의적 속성, 권위주의적 리더십, 세대주의적 신앙이 기성교회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여기에 환멸과 좌절감을 느낀 2세대들이 대안적인 공간을 마련하고, 신학적 성찰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가 주관하는 '해리(Harry) 페스티발'이나 펍(Pub) '홀리 조(Holy Joe)' 등은 곧 이런 이들의 구심점이 되었고, 때마침 그가 낸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책은 당시 고민하던 이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신학적 틀을 제공해줌으로써 이들의 자기인식을 공고히 해주었다. 성공회 수뇌부에서도 얼트 예배를 젊은 세대를 향한 효과적인 복음증거 기회로 여기고 90년대 초반부터 검토해왔는데, 1995년과 1999년에 캔터베리 대주교를 포함한 성공회 고위 성직자들이 5개 주요 얼트 예배모임의 리더들과 모임을 갖고 함께 얼트 예배를 경험함으로써 제도권 교회 내에서도 이런 실험이 예배 갱신, 혹은 창의적 예배운동의 일환으로 인식되는 전기를 맞이하였다. 현재 영국 내에서는 런던, 브리스톨, 글래스고우 등 주요 지역에 10여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얼트 예배 모임들이 존재하고, 이들간에는 메일링 리스트와 웹사이트를 통한 자료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도 기존의 구도자 예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예전(liturgy)과 전통(tradition)을 되살리는 쪽으로 중심이동을 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얼트 예배의 문제의식과 상당정도 유사한 것이다.


얼트 예배의 지향

폴 로버츠는 얼트 예배가 급격한 문화적 전이(Cultural transition)를 겪고 있는 세상 속에 처한 기독인들의 대응으로 본다. 즉, 세상은 급격히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서 포스트모던 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데, 삶의 조건과 양식이 변한 것에 반해, 기독인들이 예배하는 양식은 이와 어긋나면서 생기는 부정합(mismatch)이 얼트 예배의 출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존재방식, 혹은 표현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갈래로 논의들이 진행되어 왔다. 90년대 내내 강조된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나, 다양한 공동체 운동들의 성과는 결국 얼트 예배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데 유용한 배경을 제공해준다. 특히 영국의 독특한 신학적, 교회적 전통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되는데, 몇몇 선행주자들을 꼽아볼 수 있겠다.

그린벨트 페스티발(Greenbelt Art Festival, www.greenbelt.org.uk): 73년 기독교 음악 페스티발로 시작된 그린벨트는 80년대 절정기에는 30,000여명 가량이 찾아오던 대형 행사로 성장했다. 대중음악계의 거물인 U2나 모비(Moby) 등도 자신들이 기독교인임을 밝히면서 이 무대에 서곤 했었다. 80년대 후반 페스티발의 복음주의적 정체성 논란이 있었으나, 여전히 기독교권의 대표적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콘서트, 전시회, 공연, 강연, 워크샵, 캠페인 등으로 붐비는 곳이다. 웹사이트는 기독교 문화, 영성, 사회운동 등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과 링크를 만들어 두었고, 알찬 내용을 담고있어서 관심있는 이들은 꼭 한번 방문해볼 만하다.

아이오나 공동체(Iona Community, www.iona.org.uk): 1938년에 설립되었고, 현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를 중심으로 공동생활, 영성수련, 사회적 책임을 중심에 두고 있는 에큐메니칼 공동체다. 특히 켈틱 기독교 영성(Celtic Christian spirituality)을 실험하는 대표적인 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Wild Goose Worship Team -켈틱교회는 wild goose(기러기)를 성령의 상징으로 본다- 을 통해 만들어낸 찬양과 예전은 그들의 독특한 성육신 신학(Incarnation theology)을 반영하고 있는데, 80년대와 90년대 영국 전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떼제 공동체(Taize Community, www.taize.fr): 침묵기도와 반복해서 부르는 단순한 가사의 찬양으로 잘 알려진 떼제 공동체는 특히 개신교와 카톨릭의 화해와 연합을 위해 프랑스 중부에 설립된 수도 공동체이다. 이들이 매우 수도원적 영성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예배양식과 찬양은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매년 여는 유럽모임(European Meeting)에도 수만명이 참가하고 있다.


한국적 정황에 대한 생각

독자들 중에는 이건 영국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느낄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수년간 나는 이런 류의 관심들이 한국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와 몸짓을 갖고자하는 갈증의 표현이다. 언어부재는 발성기관이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아'하고 싶은데, '어'밖에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마음에 담긴 생각이 깃들 언어를 갖지 못한 상태. 그래서 늘 근사치의 표현 속에서, 도달하지 못한 곳에 대한 원초적 좌절감을 안고 있는 상태, 그것이다. 얼트 예배에 담긴 가장 긴요한 질문은 다름아니라, 자기의 말과 몸짓으로 예배하라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예배를 준비하고, 이끄는 이들에게는 백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 한가지 방식으로 예배하도록 강요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도 될 것이다. 백인백색(百人百色), 무지개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당연하고, '절대' 아름다운 것이다. 매스게임과 집단체조의 일사불란함을 최고로 치는 멘탈리티를 이젠 부끄러워할 때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예배의 절정은 말씀선포라고... 그래서 이를 흐트려놓는 시도들은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떤 전통은 주님의 피와 살을 기억하는 나눔을 최고 절정에다 놓는다. 아니다, 어떤 이는 세상을 향해 나가는 예배 마지막이 기실 가장 중요하다고 논박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헌금을 통해 표현되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로 내어드리는 헌신의 시간이 예배에서 가장 귀한 순서가 아니겠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예배의 본질이란 말은 또 어떻게 논박할 수 있겠는가? 혹은 예배 순서를 시작하기 전 그가 일상에서 살아온 삶의 예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의식으로서의 예배는 무의미하단 말은 또 얼마나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가? 우리의 예배 전통은 이런 질문과 요구들에 귀기울이고 있는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런 갈망을 담아내고자 하는 몸짓이 있는지를 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해온 방식의 예배가 가장 낫다거나, 어차피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없을 바에야 해오던 것이나 열심히 하자는 논리로 얼버무리지는 말자. 그건 무지에서 오는 독선이거나, 현상유지를 최선으로 치는 소망 없는 발상이다. 얼트 예배가 상기시켜주는 평범한 진리는 예배는 우리 신앙의 핵심을 담아내는 그 무엇이란 점이다. 그의 예배를 보면, 그가 어떤 신앙인인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번 자문해보자. 나는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예수를 만났던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속 깊은 갈증을 숨기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텐가... 얼마나 더...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1.04 20:02
* <복음과상황> 2000.10월호 '브리스톨 통신(6)'입니다. 참고로 영어로 Evangelicalism은 '복음주의', Evangelical은 형용사로 '복음주의적'이라고 쓰이거나, 명사로 '복음주의자'란 뜻을 갖는다. 이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자주 혼동하는 용어로 Evangelism은 '(개인) 전도', Evangelization은 '복음화'로 옮겨지고 후자가 좀더 광의의 의미를 지닌다.

* 아마 이 글은 포스트-에반젤리칼의 존재를 한국에 소개한 최초의 글일 것이다. 처음 쓰여질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영국 복음주의권의 실험은 한국에는 여전히 숨겨진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emerging church 운동이 태동하고, 방향을 잡아가는데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나는 이제 국내에서 꽤 관심을 끌고 있는 emerging church movement의 원조로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 운동을 꼽을 수밖에 없다. 지금 찾아보니 데이브 톰린슨은 자신의 이름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www.davetomlinson.co.uk


photo of Dave Tomlinson



내 이름은 무엇인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복음주의'란 용어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다. 대신 '보수주의'란 표현이 즐겨 사용되었다. 여기서 '보수'란 '성경적 진리를 지킨다'는 뜻으로 자랑스레 풀이했고, 이에 반대되는 '진보'측은 '진리를 시대조류에 영합해서 변개시키는 자들'이란 식으로 폄하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보수'란 단어에 좋은 뜻을 구겨넣어도 그 용어가 본래적으로 갖고있는 정체된 이미지나 고집스런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수'라는 단어에서 찾고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것이다. 신학적 보수파와 사회적 수구파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등장한 '개혁'이란 단어는 이를 피해 가는 좋은 표현이었다. 그러나, '개혁신학'이란 특정한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 용어는 어느 정도 그 폭에 제한이 따랐다. '복음주의'는 물론 이보다 선행하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적절히 표현해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보편화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복음주의(서구의 경우도 그렇지만)는 여러 흐름들이 혼재되어 있다. 때로는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에 가깝지만 스스로 복음주의자로 인식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주류 복음주의에 비판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복음주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느낀다. 마크 놀(Mark Noll)이나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등이 지적했듯이 복음주의는 늘 진행형인 운동으로서 존재하기에 엄밀히 피아를 갈라내려는 노력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각 흐름들을 평가하되, 그 기저에 깔린 공유된 가치들이 복음주의 일반이 지니는 특징들과 얼마나 통하는지를 봐야 하겠다. 이번 호에서는 영국의 '포스트 에반젤리칼' 논쟁을 통해, 한국의 복음주의에 던져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내가 데이브 톰린슨(Dave Tomlinson)의 책을 처음 발견한 것은 96년초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옥스퍼드 시내의 서점에서였다. <The Post Evangelical>이란 제목으로 95년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마침 국내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한참 뜨거웠고, 대학가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Coming-Out,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무엇이 내 눈길을 그 책에서 떼지 못하게 했을까? 한동안 '포스트' 어쩌구 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던 시절에 왜 나는 또 하나 어설픈 아류가 나왔구나하고 지나치지 못했을까? 이 원고를 쓰기 위해 다시 그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그것이 '이름이 불리는(呼名)' 경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저자는 말한다. "내가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어떤 신학적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리된 주제들도 없었고, 당연히 조직이나 기구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표현을 처음 접하면서도 즉각적으로 그 중요성을 이해했고, 자기 나름대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내는지 놀랄 정도였다."

book by Dave Tomlinson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이 80년대 중반이후의 영국교회는 가히 '복음주의 르네상스 (Evangelical Renaissance)'란 표현이 거리낌없이 사용될 정도로 최고의 시기를 구가하고 있다. 과거 지리멸렬하던 교회들이 살아나고, 대형 이벤트에는 사람들이 구겨질 정도로 찾아들고, 대중매체는 어떤 사안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이 무언지 코멘트를 얻기에 바쁘다. 경제계, 연예계에도 돋보이는 복음주의자들이 대중적 신망을 얻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진 기나긴 침체에서 이제 막 벗어나 한껏 기지개를 켜는 이 시점에 '포스트 에반젤리칼'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러나, 저자는 이런 복음주의 호황의 후방에서 줄줄이 새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 저마다 어떤 이유들을 안고, 복음주의자이기를 그만 두거나(ex-Evangelical), 혹은 아예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ex-Christian)을 그는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영국 복음주의 자체가 안고 있는 어떤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단정한다. 물론 이것은 복음주의권의 전방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출되는 사람들보다 유입되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여전히 복음주의는 성장하고 있고,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왜 나는 이런 저자의 분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한국의 상황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96년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 복음주의가 피크를 넘어설 때쯤 나타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그런데, 요 한두 해 사이에 한국 교회들의 상황은 노란불을 지나 빨간불에 진입한 것 같다. 그런데도, 교회지도자들은 신호등을 무시한다. 자기 교회에는 사람수가 여전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늘날 대형교회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질적 공백은 들어오는 사람의 숫자로 채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뼈가 빠져나간 자리를 살로 채우는 격이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가 탁월하게 지적했듯, 그건 '성장'이 아니라 '비만'이다.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영국교회에서 이런 징후를 찾아내고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기치를 올린 이 저자의 안목이 한국 땅에서는 어떤 형태로 접합점을 가질 수 있는지 새삼 꺼내보게 된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이전과 이후


작년에 영국으로 공부하러 와서 서점에서 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The Post Evangelical Debate> (1997, Triangle). 이 것은 데이브 톰린슨의 책에서 시발된 논쟁을 영국 복음주의권의 학자들 여섯 명이 낸 논평 격의 책이다. 글쓴이들은 캠브리지 리들리 홀(Ridley Hall) 학장인 그래함 크래이(Graham Cray), 전 런던 바이블 칼리지(LBC) 부학장 닉 머서(Nick Mercer), 런던 킹스 칼리지의 겸임교수이자 전도와 청소년 사역에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운동가인 피트 워드(Pete Ward) 등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그 책은 이름 없이 책장 구석에 머물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복음주의자들에게 본격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 분명하다.

한편, 원래 책의 저자 데이브 톰린슨의 이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는 어릴 때 매우 복음주의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는데, 형제단(Brethren, 영국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교단이다)에서 십대에 주님께 헌신했고, 몇 년후 성령체험을 하면서 형제단을 떠나 당시 일어나고 있던 성령운동에 합류한다. 그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에 적극 참여했고, 22살에 결혼을 하고서 (영국 상황에서는 그닥 놀랄 일이 아니다) 자신의 집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한다. 이것이 그의 20년간의 가정교회 사역의 시작인데, 그중 10여 년을 그는 열 다섯 명의 팀을 이끌며, 50여 개의 교회를 돌보았다.

80년대 말, 그는 복음주의 교회나 성령운동 교회들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심각히 보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났으나 어떤 형태로건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이것은 그가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는 수준의 구속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찾아보는 신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좀 색다른 형태의 교회를 실험해보기로 하고 '홀리 조(Holy Joe's)'란 펍(Pub, 영국에서 가장 흔한 술집. 식사나 음료수도 제공되는 호프집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형태의 교회를 시작한다. 여기서 예배도 있고, 설교도 있고, 성경공부도 한다. 분위기는 일반 펍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그가 모든 교회가 이런 형태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획일적인 교회의 틀을 깨고, 선택가능한 실험적 모델로서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고 한다.

복음주의에서 웃자라다
그가 만난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복음주의가 줄 수 있는 환경보다 '웃자랐다(outgrown)'고 느꼈다고 한다. 웃자람은 간단히 말하면 복음주의적 기원이 아닌 입장이나 신학과도 긍정적으로 교섭하고자하는 욕망이다. 즉, 더 이상 복음주의 교회에서 주는 전형적인 결론들에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이 무언가 대안적 생각을 펴볼 공간을 찾고자하는 상태이다. 이것은 회의(doubt)를 드러내어도, 이를 불신앙(unbelief)으로 여기고 회심시키려고 달려드는 이들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들은, "복음주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입문하는데에는 매우 탁월하다. 그러나, 더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는데에는 거의 도움이 안된다"고 느낀다. 이들은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는 자신들의 생각이 끊임없이 종교적, 신학적 자기검열 상태 아래 놓여있게 된다고 느낀다.

'포스트 에반젤리칼'에서 '포스트'의 의미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와 마찬가지로 양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의 기원으로부터 '이탈 혹은 해체'를 뜻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원과의 '연속성'을 인정한다. 데이브 톰린슨은 그래서 '포스트 에반젤리칼'은 복음주의를 포기한 사람(ex-Evangelical)이나 그리스도인됨을 포기한 사람(ex-Christian)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들이 전형적인 복음주의와 갈라지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최근 20년간 영국 복음주의가 걸어온 지형도를 먼저 펼쳐보아야 한다.

영국 복음주의 내력 훑기
그는 오늘의 영국 복음주의를 형성한 여섯가지 조건을 분류해 냈다. 첫째는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80년대와 90년대에 부쩍 강화된 흐름인 주류 복음주의권의 카리스마틱화(Charismaticizing) 경향이다. 영국의 전통적 복음주의는 매우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신앙 형태이다(한국으로 치면 전통적 장로교 유형이라고나 할까). 이들에게 성령운동은 정서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고, 신학적으로는 불건전한 신앙을 낳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사이에는 매우 강한 거부감과 불신이 있었으나, 오늘날 성령운동의 영향력은 복음주의 주류의 대중과 지도자들 사이에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다. 그 과정은 다음의 여러 흐름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둘째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이 주류 복음주의와 결합한 것이다. 가정교회(House Church)란 6-70년대 초기, 성령운동의 영향아래 제도권을 뛰쳐나가 노방전도와 순회사역을 통해 가정이나, 학교 등을 빌어 교회개척을 해나간 이들의 흐름을 일컫는다. 이들은 대체로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을 기반으로 하고있으나, 교회의 분위기는 강한 성령운동의 흐름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는 네트워크 형식으로 모임을 가졌고,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서로 다른 지역의 네트워크 구성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대규모의 수련회를 열었다. 이것이 오늘날 수십 개로 보편화된 영국 내 다양한 바이블 위크(Bible Week)의 시작이다. 현재 이들은 영국 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독인 공동체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비조직적으로 교회개척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숱한 시행착오와 신학적 문제도 있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80년대 중반에 그 동안 서로 대립적이던 복음주의권에 전격적으로 합류한다. 이들의 합류로 상당기간 약세였던 영국 복음주의협의회(Evangelical Alliance UK)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셋째는 새로운 세대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등장이다. 데이브 톰린슨은 그들이 성령운동에 호의적이고,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나 정치에 대한 의식이 있으며, 복음주의적 가치와 이상을 확립하고 전도하려는 열의가 있다고 정리한다. 그 대표격으로 복음주의협의회를 이끌어 쇄신시킨 클라이브 칼버(Clive Calver, 그는 지난 96년 미국 World Relief의 국제총무로 옮겨갔다)를 꼽았다. 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80년대 초반부터 대거 등장함으로써 노쇠한 복음주의권이 일거에 역동적 운동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는 다른 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상당히 일반화된 평가이다.

넷째는 대형집회를 통한 대중적 참여이다. 영국에는 100년이 넘게 이어온 케직 사경회(Kewsick Conference)의 전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캠프 미팅이나, 사경회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79년 시작된 '스프링 하비스트(Spring Harvest)'는 주로 사경회 중심의 분위기를 젊은 세대들을 위한 축제의 분위기로 전환해냄으로써 시대의 문화적 흐름과 조응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 기간동안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를 자연스럽게 설득해 냄으로써 복음주의권의 대사회적 발언권과 참여폭을 넓혀왔다. 스프링 하비스트는 약 한달간 연인원 8-9만 명이 다녀가는 영국 복음주의를 상징하는 대형집회가 되었다. 여기에다 87년부터 시작된 '예수 대행진(March for Jesus)' 역시 첫해 런던에서 25,000명이 운집한 이래 94년도에 영국 내에서만 25만 명이 참여했고,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런 대형 집회들은 복음주의자들의 내적인 자신감을 고취했고, 사회적 존재로서 위상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다섯째는 복음주의 내에서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강조된 것이다. 영국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의 사회복음(social gospel)과 초창기부터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복음전도에 우선하는 사회변화에는 기질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70년대 초반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는데, 런던 중심부에서 열린 '빛의 축제(Festival of Light)'를 중심으로 말콤 머거리지(Malcolm Muggeridge, 회심한 사회주의 사상가)의 활동이나, 존 스토트의 저작, 프란시스 쉐퍼의 글 등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대안을 찾아가도록 자극했다. 이때 포르노그라피 및 동성애 관련 이슈들과 반낙태 운동이 복음주의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이것은 이후 더욱 발전해 대규모의 구호기금인 TEAR 펀드(The Evangelical Alliance Relief Fund), 교육, 보건, 가정 등의 이슈를 제기한 CARE 캠페인, AIDS 환자를 위한 ACET 프로그램, 제3세계 빈곤문제를 다루는 Jubilee 프로젝트 등으로 확장되었다.

여섯째는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이것은 영국의 교회사를 돌아볼 때 교회의 영적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일어날 때마다 다양한 형태의 부흥운동을 통해 돌파구가 열렸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고, 특히 최근 들어 성령운동 쪽에서는 예언의 형태로 많이 등장했다. 이것은 세기말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캐나다의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 현상이 영국에는 상당한 기대감과 더불어 영향력을 끼쳤다.

그래함 크래이는 데이브 톰린슨의 분석이 성령운동이나 가정교회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파악이란 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최근 20여 년간 복음주의권의 주요 경향을 나름대로 짚어내는 유용한 분석이란 점에서 의미를 인정한다.

급진적 재고냐, 눈먼 확실성이냐
그렇다면, 대체 '복음주의 르네상스'의 무엇이 문제인가? 데이브 톰린슨은 성공 그 자체가 문제를 몰고 온다고 말한다. 어떤 운동이든 그것이 대규모의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 내부의 소수의견을 묵살하는 경향성을 띄게 된다. 복음주의권의 강단에서는 더욱 확신에 찬 음성과 미래에 대한 낙관이 지배하게되고, 여기에 가세한 성령 운동적 경향은 더욱 이런 흐름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것'에 대한 어떤 종류의 반대나 이견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결국 이를 벗어나려면 복음주의자들은 이 운동을 이까지 끌고 온 바로 그 원동력(Dynamics) 자체를 비판해야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숨겨진 딜렘마이다. 그는 새로운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들이 이런 성공의 이면에 깔린 위험과 변화된 세상을 의식하면서 복음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급진적으로 재고(radical re-thinking)'하느냐, 아니면 옛 근본주의가 보여주었던 '눈먼 확실성(blind certainty)'으로 돌이킬 것이냐는 기로에 서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상황은 좀더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논의를 끌어들이는데, 프랑스 학자인 길레스 케펠(Gilles Kepel)은 아브라함에 기원을 둔 세 종교,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다시금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70년대에 편만해진 모더니즘에 대한 서구의 환멸감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현대성(modernity)의 핵심인 이성주의(rationalism)가 더 이상 세상의 문제를 푸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느껴지자, 그 반동으로 영적 갈망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보았다. 이슬람의 경우 이는 "더 이상 이슬람을 현대화(modernize) 할 것이 아니라 현대성(modernity)을 이슬람화(Islamize)하자"는 구호에 잘 드러나는데, 이는 옛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는 흐름, 즉 근본주의(fundamentalism)을 대중적으로 불러오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현대사회와 세속적 가치관 혹은 그 사회의 지배적 종교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에서 그 기반을 얻고, 삶에 있어 대안적인 영적 가치를 강조하고, 이런 영적 기반에 근거해서 사회를 개조하자는 열정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그 사회에서 잘 교육받은 젊은 세대들이 대거 매력을 느끼고 이런 운동에 투신하는 양태가 더해진다. 이들이 사회를 개혁하는 방법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위로부터의 개혁' 즉 법이나 권력을 통한 제도화이고, 다른 방식은 '아래로부터의 개혁' 즉, 그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이를 성취하는 것이다. 전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고, 후자는 전도로 세상을 바꾼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들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
그에 의하면, 복음주의 교회들이 포스트모던 시대가 던져주는 도전을 외면한 채, 옛 가치들로 회귀함으로써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신앙의 본질적 조건보다 부수적인 요인들이 더 강조되고, 그런 요인들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깊어지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가 꼽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문제는 복음주의자들이 점차 중산층(middle-class)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동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산층이 된다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물질적 안정과 상승욕구가 수반되기 때문에 이것이 복음주의적 가치관이나 생활방식과 혼동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것은 변형된 '문화적 종교(culture religion)'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두 종류의 계층을 복음주의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데 첫째는 서민이나 노동자층(working-class), 혹은 빈민층이 점점 더 자신들은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는 기득권층과 의식적인 거리감을 갖는 젊은 세대들의 심정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요즘 한국교회에서 이 두 계층을 제일 찾기 힘들지 않는가?)

또 다른 예로 가족의 가치(family value)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도 지적했다. 흔히들 교회에서 강조하는 가족의 모습은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이지 유일한 모델은 아니란 지적이다. 이미 서구교회의 경우, 이혼, 동거, 재혼, 편부모, 미혼모, 독신 등의 다양한 형태로 실제 상황은 전개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바탕으로 지당하신 말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델 밖에 놓인 이들은 교회 안에서 언제나 이류 그리스도인(second-class Christian)으로 자리매김 된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훨씬 오랜 동안 이런 이슈를 앓아온 서구의 경우가 국내에 동일하게 적용되기는 어렵겠으나, 요즘 국내에 넘쳐나는 가정사역 단체들이 이 고민할 때가 이미 되었다.)

복음주의 신앙은 문제없나?
그러면, 부수적인 요인들 말고, 복음주의적 신앙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우선 데이브 톰린슨은 복음주의 신앙의 강점에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경외심이고, 둘째는 복음을 아주 단순한 형태(simple form)로 제시함으로써 전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장점 자체가 역으로 복음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가 "복음주의 교회의 삼위일체는 성부(Father), 성자(Son), 성경(Holy Scripture)이다"고 비꼰 것처럼, 복음주의 교회들은 때로 성경을 우상화함으로써 말씀의 비판적 연구(critical study)란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리고 성경에는 결코 회색지대가 없고, 언제나 흑 아니면 백으로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믿어버린다.

전도에서도 이것은 바로 반복된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복음 패키지(simplified gospel pack)를 전하는 것으로 복음전도를 제한하는 것이나, 전도대상자에 대한 우월의식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데이브 톰린슨은 전도가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종교 외판원(religion salesman)이 아니라, 상대의 진리를 향한 영적 여행(spiritual journey)를 적극 후원해주고 도움이 될 경험과 깨우침을 나누는 동반자(partner)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한다. 전도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쓴 존 피니(John Finney)는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되는 과정을 조사해 본 결과, "전도자는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할지 모르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대체로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며, 그 평균은 4년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전도의 모델은 사람들이 이 필요한 과정을 잘 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포스트모던 시대, 포스트 에반젤리칼
지면상의 제약으로 데이브 톰린슨의 견해를 다 소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국과 한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을 대입해놓고 본다면 한국처럼 교단정치나 교권주의의 폐해가 심각할 경우 고려되어야할 제도적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에게서 전혀 시사 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의 요지는 분명 우리들에게도 울림을 갖는다. 세상은 포스트모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복음주의권은 과연 20세기 내내 복음주의를 형성해온 모더니즘적 전제를 급진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가? 즉, 여전히 근대(modern)의 전제를 굳게 움켜쥐고 있는가, 아니면, 아예 전근대(pre-modern)의 근본주의로 손쉬운 선택을 하려고 하는가? 포스트모던 시대와 적극적으로 교섭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몇가지 측면에서 포스트모던적 전제 아래서의 신앙, 즉 그의 제안대로 포스트 에반젤리칼 신앙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했다. 논평자들이 지적하듯이, 데이브 톰린슨의 논지에는 분명 학술적인 엄밀성이 더 요구되는 부분들이 있고, 현재 진행중인 논쟁들도 대거 도입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을 내러티브(narrative)로 이해하는 성경관, 언어의 메타포와 심볼을 도입해서 신앙을 설명해나가는 해석학적 방법 등은 영국에서는 복음주의권에서도 이미 상당한 진척이 있는 분야긴 하지만, 아직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더구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접합점을 마련할 것이냐에 좀더 고민이 있어야할 주제이다. 아무튼 이 주제는 차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되, 우리가 이번 논의에서 분명한 시사점을 얻어야 할 것은 복음주의의 전성기에 그 내부적 모순을 직시하면서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복음주의의 흐름이 좀더 자의식이 분명한 그룹들로 다양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는다. 좀더 다양한 신학적 사고들이 숨을 쉴 수 있는 분위기, 실험적 모델들이 시도될 수 있는 공간, 세상을 흑백사진이 아니라 칼라사진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그가 이끌어낸 포스트 에반젤리칼 논쟁은 이런 공간을 마련하자는 외침으로 읽힌다. 필자는 그가 분석해낸 바대로 복음주의가 스스로의 성장논리에 발묶이는 과정에 동의를 보내고, 중산층화 되어감으로써 잃어버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혀낸 대목에 함께 탄식한다.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전도에 열심을 내는 복음주의 고유의 특징을 유지하는 것과 그것에 함축된 역기능을 비판하는 것이 결코 양립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것도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것은 그 동안 막연한 반발감이나 불평으로 여겨 눌러두던 생각의 파편들이 비로소 제 이름을 얻고, 복음주의 이후를 모색하는 '고민하는 주체'로 자리매김 되었다는데 있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이것으로 자신의 이름이 비로소 불려졌다고 느끼는 사람들, 한국에는 없는가?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30 20:15

* <복음과상황> 2001.08월호 '브리스톨 통신(14)'입니다. 영국에서 이미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던 전도 프로그램 알파코스(alpha course)와 대학가 선교에 대한 글입니다. 이 원고는 확실히 업데이트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첫째, 알파코스는 그 이후 국내에 소개되어 꽤 많이 보급이 되고 있지만, 이 글에서도 언급했듯 성령운동과의 접목 부분에서 지나친 은사주의 경향이 문제시 되어 국내 일부 교단에서는 이단시비가 일기도 했습니다. 다만, 저는 그 부분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영국 알파까지 한번에 도매금으로 넘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대학가 선교 영역에서는 도표에 포함이 되지 않지만, YWAM(Youth With A Mission)같은 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졌고, 미국 CCC는 결국 영국활동에 실패하고 철수하기로 했다가 영국에 와있던 한국간사들을 포진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후속 취재를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풍문으로만 전달합니다.



복음주의를 정의할 때 자주 인용되는 데이빗 베빙턴의 ‘네 가지 특성’, 즉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회심주의(Conversionism), 성경주의(Biblicism), 그리스도중심주의(Cristocentricism), 행동주의(Activism)적 특성을 보였다는 평가는 그 자체로 복음주의를 규정하는 조건이라기 보다는 어떤 경향성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복음주의는 복음전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란 점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복음주의는 빌리 그래함이란 20세기 최대의 전도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영국의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존 스토트의 사역은 본질적으로 복음전도를 중요한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복음주의나 복음주의 운동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 아직은 ‘복음전도’가 그다지 중요한 논제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필자는 받는데, 이는 아직은 복음전도 전선에 문제가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부분이 전적으로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기 때문인지 의아하다(후자일 가능성이 짙다는 의심을 하고는 있지만). 최근의 국내 교회성장이 대부분 교인의 수평이동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사실이라면, 한국교회 대다수는 이미 심각한 복음전도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를 복음주의자들의 주된 이슈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다. 이번 글에서는 영국의 복음전도 노력과 논의를 몇 가지 소개하면서 우리 현실을 비춰보고자 한다.


영국의 알파코스 홍보 이미지들



알파코스, 텔레비전에 나온다


현재 서구 기독교권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도 프로그램으로 호평받고 있는 알파코스(Alpha Course)가 7월 29일 주일부터 10주간 공중파 방송인 ITV 채널을 통해 영국 전국에 방영된다. ITV는 영국의 4대 공중파 방송국의 하나로 실질적으로는 BBC 다음 가는 주요 채널(한국의 MBC격)인데, 주일 저녁 10시 뉴스에 바로 이어지는 주요 시간대를 10주씩 할애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 방송방식도 흥미로운데, 최근 서구 방송가를 강타하고 있는 몰래 카메라(voyeurism) 다큐멘터리로 제작된다. 10명의 지원자가 알파코스에 참가해서 과정 중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숨겨진 카메라로 찍고, 인터뷰도 하면서 보여주는 것이다. 진행은 영국의 관록있는 시사 방송인 데이빗 프로스트 경(Sir David Frost)이 맡아서 프로그램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ITV가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알파코스가 영국사회의 한 중요한 풍속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알파코스를 운영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그래서 10주 후에 이들이 예수를 믿느냐 마느냐’는 게임이 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보여질 복음에 대한 소개나 참가자나 운영자들간의 진솔한 대화 등이 보여줄 ‘복음증거’적 효과가 압도적으로 클 것이란 기대감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조성되고 있다. 알파 본부에서는 이 시기를 기해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포스터 홍보를 기획하고 있고, 방송에 맞추어 알파 관련 서적들은 일반 서점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빠짐없이 깔리게 된다. 예상대로라면, 금년 가을은 영국의 복음주의 기독교가 전 사회적으로 주요한 화제 거리로 떠오를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알파코스란 무엇인가?


존 웨슬리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는 평을 받는 알파코스는 사실은 런던의 한 성공회 교회의 새신자 양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년 전에 시작되었다. 런던 중심가 브롬턴(Brompton)의 홀리 트리니티 교회(HTB: Holy Trinity Brompton)의 찰스 만함(Charles Marnham)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 원칙들을 새신자에게 편안하고, 격의없는 분위기에서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알파코스란 것을 만들어 내었다. 주로 ‘예수란 어떤 존재인가?’, ‘왜, 어떻게 기도하는가?’ 등의 주제를 다루었는데, 1990년에 그가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되면서 이 코스는 닉키 검블(Nicky Gumbel)이란 신임 부목사에게 넘겨지게 되었다. 이미 이 코스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의 주요한 양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고, 매 코스마다 100여명 정도가 등록하고 있었다. 


닉키 검블은 이 코스를 운영하던 도중 매우 인상적인 발견을 하게 되는데, 자신이 이끌던 소그룹의 13명중 세 사람의 돕는 이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들은 ‘다른 종교는 어떻게 봐야하나? 왜 착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등 온갖 난해한 질문을 해대며 처음 6주간을 휘저어 놓았었는데, 이들이 코스의 한 부분인 주말 수련회에 참석해서 전원 회심을 하는 것을 보게된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닉키 검블은 이 프로그램이 매우 강력한 복음전도의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고, 당장 전체 프로그램을 손봐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요소를 보강하였다. 전체 코스에 환영하는 분위기가 꾸준히 유지되도록 하고, 소그룹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도록 배려하고, 대화나 강의 스타일, 음식, 좌석, 꽃 장식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와서도 편안히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알파코스의 소그룹 리더들은 어떤 종류의 질문이라도 하찮게 여기거나, 비논리적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반응하도록 하였고, 혹 중간에 그만 두기로 하는 이들도 탈락자나 이탈자란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알파는 15강좌로 이루어진 실용적인 기독교 신앙 소개 코스로 주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다. 그 주된 커리큘럼은 <Questions of Life>란 책에 잘 소개되어 있다. 주로 주중에 저녁 시간을 이용해 모임을 갖는데, 우선 모이면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하게된다(함께 밥 먹는 경험이 대인관계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기독교의 기본 주제들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talk)가 있고, 참가자들은 미리 정해진 10-12명 단위의 소그룹으로 쪼개지게 된다. 소그룹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기탄 없이 나눌 수 있는 분위기로 운영이 되는데, 각 소그룹에는 3-4명의 리더들이 포함된다. 전체 일정 중 한번의 주말 모임이 있는데, 이때 성령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다.



알파에 대한 평가와 반응


알파 웹사이트(http://uk.alpha.org)에 올라와 있는 주요 기독교 지도자들의 찬사는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인 조지 캐리, 세계적 복음전도자 루이스 팔라우, YWAM의 로렌 커닝햄, 신학자 제임스 패커, 고든 피, 알리스터 맥그라스, 거기에 더해 카톨릭 주교들, 영국 내 성령운동 지도자들 등 단순한 전도 프로그램이라고 보기에는 그 영향력의 범위가 상상을 넘어선다. 국제적으로도 영어 사용권에는 거의 다 퍼져있다고 보아야 맞겠고, 아프리카, 아시아(한국 사무실 연락처도 나와있다)를 가리지 않고 소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알파의 이런 성공에는 여러 가지 분석들이 나오겠지만, 우선 필자가 보기에는 과거의 전도 패러다임이 주로 선포적(proclamation)이고, 결단을 강요하는 대결적 접근(confrontational approach)이었다면, 알파코스는 우정과 호의를 바탕으로 하는(friendship and hospitality based) 관계적 접근(relational approach)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알파에서 자주 강조하는 슬로건처럼 ‘친구를 데려오고 싶은 모임’이 되는 것은 그리 만만히 볼 덕목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닉키 검블이란 인상좋은 목사가 조리있게 설명하는 기독교의 기본원리들은 그리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잘 전달해준다는 잇점이 있다(대부분의 알파모임에서는 talk 시간에 닉키 검블의 비디오를 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알파코스는 기본적인 틀만 유지하면, 일부 내용을 교회 실정에 맞게 수정하는 것도 용인한다. 특히 주말수련회에서 성령에 대한 가르침과 기도하는 부분은 비카리스마틱 교회에서는 좀더 완화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또한 알파는 비록 개발과 관리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지역교회가 스스로 수용해서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다. 본부에서 하는 것은 포스터나 홍보물을 제작해서 지역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리더훈련을 위한 컨퍼런스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정보교류와 운영상의 노우하우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정도이다.


비판적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이 없지는 않다. 참가자들의 낙오율이 높다는 지적이나, 실제 비기독교인들(non-Christian)보다 주변부 교인들(fringe Christian)에게서 효과를 보고있다는 평가, 중산층적 배경에서 주로 잘 받아들여지는 내용과 분위기란 점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제자도에 대한 강조가 약한 대신, 성령운동적 분위기가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 가운데는 알파 이후에 대한 고민도 나온다. 즉, 알파코스를 통해 교파적 색채가 배제된 기독교 신앙을 소개받은 사람들이 정작 지역교회에 정착하려고 할 때 교리적 차이나, 예배형식의 다양성 등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여전히 탈교파적(post-denominational) 분위기에 머물고 싶어할지도 우려되는 것이다. 현재 청소년 그룹, 대학생 그룹, 교도소 사역 등으로 그 적용환경이 확장되어 가는 것은 사실이나, 중산층적 기반을 넘어서는 유연성을 보여줄 것인가도 주목이 되고 있다. 영국 어디를 가나, 웬만한 교회에는 예의 그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알파 포스터를 볼 수 있다. 기독교에 호기심이 있지만 선뜻 교회 건물에 들어설 기회가 없었던 많은 이들에게 알파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친구를 데려오고 싶은 모임’이란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알파코스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은 인정을 해야할 듯 싶다.



영국의 대학가 선교 상황


영국의 기독교 잡지 <Christianity+Renewal> 부편집장인 앤디 펙(Andy Peck)이 2001년 7월호에 쓴 글에 따르면 영국 대학가에서 사역중인 학생단체는 표와 같다. 약 200만으로 추산되는 영국 내 전문학교 이상의 고등교육 과정 재학생 중, 복음주의 조직에 포함되는 수는 1%가량인 약 20,000여명 정도이다(이것은 지역교회에만 나가는 이들이 빠진 수치이다.). 표에 나오는 조직 외에 약간의 교단모임(Anglican, Methodist Student Association 등)이 있긴 하지만 거의 미미하다. 


 단체명 구조  사역철학  학생 수  역사 
 UCCF  65명의 사역간사 간사들이 CU(Christian Union) 리더들을 훈련함  300여 유니버시티와 칼리지에 16,000여 학생   전 IVF(1927년 시작)
 Fusion  지역교회가 지원하는 셀조직 6-12명 단위의 셀그룹을 통한 제자훈련과 전도  230여개 셀이 영국 전역의 45-50개소에 존재. 총 2,000여명 규모  1997년 새로운 학생사역으로 시도됨 
 Christian Student Action(CSA), Agape  25명의 전임간사가 버밍엄, 런던, 뉴카슬에서 대학들과 연계활동 간사가 학생들을 제자훈련시킴. 비신자에 주력  100여명의 기독학생들이 참여중.  1972년에 도입된 미국 CCC가 90년대 이후 CSA, Agape로 개명. 
 The Navigators  39명의 전임학생대표, 14명의 파트타임 학생사역자 전도에 주력하는 멘토링 중심  10개 센터에 540여명의 학생  1966년부터 영국서 활동 시작한 미국단체 



흥미로운 양상은 그 동안 거의 UCCF가 독주하던 대학선교의 장에 새로운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 대학선교의 가장 큰 특징은 UCCF의 사역전략인 학생자발성(Student-initiative)에 있다. 한국의 학생단체들과 달리 UCCF 간사는 어떤 대학에 소속되어서 직접 자신들의 학생모임을 이끄는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주로 각 대학에서 자발적으로 결성된 초교파 기독인 연합모임인 CU(Christian Union) 리더들의 요청을 받아 그 리더그룹을 위한 양육과 자문역할을 한다. 이들은 상주 간사가 아니고, 각 캠퍼스를 방문하면서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travelling secretary’라고 불린다. 각 CU는 학생들 자체적으로 경건의 시간이나 성경공부모임을 조직하고, 운영한다. 또 필요에 따라 전도모임이나 외부 강사를 초청한 강좌를 개최하기도 한다. 필자가 공부하는 신학교에도 전직 CU 학생대표나, UCCF 간사 출신들이 있어서 얘기를 들어보면 그 역할이 한국의 선교단체 간사와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 쪽의 단체들이 주로 간사가 직접 학생들을 양육하는 모델을 선호하는 것과는 차별화 되는 부분인데, 실제로 미국의 단체가 영국 대학에 들어오려 했을 때 캠퍼스 선교가 단체간의 경쟁으로 치달을 상황을 우려한 영국교회 지도자들이 반대해서 좌절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표에서 나타나듯 여전히 UCCF의 영향력과 전략이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셀교회 전략을 기반으로 하는 Fusion의 약진 사례에서 보듯, 다양한 전략이 서서히 구사되고 있다는 조짐을 느낄 수 있고, CSA나 네비게이터 등 간사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그룹들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간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영국의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란 느낌을 받지만, 영국의 대학생 선교운동이 그간 걸출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배출해온 것을 생각하면 한국 상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데에 영국의 경험이 가르쳐줄 수 있는 바는 적지 않을 것이다. (* 학생 지도력과 영국 복음주의 학생운동에 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필자가 편집한 <복음주의운동 강좌>(학원복음화협의회, 1999), 99-131에 실린 이승장 목사의 글을 참고하라)


 

어떤 전도가 필요한가: 선포냐, 순례냐?


스펄전 칼리지의 스튜어트 머리(Stuart Murray) 교수는 ‘과거에는 믿고 나서 공동체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오늘날에는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먼저고 그 후에 믿는다. 이것은 복음전도에 있어서는 상당히 혼란스런 정황인데, 어쨌든 복음전도를 위해서는 이제 믿음의 순례(journey of faith)에 동행해 줄 수 있는 자질이 점차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런던바이블 칼리지의 학장 더렉 티드볼(Derek Tidball)은 여전히 선포적 전도가 필요하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회심자들의 80퍼센트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회심(gradual conversion)을 경험하고, 단지 20퍼센트만이 급격한 위기의식를 통한 회심(crisis conversion)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전적으로 새롭게 검토할 필요를 강력히 시사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복음제시와 결단’으로 대표되는 전도의 방법론을 새로운 맥락에서 되살리려는 작업들도 적지않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가장 활발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가정교회 운동들은 대부분 방문전도(door to door)를 어색하게 생각지 않고, 소그룹 모임에서 신앙을 강하게 도전하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을 발견한다. 특히 제도권 교회에서 거의 소외되어 있는 중하층(working class)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과는 달리 단도직입적인 복음제시와 일상 생활에 밀착한 간증 나눔 모임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된다. 알콜 중독, 마약, 미혼 부모, 이혼, 가정 폭력, 빈곤, 차별대우 등이 일상화된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인생관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성경의 가르침이 제시되고, 그것이 삶으로 뒷받침되는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해내는 것이 더 호소력 있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오랜 선교사 생활을 했던 레슬리 뉴비긴이 은퇴후 영국으로 돌아와서 쇄락한 도시 교회(inner city church)를 살리기 위해 인도인 부목사와 방문전도를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가난한 이민자들이 쉽게 방문을 열고, 차를 대접하며,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는 오히려 주류 영국사회가 거대한 이방국가(pagan country)로 전락해있음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그가 쓴 여러 권의 책들에는 서구사회에서 복음이 ‘사적인 진리(a private truth)’로 몰락한 현실에 대한 통탄과 이를 ‘공적인 영역에서도 선포될 진리(a public truth to proclaim)’로 회복하기 위한 절실한 시도들이 짙게 배어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사영리’나 ‘다리’ 전도지, ‘전도폭발(Evangelism Explosion)’ 등이 많이 활용되고 있으나 아직 관계적 전도 전략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사례는 많지 않아 보인다. 또 한국교회의 문제는 전도의 방법론 이상으로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 자체가 근년에 엄청나게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점도 난관이다. 교회 공동체의 교제가 사회적으로 유력한 사람들과 사교하는 장으로 사용되는 일부 대형교회의 현실도 안타까운 문제이다.

복음의 기본 진리에 대한 변증적 노력이 많지 않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하겠다. 서구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 문화, 유행 등을 기독교 변증의 이슈로 삼는 책들이 출판된다. 우리도 이런 노력이 없이는 소위 ‘생짜’ 복음의 개요 말고는 삶의 현장에서 닥치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는 ‘삼무(三無) 입장(무지, 무기력, 무책임)’에 놓이게 될 것이다. 복음을 믿으면 앞으로 어떤 삶이 기다리냐고 누가 물어올 때 우리가 기껏 들이밀 수 있는 대답이 ‘우리처럼 이렇게 매일매일 따분하게 살다가, 주일날은 부패한 교회에 큰 성경책이랑 찬송가 들고 나가서, 어영부영 몰려다니면서 바쁘게 살고 있을거다’는 것이라면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이러니 어느 전도관련 서적에 나오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전도란 자기 집 개한테도 할 것이 못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차분히 다시 한번 우리는 한 인간을 상대로 그 사람의 인생에 중차대한 변화를 몰고올지도 모르는 -아니, 아마도 몰고올 것이 확실한! - 어떤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았으면 좋겠다. 복음주의자는 복음전도를 하는 자들이다. 이 기본을 바로 하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30 18:55
* <복음과상황> 2000.06월호 '브리스톨 통신(3)'입니다. 영성(spirituality) 논의는 늪과 같아서 가다보면 바닥이 없는 거대한 삶과 경험의 세계로 내딛는 것과 같습니다. 마침 '복음주의 영성'에 대해 제가 다니던 학교의 학장이 발표한 논문을 흥미롭게 듣고나서, 그 내용을 기반으로 제 관찰을 덧붙인 글입니다. 


photo by Chong Park (2008)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은 어제 오늘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 흐름 속에서는 90년대 이후 급속한 확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젊은 대학생들 층을 중심으로 그 변화의 맥락은 비교적 쉽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귀납적 성경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경건의 시간(QT)'을 주도해왔던 어떤 선교단체는 학생들 사이에서 내적 치유(Inner Healing)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현상을 놓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고, 찬양에 관심이 많은 이들 사이에서는 '켈틱 영성(Celtic 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나 논의가 있음도 듣고 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이런 변화의 조류가 내재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 분명하긴 하지만, 그 대안들이 거의 외국으로부터 흘러 들어온다는 점에서 외래적 요소를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때로는 외국의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 수입되어서 국내의 변화를 강제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모든 상황에서 가장 요긴한 것은 국내의 잠재된 욕구들이 무엇인지를 간파하는 감각과 더불어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도 맥락에 맞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제대로 안돼서 한국 기독인들만 불쌍하게 된 경우로 필자는 'CCM과 뉴에이지 논쟁'을 들고 싶다. 한편은 국내의 찬양운동에 새로운 장을 연다는 사명감으로 외국 가수와 음반을 소개했고, 다른 한편은 그것이 사탄의 문화적 침탈에 놀아난 꼴이라고 비난했다. 정작 미국적 맥락 속에서 있었던 토론과 한계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찾아내지 못했던 관계로 이 논쟁은 무척 지루하고, 소모적으로-'기독문화'를 화두로 끌어올린 성과는 인정해야겠지만- 진행되었고, 아직도 미봉합 상태로 남아있다.

'영성'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앞다투어 들여오고 있는 온갖 잡다한 흐름 속에서 질퍽거리다 보면, 대체 무엇이 바른 영성인지, 복음주의적 영성이란 어떤 맥락에서 규정될 수 있는지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다반사이다. 마침 '영국의 복음주의와 영성'의 맥락을 깔끔하게 다룬 글을 한편 만나게 되어 이를 간략히 소개하며, 한국적 상황에 던져주는 시사점을 찾아보도록 한다.(이 원고는 브리스톨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으로 지난 12월 임명된 프란시스 브리저(Francis Bridger) 박사의 미간행 강연 내용이다.)


영국 복음주의와 영성
영국에서도 복음주의권에서 '영성'이란 용어가 대두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례로, 프란시스 브리저는 1987년에 영국 성공회내 복음주의 지형을 살피기 위해 공식적으로 저술된 책에서도 '영성'이란 항목 자체가 빠져있었던 것을 지적한다. 이는 1995년에 있었던 성공회 복음주의자 집회(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은 성공회내의 복음주의자들의 압도적인 기여 하에서 발전해 왔음을 기억하자.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마이클 그린 등) 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는데, 이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시야에 '영성'이란 주제가 독립적인 것으로 부각되지 않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그는 풀이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주의자들이 영성에 무지했거나, 관심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복음주의를 역사적으로 대두시킨 계기가 18세기 대각성 운동이었고, 이는 격렬한 신앙경험과 회심체험으로 특징지어지는 '가슴의 신앙(religion of heart)'이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반전되는 것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성경의 진리성과 복음주의 교리에 대한 방어의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계몽주의(Enlightenment)로 집약되는 서구 사상의 대반전이 몰고 온 지적 도전을 사회적으로 받으면서,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해 들어갔던 자유주의 신학사상과는 내부적 대결을 벌여야 했던 관계로 이 시기의 복음주의 신학은 매우 합리주의적인(rationalistic) 경향을 띠었고, 신앙적 유형도 성경에 대한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설교와 성경 읽기(연구)가 주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이를 잘 나타내주는 사례는 1910년에 있었던 캠브리지 기독학생회(CICCU, 한국의 IVF 전신)가 성경관의 차이 때문에 기독학생회(SCM)에서 탈퇴한 사건과, 1922년에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선교회였던 CMS(Church Missionary Society)에서 역시 성경관의 차이로 인해 BCMS(Bible Churchmen's Mission Society)가 분리해 나가는 사건을 들 수 있다. 물론 분리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결부되기 마련이지만, 그 핵심에는 언제나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경험은 이후 복음주의자들의 성향(?)에 깊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프란시스 브리저는 이 다음 시기를 세 단계로 나누어 복음주의 운동의 전체 흐름과 영성의 변천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추적하고 있다.(영성을 말할 때, 구체적으로 실체를 지적해 내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는 그것이 표상되는 '이미지(image)'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Billy Graham's 1954 London Crusade


1) 1954년-1967년: 전투(Battle)적 영성
1954년은 미국의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이 런던에서 대형전도집회를 개최해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오랜 무력감을 떨치고 나서도록 도전했던 해이다. 이때 빌리 그래함의 캠브리지 대학 미션을 주도했던 이가 1950년 20대의 나이로 런던 중심부의 유서 깊은 올 소울즈(All Soul's) 교회 교구목사로 임명되었던 존 스토트였다. 이 해에 IVF는 NBC(New Bible Commentary)를 출판함으로써 복음주의 성경학자들의 등장을 신고했다. 그 동안 무시당하고, 열세에 몰려있던 복음주의자들이 이 시기에 전열을 정비하고 급격히 '커밍 아웃(Coming-Out)'을 하게 되는데, 성경과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결연히 싸운다는 의지를 곳곳에서 읽어낼 수 있다. 1963년 존 로빈슨 주교의 '신에게 솔직히'란 책이 발간되어 사회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강한 회의가 일어났을 때, 당시 옥스퍼드를 갓 졸업하고 클리프톤 칼리지(현재의 브리스톨 트리니티)에서 강의를 하던 제임스 패커가 신랄한 비평으로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던 것이 그 한 예를 보여준다. '성경의 권위', '대속의 교리', '전도의 긴급성'이 이 시기 복음주의자들의 사고를 지배하던 핵심적인 주제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전형적인 경건생활은 개인적 수준에서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QT와 개인기도가 주류를 이루고, 공동체적 수준에서는 정규적인 예배 참석으로 대표되었고, 예배에서는 특히 성경강해(Bible exposition)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극장출입, 술, 담배, 춤 등 오락(오늘날 대중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을 거부하고, 세상으로의 진출보다는 성직을 택하는 것이 존경받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전도하는 것이 복음주의자가 세상을 향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신앙적 입장으로 고려되었다.(굉장히 익숙한 풍경 아닌가?)


2) 1967년-1977년: 대화(Dialogue)의 영성
1967년은 복음주의자들이 소위 '전투적 영성'에서 벗어나는 한 계기를 보여준다. 이 해에는 최초로 성공회 내의 복음주의자들이 킬 대학(Keele University)에 모여 전국대회(NEAC: National Evangelical Anglican Congress)를 가짐으로써 그 동안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던 성공회 내에 큰 파장을 던졌다. 이 대회는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의 주도적 역할아래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그 전해에 있었던 영국 복음주의협의회(Evangelical Alliance) 총회와 대비할 때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총회에서 당시 복음주의권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로이드 존스와 존 스토트가 결별하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로이드 존스가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에 물든 교단에서 나와서 복음주의자들만의 새로운 교단을 결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데 반해, 존 스토트는 이를 분리주의적 성향이라고 비판하고,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교단에 남아서 복음주의자의 영향력을 증가시켜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좌측 로이드 존스, 우측 존 스토트



이것은 적과 아군을 철저히 구별하는 '전투적 영성'이 논리적으로 귀결되는 지점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예라고 할 수 있는데, 로이드 존스는 독립교회였고, 존 스토트는 성공회였다는 점도 서로 다른 입장차이를 강화하는 요인이었다. 결국, 양측 다 복음주의협의회에서 탈퇴함으로써 한동안 이 연합기구가 표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존 스토트는 자신의 지론대로 성공회 내에 남아서 복음주의자들의 영향력을 증진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임으로써 오늘날 성공회 전체의 신앙적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받는다.(오늘날 성공회 내의 복음주의자는 60%를 넘는다) 어쨌든 성공회를 중심으로 복음주의자들이 제도권내의 개혁을 시도하면서부터 '전투(battle)' 이미지보다 '대화(dialogue)'의 이미지가 점차 부상하게 된다.

'대화' 모티브로의 전환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변화를 몰고 왔는데, 첫째로 복음주의자들이 예전에 비해 다양한 영역(예배의식, 성만찬, 교회정치 등)의 이슈에 적극 관심과 참여를 하게 되었다는 점과, 둘째로 그 당시 성공회 내의 이슈였던 카톨릭과의 관계 개선에도 앞장서게 되었다는 점이다.(제임스 패커는 아직도 이 문제를 꾸준히 다루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그 이전 세대가 갖고 있던 분리주의자란 오명을 벗고, 책임 있게 구조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성공회 내의 위상이 매우 달라지게 되었고, 복음주의자들도 이전에는 아예 상관하지 않던 다양한 신앙전통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례로 존 스토트가 WCC의 웁살라 대회에 옵저버로 참석하자 복음주의권 일부에서는 우려 섞인 눈초리로 보았지만, WCC가 복음주의자들을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대화 파트너로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복음주의 내부적으로는 좀더 넓은 신학적 이슈들에 대한 대안 마련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변화가 영성에 끼친 영향은 좀더 장기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그 동안 지녀왔던 좁은 의미의 복음주의 바깥에 존재해온 다양한 흐름에 관심을 갖고, 귀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찾을 수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성령운동(Charismatic Movement)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경직된 의미에서 성경 중심적이었던 복음주의가 교리나 신학이 느슨하고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였던 성령운동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이 등장하고 있었던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운동의 자유롭고, 활기 있는 예배양식과 성직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은사 받은 사역자란 이해를 받아들이는데 큰 무리가 없었고, 성령운동 쪽에서도 복음주의자들이 중요시하던 성경연구는 체험 위주의 신앙이 갖는 결함을 보완해준다는 점에서 상호 교류가 가능했다. 70년대 중후반부의 지형은 이렇게 강한 성령운동의 영향을 영국교회 전체가 인정하고, 수용하는 쪽으로 형성되었다.

이것이 전형적인 복음주의 영성에 끼친 영향은 어떻게 볼 것인가? 성령운동의 영향력은 개인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intimate relationship)를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했다. 이는 전형적인 경건의 시간이 의지적 훈련이고, 지적인 과정으로 이해가 되었다면, 그래서 경건의 시간을 갖지 못했을 때 자책감을 일으키는 식의 결과를 낳았다면(QT를 했냐, 안했냐로 영적 생활의 판단기준을 삼는 것?), 성령운동은 성령의 충만(혹은 세례)을 받음으로써 한 단계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하는 것이 바람직한 개인의 영적 생활이란 의식을 싹트게 했다. 공동체적 수준에서는 예배의 강조로 나타나는데, 이는 과거처럼 교회에 가서 좋은 설교를 듣고 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자신이 예배를 '드리는' 것, 혹은 하나님과의 친밀성을 회복하는 체험을 하는 것에 비중이 놓인다. 특히 예배시의 음악, 자유로운 분위기, 기도 체험 등과 몸(body)의 사용에 대한 긍정적 인식 등이 주요한 표지로 드러난다. 물론 이런 부분들은 단순히 성령운동이 몰고 온 것만은 아니다. 이미 18세기 부흥운동 때 나타났던 특징들이지만, 그 동안 잊혀져 있던 것이 새롭게 재발견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3) 1977년-1990년대: 탐구(exploration)와 발견(discovery)의 영성
1977년, 10년만에 노팅험에서 열린 두 번째 NEAC가 그간의 변화를 집약하고, 다음 시기를 전망해주었다. 이 대회에서 드러난 주요한 변화의 양상은 첫째로 복음주의적 성경이해의 지평이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안토니 티즐튼(Anthony Thiselton)이 제안한 해석학적(Hermeneutical) 성경이해는 당시 참석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는데, 그 동안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비판적 연구를 비복음주의적이라고 치부해왔으나, 그는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다양한 해석학적 이론이 제공하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얻어지는 해석들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의미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복음주의자들의 성경이해는 학문적인 성과를 도외시하지 않고, 복합성을 수용하게 되었다. 복음주의 성경학자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도 이 즈음이다.

두 번째는 사회에 대한 재발견인데, 이 대회 때 사회정의(Social Justice) 문제가 복음주의 신학의 주요 의제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 만해도 '사회참여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쟁점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복음주의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1974년 로잔대회가 있었고, 그때 국제적인 차원에서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참여 문제를 공론화 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의 호흡이 이런 흐름과 긴밀하게 연계되고 있었음도 볼 수 있다.

프랑스 Taize 공동체의 예배 모습.



영성에 미친 영향을 다시한번 살펴본다면, 복음주의가 성령운동에 호의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신앙 전통들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카톨릭(로만 카톨릭이나 성공회 내의 카톨릭 성향의 전통)에서도 영성훈련 등을 배우려는 시도들이 나오게 되는데, 예를 들면, 묵상 훈련(meditation), 침묵 훈련(silence), 관상 훈련(contemplation) 등이 경건의 시간을 돕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조이스 허기트나 리차드 포스터 등의 저술에서 이런 흐름을 잘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로로 영국의 경우, 고대 기독교 전통인 '켈틱 기독교 영성(Celtic Christian Spirituality)'이 유행을 타게 되었다. 과거 매우 좁은 의미에서 성경 중심적이었던 복음주의 영성은 이제 매우 포괄적인 범위로 확장되었고, 다양한 흐름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 이전 세대들이 성화, 향, 촛불, 십자가 등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건강치 않거나 심지어 이단적이라고 보았던 것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복음주의자들의 자기이해가 상대화되고, 다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복음주의가 아닌 전통에 대해서도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공존의 여지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적 상황 대입하기
위에서 요약된 내용들을 한국 상황에 오버랩해 놓으면 상당정도의 상관성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 초창기의 선교단체나 교회생활은 확연히 성경 중심적인 성향이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성경 암송, 성경 공부, 아침 경건회, 전도 등이 개인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흔히 적용되었다. 현저히 신앙의 의지적 측면이 주도적이었다.(사영리의 마지막 부분에서 믿음은 지식에 근거한 의지적 결단으로 설명되던 것을 기억하는가? 정서적 반응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이 시기는 행동주의(Activism)적 경향도 두드러지는데, 특히 개인전도나 전도집회 등이 영성을 형성하는 주요한 장의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의 두 번째 단계는 80년대 후반이후 경배와 찬양을 통한 예배운동과 내적 치유가 대두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전의 지나친 의지적 신앙훈련이나 집단적 행동통일을 통해 얻던 효과는 점차 인격성과 친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적 태도들에 비추어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신세대의 대두란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찾아온 이런 성향은 선교단체나 교회의 전통적인 신앙훈련의 개념틀을 바꾸게 하였다. 물론 기존의 양육방법론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입장도 많이 나왔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기존 방법론의 성숙과 심화라는 방식이었다. 즉, 설교자들이 예배나 내적 치유의 차원을 더 깊이 포용하게 되었다든지, 성경공부나 QT에 인격적 적용이 더 통합되었다든지 하는 결과를 갖고 왔다.

세 번째 단계는 공동체나 수도원을 통한 영성훈련의 각성이 어느 정도 일고는 있다지만, 카톨릭 전통과의 접촉이 거의 없는 개신교에서 예전(Liturgy)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예로, 리차드 포스터의 대표작 '영적 훈련과 성장' 초기 번역판에는 구체적인 영성 수련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부분이 삭제된 채로 서점에 팔리고 있다. 출판사가 이렇게 임의로 편집을 한 것은 한국교회의 수용 폭이 협소함을 보여주는 예로 생각된다. 사회적 관심과 영성의 결합은 예수원이나 다일 공동체를 비롯한 공동체 신학에 관심 갖는 이들을 통해 어느 정도 실험적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고 보는데, 다른 전통들로 파급될 수 있는 자생력을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 복음주의 영성을 생각하며
프란시스 브리저는 글의 마무리에서 21세기의 복음주의 영성의 흐름을 규정할 요인들을 찾고자 스스로에게, '성경중심이란 복음주의 영성의 본래적 전통은 이제 해체된 것인가? 오늘날의 영성이 변화하는 문화적, 사회적 흐름에 단지 편승하는 위험은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영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개인의 내면세계만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흐르는 것을 지양하고, 세상을 향한 공동체적 대응의 국면을 갖도록 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21세기의 복음주의 영성은 '통합(integration)'이란 이미지를 드러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으로 끝을 맺었다.

필자가 위의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몇 가지 대안적 흐름은, 첫째 성경중심의 영성 회복은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을 비롯한 많은 성경신학자들의 긴급한 관심사항이란 점과,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의 유진 피터슨이 성경을 풀어쓴 메시지(Message) 시리즈를 내고 있는 것이나 제임스 휴스턴이 기도를 중심으로 본래적인 복음주의 전통을 활용한 영성신학의 수립에 힘쓰고 있는 예를 들 수 있겠다. 

두 번째 과제는 포스트모던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영성적 대응을 찾아가는 작업이 될 터인데, 이 분야는 매우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급진적인 실험장인 셈이어서 안목 있는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적합한 형태의 신앙유형으로 '포스트이반젤리칼(Post-Evangelical)'을 제안한 논쟁이 있었고(다음 번에 소개하도록 한다), 미국에서는 제넥스(Generation-X)의 영성을 연구한 톰 보드완(Tom Beaudoin)의 책 '가상 신앙(Virtual Faith)'이 파장을 불러왔었다. 



세 번째 과제는 그 동안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많은 공동체 운동들을 주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공동체들은 서구에서는 예배와 영성회복의 근원으로 역할을 해왔고, 상당히 많은 경우에 사회적 약자들과 강한 연대를 형성해왔다. 프랑스의 떼제(Taize) 공동체, 영국의 아이오나(Iona) 공동체, 미국의 소저너즈(Sojourners) 공동체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복음주의 카테고리로 포괄되지는 않지만, 비판적 이해를 통해 복음주의자들이 많은 자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곳들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30 18:55
* <복음과상황> 2000.05에 '브리스톨 통신(2)'으로 실었던 글입니다. 영국 교회, 혹은 유럽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매우 단편적인 인상이나 정보만 유통되는 우리 현실에서 신학공부하던 한국의 복음주의자 눈에 포착된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지속되는 영국 복음주의에 대한 저의 편애의 단초를 볼 수 있는 글입니다. 2009년 현재 상황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로 바뀌는 등 약간의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만, 전체적인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있다고 봅니다. 




좌로부터 클리프 리차드, 조지 캐리, 존 스토트



클리프 리챠드, 조지 캐리, 존 스토트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인은 누구일까? 물론 존 스토트도 유명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 지금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인 조지 캐리(George Carey)일까? 물론 그는 국교인 성공회를 대표하는 교황과 같은 존재이고, 행동하는 복음주의자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의하면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인은 클리프 리챠드(Sir Cliffe Richard)이다. 한국에는 6-70년대를 풍미한 대중가수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아 여왕으로부터 경(Sir)의 작위를 받고 나서는 자선활동과 복음전도에 전적으로 투신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가수활동도 하고 있는 그는 지난 밀레니엄 직전에 올드 랭 사인 곡에 주기도문을 가사로 붙인 '밀레니엄 기도(Millenium Prayer)'란 곡으로 팝 챠트 정상에 올라 수주간 수위를 지켰다.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국은 아마도 영국 사람들이 보는 영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 것이다. 상이 뚜렷하지 않은 희미한 이미지이거나, 부분적인 정보로 재구성된 전혀 다른 그림일 수도 있다. 이 연재물이 의도하는 몇 가지 목표가 있다면 그중 하나로 영국 기독교 전통을 잘 이해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비판적 수용이나, 창의적 적용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바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와 영국 교회
우선 한국 기독교와 관련된 몇 가지 친숙한 사실부터 확인을 해보면, 최초로 한국에 관심을 가졌던 선교사중 한사람인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가 영국 출신이다. 런던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선교사로 지원한 그는 상해에 도착한 이듬해 아내를 잃고, 선교부와 심각한 갈등을 겪는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조선이란 작은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조선 근해에 까지 접근했으나, 본격적인 사역은 실패하였다. 결국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관과 길잡이를 자청해서 나선 조선행이 그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전하려고 매우 힘을 썼는데, 이는 이후 조선 유학생들의 손에 의한 성경번역으로 열매를 맺었고, 한국은 선교사상 유래 없이 자국인에 의해 번역된 성경을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용하고 있던 자생적인 교회를 소유할 수 있었다.

좌측 로이드 존스, 우측 제임스 패커


해방후에는 영국을 유학한 이들에 의해 IVF가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 초창기 학생선교운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몇번의 이합집산을 거쳐 미국 IVF의 지원아래 재건되었다. 허나, 흥미로운 것이 한국 학생선교단체의 가장 초기 모델인 CCC가 미국의 지원아래 시작되었다면, UBF는 좀더 토착적인 성향을 띠었고, IVF는 영국 모델에 근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80년대 이후의 한국교회를 생각한다면, 대중적인 복음주의의 확산에 여러모로 기여한 복음주의 목회자와 학자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 로이드 존스를 꼽을 수 있다. 이 영국출신 트로이카의 저술이 한국교회의 젊은 세대에게 끼친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꼼꼼한 성경연구, 지적인 성실성, 복음에 대한 뚜렷한 자신감, 세상과의 관계성에 대한 집요한 추구 등은 이들로 대표되는 영국 복음주의 전통을 매력적으로 보게 해주었다. 아직도 국내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관련된 논의에서, 강해 설교와 귀납적 성경연구를 추구할 때, 부흥과 청교도 전통을 논할 때면 이들의 영향력이 여지없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교회사 속의 영국 교회
교회사 속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크다. 이미 11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안셀름(Anselm)이 캔터베리 대주교의 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데에서도 보이듯,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견고히 자리잡고 있던 기독교의 주요 영향권이 서서히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영국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카톨릭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반기를 든 성공회(Anglicanism)의 분립이라든지, 16세기 종교개혁의 전조가 될 다양한 개혁운동의 한 흐름으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위클리프(John Wycliffe)를 기억할 수 있다. 종교개혁의 후속타로 이루어진 장로교의 확립은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John Knox)에 의해 이루어졌고, 영국에서는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퀘이커 등 소위 비국교도(non-Conformist) 교파들이 속속 등장했다. 18세기에는 웨슬리 형제와 조지 휫필드에 의해 주도되었던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이 있었다. 이는 미국에 깊은 영향을 끼쳐 이후 미국교회의 기본적인 신앙성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고 불릴만큼 대단한 선교열정이 일어났다. 침례교인인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가 18세기에 불붙인 선교운동은 19세기 들어 수많은 선교단체들과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를 비롯한 선교운동의 전설적 지도자들의 등장을 보게했다. 이 흐름은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져서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Edinburgh Conference)에서 역사적 절정을 이루게 된다.

좌측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안셀무스, 존 위클리프, 존 웨슬리, 허드슨 테일러, 윌리엄 캐리, 조지 휫필드.



18세기 계몽주의 이후의 철학과 신학은 주로 유럽대륙, 좀더 좁혀서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하지만 이를 영어권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는 영국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미국에 비해 훨씬 새로운 신학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고, 오랜 학문적 전통과 역량에 바탕한 대응의 과정은 영국의 신학이 깊이와 폭을 갖추도록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영국은 20세기 초반 미국을 강타했던 근본주의 논쟁(Fundamentalism controversy)으로부터 비켜 서있을 수 있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근본주의가 남겨놓은 깊은 상처를 극복하는데 아직까지도 고심하고 있는데 반해,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유연성과 학적 깊이를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한 이정표라고 할 로잔대회(Lausanne Conference, 1974)를 두고 미국의 조직과 영국의 두뇌가 손을 잡고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평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영국 기독교
그러면, 오늘날의 영국 기독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국제적 위상이 한껏 드높았던 과거와 현재 영국의 현실은 얼마만큼의 격차가 있는 건가?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영국은 70년대 IMF의 지원을 받아야 할만큼 심각한 곤란을 겪었다. 한동안 한국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한국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려고 대표단도 파견하던 처지였다. 그러나, 8-90년대를 거치면서 놀랍게 회복된 지금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고도 경제가 잘만 돌고 있다는 주장을 거리낌없이 내놓는 형편이다. 부동산 경기가 과열조짐이 보이고,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쪽의 하이테크 산업이 주식시장을 선도하고, 대규모의 기업합병과 매수가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경제적 활황기에 와있다.

그러나, 기독교쪽의 상황을 본다면 전반적으로는 비관적 통계와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밀레니엄을 넘어서면서 발표된 여러 종류의 기독교 관련 통계자료들은 영국의 기독교 인구가 날로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카톨릭을 포함한 명목상의 기독교인들(교회에서 세례를 받거나, 결혼한 경우를 다 포함하는 최대치 기독교 인구)은 2000년 기준으로 3,770만명으로 전 인구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초반부 내내 85%대를 유지하다가 50년대에 70%대로 내려섰고, 80년대를 들어서면서 60%대로 주저앉은 수치이다. 

그러나, 등록 교인수(membership) 통계에 가서는 더욱 확연하게 비관적 전망을 보여준다. 각 교파에 정식으로 등록된 사람들만 따지는 이 통계치는 2000년 기준 586만명으로 명목상 기독교인들의 1/6 수준이고, 60년대의 동일 통계에 비하면 40%가 하락한 것으로 명목상 기독교인수보다 그 감소세가 더 심각하다. 60년대 이후로 6,000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은 형편이고, 최소 7,500명의 목회자가 부족하다. 

정기적인 예배 참석자(church attendance)는 더욱 하락세인데, 전체 성인 인구의 8%정도가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79년부터 매 10년마다 시행된 영국교회의 통계치를 통해 추정한다면, 1980년부터 2005년까지 130만명의 성인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것으로 예측되고, 이는 매주 800여명이 교회 출석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감소세를 주도하는 것은 가장 규모가 큰 성공회(165만 교인, 18,000 교회)와 카톨릭(172만 교인, 4,000 교회)인데 성공회는 20세기초중반의 전성기에 비해 거의 절반이하로 교인수가 줄었고, 카톨릭도 2/3 수준이 되었다. 최근 들어 가장 큰 감소세를 보여주는 것은 감리교로 교인수가 40%수준으로 규모가 줄었고, 80년이후로 2,000개 가까운 교회 문을 닫았다.

이런 통계치들은 탈기독교사회(Post-Christendom) 논의를 촉발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에 눈을 감고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무엇이 이런 엄청난 탈기독교화를 몰고왔는가를 규명해 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이런 질문을 염두에 두고 영국 기독교를 더 깊이 탐색해 들어가 보기로 약속하고, 이번 글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도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점만 분명히 해두고 영국 기독교의 좀더 밝은 측면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영국 기독교 내의 가능성
앞에서 숫적인 감소에 대해서 논의했으니, 숫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지표는 없는지 먼저 살펴보자. 우선, 사경회의 오랜 전통을 말할 수 있다. 100년이 넘게 지속되어온 케직 사경회(Keswick Convention)는 규모보다도 그 경건주의적 신학성향으로 유명하지만, 79년부터 시작된 스프링 하비스트(Spring Harvest)는 매년 부활절을 전후한 2-3주에 걸쳐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바이블 캠프를 열어서 연인원 9만명 가량이 다녀가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뿐 아니라, 여름에는 한국으로 보면 수련회에 해당하는 바이블 캠프가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데, 역시 수만명이 참여하고 있다. 그중 유명한 것만 손꼽아도, 그린벨트(Greenbelt), 스톤리(Stoneleigh), 뉴와인(New Wine), 소울 서바이버(Soul Survival) 등 주로 젊은 세대를 위해 풍성한 문화적 실험과 더불어 도전적인 설교와 깊은 예배 경험을 강조하는 기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대중적인 수준에서 영국 기독교가 새로운 호흡을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될 것이다. 

제일 위 Greenbelt Christian Art Festival (2007), 중간 좌 Keswick Convention (1930), 중간 우 New Wine Festival, 아래 좌 Soul Survivor, 아래 우 Spring Harvest.



모든 교회가 다 감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있는 도시에는 여지없이 젊은 학생들로 붐비는 교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교회들은 부러울 정도로 뛰어난 설교와 목회 모델들을 보여주고 있다. 카리스마틱한 성향의 교회들이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전형적인 오순절 교회들 말고, 영국에서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 혹은 신교회운동(New church movement)이라고 불리는 매우 독특한 교회개척 형태가 이 척박한 탈기독교사회에 성공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파이오니어(Pioneer), 익투스(Ichthus), 뉴프론티어(New Frontier) 등의 네트워크는 전도와 제자도를 강조하는 공세적인 방법으로 마약이나 오컬트 등으로 얼룩진 도시인들을 예수 앞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좀더 사회적인 측면으로 살펴본다면, 150년 전통의 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Alliance)이 건재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복음주의적 역할을 모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정책에 대한 제안과 여론형성을 해나가고(최근에는 학교 내에서의 동성애 교육관련 조항에 대한 법개정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터키의 지진이나 모잠비크의 홍수 등 해외의 재난구조활동이나 모금도 이런 기구들을 통해 해나가고 있다. 시야를 복음주의권 너머로 확장시켜보면,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 운동 전통도 만날 수 있고, 퀘이커나 재침례교를 중심으로 하는 평화주의(Pacifism) 운동도 꾸준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것은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가 지적했듯이 80년대 이후로 복음주의권에서 좋은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으며, 이는 복음주의권이 지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징표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위치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넓게 갖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그가 복음주의를 기독교의 미래와 연관시키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신학분야에서는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에 많은 성과를 영국 학자들이 내고 있고, 신론(Doctrine of God)이나 기독론(Christology)과 관련된 논의, 삼위일체 신학(Trinitarian theology) 등의 성과가 많이 나왔고, 기독교와 과학(Christianity and Science), 기독교와 예술(Christianity and Art) 등의 주제에서도 주목할 학자들이 나오고 있다.


교회보다 기독교 사회를 보라
위의 글에서 느꼈을지 모르지만, 영국 기독교의 역량을 지역교회 현실에서만 찾으려고 하면 힘들다. 그러나, 교회 건물과 주일날 예배라는 범주 바깥에 존재하는 기독교적 현존(Christian Presence)의 가능성에서 우리는 영국 기독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언젠가 존 스토트가 자신의 에베소서 강해서에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흔히 교회(Church)와 연결시키던 관행과 달리 '새로운 사회(New Society)'로 규정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물론 우리가 교회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폭이 달라질 수 있지만, 너무도 자주 우리는 신앙생활을 교회생활과 동일시하고, 기독교의 영향력을 교회의 영향력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그 너머에서 가능한 기독교의 현존에 회의적이곤 했다. 영국에서 발견하는 것은 우선 전통적인 공간개념의 교회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과(그 유효성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더 멀리 뻗어나가는, 성경의 겨자씨 비유를 그대로 상기시키는, 방식이 유력한 대안으로 고민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가능하면 몇 가지 쟁점위주로 영국 기독교의 안팎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독자들이 한국적 상황을 염두에 둔 글읽기를 지속해 나가면 흥미로운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28 16:06
* <복음과상황> 1999년 1월호 "너희가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아느냐?"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 10년이 넘은 글인데, 복음주의 논의를 시작하려니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어 '사료 가치'를 빙자하여 올립니다.이 글은 제가 영국으로 신학공부를 하러 떠나기 전에 했던 복음주의 운동 강좌에서도 사용되었고, 그 강좌는 <복음주의운동 강좌>(학복협, 1999)로 출판되어, 선교단체 간사나 기연대표자들 사이에 돌려 읽히기도 했습니다. 의외로 이런 방식으로 현재 진행형의 복음주의 논의를 다루고 있는 글이 없다는 사실에 한편 의아함을 느끼면서, 한편 자신감을 갖고 이 쪽 분야로 매진하게 했던 계기를 주었던 글입니다. 




요 몇 년 사이에 '복음주의(Evangelicalism)'에 대한 책이 부쩍 많이 나왔다. 패커를 잇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학자로 떠오르고 있는 영국의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가 쓴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한국장로교출판사, 1997)라든지, 미국 휘튼대 역사교수인 마크 놀(Mark A. Noll)의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엠마오, 1996) 등은 필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한국교회를 깨운 복음주의 운동>(두란노, 1998)이란 제목으로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한국 복음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저서도 내놓아 한층 풍성한 형편이다. 그 책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교회로 지목한 바 있는 '사랑의 교회'도 교회 설립 20주년을 맞아 안팎으로 다양한 주목을 받았다. 도대체 무엇이 '복음주의'를 갑작스럽게 주목하게 만드는 걸까?


복음주의는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는 정통적인 기독교의 매력과 설득력을 오늘날 다시 되살려주고 있는 신앙운동으로 간략하게 정의할 수 있다. 복음주의는 영어권 기독교 세계에서 특히 압도적인 성장을 보여주었다. 영국의 경우, 89년의 조사에서 390만의 예배참석자들중 100만명이 복음주의자라고 밝혔는데, 이는 30여년전 3-6%에 머물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국의 복음주의자를 대표하는 복음주의협의회(Evangelical Alliance)의 활발한 사회 활동과 매년 9만명이 다녀간다는 수양회 스프링 하비스트(Spring Harvest) 등은 이런 역동적인 영국 복음주의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표적인 복음주의자들로 존 스토트, 로이드 존스, 마이클 그린을 비롯하여 신학계의 제임스 패커, F.F 브루스, 도날드 거스리, 하워드 마샬, 존 골딩게이, 알리스터 맥그라스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들이 즐비하다.

미국의 경우도, 7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한 복음주의 운동은 76년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타임이나 뉴스위크 등의 일반 매체마저도 '복음주의의 해'란 표현을 쓸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쳤다. 78-79년 갤럽의 여론조사는 4-5천만의 미국인들을 복음주의자로 볼 수 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빌리 그래함이란 당대의 전도자,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같은 잡지, 다양한 영역의 복음주의 학자들의 등장이 미국의 복음주의의 긍정적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비서구권인 남미에서는 오순절파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복음주의가 확산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카톨릭을 압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한국교회는 복음주의의 가장 성공적인 한 사례로 세계교회에 알려져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는 매우 높은 복음화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주로 복음주의자들로 파악되고 있다. <세계기도정보>의 저자인 패트릭 존스톤의 통계에 따르면 복음주의자의 성장률은 평균 4.5%로 오순절 교인들의 증가율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전세계 복음주의자의 70%가 비서구권에 살고 있다. 
 

복음주의의 다양성
복음주의의 신앙적 내용은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전통에서부터 비롯되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고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에는 다양한 신앙전통과 문화적 차이들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제3의 물결'로 알려진 성령운동의 진원지인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에서 나온 <Empowered Evangelicals> 같은 책은 자신들의 신앙적 근거를 '복음주의'에서 찾고 있다. 이 책에는 제임스 패커의 서문이 붙어있어서 흥미를 더해준다. 

영국에서는 가정교회 운동을 했던 데이빗 톰린슨(Dave Tomlinson)은 <The Post-Evangelical>이란 책을 써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떤 복음주의가 가능할 것인가를 모색해 보기도 했다. 아마 이런 책들이 국내에 소개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것도 복음주의에 포함되는가?'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런던 바이블 컬리지 학장인 더렉 티드볼(Derek J. Tidball)은 복음주의 내부의 다양한 흐름들이 '교회관', '영성관', '세계관' 차원에서 갈라진다고 보았다. 그의 분석을 따라서 '교회관'을 중심으로 보면 성공회(Anglican)에서부터 가정교회 운동으로 불렸던 신교회운동(New Church Movement)까지 포괄하고, '영성관'을 중심으로 보면 청교도전통을 중시하는 개혁주의에서부터 웨슬리안이나 정치-경제적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급진파까지를 담아 내고 있다. '세계관'은 회심주의에서 재림주의자까지를 망라하는 넓이를 보여주고 있다.

복음주의라는 것이 생각처럼 단순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복음주의'라는 명칭에서 하나의 '이즘(Ism)'을 연상하고서 정교하게 이루어진 신학체계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한번도 '이즘'이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역동하는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실재에 근접한 이해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명칭보다 '복음주의 운동(Evangelical Movement)'이란 표현이 옳다고 하기도 한다.


복음주의의 정체성
서구의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은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4-5개의 패러다임을 적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마크 놀(Mark A. Noll)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 복음주의의 핵심요소로 영국 역사가 데이빗 베빙톤이 주장한 '회심주의(Conversionism)', '성경주의(Biblicism)', '행동주의(Activism)', '십자가 중심주의(Crucicentrism)'라는 설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주의적 원동력이 그 자체의 힘만으로 응집력 있고, 제도적으로 치밀하며, 쉽게 정의할 수 있고, 확연히 구분되는 그리스도인 집단을 산출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복음주의적 원동력의 역사는 늘 변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부연함으로써 복음주의가 다양한 신앙전통이 교류하면서 형성된 역사적 실체라는 측면을 주목하였다.

영국의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는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에서 복음주의가 '성경이 가지는 최고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 '성령의 주권',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 '복음전도의 우선권',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 등 크게 여섯 가지 확신에 기초해 있다고 말한다. 이 여섯 가지 요소에 대한 상대적 강조의 차이나 정확한 해석의 문제로 인해 복음주의권의 다양성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역시 '분명한 정체성의 필요를 느낄 때 복음주의는 지나치게 정밀하게, 부정적으로, 혹은 반항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복음주의를 '규정(Prescribe)'하기 보다는 '기술(Describe)'하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역동성을 주목하면 정체성이 모호한 듯이 보이고, 정체성을 고정하면 역동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딜레마를 낳는다. 그러나, 이런 창조적 긴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살아있는 신앙(Living Faith)'을 '죽은 정통(Dead Orthodoxy)'으로 바꾸지 않는 길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
필자는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친 흐름을 크게 네 가지로 본다. 박용규 교수의 책에서는 조금 더 많은 내용이 나오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초창기 역사를 위주로 다루고 있어서 80년대 이후 복음주의 운동 각 분야 간의 역할과 비중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을 갖는다. 

2004년 CCC 전국수련회 모습



1) 초교파 학생선교단체(Para-church) 
한국전쟁 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외국의 학생단체들과 자생적인 국내 단체들은 제도권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 젊은 세대들과 직접 맞부닥치며 복음주의 운동의 정서를 심어놓았다. 이들을 통해 회심을 경험하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등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게된 이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잠재력이 되어있다. 

학생선교단체들은 애초부터 교단이나 교파를 배경 삼아 사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복음주의'는 이들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설명해줄 수 있는 적합한 명칭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만 '복음주의'를 주장하지 더 깊이 연구하거나, 들어가 보려는 노력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SFC, IVF정도가 예외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학생선교단체는 한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고도, 대중적인 복음주의 그룹이다. 외국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이다. IVF, YFC, 성서 유니온 등은 어느 곳에서나 복음주의 운동의 모판 역할을 해왔고, 유능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배출해 내었다.

2) 복음주의 교회와 목회자
현재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 중 적잖은 수를 암묵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복음주의자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범주는 상당히 느슨한 것이라서 좀더 적극적으로 복음주의적 정체성을 견지하는 이들을 찾아본다면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복음주의권 전반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그렇게 광범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들이 복음주의 목회자로 여기는 대상은 김진홍, 홍정길, 옥한흠, 하용조, 이동원, 이승장, 김동호 목사 등 젊은 층의 인지도가 높은 중견 목회자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 외에도 여러 명의 목회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파적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고 복음주의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내보였던 이들은 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이들의 교회는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평신도로 사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고, 자체적으로 선교단체 이상의 교육과 신앙훈련을 제공해 주는 등 복음주의적 목회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3) 세계관 운동: 사회변혁에서 기독교 문화운동까지
또 다른 흐름은 80년대 중반 보수 기독인들이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대학생들은 IVP의 책들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에 눈을 떴고, 화란 개혁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복음주의적 입장 설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때에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면서 복음주의적 관점의 사회운동 가능성이 모색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단편적으로 소개가 이루어진 통에 이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가장 핵심적 실체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아직까지도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과 그 운동의 다양한 성과물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독인들이 복음주의적 대안 모색을 꾸준히 해나가도록 독려하였던 이는 당시 IVF총무였던 고직한 간사, 공단선교에 투신했던 이문식 목사(현재 남북나눔운동 총무)와 서울대 ESF를 맡고있던 김회권 목사 등을 들 수 있다. 또, 손봉호, 이만열 교수 등은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 '경실련' 등을 통해 복음주의자로서 다양한 수준의 사회운동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월간 <복음과 상황>의 창간은 이런 흐름의 한 성과를 대표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사회참여'의 관심은 87, 92년 대선을 거치면서 현실 세계에서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그 첨예함을 잃어 가는 경향을 보였고, 대중적인 흐름은 '기독교 문화'라는 쪽으로 중심이동을 하였다. 이것은 90년대 사회 전반의 문화 폭증 현상과도 관련이 있고, 기본적인 '관점'의 확립 없이 이루어지는 '행동주의'에 대한 반작용도 한편으로 기인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저작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였고, 여기에는 성인경 목사의 '한국 라브리' 사역이 작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의 '기독교 문화' 논의는 기독인들이 문화를 도외시 할 수 없다는 것과 대안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론적 각성을 심어준 점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여전히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원론적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4) 세계선교 운동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세계선교의 흐름이다. 한국의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이 국제화가 된 영역은 아무래도 선교계이다. 진보측 교단의 경우는 WCC 등 국제기구 활동이 잦았고, 국제무대에 한국 신학자나 전문인들의 교류 기회를 많이 마련하였다. 보수 교단의 경우는 선교학자들이 주로 국제무대에 나서게 되었다. 현재 이렇게 복음주의권의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전재옥, 노봉린, 이태웅, 김명혁, 조종남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무래도 이들이 선교훈련이나, 선교정책협의 등 다양한 필요로 인해 세계교회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로잔 운동도 본질적으로 세계복음화를 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선교계에서는 국제적 복음주의 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교계에서는 이런 국제적 운동이 전체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단지 선교영역만으로 국한되거나, 일부의 경우는 목회자들의 해외여행 기회정도로 여기는 등 정작 방향모색에 목말라 하던 국내의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접촉점이 없는 외국의 행사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선교한국' 운동과 '학원복음화 협의회'의 탄생은 대중들에게 복음주의의 구심점을 마련해주었고, 이를 통해 복음주의의 정서(Ethos)가 알게 모르게 많이 파급되었다. 이것은 고직한, 김인호, 한철호 등 학생선교단체 출신 사역자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국제적 흐름을 파악하여 국내의 선교운동 속에 전략적으로 소개하는 역할을 감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미래전략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최근 활발한 조명 작업을 거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것이 자기도취나 패권의식으로 이어진다면 곤란하다. 90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런 연합의 흐름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올바른 방향성과 내용을 담아내려면 복음주의권의 미래전략에 어느 정도의 합의를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세가지를 현안 과제로 제안한다.

1) 복음주의 운동의 중심 재편
복음주의는 기본적으로 젊은 감각의 운동이다. 관료화나 제도화로 역동성이 질식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할 문제다. 서구의 복음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일찍부터 인식했다. 빌리 그래함의 동역자였던 리튼 포드(Leighton Ford)는 자신의 필생의 사역으로 차세대 복음주의 리더십 발굴에 전력하고 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96년 11월호에는 이런 노력의 결과로 발굴된 50명의 40세 이하 리더들의 프로필을 싣고 있다. 가수, 운동선수, 교사, 정치인, 사업가, 신학자를 망라하는 그 기획은 많은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로잔운동의 국제총무인 탐 휴스턴(Tom Houston)도 로잔운동의 당면 관심사는 '복음주의 신학연구'와 '차세대 발굴'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선교한국 98대회 주강사로 내한한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탐 사인(Tom Sine)도 인터뷰에서 미국은 아직까지 자신과 같은 60대가 리더십을 갖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2-30대의 지도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복음주의 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존 스토트가 목회를 시작한 것은 29세 때였다.

젊은 세대를 전면에 배치해야 하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는 '전문성'의 문제이다. 복음주의 운동이 각 분야로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연장자라고해서 그 분야를 더 잘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대감각'이다. 동시대인들의 문제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에서 100년 이상을 이어온 케직 사경회의 침범할 수 없는 권위는 젊은 부부들을 위한 신앙수련회의 필요를 인식한 클라이브 캘버 등 몇 사람의 사역자들이 20년 전에 시작한 스프링 하비스트에 의해서 지금은 완전히 대치되었다. 셋째는 '국제감각'이다. 한국에는 내수용 지도자는 넘쳐나지만, 국제무대에서 한국 복음주의 운동을 꺼내놓고 논의할 인재가 드물다. 한국교회가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부흥했다고 하면서도 아시아권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대체로 일본, 중국, 필리핀 리더십들이 주도한다. 또 3-40대 실무자들이 모여 의논해야할 자리에 나타나는 한국 대표는 5-60대 목사님들뿐이니 이도 이해 못할 일이다.

2) 전도와 변증, 그리고 선교
복음주의의 정체성에서도 나타나지만 복음전도에 대한 깊은 확신은 언제나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적 특징이었다. 이 부분의 약화는 복음주의 운동 자체의 부실화로 연결된다. 90년대 내내 학생선교단체들이 겪어야 했던 위기의 실체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힘있는 복음증거가 과연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문제였다. 일부 선교단체의 경우 기독신입생들의 자연 가입외에는 거의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선교단체 본래적 정체성보다는 연고에 따른 동아리로 분위기가 변질되는 사례도 있다.

다원화된 사회와 신세대라는 단절적인 인간형을 염두에 둔 복음의 변증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느냐는 질문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세계선교를 포함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참여하는 의미에서의 선교도 제대로 된 의미와 맥락 아래서 진행되고있느냐는 질문도 던져야 한다. 복음주의권에서 이런 전도자, 변증가, 선교사들을 배출하는데 투자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방법과 논리로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는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 복음주의 운동의 다음 세대는 기약 할 수 없다.

3) 지성의 르네상스, 운동가의 출현
서구 복음주의의 르네상스는 복음주의 지성인의 대거 등장으로 이루어졌다.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화예술 등의 영역에서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지 않으면 이 땅의 복음주의는 종교적 열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미약하나마 현재 형성되어 가는 네트워크들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고, 활동력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마크 놀은 미국 복음주의 지성 개발에 장애요인으로 신학교를 꼽으면서, 일반 대학과는 달리 인접학문과의 교섭 없이 격리된 환경에서 '우리끼리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폐습을 지적했다. 복음주의 지성인들이 일반 대학과 학문, 문화의 영역에서 물러 나와, 자기들만의 방으로 들어가 앉지 않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경계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신학교가 일반 대학에 속해있는 영국의 경우,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사상과 분위기가 팽배한 대학에서 학창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적 자신감을 다져나갔다.

학문 영역에서의 지성인도 필요하지만, 실천의 영역에서 뛰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는 걸출한 운동가들의 역사나 다름없다. 20세기 초엽 세계복음주의 선교운동을 주도했던 학생자원자운동(SVM)과 YMCA를 이끌었고,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R. Mott)라든지, 영국과 북미지역의 IVF를 개척했고 나중에 국제적 선교운동가로 크게 활동한 데이빗 하워드(David Howard),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을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은 복음주의협의회의 클라이브 캘버(Clive Calver) 등은 글자 그대로 운동가들이었다.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도 사실은 몇 사람의 연합운동가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의 산물이다. 다양성을 포용할 줄 알고, 사람들의 관심을 복음 앞에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이런 이들의 등장을 기대하고, 재촉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28 13:37

* 2009.10.27 청어람에서 열린 '가가와 도요히코 사회선교 헌신 100주년 기념 한국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그리스도교 입문>은 현재 번역이 완료되어 올해 내로 출판될 예정이며, 이 서평은 번역본 한글 원고를 읽고 쓴 것입니다.



가가와 도요히코의 <그리스도교 입문>

 

 

 

1.

나는 이 책을 통해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1888-1960)를 사실상 처음 만났다. 대학시절 한국교회사와 일본교회사에 대해 읽은 약간의 책들이 내가 그의 이름을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고, 아마도 오늘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읽는 책 가운데에는 더욱 그의 이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1]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약간의 수고만 한다면 그가 일본사회와 일본 기독교 역사에 얼마나 비중이 큰 인물인지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부유한 집안의 아버지가 기생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던 그는 출생의 내력을 두고 내적으로 깊이 고민하였던 흔적을 남기고 있다. 15세 때 미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신학을 공부하던 중 고베의 빈민가에 투신하여 폐결핵으로 죽음을 넘나들며 가난한 자들을 헌신적으로 돌아보았던 이야기는 그의 책 <사선을 넘어서> 등에 잘 드러나 있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프린스턴에서 신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돌아와서 다시 빈민운동에 관여하면서 그의 활동 영역은 넓어지기 시작한다. 1921년과 22년에는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을 주도한 것으로 인해 투옥되기도 했고, 농민운동에도 관여하여 일본농민조합의 결성에도 적극 관여하였다. 그가 참여한 남성 참정권 운동 역시 1925년에 성취가 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 무렵 결성한 예수의 친구회(1924)를 통해서 백만인 구령운동을 벌여 이후 하나님 나라 운동이란 이름으로 복음전도와 사회개혁을 접목한 운동이 전쟁 전과 후에 진행된다


한편, 그는 평화주의적 소신에 입각하여 ‘비(非戰)동맹(1928)을 결성하여 군국주의에 저항하였다. 해외로도 널리 다니며 인도의 간디와 네루 등을 만나 기독교 지도자이자 평화운동가로 연대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1940년에 일본의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사죄하는 글을 발표했고, 다시 이로 인해 투옥되었다. 평생 200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했고, 노벨문학상에 두 번(1947, 48), 노벨평화상에 두 번(1954, 55) 후보로 추천되었다.


그의 일생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편으로는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며 빈민촌에 투신하였던, 죄의식에 몸부림치던, 하나님 외에는 아무런 소망을 두지 않는 구도자의 모습을 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로새겨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근대 일본의 노동운동, 농민운동, 평화운동, 사회주의 운동의 전 영역에 그 흔적을 드리운 역동적인 사회운동가적 면모가 있다. 그는 이런 양 측면을 전혀 모순으로 여기지 않고 한 몸에 간직한 채 끝까지 이런 모든 삶과 행동의 근거를 기독교신앙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빛이 바래지 않는 소중한 모범이 된다.

 

 

2.

이 책은 1949년 가가와 도요히코가 61세 때 출판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도운동에 힘을 쓰는 한편 생협운동이나 노동운동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던 무렵에 그가 돌아본 기독교 신앙의 여러 측면을 기술한 매력적인 책이다. 책은 전체 2부 총 30개 장에 걸쳐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가와의 성찰이 잘 담겨있다.

 

책의 전체에 걸쳐 그는 자신의 일대기를 적절히 담아내면서 기독교 신앙을 소개한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종교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 병의 극복, 가난할 때, 죄에서의 해방, 죽음의 극복 등의 장에서는 자신의 출생과 가정에 관련된 내적 고민,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소개받고 가졌던 번민들, 끊임없는 죄의식과의 싸움, 자살 유혹의 극복, 처절한 가난의 경험들, 빈민들과의 삶에서 본 것과 느낀 것, 폐병을 앓으며 들어간 고베 빈민촌에서 기적적으로 병이 회복되었던 간증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의 삶이 드라마틱했던 반면, 간결한 그의 문장은 인상적이다. 이미 61세의 나이에 삶을 되돌아보며 쓴 때문인지 감정적 과장이나 감상적 느낌이 없고, 간결하면서도 속도감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쉬크(chic)한 느낌이다. 지금 보아도 낡은 감이 별로 없다. 오히려 여전히 시대를 앞서가는 감수성이 종종 포착되곤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 장에서는 젖가슴이 있는 하나님이란 절이 있다. 히브리어 하나님 명칭인 엘 샤다이(El Shadai)에 대한 짧은 묵상인데, 오늘날 여성신학에서 언급하는 하나님의 모성성에 대한 빼어난 묵상이 전혀 이질감 없이 잘 드러나 있다.

 

나 같은 고아가 강가에서 자란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젖가슴 덕분이다.

기생의 자식으로 태어나, 쓰레기 상자 곁에서 자란 내가,

겨우 혼자 걷게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젖가슴 덕분이다.

 

종교와 연애, 종교와 결혼, 종교와 성욕 등의 장은 매우 솔직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이 주제를 다루는 오늘날의 책이 종종 발언의 주체를 빼놓는데 반해 가가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조언을 명료하게 전하고 있다. 어린이의 종교, 여성의 종교, 농민의 종교, 노동자의 종교 등을 다루는 장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무시되는 존재들 각각을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리매김해주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을 통해 성경의 하나님과 예수님은 노동하시는 분임을 밝히면서 그가 경험한 미국과 영국의 노동운동가들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되는 운동을 하고 있는지를 묘사하는 대목은 비록 그 시대가 사회주의 운동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하더라도 오늘날에 비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2부는 11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경, 예수의 생애, 예수의 교훈, 사도 바울 등 성서학적 접근에 더해서 종교와 도덕, 종교와 철학, 종교와 과학, 종교와 예술, 기독교와 민주주의, 기독교 사회운동, 평화와 전쟁 등으로 주요한 삶의 이슈들과 관련 지어 한 장씩 쓰고 있다. 

 

유물론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결정적이며 역사의 운행이 기계적으로 예정되어 있다면, 성장도 아무 것도 없으므로 무저항주의의 윤리가 성립될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죄인은 회개하지 않고, 자본가에게는 양심이 없고, 모든 문제가 투쟁과 유혈에 의해서만 해결된다고 하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시한 길은 회개와 재생이 있는 길이다. 성장력이 있는 정신이 폭발하여 회개하고 재생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야 말로 무저항의 태도를 취하고 참고 견디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무저항 사랑이라고 한다. 무저항은 비겁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저항의 의미를 잘못 알면, 그것은 악을 부정하지 않으므로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악에 대한 근본적 부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항이란 감정적인 손찌검을 그만 두고 싶어진다. 그 근저에는 하나님과 같은 사랑에 대한 동경이 있다. 사랑과 희생을 두려워하는 자는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과 희생을 싫어하지 않는 자는 무저항주의를 취하게 된다.

 

가가와는 여러 번 그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그의 유물론에는 동의하지 않고, 혁명의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문제에도 확연히 입장이 다름을 밝힌다. 그가 그려본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은 이런저런 이데올로기적 구상의 실천에서가 아니라, 성경적 비전의 지평 위에서만 제대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 위에서 그는 노동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교육운동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3.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일본의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것을 쉽지 않게 만드는 몇 가지 전형적인 장애물이 있다. 첫째는 일본의 제국주의 문제이다. 일본의 기독교 역사에 아무리 위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일지라도 그가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 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호감을 갖기는 어렵다. 일본의 많은 기독지식인들이 태평양 전쟁 시기에 접어들면 결국은 제국주의에 동참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결국 기독교 신앙이 민족주의에 동원되는 양상이 되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일본의 기독교 지도자에게서 어떤 신앙적 모범을 찾기는 어렵다.

 

둘째는 전후 두 나라의 기독교 전개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교회성장을 경험했고, 개신교가 인구의 20%에 육박한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1%도 되지 않는 기독교 인구를 갖고 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본의 기독교, 혹은 일본 교회란 배우고 참고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하고 회피해야 할 문제(problem)로 종종 인식된다. 그리고, 일본 기독교가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기독교 신앙 자체가 지식인 위주로 편향되었다든지,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노선에 영향을 많이 받아 복음의 생명력을 갖지 못했다든지 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묘사하곤 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좀더 복합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는 피선교지에서 제국주의적 선교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개신교 인구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회적 신뢰성을 잃고 있다든지, 근본주의적 신앙 색채를 보이고 있다든지 하는 다양한 근거에서 비롯된다. 최근 젊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동아시아의 기독교를 함께 탐구하면서 각각의 차이와 공통점을 거시적으로 조명해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가가와 도요히코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소개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아마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정도가 유일하게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꽤 널리 수용될 수 있는 존재였다면, 그보다 훨씬 행동 반경과 영향력을 넓게 갖고 있었던 가가와 도요히코를 제대로 만나게 되는 것은 한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한국 기독교의 진로를 새롭게 모색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전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장.



[1] 나의 대학시절(1987-90년대 초반) 친구들 간에 읽히던 한국교회사 책들은 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연세대출판부, 1972, 1982, 1993); 한국기독교역사연구회, 한국기독교의 역사 1, 2, 3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89, 1990, 2009) 외에 이만열, 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1981); 한국기독교회사 특강(1987)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일본교회사 책을 읽는 것은 드문 경우인데, 아마도 김교신(金敎臣)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 상에서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책을 접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우찌무라의 책은 전집을 비롯하여 구안록, 회심기 등이 소개되어 있어 국내에 어느 정도의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경우에는 순전히 개인적 관심에서 도히 아키오(土肥昭夫, 서정민 옮김), 일본 기독교의 사론적 이해(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 도히 아키오(土肥昭夫, 김수진 옮김), 일본 기독교사(기독교문사, 1991)를 접했다

Posted by erasmus
(2) 복음주의2009.10.25 18:46

서평을 위해 가가와의 <그리스도교 입문>을 읽고 있는데, 100년전 인물이 요즘 사람보다 더 사고의 폭과 깊이가 넓고 큽니다. 앞으로 그의 책들이 꾸준히 출판될 모양인데, 일본의 그리스도인 가운데 우찌무라 간조 정도가 전부였던 상황이 많이 개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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