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인문학2010.04.27 19:28

* 이 내용은 2010년 4월 26일(월) 청어람아카데미에서 한 세속성자(5): 나는 산꼭대기에 서 보았네 - 마틴 루터 킹"의 강의 내용입니다. 


 


나는 산꼭대기에 서 보았네

(I have been to the mountaintop)”[1]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마틴 루터 킹 목사(Rev. Martin Luther King Jr.) 1929년 1월 15 조지아 주 애틀랜타 출생, 1968년 4월 4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저격 당해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1964년 흑인인권운동과 인종화합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고, 미국은 그의 삶을 기억하여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 데이로 지정하여 국가 공휴일로 삼고 있다.[2] 그가 1963년 워싱턴 대행진에서 행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성공회와 미국 루터교회에서 각각 순교자로 기념되고 있다.[3]

 

2. 성장 배경

1) 미국 남부의 흑인 중산층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났다. 아버지 마틴 루터 킹 시니어의 원래 이름은 마이클 킹이었는데, 1934년 유럽여행 시 독일을 방문하면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를 기념하여 이름을 바꾸었다.

 

2) 애틀란타에서 Booker T. Whashington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5세에 Morehouse College에 진학하여 사회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하다. Crozer Theological Seminary(Chester, Penn)에 진학하여 1951년 신학사 학위를 받다. Boston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 공부하고, 1955폴 틸리히와 헨리 넬슨 위먼의 신 개념에 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 받다.

 

3) 어린 시절부터 남부지역에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흑백차별 문제를 각성하고 있었고, 가족이나 주변에서 이런 차별적 분위기에 굴복하지 않는 심성을 배웠다. 학업과정에서 접한 북부 지역은 남부 지역에 비해 훨씬 온건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았고, 이 문제의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가졌다.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그는 신학적으로 비폭력 평화주의 노선에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되다. 무어하우스 시절 교수였던 하워드 툴만(Howard Thurman)을 통해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의 비폭력저항 노선을 소개받았고, 1959년 직접 인도를 방문하기도 한다.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에게도 역시 영향을 받는다.

 

4) 그에게 사상적으로 꾸준히 영향을 준 것은 주변의 친구들이었다. 그 중 베이야드 러스틴(Bayard Rustin)은 킹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사상적 동지로 1963년 워싱턴 행진을 조직하였고, 간디의 비폭력행동주의를 운동노선으로 확립한 인물이다. 러스틴은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지지하고, 한때 미국 공산당(Communist Party USA)에 참여한 적이 있어 운동 안팎에서 끊임없이 경계를 받았다. 킹 자신은 공산주의에 대해 종교를 부정하는 유물론적 역사 이해윤리적 상대주의, 그리고 정치적 전체주의를 이유로 거부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그의 적들은 그의 공산주의와의 연계를 입증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5) 그의 사상적, 혹은 운동적 입장은 보통 populism(대중주의?)으로 표현된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계급투쟁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4] 그리고, 광범위한 미국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적 입장 위에 서 있다. , 미국의 건국이념이 보장하는 인권과 민주, 자유, 평등 등은 미국의 꿈(American dream)에 원래적으로 존재하는 가치이며, 흑인인권운동은 바로 그 가치를 재확인하고 재천명하는 일이란 기반에 근거한 운동노선이다. 그러므로, 그는 백인운동가들과도 연대할 수 있었고, 미국의 법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했다.[5]

 

 

3. 주요 사건

1) Montgomery Bus Boycott (1955)

- 1955 3월 클라우뎃 콜빈(15)이란 소녀가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 문제가 된 사건이 발생(Jim Crow ). 그해 12 1일 로자 파크스(Rosa Parks)가 역시 백인에게 좌석을 내어주기를 거부하고 체포되는 일이 발생.

- 킹과 지역 운동가들은 보이콧을 조직하여 385일간 투쟁하다. 이 과정에 킹 목사의 집에 폭탄이 날아들고, 투옥되기도 하였으나 이 결과 몽고메리의 버스에서 인종차별은 불법화되다.

- 1957년 킹 목사와 그의 평생 동지 Ralph Abernathy 등은 SCLC(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를 창립하여, 비폭력 저항운동을 조직해 나가다. 킹은 초대의장이 되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 단체를 이끌었다. 1958년 뉴욕에서 책 사인회를 하던 중 칼에 찔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다. 1959년 인도를 방문하고,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을 더 강하게 도입하다.

 

2) Albany movement (1961)

- 조지아 주 알바니에서 벌어진 반차별운동에 그해 12월과 다음해 1월에 개입하여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다. 킹 목사는 투옥과 보석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이 점차 역량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고 시위대가 도덕적으로 더 높은 기준을 유지하면서 운동을 이끌어가야 할 것을 절감하다.

 

3) Birmingham Campaign (1963)

- 버밍엄 지역에서 달간 지속된 운동. 일자리 차별, 흑백차별 상점에 대한 불매운동 행진과 연좌시위가 이어졌고,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참여하였다. 이에 대해 소방호스와 경찰견을 동원한 경찰의 강경 진압과 투옥으로 감옥은 넘쳐나고, 언론의 대대적 주목을 받다. 캠페인의 결과 악명높던 경찰서장 Eugene “Bull” Connor 해직되고, 차별정책은 약화되었다.

- 목사는 고난 주간에 체포되어 부활절을 감옥에서 지내면서, 지역의 종교지도자들이 저항운동에 대한 비판 성명에 반박하는 버밍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쓰다. “ 지역의 불의는 전세계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유명한 구절을 비롯, “너무 오래 지체된 정의는 정의에 대한 거부이다(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윌리엄 글래드스톤) 들어 비폭력저항의 시급성을 감동적으로 천명하다.

 

4) Washington March (1963)

-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Washington March for Jobs & Freedom)을 전국의 운동가들과 함께 조직하여 8 28일 거대한 집회를 워싱턴 중심부 링컨기념관과 내셔날 몰 앞에서 이루기로 하였다.

- 당시 대통령 케네디는 시민권 입법작업이 대형 집회로 인해 역풍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집회에 부정적 입장이었고, 그 결과 집회는 흑인들이 처한 상황을 대대적으로 노출하고, 입법자들에게 압박을 가하려던 원래 목적에 비해 훨씬 약화된 수준으로 진행되었고, 말콤 X 같은 이는 이에 대해 인종화합적 이미지를 연출하고자한 워싱턴의 웃음거리 연극이라고 비난했다.

- 그러나, 25만명이 운집한 워싱턴 최대의 집회에서 행한 17분 분량의 킹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아브라함 링컨의 연설에 버금가는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으며, 이 집회는 미국 역사에 획기적인 장을 열게 되었다.

==> 연설 전체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bUtL_0vAJk

==> 연설문 및 일부분 동영상 http://www.americanrhetoric.com/speeches/mlkihaveadream.htm

- 그 해 11월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암살당하다. 그 다음해 케네디를 이은 존슨 대통령은 학교 및 공공시설에서의 차별금지법에 서명하였다.


5) Nobel Peace Prize (1964)

- 1964년 킹 목사는 시민 불복종과 비폭력 저항으로 인종 차별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로 당시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상금 전액을 흑인인권운동을 위해 사용하기로 하였다.

 

6) Selma march (1965)

- 킹 목사와 SCLC는 셀마에서 SNCC(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와 더불어 참정권 운동을 1964 12월부터 지원해 왔는데, 3 7일 앨라배마 주 수도인 몽고메리까지의 행진을 조직했다. 킹 목사는 이 행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 행진이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란 명칭을 얻을만큼 무참히 진압되면서 전국적 공분을 자아내게 된다.

- 3 9일 킹 목사가 참여하여 다시 행진을 이어가지만, 법원은 공청회를 이유로 행진을 불허한다. 이에 킹 목사는 셀마의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까지 시위대를 이끈 다음 간단한 기도회를 갖고 준법을 이유로 집회를 해산시킴으로써 내부의 불만을 산다. 3 25일에 이르러서 비로소 온전한 행진을 마치고 킹 목사는 How long, Not long이란 연설을 한다.

==> 연설 동영상  "How long, not long" https://www.youtube.com/watch?v=TAYITODNvlM&feature=related


7) Chicago (1966)

- 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시카고를 새로운 근거지로 선택하고, 시카고 서부지역의 슬럼가로 이주한다. 여러 수위의 지역활동과 행진들을 조직하였으나, 남부지역에 비해 훨씬 강한 대중적 반발을 받았고, 폭동의 위협 앞에 행진을 취소하기도 하였다. 킹 목사는 살해위협과 행진 중 벽돌에 맞는 일을 겪기도 한다. 그들은 제시 잭슨(Jesse Jackson)을 지역 책임자로 남겨두고, 다시 남부로 돌아온다.

 

8) Anti-War and Anti-Poverty (1967-68)

- 킹 목사는 1965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정부는 흑인들의 노예생활에 대해 10년에 걸쳐 500억불의 배상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돈은 단지 흑인들만 아니라, 현재 미국내에서 불이익을 겪고 있는 모든 인종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사용되어야 마땅하다고 보았다.

- 또한 킹 목사는 1965년 이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시작하게 되는데, 1967년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Beyond Vietnam이란 연설을 통해 미국은 베트남을 식민지로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미국정부는 오늘날 가장 거대한 폭력 공급자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마땅히 국내에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빈곤에 대한 전쟁에 쓰여야 할 돈과 자원이 허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했다.

- 그는 시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이 평화운동(peace movement)으로 이어져야 할 것을 이야기했는데, 1967년의 한 연설에서 베트남 전쟁의 잔인한 역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겼다.

 

"We were taking the young black men who had been crippled by our society and sending them eight thousand miles away to guarantee liberties which they had not found in Southwest Georgia and East Harlem.... We have been repeatedly faced with the cruel irony of watching Negro and white boys on TV screens as they kill and die together for a nation that has been unable to seat them in the same schools"

 

- 1968년에 킹과 SCLC는 경제적 정의를 촉구하는 빈민들의 캠페인(Poor Peoples Campaign)을 구상하고 있었다. 킹 목사는 전국을 다니며, 인종에 상관없이 미국의 빈곤현실을 폭로할 대형집회를 워싱턴에서 다시 열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국회가 빈곤층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개혁을 넘어 혁명에 이르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인종차별, 빈곤, 군사주의, 물질주의의 구조적 해악을 언급하며, 사회 자체를 재건하는 것이 직면해야 할 진정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9) 암살(1968)

- 1968년 3월 29 멤피스 흑인 환경미화원 파업 지지를 위한 방문길에 나선다. 폭탄테러 경고로 비행기가 연착되는 가운데, 4 3일 메이슨 템플에서 열린 집회에서 나는 산꼭대기에 서 보았네(I have been to the mountaintop) 연설을 하고, 다음날 로레인 모텔 306호 창가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하다. 부검의는 당시 39세였던 킹 목사의 심장이 13년간의 민권운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마치 60대 심장과 같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And then I got to Memphis. And some began to say the threats, or talk about the threats that were out. What would happen to me from some of our sick white brothers? Well, I don't know what will happen now. We've got some difficult days ahead. But it doesn't matter with me now. Because I've been to the mountaintop. And I don't mind. Like anybody, I would like to live a long life. Longevity has its place. But I'm not concerned about that now. I just want to do God's will. And He's allowed me to go up to the mountain. And I've looked over. And I've seen the promised land. I may not get there with you. But I want you to know tonight, that we, as a people, will get to the promised land. And I'm happy, tonight. I'm not worried about anything. I'm not fearing any man.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of the coming of the Lord.

 

 ==> 연설 동영상 "I have been to the mountain top" speech https://www.youtube.com/watch?v=x1L8y-MX3pg&feature=related


4. 시대와 인간, 그리고 유산

1) 죽음의 시대

- John F Kennedy(35대 대통령/ 1961-Nov. 22, 1963/ June 10 American Univ./ June 26 Belin Wall address)

- Malcolm X (1965)

- Robert Kennedy(법무장관/ June 6, 1968)

- Thomas Merton(Dec, 1968)

 

2) 1968

- 히피운동: Beatles, Bob Dylan, Rolling Stones, LSD

- 베트남 전쟁(1960-1975): John F Kennedy, Lyndon B Johnson, Richard Nixon

- 68 운동

 

3) 그의 유산

- Jim Wallis & <Sojourners>

- Barack Obama (44대 미국 대통령, 2009년 노벨 평화상)


 

5. 참고

1) Letter from Birmingham Jail(1963)의 핵심 요지와 인용구

 

1. Direct Action Explained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In any nonviolent campaign, there are four basic steps: collection of the facts to determine whether injustice exists; negotiations; self-purification; and direct action."

"Nonviolent direct action seeks to create such a crisis and foster such a tension that a community which has constantly refused to negotiate is forced to confront the issue. It seeks to so dramatize the issue that it can no longer be ignored."

"We know through painful experiences that freedom is never voluntarily given by the oppressor, it must be demanded by the oppressed".

 

2. Two Types of Laws

"One has not only a legal but a moral responsibility to obey just laws. Conversely, one has a moral responsibility to disobey unjust laws. I would agree with St. Augustine that 'an unjust law is no law at all'."

"Any law that uplifts human personality is just. Any law that degrades human personality is unjust."

"An unjust law is a code that a numerical or power majority group compels a minority group to obey but does not make binding on itself. This is difference made legal. By the same token, a just law is a code that a majority compels a minority to follow and that it is willing to follow itself. This is sameness made legal."

"One who breaks an unjust law must do so openly, lovingly, and with a willingness to accept the penalty."

 

3. Two Types of Peace

"Shallow understanding from people of good will is more frustrating than absolute misunderstanding from people of ill will. Lukewarm acceptance is much more bewildering than outright rejection."

"Actually, we who engage in nonviolent direct action are not the creators of tension. We merely bring to the surface the hidden tension that is already alive. We bring it out in the open, where it can be seen and dealt with."

"We will have to repent in this generation not merely for the hateful words and actions of the bad people but for the appalling silence of the good people."

 

4. Extremism

"Oppressed people cannot remain oppressed forever."

"Was not Jesus an extremist for love"

"Was not Paul an extremist for the Christian gospel"

 

2) 다양한 참고자료

(1)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해당 항목들에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 

(2) 그의 40주기를 맞아 2008년 Democracy Now 에서 제작한 program은 새로운 내용을 많이 추가하고 있다.
http://www.democracynow.org/2008/4/4/mlk_anniversary_placeholder
 (3) 유튜브의 동영상에 그의 유명 연설들은 잘 올라와 있다. 연설문 역시 위키피디아의 링크 항목을 활용하면 대부분 찾을 수 있다. 



[1] 이 강의안의 주요 개요는 http://www.wikipedia.org Martin Luther King 항목을 참조했습니다.

[2] 1983년 11월 2 백악관에서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이 킹 목사를 기리는 기념일 제정 법안에 서명하였고, 1986년 1월 20 처음 준수되고, 1992년부터 1월 셋째 월요일을 지키기로 하였다. 2000년에 비로소 처음으로 미국의 50개주 전부에서 지켜졌다.

[3] 미국 성공회는 4 4일을,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는 1 15일을 성일로 지정하였다.

[4] 그러나, 그의 후기 활동은 인종문제보다 경제적 계급의 문제에 좀더 주목하는 인상을 남긴다. 그는 공산주의는 명시적으로 반대하였으나,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히 비판을 하였고, 대안으로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정도의 노선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5] 이에 반해, 당시 Nation of Islam 지도자였던 말콤 엑스(Malcolm X, 1925-1965)나 하버드 재학중 블랙파워(Black Power)를 창립한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 1941-1998)) 등은 뚜렷한 대립적, 분리주의적 노선 및 폭력사용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Posted by erasmus
(1) 기독인문학2009.10.25 16:23

* 일상생활연구소 회보 <Seize Life>(2009. 08 통권 제3호)에 실은 글입니다. '일상생활 신학'을 소개한 폴 스티븐스 교수의 방한 세미나(2009.10.24)에서도 발표되었습니다. 



 

평신도에게 신학을 돌려주라!

신학교 체제의 극복을 위한 하나의 제안

 

양희송(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개신교 성직주의(Protestant clericalism?)

오늘날 한국개신교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내부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흥미롭게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개신교성(改新敎性) 그 자체에 대한 위반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중세교회를 향해 항의했던 이들 (the protestant)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이 천주교보다 더 강하고 무비판적인 성직주의(clericalism) 성향을 종종 드러내곤 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개신교 성직주의는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옹호논리를 만들어낸다. 첫째는 목회자 직분의 전문성이다. 목회자들은 전적으로 교회를 섬기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경험적, 학문적 훈련을 거쳤기에 목회자의 입장이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인정할만하다. 그러나, 목회자는 목회의 전문가일수는 있어도,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만능 전문가최종 심급의 판단자는 될 수 없다. 사회적 현안에 대해 심화된 이해에 근거하지 않은 목회자들의 섣부른 입장표명은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의 발현이나 이해당사자의 일방적 강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명백히 목회자의 과잉대표성(over-representation) 문제를 낳게 되는 바,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묵살하는 옳지 못한 행위이다.

 

둘째는 현실적으로 평신도들의 신학적 소양부족(theological illiteracy)을 꼽을 수 있다. 평신도들이 삶과 신앙의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기에는 그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는 건강하지 않은 계급주의를 낳는다. 신학적 소양 부족은 소양을 키움으로써 해소해야 할 문제이지, 이를 당연시함으로써 이원화된 계급구조를 방치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켜놓는 오류를 버젓이 범하는 것이다. 평신도들도 적절한 신학공부를 해야 한다.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한다면 기독교적 공부 (Christian Studies)를 해야 한다. 그 공부의 내용은 전형적 분과 체제로 이루어진 신학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학문 분야를 기독교적 관심 아래 조망하면서 추구하고, 시도해야 할 기독교적 공부하기를 말하는 것이다.

 


신학교 체제의 실패와 대안 아카데미들

문제는 현재 우리의 현실이 이런 방식의 공부하기를 별로 권장할만한 상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이런 역할을 해야 할 신학교(seminary)교단 목회자 양성소로서의 정체성에 너무 깊이 함몰되어 있다. 상당수의 국내 신학교는 교단신학이란 울타리가 금기와 허용의 잣대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는 신학자들의 자기검열로 이어지면서, 신학교가 과감한 지식생산의 근거지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지 교단신학의 수호자에 머물게 한다. 신학생들은 그 와중에 목회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기술을 습득하느라 안팎으로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교단 목회자 양성에 전념하느라 신학교 체제는 신학교 바깥, 목회 바깥의 세계에 필요한 신학적 지원에 관심을 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삶의 정황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답하는 신학(theology on demand)는 신학교 상황에서는 우선순위가 한참 뒤쳐진다. 평신도들은 그 한없는 유보에 이제 지치고, 화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학교 체제가 변화하거나, 새로운 대안적 체제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 질문은 영원히 유보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신학교의 교육과 성도들의 현실 사이에서 발생한 균열이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나 허용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최근 한국의 지식사회나 출판계에서 형성되는 기독교에 대한 비호감 정서나 집요한 기독교 비판담론 등에 신학교 체제가 계속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제대로 된 대답을 만드는데 실패한다면 다른 곳에서 대안을 구해야 하겠다든지, 직접 대안을 만들겠다는 자구 노력이 거세게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청어람 아카데미를 기획 운영하면서 발견한 소망스런 현실은 그래도 아직 한국 기독교 내에 기독 지성인이라 분류할만한 젊은 그룹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해묵은 지적 갈증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몸짓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저변이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더라는 사실이다. 기독교적 공부하기에 대한 관심은 점점 대중적으로 강화되고 있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대학원 이상 재학중인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만만치 않고, 이들은 기독교적 공부의 필요는 느끼되, 이를 위해 활용할 어떤 지적 자원도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 처해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을 하고 있는데, 소위 재야의 지식권력이란 평을 얻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성공모델은 자주 벤치마킹 되는 대상이다.

 

기독교권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들로 청어람 아카데미, 기독청년 아카데미, 현대기독교 아카데미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런 바탕 위에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 여러 갈래로 생기고 있다. 여러 신학교 교수진이 참여하고 있는 바른교회 아카데미 연구위원회, 주로 기독 대학원생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있는 아볼로 포럼(Apollos Forum), 매년 여름 소장연구자들에게 전공 영역 연구논문의 발표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기독소장연구자 컨퍼런스(청어람아카데미, 한동대 학문과신앙연구소, IVF 복음주의연구소 공동주최), 자생적 연구자 모임을 결성한 집단지성의 실험실 카이로스(CAIROS) 등 상당히 생동감 있는 모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남겨진 질문과 과제

남은 몇 가지 질문은 이것이다. 첫째, 기독교적 공부를 위한 기관(institution)은 가능한가? 이것은 이론적 질문이면서, 실천적 질문이다. 기존의 기독교 대학()의 이론적 토대를 재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런 기관들이 실천적으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었는지도 평가해보아야 한다. 예전의 미션 스쿨들은 기독교적 공부하기의 독특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지 보아야 하겠고, 최근의 기독교 대학들은 신앙을 강조하면서 학문적-지성적 성취에 있어 객관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놓았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아카데미 운동들은 비제도권교육(non-institutional education)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과 더불어 지속성이나 깊이의 문제 등에 구조적 약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좀더 과감한 대안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둘째, 새로운 기관(institution)이 필요한가, 새로운 커리큘럼(curriculum)이 필요한가? 교육이 꼭 제도적 기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홈스쿨링 같은 경우는 철저하게 문제를 제도와 기관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커리큘럼을 보급함으로써 풀어가는 경우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과제는 어느 방식으로 푸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 보아야 한다. 이미 국내외로 기독교 교육기관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우세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기독교적 공부하기를 제대로 수행할 제도권의 기반은 매우 취약한 것으로 판단되기에 선도적 기관의 설립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조만간 있게 될 고등 교육기관 간의 통폐합은 사실상 새로운 방향의 교육모델을 누가 세우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 흐름의 형성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를 마다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셋째, 새로운 운동을 감당할 역량(capability)이 있는가? 기존의 신학교 체제가 감당 못하는 과제를 수행하려면 그에 걸맞는 학자와 운동가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은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 혹은 통섭(conscilience)적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고, 신앙적 소양뿐 아니라 신학적 소양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최근의 여러 아카데미 운동들 속에서 중견 학자들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소장 연구자들이 커올라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꿰어서 보물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자원들을 다시 한국 대학사회의 숨막히는 관료주의와 실적 경쟁으로 내몰고 말 것이다. 국제적 학문의 장에서 좋은 평을 얻는 기독 학자들을 우리는 어느 정도 확보를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신학교를 만들 것이 아니라, 신학자의 수가 1/3-1/2를 넘지 않도록 하고, 인문-사회과학, 문화예술, 교육 등의 영역에 연구 능력을 갖춘 좋은 기독교 학자들이 포진된 학교를 대안적 모델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의 재발견과 종교개혁의 마무리

최근 미국여행을 다녀오면서 몇 권의 책을 샀다. 헌책방에서 핸드릭 크래머(Hendrik Kraemer) <평신도신학(A Theology of the Laity)>(1958)을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다. 평신도의 재발견은 종교개혁이래 참으로 오랫동안 유보된 관심사이다. 아니, 그것은 유보라기보다는 억눌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성직주의의 폐해가 증가하면 할수록 종교개혁의 잊혀진 슬로건 중 하나인 만인제사장(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이론은 집요하고도 강력하게 재등장할 것이다. 종교개혁의 사상운동적 기반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추적해본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몇 개의 아카데미를 만나게 된다.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Geneva Academy), 경건주의자들의 교육을 담당한 할레대학(Halle University) 등 한 시대를 지탱하고, 다음 시대를 열어젖힌 모든 운동들은 그 자체의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관을 만들어 내었다.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면 바로 그런 기관이다. 현재의 신학교 체제는 점점 더 자생적 지식생산에 실패한 직업교육기관으로 전락하고 있고, 그 추락을 막고자 하는 노력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압도적 필요와 요청에 비해 제도권의 대응은 그야말로 생색내기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 결과는 한국교회가 점점 더 개신교성 자체를 잃어가는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이런 진단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한 용기와 과감한 실천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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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인문학2009.10.18 18:46
청어람아카데미 2009년 가을 "미완의 기획, 종교개혁" 

첫 강의로 김상근 교수(연세대 신학대)의 "개신교적 의식의 탄생: 카라바조의 경우"를 진행했다. 

(c) 청어람아카데미


첫 강의의 기획의도는 그랬다. 

"대체 서양 중세의 편만한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초래되었길래, 개신교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하는 지점이다.

물론 사람들은 르네상스가 몰고온 인문주의(humanism)가 종교개혁의 실질적인 기반이고, 내용이자, 방향, 에토스를 형성해주었다고 보기도 한다. 혹은 중세교회의 몽매주의에 반발하였던 신앙개혁운동들이 종교개혁의 직접적 기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종교개혁' 대 '반종교개혁' 구도가 유효한가?

김상근 교수는 좀더 넓은 맥락의 질문을 던져주었는데, 
과연 '종교개혁(Reformation)'이란 용어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만큼 합당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개신교만이 독점할 수 있는 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이미 중세교회 내에서도 신랄한 자기비판이 제출되고 있었던 점, 특히, 단테, 보카치오를 비롯하여 미켈란젤로에 이르면 교황에 대한 일관되고도 치열한 비판의식이 시와 미술 작품들에 관철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글에 드러나는 교황청에 대한 비판수준은 이후 개신교 지도자들의 그것에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이는 서양사를 전공한 다른 이들도 종종 지적하는 내용이다. 우리 눈에는 커보이지만, 종교개혁이란 것이 사실상 당대의 문화중심지인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에는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고, 북유럽지역 특히 당시로서는 낙후된 국가였던 독일권에서만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이다. 프랑스도 여전히 지금까지 가톨릭 국가로 남았고, 영국은 가톨릭과 성공회로 나뉘긴 했지만, 결국 국교도와 비국교도가 권력을 주고받는 불안정한 방식으로 남겨졌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주로 독일권과 영어권 등지에서 기반을 형성했을 뿐 당시의 문명적 중심지에서는 변방의 문제제기로 취급받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M. Luther by Lucas Cranach

김상근 교수는 강의에서 비템베르크 성당에 95개 조항을 내걸고 시작하는 루터의 저항운동(1517) 이전인 1510년 루터의 로마 방문 기록에 주목하면서 그 당시 로마로 집약되고 있던 엄청난 르네상스의 문화, 예술, 건축, 학술적 흐름에 루터는 전혀 주목하거나, 교섭한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는 반면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고작 '이탈리아의 포도와 무화과가 독일의 것보다 매우 크더라'는 것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루터는 그야말로 '촌뜨기'로 로마를 다녀갔고, 그가 그곳에서 본 것들의 전후 맥락과 영향력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로마는 그때 14세기 이래로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의 인문주의 운동, 15세기의 알베르티(예술이론), 브루넬레스키(건축), 도나텔로(조각), 마사초(회화) 등의 강력한 르네상스 운동을 목격하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후 동방교회의 신플라톤주의의 거센 유입이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 등에 의해 이루어지던 참이었다. 그가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 1463-1494)와 함께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 거주하고 있을 때, 당시 10대였던 미켈란젤로는 그들에게서 신플라톤주의를 전수받고 있었던 참이다. 종교개혁의 문화사적, 사상사적 흐름은 오히려 루터보다 로마에서 더 잘 준비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상근 교수는 단테, 보카치오, 미켈란젤로의 글을 검토하면서 이들이 교황권에 대해, 당대 교회의 부패상에 대해 처절한 비판을 가하고 있음을 보였다. 종교개혁적 에토스는 사실상 이들에게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성상(icon)에 대한 개념이나 활용은 루터의 초상화를 평생 그렸던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1553)를 통해 보듯, 당대의 교황청이 생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한다.  

Calling of St. Matthew by Caravaggio



이런 맥락 위에서 카라바조의 그림들이 검토된다. 이미 당대에 천재화가로 대우받으며 수많은 성당 제단화를 그렸고, 그러면서도 길들여지지 않는 색채감과 구도, 파격적인 대상 설정으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카라바조의 그림 가운데서 특히 <성 마태의 소명>을 보면서 그가 보여준 강한 '빛의 도래', 중세적 매개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며 장바닥의 도박판에 직접 내려꽂히는 강렬한 빛의 임재로 너무나 '개신교적 의식'을 보이는 한편, 예수의 곁에 베드로를 배치함으로써 중세적 질서를 일정 부분 수용하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은 김상근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두 시대 정신의 합일'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란 대립 구도가 아니라, 이미 한 작품, 한 작가, 한 시대 내에 훗날 이토록 상반되는 것으로 묘사한 그 두 시대정신이 합일, 혹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결론적으로 김상근 교수는 종교개혁 전후의 각양 흐름들이 단순하게 종교개혁 대 반종교개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 국가의 탄생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수정주의적 입장'에 손을 들어 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의국가적 탄생(Nation building of Germany)'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점에서는 종교개혁 연구자들은 과도하게 종교개혁의 차별성에 비중을 두었지, 그것이 당시 유럽 전역에서 형성되고 있었던, 심지어는 가톨릭의 내부에서도 곧 확인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정신, 곧  '고백주의화(Confessionalism)' 과정이란 것을 간과하거나 경시하였다는 것이다. 볼프강 라인하르트 같은 학자의 '천주교회, 루터파 교회, 칼빈의 교회 등은 기본 신조, 윤리적 삶의 가르침, 내부 구성원의 양육과 훈련 등에서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우세하다'는 견해에 동조한다.  

종교개혁을 "미완의 기획"이라 명명한 이번 강좌의 취지는 그런 면에서 종교개혁 전통이 결국은 유럽의 시대정신적 자각의 흐름을 따라 '고백주의적 경로'를 밟아온 한 부분을 특화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오늘 한국에서는 다시한번 시대정신의 흐름을 살피고, '고백주의적 가치지향'을 창출할 것이냐에 달려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한국개신교는 스스로 갱신되지 않는다

한국개신교가 내부의 교회개혁 논의로 충분히 갱신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나는 확신이 없다. 그것은 부패를 막는 역할을 일정 정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낡은 부대에 가죽을 덧대는 것 이상 되기는 어렵다. 어떤 새 부대를 준비할 것이냐는 그보다 훨씬 큰 이야기이다. 새 술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만이 새 부대를 준비할 수 있다. 옛 술에 만족하는 이들은 덧 댄 가죽부대가 그나마 당분간은 버텨줄 것이고, 굳이 부대를 바꾸어야 할만큼 절실한 위기감이 없다. 새 술의 터질 듯한 발효능력을 볼 때라야 헌 부대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하게 된다.  

나는 우선 종교개혁이 지나치게 단순한 신앙운동으로 파악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의 시대적 맥락은 훨씬 더 깊고, 넓게 파악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거기에 주도적 인물이나, 집단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그런 두드러진 개인과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 내에 '부흥'에 대한 강조를 하는 이들이나, 어떤 신앙적 영웅의 출현을 유일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이들은 그런 면에서 매우 근시안적이고, 비-개신교(non-Protestantism)적이다. 개신교의 등장 자체가 그렇지 않았고, 이후에라도 개신교가 스스로를 규정한 방식이 그렇지 않았다. (아마, 이 이야기는 이국운 교수가 더 세밀하게 해주겠지만, 개신교의 원초적 '민주성'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 개혁은 두 갈래로 와야 할 것이다. 개신교 자체 내부에서 "개신교의 언어와 신앙고백을 회복하자"는 외침으로 터져나와야 할 한 흐름이 있다. 지금의 신학교와 교회 체제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 나의 인식이다. 둘째는 현재 한국사회와 시대적 지평 위에서 읽고 말하고 행동하는 몸짓에서 나와야 할 흐름이다. 그것은 인문학적으로 개신교 신학 너머까지 응시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시대적 과제를 비껴가지 않고 정면대결을 불사할 용기, 운명과 씨름하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확보된 자원과 도구를 최대치까지 구사할 줄 알고, 공적 영역에서 개신교란 울타리 너머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광폭의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믿음 좋은' 이미지 바깥으로 훌쩍 튀어나갈 수도 있어야 한다. 

한국 개신교는 결코 스스로 갱신되지는 않을 것이다. 안팎의 외침과 몸부림의 결과로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어느 정도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그 싸움을 감당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하나님이 크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한국 개신교는 정말 살아남기 힘들다. 아니, 살아남아서 더 치욕인 시절이 아직 한참은 더 남아 있는 것 같다. 은혜가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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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인문학2009.10.04 19:00



루터와 가상대화를 나눴다.
그가 지금 한국교회를 보고 한 마디했다. 

"문제는 목회자들인데, 남들 하는 대로 무난하게 한 세상 살아보려고 하다가 교회도 망하고 자신도 망해.
지금은 비상 시기다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목회를 해야지."  

 
10월 마지막 주간이 종교개혁 488주년을 기념하는 주간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이 주제를 놓고 설교를 했거나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축에서는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도 교회의 개혁, 혹은 종교의 개혁을 촉구하는 사건들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궁극적 문제에 해결책을 주겠다는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을 오도하고, 눈앞의 문제도 풀지 못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모습이 되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종교개혁의 주도적 인물 마틴 루터를 긴 잠에서 깨워 호출했다. 그가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한국교회의 병세가 심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루터의 육중한 체구가 먼저 눈에 든다. 아직 건강미가 있다.



양: 종교개혁은 꼭 일어나야만 했습니까? 가톨릭 내부적 개혁운동으로 갱신될 여지는 없었나요?

루터: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내가 처음부터 가톨릭을 붕괴시키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네. 쇠락의 기운이 있었다고는 하나 가톨릭은 서구세계를 통치하는 거대한 체제야. 감히 일개 수도사가 그 체제 전체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지. 처음에는 내가 강하게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 교황청이나 주교단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우치고 내부 개혁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지. 교황에 대한 자극적 표현도 그래서 사용한거고. 그러나 결과적으로 교황청은 나의 문제 제기가 당시의 봉건영주들이나 지역의 실력자들인 제후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본 것이지. 반박문을 둘러싼 논쟁이 2~3년에 걸쳐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와 나의 동료들은 교황체제가 이 문제를 개선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 일말의 희망을 거두어야 했지. 


양: ‘저항자들’이라 불리는 개신교(Protestant)가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셈인데요. 그 개신교가 요즘 한국 땅에서는 교황체제 못지않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루터: 한국에 루터파가 별로 없고 칼빈주의자가 많아서 그런가. (웃음) 농담일세. 모든 구조나 체제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늘 그 경향성과 싸워야 하네. 칼빈주의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개혁교회는 늘 개혁되어야 한다’ 라고 하던데, 별로 그 기치에 충실하지 않나 보구먼.



체제와 싸우려면 연구하라


양: 말과 삶이 따로 노는 것이 문제의 본질 같습니다.


루터: 그거 왜 그런지 아는가? 고민도 안 하고 고생도 안 해서 그래. 개신교 전래 초기의 순교 따위를 추억만 하고 있지. 우리들의 개혁 시기에는 하나의 신조, 미묘한 신학적 해석의 차이에까지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그러면서 불필요하게 희생된 사람도 엄청나게 많지만, 그렇게 얻어낸 신앙고백이니까 그것에 따라 사는 것 이상으로 감격스러운 게 없잖아. 한국교인들 보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다는 식으로 사는데, 제발 좀 그러지 말았으면 해.


내가 한국교회를 보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공부를 안 한다는 거요. 교회개혁 이야기하면 꼭 ‘기도 했냐?’ 물어보는 사람 있는데, 기도는 필수고 개혁운동은 연구해야 해요. 종교개혁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운동이 아니라구. 중세의 수도원들은 매일 최소 세 번은 기도회를 갖는 수도공동체였지만, 동시에 신학자의 도서관이자 연구실이기도 했소. 나도 어거스틴 수도회에서 수 년간 신학과 성경 연구를 꼼꼼히 할 기회가 있었으니 나중에 신학 논쟁에서 내 입장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고, 내 동료들도 다 신학의 전문가들이었소. 생각해봐요. 교황체제 자체가 거대한 교리와 역사의 결집체인데, 이를 극복하겠다는 사람들이 턱도 없이 모자란 공부로 무얼 한단 말이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지 않소. 



나는 평생을 개혁운동에 매진했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들거나 지도자들의 탈선으로 추종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례도 보았네. 개혁운동은 객기로 할 운동이 아니오. 진짜 다 걸고 해야 할 운동이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내용과 방향을 찾는 일은 결사적으로 해야 하오.


양: 개혁자들의 자기 연마를 뼈저리게 강조하셨는데요. 그래도 비난은 고스란히 받으셨지요.

루터: 교회를 요동시키는 자다, 사탄이다 등등 온갖 악다구니가 다 쏟아졌지.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사람이거든. 노래도 좋아하고, 기분파라고나 할까. 정서적으로 침울해지지 않도록 노력하지. 나는 개혁은 책상머리에서 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네. 세상 사람들의 삶 속으로 한번 들어가 봐. 나는 수도원 생활이 더 경건하거나 거룩하다고 생각하면 단단히 속는 것이란 점을 잘 알아. 일상생활 속에서 경건과 거룩을 실천하는데 교회가 도움을 주나 못 주나 보면 판가름이 나지. 세속에 사는 이들은 수도원으로 나아오는 것이 필요해. 그러나 수도원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세속으로, 예수를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는 삶이 있어야만 해. 우리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의 사람 아니던가. 그 '거친 십자가'를 치장하고 미화해서는 안 되네. 그 거친 질감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네. 그걸 꾸미는 것은 결코 예수를 위하는 게 아니야. 많은 예배당과 그 거대한 위용으로 예수의 십자가가 더 영광스럽게 된다고 생각하나? 교회가 왕과 귀족을 갈아치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 예수가 존귀히 여김을 받나? 착각이야. 난 그런 시대를 살아봤어. 아니더라구. 한국교회는 절대 그 길로 가지 말게. 누가 간다면 결사적으로 말려. 그건 교회의 몰락을 자초하는 길이고, 예수를 다시 못 박는 일이야.


십자가를 치장하지 마라


양: 개혁에는 늘 속도 조절과 정도의 문제가 따라붙습니다. 루터 선생님도 다른 개혁자들에 비하면 보수적이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루터: 한 사람이나 집단이 다 이룰 수는 없는 것이고, 역사적 소명이란 게 있지. 나 역시 처음부터 개혁을 주창한 사람도 아니고, 하다 보니 그 자리에 서게 되었지. 난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지점으로 걷잡을 수 없이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지 않았어. 가끔 혁명적 분위기에서는 지나치게 과격한 양상이 전개되고 통제 불능이 되거든. 후세 역사는 나를 놓고 보수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시대에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어. 그런 과정에서 동지들이 적이 되는 경우가 가장 고통스러워. 늘 내가 옳았다고는 말하지 않겠네(루터는 농민전쟁(1524~25)의 진압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양: 한국교회에 대해 좀 말씀해주시지요.

루터: 직설적으로 말하겠네. 한국교회는 가볍고, 얕다고 보네. 인구의 20%, 선교사 1만 명, 서울 강남 인구의 30~40%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만. 전 인구가 기독교인이고, 평생 서원을 한 수도원들이 경쟁적으로 설립되고, 왕족과 귀족은 다 교황의 눈에 들려고 했던 시대를 산 내게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네. 당신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지점까지 도달하지는 못할 걸세. 도달하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계속 그런 꿈만 부추기고 있으면 큰 일 나네. 명색이 지도자란 사람들은 다른 꿈을 꾸어야지. 소규모 자영업자가 자수성가하는 식의 바람을 무슨 교회의 궁극적 지향점이라도 되는 양 유포시키고들 그러나. 그러면서 교회가 그 수준으로 천박해지는 걸세.

그리고 신학자란 사람들은 왜 다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거야. 신학자가 개척교회 창업 컨설팅하는 사람들인가. 신학교에서 그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한국교회 개혁 95개조를 써야 한다면 신학자들의 침묵과 비겁함을 엄중히 물을 걸세. 교수들끼리 서로 헐뜯지 말고, 교회를 향해, 세상을 향해 진짜 싸움을 하라구. 젠장.

문제는 목회자들인데, 남들 하는 대로 무난하게 한 세상 살아보려고 하다가 교회도 망하고 자신도 망해. 지금은 비상 시기다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목회를 해야지. 목회의 뜻이 겨우 아들이나 사위한테 교회 물려주는 게 되어서야 되겠나. 자꾸 그런 식으로 하니 물려줄 자식 없는 신부들이 낫다는 소리나 듣구. 당신들이 잘못하니 오히려 가톨릭이 더 낫다는 소리- 내가 들으면 정말 맥 빠지는 소리-나 나오게 만들고 말이지.

여하간 개신교가 어쩌다 시작되었나를 잘 새겨보기를 바라네. 그 지점을 벗어나면 누군가가 또 나와서 당신들을 다 갈아엎고 새로운 기독교를 세울 걸세. 개혁의 대상이 되려나, 주체가 되려나? 당신들 선택에 달렸어. 



 
 
 * 이 인터뷰는 <복음과상황> 2005년 11월호에 실린 바 있다.

Posted by erasmus
(1) 기독인문학2009.10.04 17:18

pros Hangukos


(1) 한국에 있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로 부름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에게 성령의 위로가 넘치기를 원하노라. 

(2) 너희가 너희 믿음의 조상으로부터 순전한 믿음을 받아, 고난 속에서도 굳건히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였음을 내가 아노니, 너희 모든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느니라.

(3) 너희 가운데에 일어난 어떤 일에 대해 내가 무지하지 아니하노니,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분이 그들을 상관하리라. 

(4)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예수를 부끄러워 말지니, 수치를 당하는 것은 그가 아니요, 그를 빙자하는 자들의 양심이라.

(5) 기억하라. 사람이 하나님과 맘몬을 더불어 섬길 수 없다하신 주의 경계를 엄히 여기라. 

(6) 사람의 눈에 들기위해 하나님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기억하라. 그들의 마지막이 지극히 부끄러웠느니라. 

(7) 또한 돈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사려한 마술사 시몬의 종말도 잊지 말지니,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8) 너희들이 아직도, ‘주여, 주여’하며 핍박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느냐, 어리석도다, 너희가 복음을 증거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하늘에 상급이 있으려니와, 자기 욕심과 불의로 정죄당하는 일에는 누가 함께 서겠느뇨. 

(9) 너희가 믿음도 헛배우고, 영생도 욕되게 하느니라. 

(10) 또 너희 중에 유력하다하는 이들이 무고히 고난당한다는 거짓 소문으로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혼란케하나, 미혹되지 말지니, 그들은 자기 받을 것을 받느니라.

(11) 누가 너희더러, 고난을 피하라고 하더냐. 

(12) 하나님의 뜻대로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백성을 망하게 한 적이 있더냐, 너희는 누구로부터 배웠느냐. 

(13) 매가 아프면 눈을 뜨라는 말이 있거니와, 이 말이 참되도다. 

(14) 너희가 세상의 지혜도 경히 여기면서, 하늘의 지혜를 구하느냐, 어리석은 자들아. 

(15) 그리스도가 고난받지 않았으면, 구원이 어디있고, 생명이 어디 있겠느냐. 

(16)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17) 그리스도의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아, 너희가 정녕 진리를 가리고, 배를 섬기려느냐.

(18) 성령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19) 종이 주인을 부릴 수 없고, 주인이 종을 부리나니, 성령은 우리의 부리는 영이 아니요,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할지니라. 

(20) 말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듣는 자가 마땅히 자신을 살펴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할 것이라. 

(21) 성령은 죄를 책망하고, 거짓증거를 드러내며, 정직하지 않은 심령과 사악한 마음을 정죄하시나니 이는 도무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음이라.

(22) 성전을 짓는 열심을 가진 자들이여, 너희는 이 성전을 헐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잊었느뇨. 

(23) 잘 하는도다. 너희가 성전짓기를 사모하는듯하나, 실상은 성전되신 주님도 모르고, 너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신 성령도 배우지 못하였도다. 

(24) 너희가 열심은 있으나 지혜는 없도다. 

(25) 금과 은으로 집을 꾸민들, 하나님을 거기 모시겠느냐, 바람을 거기 가두겠느냐. 

(26)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성전도 그러하니라.

(27) 하늘의 복을 사모하는 자들아, 육체의 모양을 따라 자랑할 것이 많지 않고, 날마다 생명의 위협과 곤고한 핍박 속에 처한 나를 보라. 

(28) 그러나, 내가 누구보다 더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자라. 

(29) 평안함과 편안함을 함께 구하는 자여, 하나가 있으면 그로 족하니라.



저자


이 서신은 유사 사해사본(Pseudo-Dead Sea Scroll)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풍문으로만 그 존재만 알려져 오다가 2001년 한 한국 신학도에 의해 영국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한 장 분량의 내용만 공개되어, 차후 이 서신의 분량과 내용을 두고 신학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이 등장하는 성경문서란 점에서 이 서신의 정경 인정을 위한 한국교회의 로비 노력이 지대하다는 설이 있다. 문체와 주요 단어들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이 한반도까지 미쳤는지에 대한 자료가 불충분하므로 직접적인 저자로 보기는 곤란하다. 다만, 넓은 의미에서 바울의 영향권(Pauline circle)아래서 쓰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하겠다.


제목


서신의 제목 ‘한국인들에게(pros Hangukous)’는 후대에 삽입된 것이란 설이 있지만, 서신의 첫머리를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란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다. 다만, 전치사 ‘pros’가 ‘에게(to)’인지, ‘대항하여(against)’란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본서의 내용이 상당히 강력한 경고를 담고있는 만큼, 민중신학 일부진영에서는 ‘대항하여’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부패한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총체적인 경고를 담고있다는 것이다.


수신자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 입장이다. 그러나, 저자가 한국의 기독교 공동체 모두를 대상으로 썼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 특정한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썼되, 회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본서가 다루는 내용의 연대를 기원후 1980-2000년으로 본다면, 본서의 문체가 여전히 개역성경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한글 개역성경에 아직 익숙한 세대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수신자들은 공동체내의 오도된 신앙인들과 구별되는 대상으로 보이는데, ‘유력한 자들’과 대응되는 면에서 미루어 리더십을 갖고있지는 않은 집단(평신도?)일 가능성이 크며, 한국교회가 유교적 질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으로 미루어 여기에 세대적인 차이가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서의 정황(Sitz im Leben)과 연대


1. 본서는 특정한 사건을 명시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있어서, 정확한 연대설정이 곤란하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막연히 무시간적 교훈(timeless lesson)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추상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되겠다. 우리들에게 알려진 자료를 통해보면, 한국의 기독교 공동체는 19세기말에 시작된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여러 서구 학자들의 자료에 따르면, 특별히 교회성장 측면에서는 세계적으로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이 서신에서 제기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상이나, 문제들은 사실 어느 정도는 초창기부터 내재되어 있었던 문제였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것은 80년대 초반 군부정권과 기독교 지도자들간의 유착이 불거졌을 때와 90년대 말 교회의 부정부패 문제가 범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을 때이다. 본서가 어느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있는지를 단언하는 것은 어렵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내용들은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80년대 초반에 기독교가 핍박받은 사례는 있지만, 이때는 지도자들의 부패 때문은 아니었다.


2. 본서에서 성령론과 성전건축이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이 시기 한국교회에 대한 여러 외부 자료들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어서 진술의 역사적 신빙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논제는 80년대 초반이나 90년대 말이나 다 적용가능하므로, 연대문제가 다시 흐려진다. 그러나, 좀더 본문을 유심히 관찰하면 맘몬을 섬기는 것과 고난 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깝게 연결되어 있음을 통해, 이것이 실제로는 재물과 관련된 부패의 문제를 신앙적 핍박으로 호도하려는 태도란 해석이 가능하다. ‘유력한 자들’은 복수형으로 이 문제가 일 개인의 사안이 아니라, 상당한 수의 개인이나 집단이 관련되어 있다는 유추를 가능케 한다. 이것은 90년대 말, 좀더 특정하게는 2000년도에 발생한 주요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연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1)


3. 결정적으로 ‘매가 아프면 눈을 뜨라’는 저자의 인용이 90년대 말 한국에서 출판된 서적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란 점에서 연대추정은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것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낯설지 않은 ‘속담’ 형태의 표현으로 그 기원이 훨씬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본서의 주제의식과 삶의 정황은 거의 확정적으로 2000년도의 상황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뤄지는 주제는 이미 80년대 상황에서부터 언급되고 있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80년대에 언급되던 이 잘못된 지도자들과 2000년도에 언급되는 지도자들이 동일한 인물인지, 전혀 별개의 인물인지에 대한 배경사적 연구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이 시기 한국 기독교가 안고있었던 문제에 대한 좀더 정밀한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게될 것이다.



주석(Comment)


1-2절: 수신자를 ‘한국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제자들(disciples)’이란 표현이 ‘성도들(saints)’ 혹은 ‘신자들(believers)’과 내용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기 한국교회에서 ‘제자들’이란 표현은 좀더 구별된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2) 이들이 ‘성령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깊은 좌절을 몰고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여기서 좀더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성령의 “그” 위로’이다. 즉, 성령을 위로자(Comforter)라고 할 때 성령이 가져오는 ‘바로 그’ 위로가 지금 이 서신을 받는 이들에게 필요하다는 표현인 것이다. 저자가 서두에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키고, 그들이 ‘순전한 믿음’을 받았고, ‘굳건히 복음을 증거’하였음을 알고, ‘너희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다고 숨가쁘게 되새긴 것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복음의 은혜로부터 다시금 힘을 얻어야 한다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3-4절: 이례적으로 저자는 인사를 간략히 마무리하고서 곧 공동체의 문제를 강한 톤으로 지적한다. 이 일은 공동체 가운데 일어난 일인데, 저자는 이 서신의 수신자와 문제를 일으킨 자들을 명확히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제의 여파로 제자들은 예수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생긴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예수를 빙자하였기 때문이다. 이후의 본문에서 유추해 보건대는 이들은 교회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이들로 보인다. 한국교회가 유력한 개인의 사회적 입지에 기대어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제고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사회적 몰락이 기독교의 몰락으로 이어지도록 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저자는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동기를 꿰뚫어볼 뿐아니라, 이로인해 수치를 받지 않으실 것이란 단언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과정을 판단하시는 분이지, 인간에 의해 조작되는 존재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5-7절: ‘기억하라’, ‘엄히 여기라’는 강세를 받는 동사로서 반복을 통한 강조 표현이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이다.3) 저자는 여기서 두 가지 성경의 사례를 상기시킨다. 첫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행5:1-11)로,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느라 정작 하나님의 눈을 속이려했다가 부부가 다 죽은 사건이었다. 둘째는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이 임하고, 능력 행함을 보고 돈을 주고 이를 사려했던 마술사 시몬의 사례(행8:9-24)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지극히 세속적, 물질주의적 자세를 지적한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신앙 공동체의 내부나 주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례가 수신자들의 공동체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정확히 말하기 힘드나, 분명한 것은 저자가 실질적 맘몬 숭배가 신앙적 행위로 치장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8-10절: 저자는 대체로 본문의 ‘너희’를 한편으로 제자들에 대한 경계를 염두에 두면서도, 이 구절에서처럼 직접적으로 문제인물들을 상대하는 표현으로 쓰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주여, 주여’하며 핍박받는 것을 신앙적 결과인 것처럼 변질시키고 있다. 저자는 예수가 거짓 선지자들을 꾸짖던 말씀(마7:21-23)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단호하게 예수께서 그들을 정죄한 것처럼 동일한 결론이 날 것을 암시한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여기에는 ‘믿음’도 ‘영생’도 연결될 자리가 없다. 여기서 이 공동체의 문제가 좀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공동체 내의 유력한 이들이 연관됨으로써,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흔들리고 있고, 이 유력한 이들은 그 상황을 신앙적 핍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판단을 더욱 흐리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복음증거와는 상관이 없고, 자기 욕심과 불의의 결과로 당연히 받을 것을 받고 있을 뿐이란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은 이 일로 인해 흔들릴 이유가 없다.


11-17절: 여기서 저자는 ‘진정한 고난’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그들이 당하고 있는 것이 ‘신앙적 고난’이라면,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꺼이 맞아야 한다는 역공을 가하고 있다. 성경과 교회사로부터 고난이 교회를 망하게 한 적이 없다는 교훈을 들어, 신앙의 유력한 자들에게 참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와 결과를 보이라는 것이다.4) 이는 그들의 고난 이해가 사실은 ‘믿음의 조상’(2절)들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고, 믿음도 영생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반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매가 아프면 눈을 뜨라’는 세간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이들이 늘 ‘하늘의 지혜’를 자랑하지만 사실은 세상의 지혜에도 미치지 못함을 조롱하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을 가능케 하였던 것을 지적하면서, 이를 상대화시키고, 경시하는 것은 ‘다른 가르침’이라고 못을 박았다.5) 즉, 공동체의 문제인물들은 기꺼이 고난을 맞이함으로 성경적 신앙의 본을 따르던지, 아니면 스스로의 주장이 성경과 그리스도가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18-21절: 성령론에 대한 전형적인 오류를 언급하고 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성령을 종으로 여기는 태도들을 목도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성령을 강조하는 분파들에게서 더욱 부각된 문제점으로 보인다. ‘망령되이 일컫다’는 표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십계명의 제3계명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엄위함을 강조하고 있다.(출20:7) 여기서는 성령을 대함에 있어서 십계명적인 엄숙함과 경외함이 요구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서신서에서 전형적으로 강조되는 성령의 열매나, 은사에 대한 언급 없이 복음서에서 두드러지는 보혜사(Paracletos)로서의 성령이 강조되는 독특함을 볼 수 있다.


22-26절: 여기서 ‘성전’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뜻밖이다.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이후로 유대교나 기독교를 막론하고 건물로서의 성전(Temple)을 뜻하는 용법은 사라지고, 종말론적 비전 속에서 ‘새 예루살렘’ 등을 상징할 때만 나타난다.(히12:22, 계21:2)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종국에는 성전이 없을 것이란 진술(계21:22)로 끝맺고 있다. 서양에서 가끔 교회 이름에 성전(Temple)이나 성막(Tabernacle)이란 명칭을 쓰지만, 이것은 단순한 명칭이상의 의미는 없다. 다만, 이 편지의 수신자인 한국 기독교에서는 건물을 ‘성전’으로, 목회자를 ‘제사장’으로 보고, 구약적 개념의 ‘십일조’를 강조하고, 구약의 안식일 계명에서 ‘주일 성수’를 이끌어 내오는 등의 행위가 성행하고 있었기에 저자가 의도적으로 ‘성전’이란 용어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자신이 구약신앙을 집약하고 있는 성전을 대신하는 존재란 점(마12:6)을 ‘이 성전을 헐라’(요2:19)는 말씀으로 드러낸 사실과 서신서에서 우리의 몸이 성전, 혹은 성령의 전(고전3:16-17, 6:19, 고후6:16-7:1, 엡2:19-22)이란 급진적 해석을 통해 드러난 육화된 신앙(Embodied faith)을 건물로서 성전을 바라보는 이해와 대조시키고 있다.(여기에는 공동체적 이해도 뚜렷이 반영되어 있다) 하나님이 거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이란 개념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사66:1, cf. 행7:46-50) 히브리어에서 ‘바람’과 ‘성령’은 ‘루아흐(Ruach)’라는 같은 단어를 쓰는데(cf. 창1:2), 이는 신약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용법이다.(요3:5-8) 예수께서 안식일 준수 계명이 사람을 억압하는 율법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시고(막2:27-28),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신 것처럼 성전 개념도 예수를 중심으로 재해석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아마 한국 기독교가 교회건축을 위해 성도들의 막대한 희생, 때로는 경제적 파산을 초래하기도 하였다는 사회적 정황과 이 무렵 목회자들의 오도된 재정남용이 ‘성전 건축을 위해’ 혹은 ‘선교사업을 위해’라는 식으로 치장되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6)


27-29절: 신약에서 복(blessing)으로 옮겨진 단어는 ‘eulogia’(고후9:5등)와 ‘makarios’(마5:3-11등) 두 개인데, 양자의 용법이 겹치는 경우(엡1:3)도 있지만, 단순화시키면 전자를 물질적 복으로, 후자를 영적 복으로 구별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구약이 물질적 복을 하나님의 선물로 많이 그려내었던 반면,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와 연관되는 복은 거의 대부분 마카리오스를 쓰고있다는 점이다. 이 본문의 ‘하늘의 복’은 마태복음5장의 산상수훈에 사용된 단어인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혹은 ‘의를 위해 핍박받은 자’에게 천국을 약속하는 그런 종류의 복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신자인 한국교회가 ‘기복신앙’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복’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는 역사적 묘사를 참고한다면,  저자가 여기서 노리는 효과는 이중적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 복이 그 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어서 육체의 곤고함과 일상적인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했던 자신이야말로 가장 큰 복과 은혜를 받은 자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선언함으로써 한국교회 안에 팽배한 ‘기복적 이해’를 통박한다. 건강, 재물, 심령의 복을 하나로 묶는 ‘번영의 복음(Prosperity gospel)’을 추구하는 논리에 대해 저자는 ‘평안(Shalom)’과 ‘편안(Convenience)’를 다 취하려고 하지 말라는 뼈있는 경고를 던지고 있다. 하나를 취하는 자는 다른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중의적 표현은 편안을 선택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평안과 멀어질 각오를 하라는 경고인 동시에, 평안을 택한 이들은 편안함 혹은 안락함을 잃는 것에 개의치 말라는 격려를 담고 있다.



후기

2000년 마지막 이틀간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온몸이 다 떨리고, 아파오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때론 내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어쩌면 성경기자들이 기록한 계시적 경험(Apocalyptic Experience)에 유사한 것은 아니었는지. 어쨌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이 글 앞머리의 본문을 얻게 되었다.(어떻게 얻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나를 더 이상 괴롭게 말라. 내가 예수의 흔적을... 음) 그리고, 며칠에 걸쳐 그 본문을 주석해 나갔다. 그 주석의 과정에서 내 마음이 시원하게 됨을 느꼈다.(뜨거워졌어야 한다고? cf. 눅24:32) 부디 한국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이 말씀과 주석을 통해 성령의 위로를 얻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로 울게도 하시지만, 웃게도 하시는 분임을 믿는다. 위로가 필요한 심령들아, 성령의 웃게하심(웃기심?)을 경험하라.(cf. 시2:4)




* 본 원고는 2001년 <복음과상황> 2월호에 게재된 바 있다.




1) 주요한 사건들로는 몇 년째 계속 정권의 실세 자리에 있던 기독교인들의 부정부패 사건, 교계의 이름난 인물들의 정치-경제권 로비개입 사건 등 외곽에서부터 터져나오다가 2000년부터는 아예 목회자 부자세습, 교회재산의 불법전용, 목회자의 사채 및 도박 연루사건, 빈발하는 교회내 성범죄, 교단선거의 타락상 등 주류교회의 중심부에서 문제가 폭발했다. 특히 2000년 연말에 MBC PD수첩에서 이런 문제를 다룸으로써, 소위 ‘교계 유력인사’로 구성된 ‘언론대책위’란 기구가 구성되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2) 소위 ‘제자훈련’이란 소그룹형태의 성경공부 중심의 훈련형태가 대중화하면서 ‘제자도’란 개념이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 네비게이토를 중심으로 대학가에 전파된 이 개념은 80년대 옥한흠 목사를 통해 성도교회, 내수동교회, 사랑의 교회 등의 모델을 거쳐 교회에 확산되었다. 여기에 본회퍼나 데이빗 왓슨의 책등이 읽히면서 성경적, 신학적 강조들이 더해지면서 ‘제자도’ 개념은 폭과 깊이를 갖추어갔다.


3) 마6:24(=눅16:13). 누가복음은 동일한 구절을 다른 맥락에 놓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16:14)는 돈에 대한 예수의 태도가 의도적으로 바리새인들과 대비를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가 제자들을 완전한 무소유로 내어보낸 것(눅9:3)은 그들이 당대의 기준과 상반되는 윤리의 소유자임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초대교회에서 돈에 대한 경계는 딤전3:3, 6:10, 딤후3:2에서 확연히 드러나 있다.


4) 신약은 극심한 박해 앞에 선 신앙 공동체를 향한 격려로 가득하다. 특히 히11장의 후반부를 참조하라. 히브리서의 이런 순교적 신앙자세는 13:12-13에서 절정에 달한다.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하려고 성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다고 함으로써 고난에의 동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가장 극적인 한 모습임을 보였고, 베드로도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라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강조하고 있다.(cf. 벧전4:13)


5)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말은 히9:22의 인용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과연 그분의 구원사역에 어느 정도 밀접한 관계가 있느냐는 주제는 히브리서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일차적으로 그가 인간들과 성정을 공유하는 존재란 사실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부각되었다.(히2:10, 18, 5:8-9) 그리고, 좀더 심화된 의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고난받았다’(히9:26)고 표현함으로써 고난이 구원을 이루는 핵심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신약기자들이 그리스도인을 고난으로 초청하거나(앞 각주 참고),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롬12:1)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학대받기를 즐기는 매조키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구원을 누리고, 전하는 것을 말하는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6) 이 당시 언론에 보면, 만민중앙교회 목사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도박한 사실이 발각되자, 교인들에게 ‘교회 건축에 보탤려고, 선교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서’라는 식으로 해명하기도 했고, 신용금고 사기나, 사채업 등에 손을 댄 목회자들도 한결같이 같은 변명을 해댔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은행돈을 빌려 건축을 하면서 교인들이 연대보증을 서도록 하거나, 교회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교인들이 각자 나누어 적금을 부어서 갚도록 했었다.





Posted by erasmus
(1) 기독인문학2009.09.30 17:01


청어람에서 "미완의 기획, 종교개혁: 2009 한국 개신교와 종교개혁 사상"이란 제목으로 강좌를 운영한다.
홍보물에 넣은 기획취지는 아래와 같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의 개혁 만은 아니었다. 정치-종교-일상이 한 덩어리로 묶여있던 서구 중세의 거대한 질서 전체에 발생한 균열이 몇 세기에 걸쳐 지속되면서 발생한 문명사적 전환의 사건이다. 그 격변의 규모와 파급효과는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지금까지 지속되는 현실을 만들어 내었다. 2009년 한국상황에서 종교개혁을 바라보는 이유는 개신교(Protestantism)의 개신교성(protestant)이 과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 것인지 거시적-통시적 안목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가 강렬하게 대두하기 때문이다. 개신교 신앙의 핵심을 구성하는 개혁(reformation)이 가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의 최대치를 상상하고,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필요 최소한을 재확인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1(10/05) "개신교적 의식의 탄생: 카라바조의 경우" | 상근 교수 (연세대 신학과)

2(10/12) "개신교의 등장과 근대정치의 토대" | 이국운 교수 (한동대 법학부)

3 (10/19) "에라스무스, 인문주의의 이상은 가능한가?"| 강영안 교수 (서강대 철학과)

4(10/26) "루터, 투사-신학자-정치가가 필요하다" | 김주한 교수 (한신대 신학과)

5(11/02) "칼빈은 대체 무얼 꿈꾸었을까?" | 박경수 교수 (장신대 신학과)

6(11/09) "미완의 기획 '종교개혁' 2009년 한국 기독교" | 종합토론

 




생각은 그랬다.

요즘 교회들 꼴이 왜 이 모양인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사고들을 되짚어가다 보니 언젠가 읽었던 '종교개혁' 관련 책의 내용이 기억이 났다. 종교개혁 시기 중세교회의 면면을 묘사한 내용이 어쩜 요즘 한국 개신교가 욕 먹는 내용과 그리도 흡사한가 싶었다. 교회의 치부, 성직자들의 사생아 출산, 부와 명예의 세습, 관행을 정당화 하는데 동원되는 어용신학 등등... 저 정도면 종교개혁이 일어난단 말이지... 싶었다. 생각이 좀더 진전이 된 것은 이국운 교수 탓이다.



'근대국가의 헌법체계는 개신교 종교개혁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내용을 다른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 월례 세미나에서 발표하던 현장에 내가 있었다. 그곳에 참여한 헌재 연구관들이나 학자들은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하는 눈치였는데, 나는 상쾌했다. 물론 그 내용은 여러 모양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나도 헌법논의에 문외한이니, 몇년전의 그 발제문을 내 나름대로 알아먹는데 꽤 시간을 소비한 셈이다. 


여하간, 나는 헌법이란 체제의 탄생에 종교개혁자들의 논의가 깊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근대국가의 정교분리 원칙이나, 관용(tolerance)원칙,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등이 사실은 '세속적 원리'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원리' 특별히 '개신교 정신'에 의해서 추동가능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이것은 신앙에 대한 헌신을 핑계로 정치사회 영역을 함부로 짓밟는 요즘 한국 개신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어쩌면 개신교 원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미묘한 결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단지 단순무식하게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식의 정치밖에는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야 이런 '결을 매만지는 정치' 따위는 턱없는 호사취미 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설득이 되어간다. 종교개혁 시대를 뒤져봐야 한다는 것. 거기에 우리가 못 만난 '길'이 있을 것이란 심증이 점점 깊어진다. 캠브리지의 정치학자인 퀜틴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I)>(한길사) 강독세미나를 지난 여름에 하면서 얼핏 보았던 것도 그것이었다. 아쉽게 르네상스 정치사상을 다룬 1권밖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고, 종교개혁시기 정치사상을 다룬 2권은 아마도 수요부족으로 번역이 요원해 보이지만, 그 그림은 가늠이 된다. 


강좌로 묶어볼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청어람 5년 활동의 결과이다.


종교개혁을 단순히 "예수 열심히 믿자"로 읽지 않고,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적 격변으로 추적해서 복원해가려면 적어도 각 영역의 전문가를 마음대로 구사(?)하면서 그림을 그릴 상황이 되어야 한다. 청어람아카데미의 그간 강좌를 통해서 만난 김상근 교수(연세대 신학),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 이국운 교수(한동대 법학)는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학자들이고, 문제의식에 바로 접속이 가능한 이들이다. 루터와 칼빈을 발제해주실 김주한 교수(한신대 신학), 박경수 교수(장신대 역사신학)은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인데, 각각 루터와 칼빈 전공이라 주목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사 섭외를 위해 자료 검색을 해보니 딱 적합한 분들이었다. 올해가 칼빈500주년이라 이런저런 학술행사들이 많은 데 박경수 교수는 가장 단골로 불려다니고 있었고, 김주한 교수는 루터를 좀더 폭넓은 배경에서 조명하는 자신의 저술과 여러 번역서를 갖고 있는 분이었다. 덕분에 이번 논의가 신학교와 신학생들에게까지 미쳤으면 좋겠다.  교회개혁을 논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아니, 많다. 



그러나, 이런저런 현장이나 세미나에서 강하게 현실교회를 성토하는 분들의 논지 역시 어느 정도는 어그러진 현실에 대한 반대상(mirror image)에 그칠뿐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들이 솔직히 자주 있다. 역사로부터 제대로 배운다면 교회를 개혁하자는 이런저런 구상들이 이 얕은 언저리를 이토록 오래 맴돌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이번 강좌를 계기로 삼아 한국교회, 개신교에 관한 나의 생각을 좀더 발전시켜 나가보고자 한다. 

게으르지 않게 글을 이어갈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원하며... 시작한다.

  



Posted by era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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