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복음주의2009.11.04 20:02
* <복음과상황> 2000.10월호 '브리스톨 통신(6)'입니다. 참고로 영어로 Evangelicalism은 '복음주의', Evangelical은 형용사로 '복음주의적'이라고 쓰이거나, 명사로 '복음주의자'란 뜻을 갖는다. 이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자주 혼동하는 용어로 Evangelism은 '(개인) 전도', Evangelization은 '복음화'로 옮겨지고 후자가 좀더 광의의 의미를 지닌다.

* 아마 이 글은 포스트-에반젤리칼의 존재를 한국에 소개한 최초의 글일 것이다. 처음 쓰여질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영국 복음주의권의 실험은 한국에는 여전히 숨겨진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emerging church 운동이 태동하고, 방향을 잡아가는데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나는 이제 국내에서 꽤 관심을 끌고 있는 emerging church movement의 원조로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 운동을 꼽을 수밖에 없다. 지금 찾아보니 데이브 톰린슨은 자신의 이름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www.davetomlinson.co.uk


photo of Dave Tomlinson



내 이름은 무엇인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복음주의'란 용어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다. 대신 '보수주의'란 표현이 즐겨 사용되었다. 여기서 '보수'란 '성경적 진리를 지킨다'는 뜻으로 자랑스레 풀이했고, 이에 반대되는 '진보'측은 '진리를 시대조류에 영합해서 변개시키는 자들'이란 식으로 폄하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보수'란 단어에 좋은 뜻을 구겨넣어도 그 용어가 본래적으로 갖고있는 정체된 이미지나 고집스런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수'라는 단어에서 찾고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것이다. 신학적 보수파와 사회적 수구파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등장한 '개혁'이란 단어는 이를 피해 가는 좋은 표현이었다. 그러나, '개혁신학'이란 특정한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 용어는 어느 정도 그 폭에 제한이 따랐다. '복음주의'는 물론 이보다 선행하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적절히 표현해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보편화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복음주의(서구의 경우도 그렇지만)는 여러 흐름들이 혼재되어 있다. 때로는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에 가깝지만 스스로 복음주의자로 인식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주류 복음주의에 비판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복음주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느낀다. 마크 놀(Mark Noll)이나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등이 지적했듯이 복음주의는 늘 진행형인 운동으로서 존재하기에 엄밀히 피아를 갈라내려는 노력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각 흐름들을 평가하되, 그 기저에 깔린 공유된 가치들이 복음주의 일반이 지니는 특징들과 얼마나 통하는지를 봐야 하겠다. 이번 호에서는 영국의 '포스트 에반젤리칼' 논쟁을 통해, 한국의 복음주의에 던져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내가 데이브 톰린슨(Dave Tomlinson)의 책을 처음 발견한 것은 96년초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옥스퍼드 시내의 서점에서였다. <The Post Evangelical>이란 제목으로 95년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마침 국내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한참 뜨거웠고, 대학가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Coming-Out,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무엇이 내 눈길을 그 책에서 떼지 못하게 했을까? 한동안 '포스트' 어쩌구 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던 시절에 왜 나는 또 하나 어설픈 아류가 나왔구나하고 지나치지 못했을까? 이 원고를 쓰기 위해 다시 그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그것이 '이름이 불리는(呼名)' 경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저자는 말한다. "내가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어떤 신학적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리된 주제들도 없었고, 당연히 조직이나 기구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표현을 처음 접하면서도 즉각적으로 그 중요성을 이해했고, 자기 나름대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내는지 놀랄 정도였다."

book by Dave Tomlinson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이 80년대 중반이후의 영국교회는 가히 '복음주의 르네상스 (Evangelical Renaissance)'란 표현이 거리낌없이 사용될 정도로 최고의 시기를 구가하고 있다. 과거 지리멸렬하던 교회들이 살아나고, 대형 이벤트에는 사람들이 구겨질 정도로 찾아들고, 대중매체는 어떤 사안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이 무언지 코멘트를 얻기에 바쁘다. 경제계, 연예계에도 돋보이는 복음주의자들이 대중적 신망을 얻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진 기나긴 침체에서 이제 막 벗어나 한껏 기지개를 켜는 이 시점에 '포스트 에반젤리칼'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러나, 저자는 이런 복음주의 호황의 후방에서 줄줄이 새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 저마다 어떤 이유들을 안고, 복음주의자이기를 그만 두거나(ex-Evangelical), 혹은 아예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ex-Christian)을 그는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영국 복음주의 자체가 안고 있는 어떤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단정한다. 물론 이것은 복음주의권의 전방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출되는 사람들보다 유입되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여전히 복음주의는 성장하고 있고,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왜 나는 이런 저자의 분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한국의 상황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96년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 복음주의가 피크를 넘어설 때쯤 나타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그런데, 요 한두 해 사이에 한국 교회들의 상황은 노란불을 지나 빨간불에 진입한 것 같다. 그런데도, 교회지도자들은 신호등을 무시한다. 자기 교회에는 사람수가 여전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늘날 대형교회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질적 공백은 들어오는 사람의 숫자로 채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뼈가 빠져나간 자리를 살로 채우는 격이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가 탁월하게 지적했듯, 그건 '성장'이 아니라 '비만'이다.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영국교회에서 이런 징후를 찾아내고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란 기치를 올린 이 저자의 안목이 한국 땅에서는 어떤 형태로 접합점을 가질 수 있는지 새삼 꺼내보게 된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이전과 이후


작년에 영국으로 공부하러 와서 서점에서 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The Post Evangelical Debate> (1997, Triangle). 이 것은 데이브 톰린슨의 책에서 시발된 논쟁을 영국 복음주의권의 학자들 여섯 명이 낸 논평 격의 책이다. 글쓴이들은 캠브리지 리들리 홀(Ridley Hall) 학장인 그래함 크래이(Graham Cray), 전 런던 바이블 칼리지(LBC) 부학장 닉 머서(Nick Mercer), 런던 킹스 칼리지의 겸임교수이자 전도와 청소년 사역에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운동가인 피트 워드(Pete Ward) 등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그 책은 이름 없이 책장 구석에 머물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복음주의자들에게 본격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 분명하다.

한편, 원래 책의 저자 데이브 톰린슨의 이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는 어릴 때 매우 복음주의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는데, 형제단(Brethren, 영국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교단이다)에서 십대에 주님께 헌신했고, 몇 년후 성령체험을 하면서 형제단을 떠나 당시 일어나고 있던 성령운동에 합류한다. 그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에 적극 참여했고, 22살에 결혼을 하고서 (영국 상황에서는 그닥 놀랄 일이 아니다) 자신의 집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한다. 이것이 그의 20년간의 가정교회 사역의 시작인데, 그중 10여 년을 그는 열 다섯 명의 팀을 이끌며, 50여 개의 교회를 돌보았다.

80년대 말, 그는 복음주의 교회나 성령운동 교회들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심각히 보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났으나 어떤 형태로건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이것은 그가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는 수준의 구속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찾아보는 신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좀 색다른 형태의 교회를 실험해보기로 하고 '홀리 조(Holy Joe's)'란 펍(Pub, 영국에서 가장 흔한 술집. 식사나 음료수도 제공되는 호프집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형태의 교회를 시작한다. 여기서 예배도 있고, 설교도 있고, 성경공부도 한다. 분위기는 일반 펍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그가 모든 교회가 이런 형태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획일적인 교회의 틀을 깨고, 선택가능한 실험적 모델로서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고 한다.

복음주의에서 웃자라다
그가 만난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복음주의가 줄 수 있는 환경보다 '웃자랐다(outgrown)'고 느꼈다고 한다. 웃자람은 간단히 말하면 복음주의적 기원이 아닌 입장이나 신학과도 긍정적으로 교섭하고자하는 욕망이다. 즉, 더 이상 복음주의 교회에서 주는 전형적인 결론들에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이 무언가 대안적 생각을 펴볼 공간을 찾고자하는 상태이다. 이것은 회의(doubt)를 드러내어도, 이를 불신앙(unbelief)으로 여기고 회심시키려고 달려드는 이들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들은, "복음주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입문하는데에는 매우 탁월하다. 그러나, 더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는데에는 거의 도움이 안된다"고 느낀다. 이들은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는 자신들의 생각이 끊임없이 종교적, 신학적 자기검열 상태 아래 놓여있게 된다고 느낀다.

'포스트 에반젤리칼'에서 '포스트'의 의미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와 마찬가지로 양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의 기원으로부터 '이탈 혹은 해체'를 뜻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원과의 '연속성'을 인정한다. 데이브 톰린슨은 그래서 '포스트 에반젤리칼'은 복음주의를 포기한 사람(ex-Evangelical)이나 그리스도인됨을 포기한 사람(ex-Christian)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들이 전형적인 복음주의와 갈라지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최근 20년간 영국 복음주의가 걸어온 지형도를 먼저 펼쳐보아야 한다.

영국 복음주의 내력 훑기
그는 오늘의 영국 복음주의를 형성한 여섯가지 조건을 분류해 냈다. 첫째는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80년대와 90년대에 부쩍 강화된 흐름인 주류 복음주의권의 카리스마틱화(Charismaticizing) 경향이다. 영국의 전통적 복음주의는 매우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신앙 형태이다(한국으로 치면 전통적 장로교 유형이라고나 할까). 이들에게 성령운동은 정서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고, 신학적으로는 불건전한 신앙을 낳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사이에는 매우 강한 거부감과 불신이 있었으나, 오늘날 성령운동의 영향력은 복음주의 주류의 대중과 지도자들 사이에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다. 그 과정은 다음의 여러 흐름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둘째는 가정교회운동(House Church Movement)이 주류 복음주의와 결합한 것이다. 가정교회(House Church)란 6-70년대 초기, 성령운동의 영향아래 제도권을 뛰쳐나가 노방전도와 순회사역을 통해 가정이나, 학교 등을 빌어 교회개척을 해나간 이들의 흐름을 일컫는다. 이들은 대체로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을 기반으로 하고있으나, 교회의 분위기는 강한 성령운동의 흐름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는 네트워크 형식으로 모임을 가졌고,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서로 다른 지역의 네트워크 구성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대규모의 수련회를 열었다. 이것이 오늘날 수십 개로 보편화된 영국 내 다양한 바이블 위크(Bible Week)의 시작이다. 현재 이들은 영국 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독인 공동체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비조직적으로 교회개척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숱한 시행착오와 신학적 문제도 있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80년대 중반에 그 동안 서로 대립적이던 복음주의권에 전격적으로 합류한다. 이들의 합류로 상당기간 약세였던 영국 복음주의협의회(Evangelical Alliance UK)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셋째는 새로운 세대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등장이다. 데이브 톰린슨은 그들이 성령운동에 호의적이고,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나 정치에 대한 의식이 있으며, 복음주의적 가치와 이상을 확립하고 전도하려는 열의가 있다고 정리한다. 그 대표격으로 복음주의협의회를 이끌어 쇄신시킨 클라이브 칼버(Clive Calver, 그는 지난 96년 미국 World Relief의 국제총무로 옮겨갔다)를 꼽았다. 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80년대 초반부터 대거 등장함으로써 노쇠한 복음주의권이 일거에 역동적 운동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는 다른 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상당히 일반화된 평가이다.

넷째는 대형집회를 통한 대중적 참여이다. 영국에는 100년이 넘게 이어온 케직 사경회(Kewsick Conference)의 전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캠프 미팅이나, 사경회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79년 시작된 '스프링 하비스트(Spring Harvest)'는 주로 사경회 중심의 분위기를 젊은 세대들을 위한 축제의 분위기로 전환해냄으로써 시대의 문화적 흐름과 조응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 기간동안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를 자연스럽게 설득해 냄으로써 복음주의권의 대사회적 발언권과 참여폭을 넓혀왔다. 스프링 하비스트는 약 한달간 연인원 8-9만 명이 다녀가는 영국 복음주의를 상징하는 대형집회가 되었다. 여기에다 87년부터 시작된 '예수 대행진(March for Jesus)' 역시 첫해 런던에서 25,000명이 운집한 이래 94년도에 영국 내에서만 25만 명이 참여했고,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런 대형 집회들은 복음주의자들의 내적인 자신감을 고취했고, 사회적 존재로서 위상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다섯째는 복음주의 내에서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강조된 것이다. 영국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의 사회복음(social gospel)과 초창기부터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복음전도에 우선하는 사회변화에는 기질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70년대 초반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는데, 런던 중심부에서 열린 '빛의 축제(Festival of Light)'를 중심으로 말콤 머거리지(Malcolm Muggeridge, 회심한 사회주의 사상가)의 활동이나, 존 스토트의 저작, 프란시스 쉐퍼의 글 등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대안을 찾아가도록 자극했다. 이때 포르노그라피 및 동성애 관련 이슈들과 반낙태 운동이 복음주의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이것은 이후 더욱 발전해 대규모의 구호기금인 TEAR 펀드(The Evangelical Alliance Relief Fund), 교육, 보건, 가정 등의 이슈를 제기한 CARE 캠페인, AIDS 환자를 위한 ACET 프로그램, 제3세계 빈곤문제를 다루는 Jubilee 프로젝트 등으로 확장되었다.

여섯째는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이것은 영국의 교회사를 돌아볼 때 교회의 영적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일어날 때마다 다양한 형태의 부흥운동을 통해 돌파구가 열렸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고, 특히 최근 들어 성령운동 쪽에서는 예언의 형태로 많이 등장했다. 이것은 세기말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캐나다의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 현상이 영국에는 상당한 기대감과 더불어 영향력을 끼쳤다.

그래함 크래이는 데이브 톰린슨의 분석이 성령운동이나 가정교회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파악이란 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최근 20여 년간 복음주의권의 주요 경향을 나름대로 짚어내는 유용한 분석이란 점에서 의미를 인정한다.

급진적 재고냐, 눈먼 확실성이냐
그렇다면, 대체 '복음주의 르네상스'의 무엇이 문제인가? 데이브 톰린슨은 성공 그 자체가 문제를 몰고 온다고 말한다. 어떤 운동이든 그것이 대규모의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 내부의 소수의견을 묵살하는 경향성을 띄게 된다. 복음주의권의 강단에서는 더욱 확신에 찬 음성과 미래에 대한 낙관이 지배하게되고, 여기에 가세한 성령 운동적 경향은 더욱 이런 흐름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것'에 대한 어떤 종류의 반대나 이견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결국 이를 벗어나려면 복음주의자들은 이 운동을 이까지 끌고 온 바로 그 원동력(Dynamics) 자체를 비판해야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숨겨진 딜렘마이다. 그는 새로운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들이 이런 성공의 이면에 깔린 위험과 변화된 세상을 의식하면서 복음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급진적으로 재고(radical re-thinking)'하느냐, 아니면 옛 근본주의가 보여주었던 '눈먼 확실성(blind certainty)'으로 돌이킬 것이냐는 기로에 서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상황은 좀더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논의를 끌어들이는데, 프랑스 학자인 길레스 케펠(Gilles Kepel)은 아브라함에 기원을 둔 세 종교,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다시금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70년대에 편만해진 모더니즘에 대한 서구의 환멸감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현대성(modernity)의 핵심인 이성주의(rationalism)가 더 이상 세상의 문제를 푸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느껴지자, 그 반동으로 영적 갈망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보았다. 이슬람의 경우 이는 "더 이상 이슬람을 현대화(modernize) 할 것이 아니라 현대성(modernity)을 이슬람화(Islamize)하자"는 구호에 잘 드러나는데, 이는 옛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는 흐름, 즉 근본주의(fundamentalism)을 대중적으로 불러오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현대사회와 세속적 가치관 혹은 그 사회의 지배적 종교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에서 그 기반을 얻고, 삶에 있어 대안적인 영적 가치를 강조하고, 이런 영적 기반에 근거해서 사회를 개조하자는 열정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그 사회에서 잘 교육받은 젊은 세대들이 대거 매력을 느끼고 이런 운동에 투신하는 양태가 더해진다. 이들이 사회를 개혁하는 방법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위로부터의 개혁' 즉 법이나 권력을 통한 제도화이고, 다른 방식은 '아래로부터의 개혁' 즉, 그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이를 성취하는 것이다. 전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고, 후자는 전도로 세상을 바꾼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들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
그에 의하면, 복음주의 교회들이 포스트모던 시대가 던져주는 도전을 외면한 채, 옛 가치들로 회귀함으로써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신앙의 본질적 조건보다 부수적인 요인들이 더 강조되고, 그런 요인들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깊어지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가 꼽는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문제는 복음주의자들이 점차 중산층(middle-class)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동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산층이 된다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물질적 안정과 상승욕구가 수반되기 때문에 이것이 복음주의적 가치관이나 생활방식과 혼동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것은 변형된 '문화적 종교(culture religion)'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두 종류의 계층을 복음주의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데 첫째는 서민이나 노동자층(working-class), 혹은 빈민층이 점점 더 자신들은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는 기득권층과 의식적인 거리감을 갖는 젊은 세대들의 심정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요즘 한국교회에서 이 두 계층을 제일 찾기 힘들지 않는가?)

또 다른 예로 가족의 가치(family value)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도 지적했다. 흔히들 교회에서 강조하는 가족의 모습은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이지 유일한 모델은 아니란 지적이다. 이미 서구교회의 경우, 이혼, 동거, 재혼, 편부모, 미혼모, 독신 등의 다양한 형태로 실제 상황은 전개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바탕으로 지당하신 말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델 밖에 놓인 이들은 교회 안에서 언제나 이류 그리스도인(second-class Christian)으로 자리매김 된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훨씬 오랜 동안 이런 이슈를 앓아온 서구의 경우가 국내에 동일하게 적용되기는 어렵겠으나, 요즘 국내에 넘쳐나는 가정사역 단체들이 이 고민할 때가 이미 되었다.)

복음주의 신앙은 문제없나?
그러면, 부수적인 요인들 말고, 복음주의적 신앙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우선 데이브 톰린슨은 복음주의 신앙의 강점에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경외심이고, 둘째는 복음을 아주 단순한 형태(simple form)로 제시함으로써 전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장점 자체가 역으로 복음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가 "복음주의 교회의 삼위일체는 성부(Father), 성자(Son), 성경(Holy Scripture)이다"고 비꼰 것처럼, 복음주의 교회들은 때로 성경을 우상화함으로써 말씀의 비판적 연구(critical study)란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리고 성경에는 결코 회색지대가 없고, 언제나 흑 아니면 백으로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믿어버린다.

전도에서도 이것은 바로 반복된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복음 패키지(simplified gospel pack)를 전하는 것으로 복음전도를 제한하는 것이나, 전도대상자에 대한 우월의식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데이브 톰린슨은 전도가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종교 외판원(religion salesman)이 아니라, 상대의 진리를 향한 영적 여행(spiritual journey)를 적극 후원해주고 도움이 될 경험과 깨우침을 나누는 동반자(partner)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한다. 전도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쓴 존 피니(John Finney)는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되는 과정을 조사해 본 결과, "전도자는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할지 모르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대체로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며, 그 평균은 4년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전도의 모델은 사람들이 이 필요한 과정을 잘 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포스트모던 시대, 포스트 에반젤리칼
지면상의 제약으로 데이브 톰린슨의 견해를 다 소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국과 한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을 대입해놓고 본다면 한국처럼 교단정치나 교권주의의 폐해가 심각할 경우 고려되어야할 제도적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에게서 전혀 시사 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의 요지는 분명 우리들에게도 울림을 갖는다. 세상은 포스트모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복음주의권은 과연 20세기 내내 복음주의를 형성해온 모더니즘적 전제를 급진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가? 즉, 여전히 근대(modern)의 전제를 굳게 움켜쥐고 있는가, 아니면, 아예 전근대(pre-modern)의 근본주의로 손쉬운 선택을 하려고 하는가? 포스트모던 시대와 적극적으로 교섭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몇가지 측면에서 포스트모던적 전제 아래서의 신앙, 즉 그의 제안대로 포스트 에반젤리칼 신앙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했다. 논평자들이 지적하듯이, 데이브 톰린슨의 논지에는 분명 학술적인 엄밀성이 더 요구되는 부분들이 있고, 현재 진행중인 논쟁들도 대거 도입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을 내러티브(narrative)로 이해하는 성경관, 언어의 메타포와 심볼을 도입해서 신앙을 설명해나가는 해석학적 방법 등은 영국에서는 복음주의권에서도 이미 상당한 진척이 있는 분야긴 하지만, 아직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더구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접합점을 마련할 것이냐에 좀더 고민이 있어야할 주제이다. 아무튼 이 주제는 차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되, 우리가 이번 논의에서 분명한 시사점을 얻어야 할 것은 복음주의의 전성기에 그 내부적 모순을 직시하면서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복음주의의 흐름이 좀더 자의식이 분명한 그룹들로 다양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는다. 좀더 다양한 신학적 사고들이 숨을 쉴 수 있는 분위기, 실험적 모델들이 시도될 수 있는 공간, 세상을 흑백사진이 아니라 칼라사진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그가 이끌어낸 포스트 에반젤리칼 논쟁은 이런 공간을 마련하자는 외침으로 읽힌다. 필자는 그가 분석해낸 바대로 복음주의가 스스로의 성장논리에 발묶이는 과정에 동의를 보내고, 중산층화 되어감으로써 잃어버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혀낸 대목에 함께 탄식한다.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전도에 열심을 내는 복음주의 고유의 특징을 유지하는 것과 그것에 함축된 역기능을 비판하는 것이 결코 양립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것도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것은 그 동안 막연한 반발감이나 불평으로 여겨 눌러두던 생각의 파편들이 비로소 제 이름을 얻고, 복음주의 이후를 모색하는 '고민하는 주체'로 자리매김 되었다는데 있다. '포스트 에반젤리칼', 이것으로 자신의 이름이 비로소 불려졌다고 느끼는 사람들, 한국에는 없는가?





Posted by era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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